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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마 김작가 Apr 26. 2020

코로나 시대 현실 부부 백서: 사랑 말고 고생을 나누자

내가 더 고생하고 있는 것 같다는 억울함

연애 과정에서 다툼의 이유는 내가 더 많이 좋아하는 것 같다는 서운함이지만 결혼생활에서 분쟁의 이유는 내가 더 고생하고 있는 것 같다는 억울함이다.


연인이 추구하는 것이 사랑의 평등이라면 부부는 고통의 평등을 추구한다.


내가 너에게 이만큼 사랑을 표현했으니 너도 나에게 그렇게 사랑해 달라는 연인의 언어는 내가 이만큼 가정을 위해 희생했으니 너도 그만큼 희생해라의 부부의 언어로 변색된다.

알랭 드 보통의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에서 목요일 저녁 아내가  남편에게
금요일 이불 다림질을 부탁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내는 부탁을 했지만 남편은 명령으로 들렸을지도 모르겠지만.....)


내일 이불 커버 좀 다려 주겠어? 그녀가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묻는다. 그는 속에 뒤 틀리지 만 애써 참는다. "내일은 금요일이야."그가 지적한다. "금요일에는 그런 건 당신이 해줄 수 있을 것 같은데."그러자 그녀가 올려다본다. 눈길이 싸늘하다. "그래, 알았어. 집안일은 내 일이지. 신경 쓰지 마. 물어봐서 미안."다시 책을 읽는다. 삐걱 대고 할퀴는 이런 충돌은 노골적인 분노보다 더 사람을 지치게 한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요즘 우리 수입의 3 분의 2를 벌고 총액을 어떻게 계산하느냐에 따라 훨씬 더 많을 수도 있는데, 모든 것에 있어서 합당한 몫보다 더 많은 일을 하는 것 같아. 내가 단지 나를 위해 직장을 다니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사실은 거의 만족스럽지 않고 항상 스트레스 만 쌓이는 데 말이야. 거기다가 이불 커버까지 말리려고 하면 안 되지, 난 내 몸을 하고 있는데 지난 주말엔 아이들을 수영장에 데려다줬고, 방금 전에는 식기세척기를 돌렸어. 사실은 누가 날 돌봐주고 보호해줬으면 좋 겠다고, 정말 화가 치민다. "

그녀는 이렇게 생각한다. '사람들은 다들 내가 집에 있는 이틀은 그저'쉬는 날 '이고 이런 시간이 있으니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내가 뒤에서 해 놓는 그 모든 일 없이는 이 집은 단 5 분도 유지되지 않는데, 모든 게 다 내 책임이야. 난 정말 쉬고 싶은데 집안일을 넘기려고만하면 언제나 내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 그러니 결국 아무 말도 안 하는 게 편하지 싶어. 조명엔 또 문제가 있고 내일은 전기공을 따라다녀야 하겠지. 사실은 누가 날 돌봐주고 보호해줬으면 좋겠다고, 정말 화가 치민다."

알랭 드 보통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은행나무, 2016


내로남불 : 문제는  우리는 자신에게는 관대하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나에게 주는 점수에 비해 내가 나에게 주는 점수는 언제나 후하다.


편파판정은 언제나 분쟁을 야기하고 만다.
그리고 이 편파판정의 극단적인 예가 나다. [아무리 똑똑하고 사회에서 인정받는 남편이라도 아내에겐 모지리다] 음모론의 창시자, 바로 나, 로마 김 작가시다.

김 작가의 남편은 로마 가신(가이드의 신)이다. 이는 직업이 가이드라는 뜻이자 일주일에 집에 머무는 시간보다 이탈리아 남부 해안길을 달리고 있는 시간이 더 많음을 의미한다.


그가 집에 머무는 주말엔  육아의 대부분을 그가 담당한다. { 당신이 집에 없는 동안 내가 두 아이와 이 타지에서 얼마나 고생을 하는데!! } 공격은 항상 제대로 먹힌다. 그는 유일한 가족의 수입원이지만 그 외적인 이탈리아에서 삶의 모든 일을 아내가 처리함으로 쉬는 날은 온전히 가족에게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연말 직원 평가에서 최하위 권에 머문다 해도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포기해야 함을 아는 나이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내의 남편 평가에서 최상의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것은 또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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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내도 남편도 집을 벗어나지 못하고 부대껴야 하는 때가 온 거다. 역병이 창궐했다. 김 작가는 요리를 할. 줄. 만. 알지만 가신은 요리에 열정을 가지고 있다. 자연스럽게 그는 끼니 담당으로 배정되었다. 현재 지구 상 엄마들의 알코올 섭취의 주원인인 [돌아서면 밥]을 책임지게 되었다.

김 작가는 역병 이전에도 행정을 담당했지만 이후에도 행정을 담당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하루에도 수십 가지의 보조 책이 나오지만 이 땅에 그 내용을 확실하게 인지한 인간을 단 한 명도 없는 듯하다. 주는 넘도 받아야 하는 넘도 정확하게 뭔 소린지 모른다.


독일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통장에 척척 입금해 준다는데 이탈리아는 말이 많아 그런가 이 일촉즉발의 상황에도 묻고 따지다가 지쳐 나가떨어질 판이다. 이탈리아에서의 일처리가 매끄러웠던 순간이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이리 뛰고 저리 뛰어서 물어물어 어떻게든 해결했다. 그런데 이리 뛰고 거리 뛰어도 거실인 현상황에서 일 하나 처리를 위해 메일을 보내고 전화를 걸며 랩탑 앞에서 동동동 제자리 뛰기 중이다.

집 대출금 지급 유예와 직장인 보조금 신청도 해야 하는데 회계사도 회사도 우왕좌왕이다. 케세라세라, 어떻게든 되겠지. 에서 ‘운 좋으면 받고’로 의식이 전환되자  조건이 되고 안되고 상관없이 ‘준다는 건 다 신청해버리자 ‘ 로 결론을 내린다. 사이트는 폭주하여 마비되고 중복 신청을 걸러낼 방법을 강구하지 못하자 정부는 우선 다 정지시켜버렸다. 티브이 토론에서는 하나같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우선은 줘라 당장 굶어 죽게 생겼다. 롸잇놔우!!’를 외치지만 준넘도 받은 넘도 없는 현실이다.


거지 같은 상황에 거지 같은 일처리를 담당한 김 작가의 화가 결국은 가신에게 향한다.


너무나 예상 가능한 전개지만 김정은 사망 뉴스가 올라오고 바이러스 창궐로 이전의 현실로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영화 같은 현실 앞에 집안에서 만큼은 진부하고 싶다.


“당신이 일하느라 집에 없어서 내가 행정적인 모든 일을 다 담당했다지만 지금은 둘 다 집에 있는데 왜 나만 해야 해?! 아무리 돌아가는 상황을 모른다고 해도 알려고는 해야 하지 않아? 시늉은 해달라고. 신경은 좀 쓰라는 이야기야.”


“당신은 일처리, 난 요리. 이거 암묵적으로 약속된 거 아니었어?! 내가 그 일들을 처리한다 해도 당신이 만족할 수 있어? 결국은 당신이 해야 만족할 거잖아! 그리고 당신은 내가 요리할 때 신경 쓴 적 있어? 그냥 와서 먹기만 하잖아. 상 한번 차린 적도 없고. 설거지도 다 내가 하잖아.”


“그래? 그럼 이제 반반씩 요리해. 나도 할게. 대신 당신도 해. 알아? 지금 내가 처리하는 일들은 반드시 돼야 하잖아. 이 돈을 못 받고 못 막으면 우리가 얼마나 더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줄 알아? 왜 나에게만 이런 무거운 책임을 지라는 거야? 내가 해야 하니 하는 거지 뭔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제대로 하고 있는지 언제나 불안해. 서류에 적힌 내용들은 한국말로 적혀있어도 모를 말들이라고. 이걸 번역기를 돌리고 사람들에게 묻고, 이걸 왜 나만 해야 하냐고.”


“알겠어. 나도 할게. 하지만 너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준비해야 해. 그리고 내가 한 일처리에 대해 비난하지 마.”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준비하라니!! 이 전쟁의 패자는 나다. 젠장, 먼저 웃어버렸다.


솔직하게 그가 일처리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냥 죄책감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요리는 둘 다 할 수 있는데 내가 안 하는 거고 행정업무는 나만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생색내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요리가 그만이 할 수 있기 때문에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다. 먹을 수 있는 요리를 하라니! 그거 먹고 자란 우리 두 아이에게 진지하게 엄마의 요리에 대한 생각을 들어봐야겠다. (예전에 아들에게 옥수수 통조림에 생된장을 반찬으로 주었더니 엄마 요리가 최고라고 했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도대체 아이들이 나의 요리에 대해 가지는 기대치가 어느 정도란 말인가!!!!) 여. 하. 튼. 우린 각자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었다.

죽느냐 사느냐 고민 아님 주의
다만, 난 나의 일을 더 가치 있게 생각했고 그의 일을 가치 절하했다. 먹고사는 문제에서 그가 “먹고”를 담당하고 내가 “사는”을 맡고 있었다. 이 둘은 동등한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나처럼 하는 남편 없어. 매 끼니 요리하고 애들이랑 하루 종일 놀아주고.”


“나처럼 하는 아내도 없어. 이 모든 행정업무를 혼자 처리하는.”


“알아. 당신 너무 대단해. 고마워. 항상 당신에게 고맙고 대단하다고 말하잖아. 그런데 당신은 언제나 날 부족하다고 이야기하잖아. 그게 우리의 차이야. “

그날 저녁 아이들을 재우고. 우린 함께 랩탑 앞에 앉았다. 한국말로도 이해가 되지 않을 온갖 규정들을 함께 머리를 맞대고 번역기를 돌려 해독했다. 둘 다 모지리지만 둘이 함께 하니 적어도 상모 지리는 아닐 수 있었다. 똑같이 제자리를 동동 거렸지만 둘이 함께하니 몸이 좀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완성된 서류를 메일로 보내고 약속이라도 한듯 동시에 말했다.


여보, 고생했어요.


고통의 평등을 실현하고서야 우린 서로의 역할에 진심으로 감사할 수 있었다. 부부의 세계의 로맨스는 열정이 아니라 기술로 지속됨을 다시한번 깨달으며....


written by iand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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