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마 김작가 Apr 16. 2020

이동제한 4주 차, 우리가 티라미수를 주문할 시간

제발, 여기에서 끌어올려줘


티라미수(Tiramisù)

당신은 디저트 하나를 시켰을 뿐이라고 생각하겠지. 아니, 방금 당신은 완벽한 이탈리아 문장 하나를 구사했다. 만약 티라미수 하나를 외치며 검지 손가락을 위로 향하였다면 심지어 제스처마저 완벽했다.



“Tira mi su.”


“ 나를 위로 당겨줘. “라는 뜻이다.

그대가 절망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슬픔에 잠식되어 있을 때,

우울로 바닥을 기고 있을 때,

무기력으로 땅 속으로 꺼져가고 있을 때,

 ‘도와줘.’ ‘힘들어.’라는 말을 대신해 외친다.

Tira mi su, per favore.
( 제발, 나를 끌어올려줘. )


그러면 당신 두 손위에 그 완벽한 해답이 올려진다.

마스카포네 치즈 사이사이 풍미를 더하는 잔뜩 머금은 에스프레소 향. 수북이 올려진 카카오 가루로 인해 하이패션의 선두주자 같은 검고 짙게 변한 입술 사이로 부드러운 티라미수가 들어와 혀를 감싼다. 드디어 절망에서 슬픔에서 우울에서 무기력에서 탈출할 원동력이 되어 줄 에너지가 충전된다.


티라미수는 구원이다.


격리 3주 차에서 한 달로 넘어가던 지난주. 굳건히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멘탈에 조금씩 균열에 생기기 시작했다. (‘세계’라는 단체전은 바이러스와의 싸움이지만 ‘나’라는 개인전은 정신력 싸움이다. ) 그 사이로 불안감이 스멀스멀 들어왔다. 넋을 놓고 하늘을 바라보다 보면 소화불량인 듯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리고 아무런 이유도 없이 눈물이 쏟아질 것 만 같았다. 참을 수 없이 티라미수가 간절해졌다.


누가 날 여기서 끌어올려줘.




우리 동네에는 두 명의 티라미수 왕이 존재한다. 같은 하늘 아래 두 개의 왕이라니, 뭐, 왕들은 괴로우나 중생들은 달콤하다.


그 하나의 이름은 POMPI 폼 피다.

티라미수의 왕국, Pompi

한국인들도 로마에 오면 꼭 방문하는 집이다. 심지어 한국에 분점도 있다. 이 집 티라미수의 특징은 부드럽고 촉촉함이다.  


다른 하나의 이름은 billy’s ice 다.

티라미수의 왕, Billy’s ice

폼피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광객들에겐 접근이 용의 하지 않다. 폼피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특히 이 곳 주변에 한국 유학생들이 많이 사는데 유학생들 사이에서 유명하면 찐이다. 이 집 티라미수의 특징은 진하고 쫀쫀함이다.

사람마다 각자의 취향이 있겠지만 난 후자 쪽이다. Billy’s ice에서 티라미수 포장을 하면 살짝 언 듯한 상태인데 이걸 냉장실에 넣어두면 점점 부드러워진다. 얼린 상태로 맛보는 것도 이 곳의 티라미수를 즐기는 멋진 방법이다.

한 번은 첫째 아이 학교 공연에 친한 동생이 함께 했는데, 아이 반 학부모를 보더니 “어 저 아저씨가 왜 여기서 나와?” 하는 거다. 너 아는 사람이야? 하니 우리 동네 제일 유명한 티라미수 집주인이에요. 하는 거다. 알고 보니 아이의 단짝 친구인 니콜로가  바로 Billy’s ice 집 아들이었다.

쟤가 니콜로

3월 이동제 한령이 떨어지고 슈퍼와 약국을 제외한 모든 곳은 문을 닫혔지만 레스토랑과 디저트 가게들은 배달로 영업을 유지해 나가고 있다. 니콜로네의 티라미수가 학부모 단톡방에 등장한 건 이동제한령 1주차였다. 로렌조의 엄마 제니퍼의 생일날이었다.


“오늘 나의 생일을 멋지게 장식해준 Billy’s ice 고마워. 우린 멋진 생일 파티를 준비 중이야. 거실 광장에서 피자를 먹고 예약해둔 주방에서 티라미수와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가족 모두 집 투어를 할 예정이야.”


사무엘의 생일, 플라비아 아빠의 생일, 안나 마리아의 생일, 크리스티안네 결혼기념일 까지, 축하가 필요한 자리마다 우리 곁엔 니콜로네 티라미수가 함께 했다.

그리고 지난 부활절 주일 나의 앞에 티라미수가 놓여있었다. 딸과 예쁘게 세팅해 늦은 오후의 티타임을 가졌다. 너무 맛있다고 몇 번이나 엄지를 치켜세우는 딸의 사진을 학부모 단톡방에 올렸다.


Billy’s ice 와 함께하는 우리의 달콤한 오후

니콜로의 엄마가 답을 보냈다

이도 (둘째 이름이다) 덕분에 우린 (이 상황을) 견딜 수 있겠어.


내가 답했다.

이도만 믿어!


그날 저녁 니콜로의 아빠에게서 문자가 왔다.

다음엔 (배달앱 말고) 나에게 전화해. 내가 바로 집으로 가지고 갈게.
“당신의 격리를 달콤하게 만들어 줄 슈퍼 빌리”


비록 우린 떨어져 있고, 모두 경제적, 심적으로 어려움 속에 처해있지만, 서로가 전하는 달콤함으로 함께 따뜻해질 수 있었다.

며칠을 힘들어하던 내가 기운을 차린 것을 축하해주려는 듯 남편은 특식을 준비했다. 분식 파티다. 학교 앞 떡볶이 레시피란다. 테라스로 볕이 가장 잘 드는 오후 야외 영화관을 오픈했다. 우린 몸을 접어 옹기종기 앉았다. 군만두를 떡볶이 국물에 찍어 한입 베어 물었다.


티라미수가 구원이라면 떡볶이는 사랑이어라.


우린 한 뼘 테라스에서도 행복해질 수 있는 법을 배워나가고 있다.


이동제한령 후, 네 번째 맞이하는 일요일이 달콤하게 흐르고 있었다.


<햇살 좋은 날에>
- 줌파 라히리 [내가 있는 곳] 마음산책, 2019

정육점, 빵집 앞에 긴 줄이 서 있지만 누구도 불평하지 않는다. 내 차례가 됐다.
“얼마나 맛있는지 알게 될 겁니다.”
오래 알고 지낸 사이고 적어도 일주일에 세 번 같은 빵을 내게 만들어주는 남자가 계산대에서 말한다.
“오늘은 당신을 위해 정말 기막히게 맛있는 빵을 만들었습니다.”
남자는 계산대 위 양동이에서 치즈 두 조각을 꺼내 무게를 가늠하더니 빵 안에 넣고 종이로 싼 다음 영수증을 내민다.
“받으세요.”
난 공짜나 마찬가지인 빵 값을 지불한다. 엉덩이를 붙일 곳을 찾다가 놀이 공원에 앉는다. 밤에는 텅텅 비지만 이 시간에는 아이들, 부모들, 강아지들, 나 같은 외로운 사람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오늘은 전혀 혼자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떠드는 소리가 시끄럽다. 자신을 표현하고 설명하고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려는 우리의 충동에 난 새삼 놀란다. 믿어 마지않는 소박한 빵 맛에 또 새삼 놀란다. 햇살에 몸을 녹이며 빵을 먹는 동안 성스러운 음식을 먹는 것 같다. 이 동네가 날 사랑한다는 걸 안다.

*줌파 라히리 Jhumpa Lahiri 는 영국 런던의 벵골출신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민 하여 로스아일랜드에서 성장했다. [내가 있는 곳]은 그녀가 이탈리아 어로 쓴 책[Dove Mi Trovo]를 번역한 것이다.


written by iandos
이전 07화 코로나, 이전에는 믿었지만 지금은 믿지 않는 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