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그 아이가 부러웠다
비 오는 토요일 오전
밀라노 FC inter에서 훈련팀이 내려와 특별 수업을 진행했다. 비가 많이 내려서 일까 온다던 이안이의 친구들은 보이지 않는다. 도착하자마자 신나게 뛰어 들어간 아이가 20분 정도 지날 무렵 수업 도중 나에게 다가왔다.
_집에 갈래.
_왜?
_키가 작다고 놀려.
_너 키 작잖아.
_난쟁이래.
_난쟁이보다는 크지. 그런데 이탈리아 말로 난쟁이가 뭐야?
_모르겠어.
_모르는데 난쟁이라고 한 줄 어떻게 알아?
_모르는데 들으면 알아. 오늘은 그만하고 싶어.
_축구를 그만하는 거야? 아니면 오늘은 집에 간다는 거야?
_오늘만 집에 갈래.
_작아서 작다고 하는데 작다고 해서 그만하는 거야? 크면 크다고 그럴 거야. 뚱뚱하면 뚱뚱하다고 마르면 말랐다고 그럴 거야. 작다고 하면 이미 알고 있다고 해. 난쟁이라고 하면 걔보다는 크다고 해. 축구공이 어디에 있어?
_저기 바닥에...
_축구하는데 키가 클 필요가 뭐가 있어? 축구공보다만 크면 돼. 친구들이 오늘 안 와서? 축구를 잘하고 싶어서 축구를 하지만 친구가 없으면 싫어? 잘하고는 싶어. 그런데 누가 놀리면 안 해? 그렇다고 열심히도 안 하잖아. 열심히는 안 하는데 잘하고는 싶고? 최선을 다하진 않지만 재밌고 싶고 놀리면 그냥 집에 가는 거야? 이안아, 네가 하고 싶어서 시작한 축구를 이럴 때마다 엄마와 코치들이 달래면서 하게 만들어야 해? 이런 일 다음엔 없을 거라고 엄마에게 말할 수 있어? 이미 엄마가 몇 번을 달래고 구해줬잖아.
_또 이런 일 있을 것 같아...
_엄만, 이젠 구해주지 않을 거야. 계속할 거면 다음부터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오늘부터 열심히 해. 아니면 그만하자. 그리고 네가 직접 들어가서 코치에게 이야기해. 집에 돌아간다고.
코치에게 말하는 아이, 다시 돌아와 내 옆에 앉는다.
_가래?
_아니, 가지 말래. 하고 싶을 때 다시 들어오래.
아이는 30분을 더 생각하고 빗속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훈련 내내 집중하지 못했고 혼자 춤을 추기도 하고 때로는 누워버리고 장난을 쳤다. 그날따라 참여한 아이들은 모두 가장 잘하는 그룹의 아이들이었다. 단 한번의 패스도 받지 못하고 그렇다고 공을 뺏지도 못하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괜히 데리고 왔나? 가자고 할 때 집에 데려가는 것이 옳았을까? 그런데 왜 아이는 집에 돌아가자고는 하면서 그만둔다고는 하지 않을까? 수업이 마쳤을 땐 빗 줄기는 더욱 강해졌고, 홀딱 젖은 아이의 손을 잡고 식당으로 비를 피해 들어갔다.
_궁금해서 그런데, 축구를 왜 계속해야 해? 장난치고 누워있으려면 꼭 돈 내고 여기 와서 해야 해? 애들도 놀린다 그러고 엄마도 오고 가고 기다리고 힘들잖아. 정말 궁금한데 왜 꼭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_난 약해. 그런데 6살에 시작했잖아. 10년 뒤에는 잘하겠지.
_야~ 그래 해서는 10년 뒤에도 계속 못해 아니, 축구하다 자꾸 누우면 나도 너보고 난쟁이라고 놀리면서 화내겠다!
_응~ 난 축구공을 안 봐. 그리고 누워있는 건 골키퍼 할 땐데 누워서 애벌레처럼 기어서 공을 잡는 거야.
_(이게 뭔 소리야?) 축구하는데 공을 안 본다는 게 뭔 말이야? 기면 공을 어떻게 잡니?
그런데 엄마, 우리 밥 먹는 곳에서 싸우는 건 아닌 것 같지 않아?
_아직 밥 안 나왔잖아. 이안, 두 가지만 엄마와 약속해줘. 축구 잘할 필요 없어. 하지만 열심히 해줘. 네가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어떤 아이가 장난을 치고 방해하면 싫잖아. 그리고 누가 놀려서가 아니라 친구가 없어서 아니라 네가 더 이상 즐겁지 않아서 축구를 하고 싶지 않을 땐, 그만한다고 이야기해줘. 엄마 화내지 않을 거야. 약속할 수 있어?
_응, 알았어. 다음부턴 정말 열심히 할 거야.
주문한 파스타가 나왔다. 정말 맛있었다.
_너무 맛있어. 두 그릇 시킬걸!! 그런데 여기는 할아버지가 많네.
_그건 맛있는 곳이라는 뜻이야. 할아버지들은 맛있는 거만 드시거든.
어! 저 할아버지는 밖에서 전화하네. 사랑하는 분과 이야기 하나 봐.
할머니가 아니고 사랑하는 분이라니, 나의 자리에선 할아버지의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 아이의 눈에는 어떤 표정이 담겼길래.
그래, 알아. 넌 낭만적인 아이지.
일요일, 차 안에서 남편과의 대화
_여보, 어제 이런 일이 있었어. 난 왜 그만하고 싶다고 말하지 않는지 이해를 못하겠어. 어떻게 해야 할까?
_그만 하라고 해. 왜 해야 해? 이안이도 힘들고, 이안이가 방해해서 다른 아이들도 제대로 못하면 그 누구에게도 좋을 게 없잖아.
_그럼, 다음 수업 때 당신이 쉬니까 가서 지켜봐 줘. 당신이 직접 보고 수업 마치고 이안이랑 둘이 다시 이야기해 봐.
화요일, 축구 수업 날
_오늘은 아빠와 축구같이 가는 거야. 이안, 네가 그림을 그릴 때 누가 장난치면 싫지? 축구할 때도 똑같아. 알지?
_응, 알아. 아빠가 엄마랑 차에서 이야기할 때 나 다 듣고 있었어.
부자는 축구장으로 떠났다. 창 밖을 바라본다. 올해는 지겹도록 비가 온다. 정말 겨울이구나. 5시인데 해는 이미 져 버렸다. 며칠 전 이안이의 반 엄마들과 나눈 대화를 떠 올린다.
_난 축구 안 시켜. 아이들이 너무 전투적이야. 우리 아이에게 축구는 놀이인데 다른 아이들은 너무 진지해. 우리 앤 축구만 하면 다른 아이가 돼. 너무 흥분한다고, 이안이가 축구를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이해해. 친한 친구들 모두 하니까 하지만 심지어 그 축구학교는 이 일대에서 가장 규모가 크잖아. 너무나 강한 세계야.
아이가 원해도 말렸어야 했을까? 굳이 겪지 않아도 될 세상이었을까? 생각에 잠겼을 무렵 남편이 인스타에 올린 글을 보았다. 그는 내가 찾지 못한 답을 찾은 것 같다.
축구학교에서 이안이는 많은 일들을 겪는다. 또래보다 키도 작고 축구를 그냥 재밌는 놀이쯤으로 생각하는 이안이에게 축구에 열정을 다하는 다른 애들에게는 이안이는 그냥 장애물 정도로 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축구학교에 가는 것을 즐거워하는 이안군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직접 보니 아주 조금은 이안군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목숨 걸고 하는 다른 아이들은 절대로 결코 이해 할 수 없겠지만 이안군은 그냥 이 시간이 하나의 즐거운 놀이라 행복한 거다. 물론 그 모습을 보는 아빠의 마음은 좀 더 잘해 주었으면 하는 욕심이 가득이지만 그건 정말 나의 욕심일 뿐이다. 욕심을 잠시 내려놓는다. 이안 네가 즐겁고 행복하면 그것으로 아빠도 좋아. 나중에 이 순간들도 이안군에게 무용담으로 남는 순간이 있겠지. 아빠는 너를 응원해.
전투적인 세계에서 아이는 낭만을 노래한다.
다행히 아이는 최하위 그룹에 속해 있고 이는 즐기는 아이들 그룹이라고 해석해도 무방하겠다. 수업 첫날 이안이를 괴롭히던 두 아이도 어느새 한 팀이 되어있다. 남편이 보내온 영상의 이안이는 그 어느 날보다 열심히 뛰고 있었고 다른 아이의 태클을 피해 슛을 쏘고 있었다.
집에 돌아온 젖은 머리의 아이는 행복해 보였다. 7살에도 계속할지는 의문이지만, 6살 이안이의 축구는 현재 진행형이다. 즐거움과 낭만만을 위해 무언가에 욕심 없이 뛰어들 수 있는 시기는 슬프고 아릴 만큼 찰나다. 지금이 너의 그 날들이라면 엄마도 아빠를 따라 욕심을 내려놓는다.
남편이 보내온 영상을 다시 재생했다. 잘하고 못하고의 개념조차 없이 탁월해지기 위한 조급함도 없이 어두운 밤 빗 속에서 온 힘을 다해 달리는 아이가 있었다.
난 그 아이가 부러웠다.
written by iand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