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어야 잘하게 되는 거야
아이의 빰에는 아직도 눈물 자국이 남아 있다. 고통스런 이별은 고작 여섯 시간 남짓이었다. 엄마는 작고 보드라운 아이의 손을 잡고 집으로 들어가면서 가볍게 묻는다.
“안안, 엄마 없을 때 뭐하고 놀았어?”
아이가 대답하지 않아도 엄마는 이미 알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장난감 자동차를 가지고 놀고, 화장실에 안 간다고 보모와 다투고, 마당에 나가 검은 딸기를 따고, 세발자전거를 타고, 바지에 쉬도 하고.......
그런데 아이가 조용히 대답한다.
“생각을 좀 했어.”
엄마는 하마터면 피식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이제 겨우 두 살 반짜리 아이가 ‘생각’을 좀 했다고? 하지만 슬쩍 보니 아이는 자못 진지한 표정이다. 엄마는 웃음을 참으며 다시 묻는다.
“무슨 생각을 했는데?”
“으음......” 아이는 진지하게 대답한다. “엄마가 없으면, 어떻게 하나, 생각했어.”
순간 멍해진 엄마는 걸음을 멈춘다.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니라는 것을 확인 후, 엄마는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아이의 눈을 들여다본다.
안안 역시 가만히 엄마를 바라본다. 마치 방금 “엄마 목말라”라고 말한 것처럼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70p
룽잉타이의 책 [아이야, 천천히 오렴] 중에서 , 글의 제목은 <아이에서 ‘사람’으로> 이다.
며칠 전 아이가 크게 울었다. 달래기는 어려워 보였다. 아이가 유치원에 있는 동안 장난감을 하나 샀다.
유튜브를 보며 아이가 몇 번이나 해보고 싶다고 말했던 장난감이다. 작은 구슬을 핀셋으로 옮겨 모양을 만들고 물을 뿌리면 서로 붙어 고정이 되면서 작품이 완성된다.
하지만 너무 저렴하게 샀나? 가격에 걸맞게 질도 저렴했다. 구슬들이 제대로 붙지 않고 후드득 떨어졌다. 울음이 터졌다.
_난 잘 못해!!! 오래 걸리고 우아앙~~
아이는 그림을 그리고 무언가를 만드는 것에 유독 집중한다. 좋아한다. 좋아하니까 잘하고 싶고 그 결과물을 자랑하고 싶다. 하지만 욕심이 큰 만큼 크게 실망하고 만족하지 못하는 결과 앞에서 어김없이 무너진다.
이번에도 아이는 참지 못했다. 능숙하지 못한 자신에 화가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했으나 결과가 따라오지 않았다.
울다가 결국 감정이 폭주했다. 급기야 밑도 끝도 없이 엄마 때문이야!!! 라고 남 탓을 시작으로 난 역시 작아서 잘 못해!! 의 자기 비하까지 갔다.
아이에게 다가갔다. 화를 내려다 숨을 고르고 목소리를 낮췄다.
_엄마는 오늘 이거 사서 이안이를 기다리면서 너무 행복했어. 이안이가 이걸 보고 얼마나 좋아할까 생각하면서 기뻤어. 그런데 이렇게 울면 어째. 앞으로 엄마가 선물 사지 마? 이렇게 우는 게 왜 엄마 때문이야? 엄마가 선물 사 와서? 이러면 앞으로 엄마가 어떻게 선물을 사 와?
_흑.... 그래도.... 잘 안되잖아. 안 할 거야!!! (장난감을 집어던진다.)
다시 한번 숨을 고른다.
_이안, 다시 해봐. 그럼 아까 보다 더 빠를걸? 울어야 해. 울어야지 잘하게 되는 거야. 못해야 해. 못해야지 잘하게 되는 거야. 수영 시작할 때 정말 많이 울었던 거 기억나? 울어서 지금 수영을 잘하게 된 거잖아. 글을 못 읽었던 거 기억나? 그런데 어느 날 이안이가 “로마”라고 읽었잖아. 모르고 잘 못하고 울고 계속 울 것 같지? 아니야. 어느 날 눈을 떴는데 갑자기 글을 읽을 수 있게 돼. 수영을 하게 돼. 그런데 그전에 꼭 울어야 해. 꼭, 잘 못해야 해. 그게 없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아. 그런데 울어도 계속해야만 그렇게 되는 거야. 이제 좀 괜찮아? 아니야? 그럼 엄마는 이제 밥하러 갈 거니까, 더 울고. 다시 하고 싶을 때 이야기해 줘..
잠시 후 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스스로 방에서 나왔다. 안아줬다. 아이는 웃으며 저녁을 먹었다.
다음 날 우린 로마 북쪽의 바닷가 마을로 짧은 휴가를 떠났다. 숙소에서 모퉁이만 돌면 시내 중심 광장이 나오고 한 블록만 더 걸어 나가면 해변이 나왔다.
이탈리아의 여름 바닷가는 아이들 유흥의 천국이다. 밤 12시까지 샾들이 문을 열고 밤새 오락실이 성업이다. 매일밤, 오락실은 아이의 큰 즐거움이었다.
한번은 아빠와 즐겁게 오락실에 들어간 아이가 울면서 나왔다. 잘하고 싶던 게임이 안 풀렸나 보다. 달래던 아빠에게 끝내 혼이 났다. 울음을 삼키며 숙소로 돌아갔다.
다음 날, 남편은 둘째를 재우려 숙소에 돌아가고 난 아이와 센터에 남아 오락실로 향했다. 전 날, 울게 했던 게임을 같이 했는데 꽤 잘했다. 신이 나서 몇 번을 더 했다. 오락실을 나온 우리 둘은 멋진 팀워크에 흥분했다.
_대단해!!! 정말 잘하잖아!! 이안이 덕분에 엄마도 잘했던 거 같아!!!
_아니야!! 엄마도 잘했어!! 엄마의 응원이 없었다면 그렇게 잘할 수 없었을 거야!! 그런데 내가 왜 잘한 줄 알아? 어제 울었거든, 엄마가 그랬잖아. 울어야 잘한다고, 어제 울어서 오늘 잘한 거야. 어제 잘 울었다. 그지? 우린 정말 멋진 팀이야.
아이가 게임을 하면서 자신이 잘하고 있는 것이 엄마 말대로 울었기 때문이야 라고 생각하는 장면을 상상하면 자동으로 미소를 머금게 된다.
내가 아이의 말을 곱씹듯 아이도 나의 말을 되새긴다. 우린 아이가 뭘 알겠어?라고 말하곤 하지만 아이는 알고 있다.
룽잉타이의 글에서 처럼 두 살 반의 아이도 낮 동안 잠시 떨어져 유치원에 있으면서 엄마가 없으면 어떡하나 생각을 한다.
유난히 더운 날, 아이가 자꾸만 나의 등에 올라탔다. 더운데 왜 이래!! 안기지 마. 좀 떨어져. 난 짜증을 있는 것 냈다.
며칠이 지나고 거실에 아이가 누워 tv를 보고 있기에 가서 쓱 안겼다. 동그란 등이 사랑스럽게 보여 너무 안고싶었다. 그런데 아이가 날 밀치며 엄마 더워~~ 떨어져~~ 하는데 기분이 상했다.
왜 엄마에게 그렇게 말해? 엄마 슬프게? 하니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진지하게 물었다.
더워서 안지 말라고 하는 건 ,
엄마만 말할 수 있는 거야?
아차! 아차! 아차! 그건 아니야. 내가 그렇게 말했구나, 아이에게 변명하며 생각했다.
내가 그 말을 했을 때 아이가 슬펐을까? 지금의 나처럼? 아이도 내 등이 사랑스러워 보여 올라탔나?
아이는 나의 말을 기억하고 되새기고 반성하고 곱씹는다. 때로는 적용해보고 도전해본다. 나의 말에 슬프고 나의 말에 힘을 얻는다.
나의 말이 아이의 마음에서 자라고 진화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세상에 드러난다. 이것이야 말로 아이를 사람이라고 내가 존중해야 하는 이유인 거다.
네가 이제 사람이 됐구나, 하는 말이 지금 해야 할 말인 거다. 너의 아들이 이제 사람이 되었으니 너도 이제 아이가 아닌 사람을 마주해야 할 마음이 되어야 한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야만 할 때인 거다.
p.s. 방 안에서 두 아이가 싸운다. 둘이 방으로 들어갈 때부터 영 불안했다. 예상 가능했던 결과대로 둘째의 울음이 터졌다. 사태 수습을 바로 방문을 열려다 멈췄다. 오빠가 동생을 달래고 있었다.
우는 건 좋은 거야. 많이 울어.
울어야 잘하게 되는 거야.
울어. 많이 울어.
음....원했던 그림은 이게 아닌데.... 이런 적용은 예상치 못했다.
당황한 엄마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방문 앞을 서성인다.
written by iandos
*인용된 책은 룽잉타이 저 [아이야, 천천히 오렴] 양철북, 2016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