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위해 타인이 남기는 한잔
3월 6일 전국 휴교령
3월 8일 북부 11개 도시 레드존 지정
3월 14일 전국 레드존 지정 이동제한령 전국 확대 이동 증명서 지참 시 가족 1인에 한해 슈퍼 약국 외출 가능
3월 17일 대한항공 전세기 수요조사 / 이탈리아내 관광목적 입국 금지
3월 26일 전세기 포기하고 이탈리아에 남기로 결정
3월 28일 이동제한 2주 연장 발표
4월 14일 이동제한 3주 연장 발표
단, 아동복 서점은 영업 재개 부모 1인이 자녀 1인 동반 외출 가능
4월 26일 이동제한 2단계 전환 산책 운동 가능해짐 바 레스토랑 영업 재개 단, 포장만 가능
5월 4일 친지 방문 가능
5월 18일 외출 증명서 소멸, 야외에서 지인 만남 가능. 바 레스토랑 내부 영업 가능
3월 중순 1일 확진자 6000명 이상 사망자 1000명 대에서 5월 18일 기준 1일 확진자 451명 사망자 99명으로 이동제한 조치 이후 가장 낮은 수치였다.
우리는 이제 집을 나선다.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마스크를 쓴 사람은 인종차별을 당했던 일이 무색하게 거리에선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을 만나기가 힘들 정도다. 반 이상이 장갑까지 착용하고 있다. 지난주만 해도 Bar 밖에서 소리쳐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는데 이번 월요일부터 내부 영업도 가능해졌다. 이동제한이 이주일 간격으로 단계적으로 완화되었는데 이탈리아 답게 에스프레소를 통해 그 단계를 느낀다. 두 달 간의 격리 동안 가장 그리웠던 건 어떤 조건이든 사 먹는 커피만이라도 가능한 일상이었다. 외부 주문과 포장 그리고 일회용기만이 허락되었자만 60일 만에 소리쳐 주문한 이 작은 잔 속의 쓰디쓴 까만 액체는 외출마저 제한당한 지난 시간을 보상해주기에 충분했다. 설탕을 듬뿍 넣어 마시는 쓰고도 단 액체가 목구멍에 넘어가는데 마치 지금 우리의 현실 같다.
쓰기도 하고 달기도 하다.
2주가 지나고 드디어 일화용 컵이 유리잔으로 바뀌고 Bar 밖에서 안으로 우리의 일상의 반경이 넓어졌다. 단, 좁은 bar 안에 투명 칸막이가 설치되었다. 1m 간격으로 서서 작은 구멍으로 받아 든 카푸치노가 이렇게 눈물 나는 맛이었나 싶다. 너무나 변해버렸지만 조금씩 되돌아가는 일상이 반갑기도 하고 아무리 달려도 결코 출발점으로 되돌아 갈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며 목이 메인다. 애꿎은 바리스타 앞에서 울컥하며 겨우 눈물을 삼켰다.
그래도 이 도시는 울게 내버려 두지는 않는다. 마스크로 가려졌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아주 크기에 유쾌함이 필터를 뚫고 나온다. 거리에서 만난 지인과 힙하게 팔꿈치 인사를 하고 나니 메이던 목구멍이 뻥 뚫리면서 수다가 터졌다. 물론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6월 3일부터는 유럽 간 이동도 가능해질 것 같다. 지난 두 달이 넘게 유럽에서는 가장 제한적인 규제를 했던 이탈리아가 너무 급격하게 풀어지는 것이 아닐까 걱정도 되지만 더 이상의 규제에는 사람들이 견디지 못할 거다. 사람들이 자유를 원해서가 아니라 살아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규제 완화의 의미는 수익 창출이 가능한 삶의 터전으로의 복귀를 뜻한다. 억눌렸던 일상이 느슨해지며 확진자 확산이 우려되지만 상점들 마다 (이탈리아답지 않은) 철저하게 사회적 거리가 지켜지는 모습을 보니 조금 안심이 된다.
한 브런치의 글은 프랑스의 현재 상황을 전하며 여전한 마스크 미착용에 분노하고 있었다. (심지어 교사조차/ 프랑스 학교가 다시 문을 열었다. 이탈리아는 9월 개학을 앞두고 내부 수칙을 논의 중이다) 그 글에 이탈리아의 마스크 상황을 댓글로 전하며 나라에 대한 불신이 스스로를 지키게끔 하는
것일까? 물었다.
그녀는 프랑스 역시 정부 대응에 대한 불신이 있지만 집단 패닉을 겪은 차이가 아니겠느냐 했다. ( 이탈리아는 직접적인 감정적 쇼크를 겪었으나 프랑스는 의료 붕괴 등의 과정은 없었다.)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서야 배우고 변화하려 한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고 슬픈 일이지만 한국 역시 지난 시간들을 통해 지금의 선진 대응이 가능했다는 것을 떠올린다면 이탈리아도 과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이 비극을 허무하게 흘려보내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정부의 이동제한은 강경했으나 보상의 진행사항은 너무나 부실하다. 개인사업자에 대한 지원금만 지급되고 나머지 수많은 지원들은 오리무중이다. 개인 사업자에 대한 지원금도 겨우 한국돈으로 100만 원 정도니 세금과 사무실 임대료를 생각하면 터무니없다. 이 것조차 받지 못한 이들도 많다. 문제는 왜 못 받았는지를 알 길이 없다는 거다. 일반 직장인은 긴급 실업급여가 지급되기로 했으나 이동제한 3월 14일에 시작되어 이미 두 달이 지나 5월 18일이 되었지만 그 누구에게도 지급되지 않았다. 연금제도로 저축은 거의 없고 세후 급여 자체가 낮아 월급이 총 생활비가 되는 것이 일반적인 이탈리아 사람들이 건 두 달 이상 급여가 없이 버티는 것이 불가능할 거다. 이탈리아 총리는 행정적인 문제로 보조금 지급이 지연되고 있음에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와중에도 폭동이 일어나지 않은 것을 보면 이탈리아 사람들이 정말 불같은 성격이 맞나 싶다.
지금 당장은 에스프레소 한잔을 마실 수 있는 아주 작게 열리기 시작한 일상에도 그저 감사한 건지..... 이들이 그리는 행복의 크기가 소박하다고 해야 할지....
이탈리아 커피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하나가 있다.
나폴리에서 시작된 작지만 큰 울림의 움직임이다. 커피를 한잔을 주문하며 두 잔의 비용을 낸다. 남은 한잔은 커피를 사줄 사람도 마실 돈도 없는 가난한 이의 몫이다.
이탈리아 다큐멘터리 [카페 소스페소_모두를 위한 커피] 에선 이렇게 이야기한다.(넷플릭스에서 감상이 가능하다)
Caffè sospeso (부제: coffe for all)
누구도 커피를 마시는 것을 금지당해선 안돼요
가장 가난한 사람이라도요.
카페에 가서 커피를 주문합니다.
마신 다음 두 잔 값을 계산하는 겁니다.
즉, 카페 소스페소를 남기면
누가 될지 모르는 타인이 마시게 되는 거죠.
이는 타인을 위하여 타인이 하는 대표적인 연대 행위입니다.
사실 받는 사람은 누가 커피를 남겼는지 모르고 반대로 남기는 사람은 누가 받을지 모르죠.
커피는 잔에 담긴 포옹이다 라는 말이 있죠.
카페를 나누는 과정을 통해 사람들과 어울리죠.
커피를 마시러 가자거나 커피를 한잔하지고 하잖아요.
그렇다고 꼭 커피를 마셔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의미는 ‘같이 있자’
‘함께 시간을 보내자’는 거죠.
3월부터 여행업은 마비됐다. 앞으로 언제 재개될지도 알 수 없다. 우리 가정 내 수입원이 전무하다는 이야기다. 모든 소비를 줄여야만 한다. 그러나 커피 한잔만큼은 선뜻 사서 마실 수 있는 이유는 가격 때문이다.
15년 전 처음 이탈리아에 발을 내디딘 날부터 지금까지 에스프레소 한 잔의 가격은 변함이 없다.
80센트 ~ 1유로 의 가격이다. 한국 돈으로 900원에서 1300원 사이의 가격인 거다. 1000원 남짓의 지출로 에스프레소 한잔을 마시고 ‘같이 있자’는 마음도 채울 수 있다. 이 비용은 그 누구도 커피를 금지당하지 않을 권리이기도 하다. 이 어려운 시기에도 나 자신에게 커피를 선사해도, 누군가를 위해 한잔을 남겨두어도 부담스럽지 않다.
여전히 불안하고 보조금 지급부터 많은 문제들이 긴 한숨을 쉬게 만들지만 그래도 지금 만큼은 이 작은 에스프레소 한잔에 큰 위안을 얻는다. 1930년 이탈리아가 가장 가난하던 시절 커피를 남겨두던 이탈리아 사람들은 2차 대전 이후 가장 어렵고 슬픈 코로나의 시대를 보내며 spesa sospesa를 마련했다. 슈퍼에 장을 보고 장본 물품을 남겨두는 거다.
그 시작도 역시 나폴리다. 봉쇄조치가 시작되고 나폴리의 집에는 바구니들이 걸리기
시작했다. 나폴리에는 전통적으로 사용되는 바구니가 있다. 장을 보거나 음식이나 물건을 전할 때 창문으로 바구니를 내려보내어 받는다. 남부 사람들의 이웃 간의 정을 상징하는 이 바구니가 이동제한기간 동안 다시 등장했다. 바구니에는 이런 문구가 붙어있었다.
Chi può metta
Chi non può prenda
(가능하면 놓아두고
아니라면 가져가세요)
가난한 이가 더 가난 이를 돕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방법이다.
각자 크기는 다르지만 모두가 불만과 불안을 품을 수밖에 없는 매일이다. 그러나 타인에게 에스프레소 한잔을 남겨둘 수 있는 여유와 1m의 거리가 있지만 같이 할 수 있는 자유와 마스크로 서로를 보호하려는 의지와 더 가난한 이를 도우려는 가난한 이의 마음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음을 잊지 않으려 한다.
6월이 또 어떻게 닥쳐올지 알 수 없지만 5월은 3,4월을 잘 견뎌낸 우리를 위해 꼭 껴안아줄 거다.
딱 한잔의 에스프레소만큼의 일상을 간절히 기도했던 순간을 잊지 않으려 한다. 이탈리아 말로 ‘amaro’는 ‘쓰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단어는 ‘향이 짙다’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지난 시간이 쓰기만 했던 것이 아니라 우리를 짙고 강하게 만들어 주었다고 믿을 거다.
written by iand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