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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마 김작가 May 06. 2020

이탈리아의 새로운 인사법을 소개합니다

60일 만의 봉쇄 완화, 외출을 시작합니다


가족이 다 함께 집을 나섰다.
60일 만이다.


휴교를 하고 이탈리아 전국이 봉쇄되고, 연장되고, 연장되고, 연장되었다. 슈퍼도 가족 중 한 사람만 갈 수 있고, 증명서 없이 외출을 하다 검문에 걸리면 벌금이 물어야만 했다. 집 근처 산책도 운동도 모두 금지됐다. 모든 것이 멈췄다.

박수를 치고 노래를 하고 촛불을 켜 희망과 응원을 테라스에서 하늘로 날리던 사람들도 서서히 지쳐가고 침묵하기 시작했다. 사망자는 하루 천명을 넘어서고 확진자는 7천 명에 육박했다. 서서히 이 봉쇄가 이 희생들이 의미가 있는가 의심을 품기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우린 집에 머물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창문으로 안부를 묻고 창문으로 건배를 하고 창문으로 생일을 축하하고 창문으로 가난한 이를 도왔다. 다시 창문 아래를 걸을 시간을 기다리며.

https://youtu.be/nnBNpsKbllQ

창문으로 건배하는 사람들, 더 대나무 나두 구입할 뻔 ㅋ

https://youtu.be/AVoBJ-txeKE

코로나 시대 이탈리아의 생일 축하법
나폴리의 정겨움의 상징인 바구니, Panaro의 우리 시대 위로의 모습으로 다시 등장했다

이탈리아, 나폴리에는 “panaro”라는 바구니가 있다. 줄에 매달아 창문 밖으로 길게 늘어놓는 바구니다. 이 바구니를 통해 물건이나 음식을 전달한다. 나폴리의 한 골목길에 이 바구니가 다시 등장했다. 바구니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Chi può metta
Chi non può prenda”

(가능하다면 담아주세요
힘들다면 (여기 담겨있는 것을) 가져가세요)


효력이 없어 보이던 봉쇄는 천천히 그 의미를 보여 주기 시작했다. 일일 확진자의 수치 앞자리가 천명이 되고 사망자도 백 명대로 떨어졌다. 한국에 비교해 단순 수치만으로는  여전히 높게 보이겠지만 유럽 내에서 가장 큰 변화를 보였다. 정부의 무능력을 직시하고 인정한 이 나라가 현시점에서 국민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유럽에서 대부분 셧다운을 실행했지만 이탈리아가 가장 강도 높은 규제를 했다. 마스크를 착용률은 압도적으로 높다. 말을 잘 들어서라기보다는 정부나 나라를 믿기보다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오만보다  불신이 지금은 더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이동제한 조치 후 한 달 반 만에 1차 이동제한완화가 발표됐다. 슈퍼, 약국을 제외하고 몇 가지 분야에서 영업이 허가되었다. 서점과 유아복 판매점이 문을 열고 아이 한 명당 부모 한 명의 외출도 가능해졌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가라앉은 마음이 올라 올 생각을 않았다. 숨이 가빠져 테라스로 나갔다. 반대편 테라스에서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던 남편이 내 기분을 풀어주려 인사를 던졌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

대답을 못하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어휴, 아니에요. 잘 못 지내는 것 같아요.”

참으려 했는데 눈물이 흘렀다. 이유 없이 나오는 눈물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울고 싶은 게 나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우는 이유를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모두의 우는 이유가 닮아버린 슬픈 코로나의 시대다.


잠깐 나갔다 올까 생각하다 혼자 나가면 혼자 울기밖에 더 할까 싶었다. 아이에게 우리 함께 나갈래? 물었다. 너무 좋아했다. 장갑과 마스크로 중무장을 하고 아들과 집을 나섰다. ‘아무것도 만지지 마’ 신신당부를 하며 아이도 나도 한 달 반 만에 집을 나선다.

요즘 로마 하늘


거리의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반 이상이 장갑도 끼고 있었다. 그 모습이 이상하리 만큼 안심이 됐다. 하늘도 푸르고 바람은 청명했다. 길을 건너는데 아이와 나의 손이 자꾸만 부딪혔다.  아이가 나의 손을 잡고 싶은 거다.

_이안, 손은 못 잡아.
_하지만.... 손을 안 잡고 걸으면 난 자꾸만 외로운 기분이 들거든,

우린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기분이...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_나오니까 참 좋네, 그렇지?
_응, 나도 좋아. 사실 나.... 세상이 잘 기억나지 않았거든.


아이는 한 달 반 만에 세상이 가물가물해졌다.


그리고 새로운 세상에 모두가 쓴 마스크가 신기하다. 말을 하다 마스크가 슬금슬금 코 아래로 내려가려 하면 큰 일이라고 난 것처럼 ‘엄마엄마’를 외쳐 불렀다.


빵집에 줄을 서 있는데 빵집 옆에도 줄이 길게 늘어져 있다. 아동용 신발 가게다. 2주 뒤면 가족 외출과 산책, 운동도 가능해질 거라고 한다. 그런데 막상 나가려니 애들 신발이 죄다 작아진 거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자유의 시간이 왔는데 신발이 맞지 않았다는 우리 시대 웃픈 동화.


그런데 동화 아니고 실화.


아동용 신발 가게 앞 줄을 선 사람들

보름이 지나고 정부는 2차 이동제한완화를 발표했다. 레스토랑은 포장이 가능하고 일반 상점들도 문을 열 준비를 한다. 지역 간 이동은 아직 불가능하지만 동네에서의 운동과 산책이 가능해졌다. 지인 방문은 아직 불가능하지만 친지 방문은 가능하다.


두 달 만에 가족 다 함께 집을 나섰다. 테라스가 아닌 땅을 밟고 걸으니 마치 처음 걸음마를 시작한 듯 낯설고 숨이 찬다. 아이는 외출이 자유로워지면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것이 있다. 옆집 문을 두드렸다. 옆집의 까만 강아지와 산책을 손꼽아 기다렸다. 해 질 녘 이웃과 함께 아파트를 벗어났다. 그럴 것 없다는데 마음껏 코로(강아지 이름이다) 만지려면 필요하다고 굳이 장갑을 꼈다. 딸은 털장갑 아들은 골키퍼 보호대다.

이탈리아 사람들의 아이들을 향한 웃음은 마스크 너머에도 여전하다. 엄마가 개발 소발 만든 마스크 (나름 핸드메이드 made in italy !!) 도 아이들이 낀 장갑도 그저 흐뭇하다.  너도 나도 사진을 찍어 아이들은 외출도 신이 나는데 더 흥분했다. 강아지 풀, 땅에 떨어진 분홍 꽃, 담장에 망울진 흰꽃과 함께 집에 돌아왔다.


이탈리아의 규제가 완화되면서 6월에는 아시아나 항공 직항도 다시 재개된다고 한다. 전세기 비용이 부담스러워 로마에 남았던 가족들이 대다수 한국행을 마음먹은 듯하다. 이탈리아의 삶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이도 적지 않다. 아마 몇 주간의 우울의 이유에는 이 것도 작용했을 거다. 남은 이도 떠나는 이도 슬프다.


모두가 몸도 마음도 지쳐갈 때  함께 걸을 수 있고 꽃이 안을 수 있는 시간이 우리에게 허락됨이 너무나 감사하다.

어디서 교육받니? 왜 이렇게 중무장을 ㅎㅎ
코로와 산책 중
자전거 연습도 시작했다


5월 5일 제한 완화 2일 차,
소란스러운 대화 소리에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아..... 너무 그리웠어. 이 소란스러움.’

집 앞 모퉁이 바가 문을 열었다. 호들갑을 떨며 가족들에게 오늘 아침은 나가서 먹자고 소리쳤다. 격리 중 가장 그리웠던 것이 바에서 마시는 카푸치노였다! 여전히 바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고 밖에서 소리쳐 주문해 커피를 받아 야외에서 마셔야 하지만 에스프레소 내음만으로  심장이 쿵쾅거렸다. 테라스에서 얼굴을 가리고 울던 때와 다른 이유로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이 도시가 소란스럽게 다시 나아갈 준비를 하는 이 북적거림이 너무 좋다.

카푸치노 남편과 나의 카푸치노 두 잔을 시키며 두 달 전과 똑같이 외쳤다.


하나는 카카오 가루 뿌려줘.
돈은 남편이 낼 거야.


잠시 후 남편이 빵집에서 설탕이 가득 올려진 패스트리를 사 왔다. 아이들이 킥보드를 타다 우리 곁에 와서 물었다.

_츄파춥스 하나 먹으면 안 돼요?
_아침부터 무슨..... 아! 아니다. 오늘은 먹자. 어린이 날이니까.

장난감 가게는 배달만 가능하다. 어린이 날 실망한 어린이.


카푸치노 두 잔,

추파 춥스 두 개,
3유로에 우린 충분히 행복했다.
두 달 만의 카푸치노는 꿀 맛이었다
역시!


세상에서 제일 맛난 카푸치노는
돈 내고 사 먹는 카푸치노라는 진리는 변하지 않지!!!


안에는 들어갈 수 없고 밖에서 주문하고 테이블에 돈을 놓는다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며 마실 수 있다
내 사랑 ㅠㅠ 얼마만이니!!!!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목소리는 여전히 큰 주인아저씨가 저 멀리 출근길의 동네 주민과 인사한다.(아... 너무 정겨운 말이네, 출근길)


팔꿈치로 툭, 발로 톡,


너무나 자연스러운 그들의 새로운 인사법이 웃음이 터졌다. 사진을 찍고 싶어 다시 인사를 부탁하니 멋지게 재연해 준다.


이탈리아의 새로운 인사법을 소개합니다
새로운 일상,
새로운 인사법,
세상은 이전과 다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웃으며,


written by iand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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