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울고 싶었는데,
_엄마 킨더초콜릿 더 먹을래.
_안돼. 오늘 이미 두 개 먹었잖아. 그리고 이제 없어. 다 먹었어.
_아니야! 냉장고에 있는 거 봤어.
아이는 막무가내로 냉장고 문을 연다.
_엄마가 없다고 했지? 냉장고 문 닫아.
_쾅!!
아이는 보란 듯이 냉장고 문을 세게 닫고 돌아섰다.
_뭐 하는 거야?! 다시 와!!!
_뭐!! 왜!!!
아이는 억울한 눈을 하고 노려보며 퉁명스럽게 돼 받아쳤다. 미안해, 안 그럴게.라는 대답을 기대했다. 소리치면 언제나 그렇게 반응했으니까.
눈에 잔뜩 힘을 주고 날 바라보는 아이를 내려다보며 정작 흔들린 건 나였다. 정적. 마음을 가다듬고 훈육(?)을 이어간다.
_냉장고 문을 왜 그렇게 닫아? 이미 없다고 몇 번 이야기했어? 뭐?! 왜?!! 왜 그렇게 대답하는 건데? 엄마한테 뭐라고 말해야 해?!
_미. 안. 해?
세상에, 이렇게 전혀 미안하지 않은 미안해가 존재하는구나.
_미. 안. 해. 요!라고 해야지!
_미.... 안... 해요. 됐지?
하.... 들을 말은 들었고 이미 화도 냈다. 그래서 됐냐고? 아니, 안됐다. 그렇지만 뭘 더 해야 하지? 딱히 떠오르는 것도 없으면서 애를 보내주지 않았다. 아들과 엄마가 대치하고 서 있다. 이 상황을 관람하고 있던 둘째가 다가왔다.
_엄마, 엄마. 이안 쾅? 엄마 와~?
(이안이가 쾅해서 엄마가 와악하고 소리쳤어?)
_이안, 이안. 엄마 와~! 이안 우우?
(엄마가 소리쳐서 이안이 슬퍼?)
그리고 동생은 오빠를 안았다. 그때였다. 마법이 풀린 듯 아이의 눈이 풀리고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자세를 낮춰 동생을 안았다. 한 팔로 오빠를 안은 채 2살의 딸아이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엄마,
가치(같이).....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벌려 두 아이를 안았다. 우린 그렇게 꽤 안고 있었다.
어른들은 정말 복잡한 생물이다.
어른들은 화가 나거나 기쁠 때, 화가 나도 웃는다든가 기쁘지만 기쁘지 않은 척을 한다.
하루는 화를 내거나 기뻐하는 표현은 확실하다.
화가 날 때는 화는 내고, 기쁠 때는 웃는다. 그리고 울고 싶을 때는 운다.
아, 그런데 울고 싶지만 절대로 울지 않으려고 마음먹을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숨을 멈춘다. 그런데, 그렇게 해도 울고 싶지 않은 마음과는 반대로 눈물이 흐른다. 그래서 결국은 울게 된다.
아빠와 엄마는 운 적이 없는 것 같지만, 생각과 다른 얼굴을 할 수 있는 모양이다. 어른들은 정말 복잡하고 인내심이 강한 생물이라고 하루는 생각했다. - p14
작년 11월 한국 휴가 때 아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세트로 구입을 했다. 그중 한 권은 작가는 다르고 삽화에만 참여를 한 책이었는데 중간중간 한 두 개의 삽화만 들어있는 글자 투성이의 책이었다. 아직 아이에겐 어려울 것 같아 한편에 놓아두었다.
하루는 아이가 관심을 보여 그림 없는 책도 좋아? 하고 물으니 들으면 돼, 하고 대답했다. 12개의 챕터를 매일 밤 하나씩 읽었다. 12번의 밤 동안, 라디오 드라마처럼 아이는 눈을 감고 들었다. 아주 피곤한 날은 듣다가 잠이 들었다.
울지만 울지 않으려 마음을 먹는다는 대목에서 등을 돌리고 듣고 있던 아이가 벽을 보고 혼잣말을 했다.
그럴 때 있지.
울고 싶은데 안 우는 거......
_..... 그런 적이 있어? 울고 싶은데 안 울었어? 언제?
아까 혼날 때,
사실 울고 싶었는데 안 울었어.
그리고...
차에서 엄마랑 아빠만 이야기하면 울고 싶을 때가 있어.
여러 집의 전깃불이 반짝이고 있어서 꽤 멋지다.
하루는 그걸 보면, 조금 황홀한 기분이 들어 행복하다고 느낀다.
그런데 낮에 놀다 지쳐 거실 소파나 바닥에 누워 있다가, 엄마와 아빠가 빨래 너는 것을 보았다.
유리문 너머, 두 사람은 하루에게 등을 보이며 함께 빨래를 널고 있었다.
아빠는 엄마에게 빨래를 건네며 뭐라 말하고, 빨래를 받은 엄마가 대답한다.
두 사람의 웃는 옆모습이 보인다. 사이가 매우 좋다.
그럴 때, 하루는 자신이 없어도 두 사람이 행복할지 궁금해진다. 그건 조금 슬프다.
“내가 없어도 행복할 것 같아?”라고 물어보고 싶지만, 조금 무섭다.
절대 그럴 일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조금 무섭다. 기분이 살짝 복잡해졌다. - P19
차에서 남편과 내가 대화를 하면 꼭 끼어들고 방해를 하던 아이가 어느 날부터인가 조용해졌다. 하루는 뒤 돌아보니 혼자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는 요즘 울고 싶지만 때론 참기도 하나보다. 잘못한 것을 알지만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 이유는 모르겠지만 싫을 때도 있나 보다.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고 눈물은 뺨으로 흘려보냈던, 단순했던 아이 마음의 색깔이 화려해지고 있다.
울고 싶으면 울던 아이가 울고 싶지만 울지 않는다. 그래도 지금은 울고 싶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하지만 머지않아 아이는 울음을 참았다는 것을 들키고 싶어 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곧, 나는 많은 것을 모른척해야만 할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니 아이의 그림에서 공룡이 등장하지 않은 지 꽤 되었다. 못 보던 등장인물들이 생겼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상형문자들이 읽으면 의미를 알 수 있는 문자들로 진화했다.
아이는 자신의 그림이 마음에 들면 나도 좋아해 주길 원한다. 소중한 보물처럼 가방에 고이 넣어두었다가 눈을 반짝이며 펼쳐 보인다.
앞으로 그림은 더 컬러풀해지고 글은 더 복잡해질거다. 그 그림이 그 글이 너무 궁금한데, 그런데... 그 때가 되면 아이는 더 이상 펼쳐보이고 싶어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울음이 터질 것 같아 길 한가운데 멈춰 섰다. 나는 어른인데 울지 않으려 마음을 먹기가 너무 힘겨웠다.
written by iand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