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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마 김작가 Apr 29. 2020

나도 분홍색 얼굴이면 좋을 텐데,

너의 손을 놓아도 될까?

내가 엄마가 되기 전, 한인성당에서 알던 가족이 있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즈음 그들은 한국으로 귀국을 했다. 아이는 여름휴가를 다녀와 얼굴이 아름답게 그을려 있었다. 아이는 즐겁고 행복해 보였다. 이런 이탈리아의 일상을 두고 한국에 가는 마음이 어떨까?


누군가 아이에게 물었다. 한국에 가니 어때? 아쉽겠지... 슬프겠지.... 그러나 아이는 생각지도 못한 대답을 했다. 난 엄마가 되기 전이었고 그 대답이 그런 생각을 할 수 도 있구나 정도의 놀람이었지만 최근 그 대답을 자주 곱씹어 본다.

아이가 대답했다.

좋아요~~
거긴 다 저처럼 생겼잖아요.




부쩍 사람들의 얼굴색에 대해 물어오는 아이

등굣길,
최근 읽기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아이가 벽의 전단을 읽다가 물었다.


_엄마, sky는 왜 그 스키가 아니고 스카이야? (스카이는 이안이 반 중국인 친구다.)

_아~ 그게 sky을 영어로 읽으면 스카이라고 읽어.
_엄마, 스카이도 이름이 세 글자고 나도 이름이 세 글자야.
_그렇네! 다른 친구 중 또 세 글자가 있나?
_없는데? 엄마, 그런데 스카이 얼굴이 갈색인 거 알아? 
_갈색인가?
_응, 갈색이야. 그리고 나도 갈색이고, 그런데 다른 친구들은 분홍색이야. 나도... 분홍색이면 좋은데.
_에이~ 여기 이탈리아 사람들은 갈색이고 싶어서 태양에 막 태우고 그래, 갈색 되려고. 엄마는 갈색이 좋은데 너무 매력적이잖아. 이안이 매력적이야. 매력적인 게 뭔지 알지?
_응, 멋진 거.


아이는 보일 듯 말 듯 웃었다.
불현듯 저 웃음이 나의 칭찬에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나의 말을 위로로 여겨 멋쩍은 웃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9월이면 아이는 초등학교에 들어간다. (이탈리아는 만 6세 초등학교 입학이다.)  한국은 모두가 나처럼 생겼어요 라던 아이가 떠올랐다. 이 나이였다.

전날,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었다. 초록색 머리카락, 작은 코, 네모난 얼굴이 슬픈 여자애가 나왔다. 별생각 없이 책을 읽어주고 있는데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나도 아이들이 코가 작다고 놀려. 귀도 작다고 놀리고. 이안이가 코가 좀 작지. 그런데 엄마는 작은 코 너무 좋은데~ 그런데 웃기네!! 귀가 작은 게 뭐?! 이안이 귀가 작나? 엄마도 귀가 작거든. 엄마 귀는 큰데? 아니야, 어른이 이 정도면 작은 거야!! 근데~엄마는 이안이의 작은 코가 너무 좋은걸!


심각하게 생각지는 않는다. 아이가 하고 싶은 말은 갈색 얼굴이 싫어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이는 자신이 한국인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무엇이 한국과 이탈리아를 구분 짓는지는 알지 못했다. 어느새 아이는 명확하게 자신의 뿌리를 인지하기 시작했다. 무엇이 다른지 자신의 눈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튀는 것보다 친구들과 같은 것이 더 좋은 만 5세의 나이를 지나고 있다. 전혀 알지도 못하지만 축구 카드를 사고 본 적도 없는 축구선수들을 좋아하는 척한다. 나와 친구가 같은 티셔츠를 가지고 있는 것이 큰 기쁨이다. 다수가 가진 것이 좋은 것이고 똑같은 것을 소유하고 있음이 기쁨이다. 아이는 그렇게 다수가 가진 것을 바라본다. 분명 아이의 친구들도 이안이가 가진 것이 눈에 들어올 거다. 이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작은 코가 싫다는 것이 아니다. 큰 코를 가지고 싶다는 것도 아니다. 난 내 작은 코가 좋고 갈색 얼굴도 멋진데 나를 제외한 대부분이 분홍색 얼굴에 큰 코를 가지고 있으니 아이는 문득문득 의문이 생긴다. 작은 코도 좋다고 멋지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 거다. 갈색 얼굴도 멋지다는 말을 듣고 싶은 거다.
길을 걷다 아무 이유 없이 아이의 이름을 부른다. 아이가 돌아본다.


_왜?
_응~너무 잘생겨서.

나도 알아.


아이는 덤덤한 표정으로 킥보드를 굴리며 나를 벗어나 나아간다. 저 앞에 내가 함께할 수 없는 아이만의 세상이 있다. 


아이는 당연히 겪어야 하는 시기를 겪고 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고 멈추어 고민하고 천천히 자신만의 답을 찾고 있다. 그렇게 아이가 나아갈수록 나의 역할은 좁아진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내가 해 줄 것이 있을 거야 고민하는 밤엔 책을 펼친다. 수 없이 읽어 내려간 룽잉타이의 책이다.


그녀가 처음 썼던 아이와 엄마의 기록의 마지막은 아들이 엄마에게 쓴 편지로 마무리된다. 독일에서 혼혈의 두 아들을 키운 대만 엄마에게 아들이 전한다.


당신은 말할 것이다.
“아이야, 천천히 오렴.” 하지만 때론 서둘러 “손을 놓아줄”필요가 있다. 물론 그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은 나 역시 알고 있다. 당연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우리의 어린 시절, 행복했던 그때를 기억한다면, 만약 당신이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조금 쉬워질지도 모르겠다.

[아이야 천천히 오렴] 룽잉타이, 양철북 2016



아이와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길,
한두 살 많은 형들과 부대끼며 놀았다. 나도 얼굴이 낯 익은 형들이다. 아이를 알지 못하는 한 아이가 친구에게 물었다.


_저 작은 중국애는 누구야?


아이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툭, 대답했다.


내 친구야.


지나가는 소방관아저씨의 이름을 묻는 아이들, 아저씨 이름이 뭐에요? 나는 스테파노야!


답은 아이와 마찬가지로 아이 곁의 아이들도 찾아나가고 있는 것 같다.

멋진 방향으로 말이다.

친구다. 모두.


È  l’amico mio.
(내 친구야.)


그 말이 나에겐 "손을 놓아줄 준비를 해도 될 것 같아" 라고 들려왔다.


written by iand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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