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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마 김작가 Apr 29. 2020

태어나는 곳을 정할 수는 없지만

살 곳을 선택할 수는 있어

우린 태어나는 곳을 정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살 곳을 선택할 수는 있습니다.


아이의 유치원 졸업공연 날. 공연이 끝나면 졸업식이 이어질 거다. 교장이 공연의 시작을 알리며 인사를 전한다.


“우리 아이들은 새로운 춤을 출  준비가 되었습니다. 모든 마지막 이후엔 새로운 시작이 있습니다.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다음 장이 열립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삶으로의 여행을 나섭니다. 그 모든 순간에 기쁨과 환호가 함께 할 것입니다. 오늘의 공연은 여러분의 심장을 뜨겁게 하고 마음을 열어줄 것입니다. 극장이 떠나가도록 박수 쳐주세요. 여러분, 우린 태어나는 곳을 정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살 곳을 선택할 수는 있습니다. 새로운 모험이 시작됩니다.”

무대 속 아이들은 세상을 여행했다. 여행자가 되고 승무원이 되고 때론 가이드가 되었다. 이안이는 마드리드, 레이나 소피아의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설명하는 가이드였다.

아이는 그 누구보다 즐기며 춤추고 노래했다. 크게 노래를 따라 부르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13개월, 겨우 걷기 시작한 아이가 이탈리아 어린이집에 들어섰다. 이탈리아 말을 알아들을 리 없던 아이는 하루 종일 잘 지냈다는 선생님의 말이 무색하게 나를 만나면 서럽게 울었다.

그 울음이 마음에 걸려 픽업 시간이 한참 남은 이른 시간에 어린이 집 문 앞에서 서성거렸다. 들릴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문에 바싹 귀를 붙이고 혹여나 아이 울음이 들릴까 노심초사했다.

아이는 더 이상 울지 않게 되었지만 하루는 이탈리아 말만 해서 속상하게 하더니 한국에 길게 휴가를 다녀온 어느 날엔 이탈리아 말을 잃어버렸다며 나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이래도 저래도 난 걱정을 하고 말았다.

어린이집부터 유치원까지 5년의 시간이 흘렀다. 우리가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살겠다고 정한 곳, 로마에서 그 살겠음의 다짐이 형상이 된 것이 아이였다. 아이는 부모의 얼굴을 하고 부모가 선택한 나라에서 태어났다.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나라에서 태어난 아이가 스스로 살 곳을 정하여가는 여정의 한 페이지가 끝났다. 이 여정까지는 감사하게도 매 순간 동행할 수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무대 중앙 스크린에 아이들 하나하나의 얼굴이 비췄다. 긴 복도를 걸어 아이가 걸어 들어왔다. 참고 있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걸음 하나하나에 수많은 순간이 흘러나와 눈앞으로 펼쳐졌다. 우리 모두 정말 수고했다.

졸업 공연을 준비하면서 집에서 곧잘 학교에서 배운 노래를 흥얼거렸다.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주겠노라 아이는 나를 위해 노래했다. 그 노래는 아이의 졸업식 내내 흘러나와 나를 울렸다.
 

노래는 엄마가 아이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였지만 마치 아이가 나를 위해 쓴 편지 같았다.



A modo tuo 너 답게 - Elisa

Sarà difficile diventar grande
prima che lo diventi anche tu
tu che farai tutte quelle domande
io fingerò di saperne di più
sarà difficile
ma sarà come deve essere
metterò via i giochi
proverò a crescere

어른이 되는 건 힘든 일이야
네가 어른이 되기 전에
수많은 질문을 할 거고 난 더 많이 아는 척을 하겠지
힘들 거야
하지만 그건 당연한 일이야
나도 장난감들을 치우고 성장하도록 노력할게

Sarà difficile chiederti scusa
per un mondo che è quel che è
io nel mio piccolo tento qualcosa
ma cambiarlo è difficile
sarà difficile
dire tanti auguri a te
a ogni compleanno
vai un po' più via da me

이런 세상에 대해 너에게 사과하는 건 힘든 일일 거야.
나는 무언가 해보려고 노력하겠지만 변화시키기엔 힘들 것 같아.
힘들겠지
매년 생일마다 너에게 생일 축하를 전하기가
그때마다 넌 조금씩 내 곁을 떠날 테니까

A modo tuo 너 답게
andrai 너의 길을 가겠지
a modo tuo 너 답게
camminerai e cadrai, ti alzerai 걷고, 넘어지고 일어나겠지
sempre a modo tuo 언제나 너 답게
A modo tuo 너 답게
vedrai 한번 봐
a modo tuo 너 답게
dondolerai, salterai, cambierai 흔들리고, 뛰고, 변하겠지
sempre a modo tuo 언제나 너 답게

Sarà difficile vederti da dietro
sulla strada che imboccherai
tutti i semafori
tutti i divieti
e le code che eviterai
sarà difficile
mentre piano ti allontanerai
a cercar da sola
quella che sarai

길 위의 모든 신호등과 금지 신호에 가로막힌 널 뒤에서 지켜보아야 한다는 건
힘든 일일 거야
때론 피하고 싶은 길도 만날 거야
힘들겠지
네가 되고 싶은 너를 스스로 찾기 위해 서서히 나를 떠나게 되면

A modo tuo 너 답게
andrai 너의 길을 가겠지
a modo tuo 너 답게
camminerai e cadrai, ti alzerai 걷고, 넘어지고 일어나겠지
sempre a modo tuo 언제나 너 답게
A modo tuo 너 답게
vedrai 한번 봐
a modo tuo 너 답게
dondolerai, salterai, cambierai 흔들리고, 뛰고, 변하겠지
sempre a modo tuo 언제나 너 답게
A modo tuo 너 답게
andrai 가겠지

Sarà difficile
lasciarti al mondo
e tenere un pezzetto per me
e nel bel mezzo del tuo girotondo
non poterti proteggere
sarà difficile
ma sarà fin troppo semplice
mentre tu ti giri
e continui a ridere

힘들 거야
세상에 너를 남겨두고
너의 작은 조각만을 내 속에 간직한다는 게
복잡한 삶의 한가운데 있는 너를 더 이상 지켜 줄 수 없다는 건
힘들겠지
그런데 어쩌면 너무나 쉬울지도 모르겠어
뒤를 돌아본 네가
여전히 웃고 있다면 말이야


지난달. 아토피에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데 아이가 곁에 다가왔다. 심했던 순간의 사진을 보던 아이는 불과 1년 전의 자신의 살을 기억하지 못했다. 이땐 피부가 정말 빨갛네, 많이도 긁었는데 너무 좋아졌어. 수고했어 대단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런데 정말 좋아졌는지 봐야 한데, 의사 선생님이. 그래서 말인데 피를 뽑아야 할 것 같아. 아이의 눈에는 두려움과 함께 눈물이 맺혔다. 그거 아픈 거 아냐? 나 옛날에 그거 할 때 울었어?

-이안, 저번에 바치노(예방주사) 맞을 때 얼마나 아팠는지 기억나? 일 년 전에 얼마나 간지러웠는지 기억나? 이도가 얼굴 긁었을 때 아팠던 거 기억나? 거봐 기억 안 나지? 그러면, 수영장 있는 집에서 놀았던 건? 바다 가서 양꼬치 먹은 건? 엄마가 일본에서 포켓몬 사온 건? 런던 이모가 스틱맨 사준건? 다 기억나지? 이안, 슬픈 거 아픈 거 힘든 건 다 사라져. 하나도 기억 안 나. 그런데 즐거운 거 행복한 거 웃은 건 다 떠올라. 엄마는 이안이랑 웃은 건 하나도 안 잊어버렸어. 모두 생각나. 이안이도 그래? 피 뽑을 때 아플 거 같지만 그거 하나도 기억 안 날 거야.


아프고 슬픈 건 다 지나가.
다 지나가더라고.

책의 한 단락이 끝이 났다. 다음 장이 열린다.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모든 이야기에는 갈등이 등장하고 모든 모험에는 역경이 도사리며 모든 여행에는 위기가 발생한다. 하지만 이 모두는 찬란한 결말을 위한 장치일 뿐이다.


주인공은 고통과 아픔을 성장과 감사함이라는 이름으로 기억에 저장한다.

그리고 다시 눈을 반짝이며 두근거리는 심장소리를 따라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 모험을 떠난다.


written by iand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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