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길거리 음식을 소개합니다
나는 걷고 또 걸었다. 매일 동이 트면 일어나서 아직 공기가 신선하고 아무도 쓰지 않은 새것 같은 느낌인 그 완벽한 시간에 도시가 깨어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부스스한 차림으로 휘파람을 불며 빗자루 질을 하고 차양을 내리고 셔터를 올리는 가게 점원들이 정겨웠다. 일주일 동안, 나는 그저 걷고 또 걸었다. 발바닥이 불이 날 때까지 걸었다. 그리고 지치면 다시 걸을 수 있을 때까지 커피를 한잔 하거나 벤치에 앉아 햇볕을 쬐었다. 로마는 지저분하고 번잡하며 교통 체증이 심하다는 건 알았지만, 어쩌면 그게 매력인지도 모른다.
로마는 뉴욕을 제외하고 내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도시다. 사실 로마는 뉴욕을 연상시킨다. 뉴욕은 로마와 닮은 점이 많다. 소음이나 더러움도 그렇지만, 사람들은 말이 많고, 운전자들은 경적을 많이 울려대며, 경찰들이 할 일 없이 나태하게 돌아다닌 것도, 사람들이 손을 가지고 제스처를 많이 쓰고,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는 것도 똑같다. 유일한 차이점이라면 로마는 놀라우리만치 아름다운 혼돈의 도시라는 점이다.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 산책 중
로마,
누군가는 기대 이상의 매력을 느끼고
누군가에겐 기대 이하에 실망감을 안겨주는 도시.
로마를 보면 항상 상남자의 느낌을 받는다. 이 도시는 여자의 절대 마음을 얻으려 애쓰지 않으나 그 매력을 알아버리면 절대 헤어 나올 수 없는 마성의 매력을 가진 그런 남자 같다. 절대 대놓고 자신의 매력을 드러내지 않는 이 남자는 오래 보고 많이 보아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그래서 로마를 오는 이들에겐 꼭 그 매력을 알기 위해 많이 걸어보라고 이야기한다.
로마의 모든 길 그리고 광장에서 이 도시의 발견하여 이 아름다운 혼돈의 도시와 사랑에 빠지는 행운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라며. 그렇게 길을 걷다 허기진 당신에게 꼭 맛 보여 주고 싶은 로마의 길거리 음식을 소개한다.
피자, 젤라토, 파니니처럼 한국에서 잘 알려진 음식은 아니지만, 로마 현지인들에겐 너무나 익숙하고 사랑받는 수플리와 바칼라 튀김이다. 로마를 헤매다 만나게 되는 오아시스 같은 두 집이 위치한 곳은 로마의 유명한 광장으로 통하는 골목길이다.
로마의 흥겨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광장, 캄포 데이 피오리(campo dei fiori). 말 그대로 꽃의 광장인데 이런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오전에 열리는 꽃 시장 때문이다. 그렇다고 꽃만 파는 것이 아니라 큰 장터를 연상하면 쉬울 것 같다. 점심이 되면 시장이 문을 닫고 해 질 녘이 되면 이 광장은 저녁 전 맥주와 칵테일을 즐기는 이들의 흥겨움으로 가득 찬다.
사진도 찍을 겸 집을 나섰던 저녁에는 오랜만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루 종일 부슬부슬 내리는 봄비는 왠지 파전에 동동주를 생각나게 했다. 때마침 남편이 쉬는 날이라 일찍 잠이 든 아이들을 부탁하고 친구와 만나 바칼라 튀김에 맥주 한잔을 기울이려 홀로 저녁에 외출을 했다. 언제나 북적이던 광장은 비가 와서인지 한산하여 더욱 운치를 더했다. 비에 젖은 로마의 돌바닥은 세상의 모든 조명을 다 감싸 안을 것만 같다.
맥주를 마시기 전 잠시 간단히 배를 채우기 위해 들린 곳은 수플리 가게다.
Via dei banchi vecchi 143 roma
Tel. 06 89871920
11:30- 15:30/ 16:30- 21:30 (일요일 휴무)
수플리(suppli)는 로마의 전통적인 길거리 음식이다. 안에 밥이 들어간 크로켓을 떠올리면 된다. 요즘 한국에서도 어렵지 않게 맛볼 수 있는 시칠리아의 대표 길거리 음식 아란치니 (arancini)와 많이 비교되기도 하는데 아란치니는 성인 주먹 크기의 둥근 모양이라면 수플리는 계란 크기의 알약 모양이다.
보통 토마토소스가 들어간 리조토 안에 모짜렐라 치즈를 넣고 모양을 만든 다음 빵가루를 묻혀 튀겨낸다. 예전엔 지금은 보기 힘든 튀김 집(friggitorie)에서 판매를 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보통 피자 집에서 쉽게 사 먹을 수 있다. 반을 자르면 속의 모짜렐라 치즈가 녹아서 늘어지는 모습이 마치 전화기 선 같다고 해서 suppli al telefono라고도 불렀고 한다.
전통 로마 수플리 속에는 특이하게 닭똥집을 넣었다고 하는데, 이 곳 supplizio에선 전통 방식 그대로의 수플리를 맛 볼 수 있다. 이 곳의 주인은 로마의 유명 셰프 arcangelo dandini 다. 로마 전통 레시피로 유명한 그의 레스토랑이 바티칸 가까이에 있지만 워낙 그의 수플리가 유명하여 2014년 캄포 데이 피오리에 수플리만을 위한 가게를 따로 열었다.
토마토와 닭똥집이 들어간 suppli classico와 버섯이 들어간 suppli bianco, 채식주의자를 위한 수플리 suppli vegetariano와 훈제된 감자 크로켓 crocchetta di patate를 만날 수 있습니다(각각 3유로). 그리고 이 집에서의 저의 최고 강추 메뉴는 크림 튀김 crema fritta인데 말 그대로 슈크림에 빵가루를 묻혀 튀겼다(2유로). 겉은 바삭하고 속은 정말 부드럽다. 맛보지 않으면 절대 설명할 수 없는 맛인데 처음 그 크림 튀김을 먹던 순간의 감동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수플리 4개를 순식간에 해치우고 바칼라 튀김가게로 향했다. 함께 걷는 동안 비는 어느새 그치고 친구와의 수다는 속 깊은 대화로 바뀌어 갔다.
Largo dei library 88, 186, roma
tel : +39 06 6864018
17:30 – 23:00
바칼라는 우리나라에서 생태를 덕장에 건조해서 황태로 먹듯이 아주 크고 두꺼운 대구를 염장 건조해 먹는 남부 유럽의 식 재료다. 20년 전만 해도 염장 음식의 특징인 장기보전의 이유로 서민들이 먹던 아주 값싼 재료였지만 현재는 고깃값보다 비싼 재료다. 그냥은 너무 딱딱하고 짠 데다 강한 냄새까지 있어 차가운 물을 계속 바꿔주면서 약 3일을 물에 불리고 씻기는 과정이 지나야지만 꼬들꼬들한 특유의 식감을 살릴 수 있다.
이 바칼라 튀김 가게는 이탈리아가 유로가 아닌 리라를 쓰던 오래전부터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이다. 산타 바바라 성당이 있는 작고 예쁜 광장 한 모퉁이에 자리하고 있다. 이 날은 축구경기가 있었는데 정말 아주 오래된 단골의 포스가 가득한 할아버지 5분이 맥주 한잔에 튀김 한 접시를 시켜놓고 진지하게 축구를 시청 중이었다. 뭔가 낯익은 아버지 단골 전집 같은 분위기가 풍긴다.
가게로 들어서면 훤히 들여다 보이 주방서 주인아줌마가 장인의 포스로 바칼라를 튀겨낸다. 처음엔 뭔지 모를 아우라에 사진을 찍어도 될지 묻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가게를 나서면 부탁하자 소녀같이 부끄러워하며 너무나 해맑게 웃어 주었다.
갓 튀겨져 나온 튀김을 자르자 속에 가득 찬 바칼라가 드러났다. Filetto di baccala(6유로) 무엇보다 이 튀김옷에 비법이 들어있는 듯한데 두꺼운 튀김옷에도 불구하고 전혀 느끼하지 않고 오히려 바삭함과 쫄깃함 모두를 간직하면서도 자극적 이진 않으나 자꾸만 생각나는 놀라운 맛이 난다. 여하튼 바칼라와 튀김옷의 조화는 최고였으며 이 글을 쏘고 있는 창 밖에도 비가 오고 있는데 당장 달려만 가고 싶다. 처음 이 튀김을 맛보고 매일매일 생각이 나서 그 간절함을 주체하기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 바칼라 튀김에 꼭 곁들여 먹어야 하는 것이 로마 전통 푼타렐레(puntarelle) 샐러드 (6유로) 다. 쌉싸름한 맛의 이 채소는 치커리 과인데 길게 찢어 앤쵸비와 마늘 그리고 식초와 올리브유에 버무려 낸다. 비주얼이 마치 파닭 느낌인데 바칼라 튀김과 푼타렐레 이 둘의 만남은 엄지 손가락 두 개로도 부족하다.
여름밤이면 이 조그만 광장엔 한 손엔 맥주 한 손엔 바칼라 튀김을 든 사람들도 인산인해를 이룬다. 오늘 밤 내리는 비가 지나가면 이제 겨울은 완전히 지나가고 로마는 봄으로로 다가간다. 살랑살랑 봄을 알리는 바람이 불어오면 본격적으로 로마를 머무르는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최고의 계절이 도래할 거다. 두 아이 엄마에겐 너무나 가혹한 계절이 성큼 다가와 버렸다는 뜻이다.
위의 글을 쓴 것이 코로나가 오기 전의 겨울의 끝자락이었다. 코로나는 봄을 삼켜버렸다. 우리는 여름 초입이 되어서야 거리로 나섰다. 가족 다 함께 캄포 델 피오리로 향한 날에도 비가 내렸다. 수풀리 가게 안에는 4명의 사람만 들어갈 수 있었고 좌석에는 앉을 수 없도록 테이프로 엑스를 만들어 붙여놓았다. 비를 피해 처마에 서서 우린 갓 튀긴 수풀리를 먹었다.
바칼라 가게는 좌석마다 가림막에 설치되었다. 마스크를 낀 아저씨가 맥주를 가져다주었다. 많은 것이 변해 있었지만 여전히 식당안은 오랜 단골로 보이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앉아 호호 불며 바칼라 튀김을 먹고 계셨다. 그런데 이상한 게 하나 있었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세상은 뒤바뀌고 절대 이 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더니 변하지 않은 한 가지가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게 바칼라 튀김을 먹는 법은
아이들을 집에 두고 나온 밤에 맥주를 들이키며 먹는 것이라는 진리였다.
상황은 변했지만 맛은 여전했는데도 불구하고 어쩐지 혼자 외출한 비 오던 밤의 바칼라와 수풀리가 더 맛있었던 것만 같은 것은 기분 탓이었을까? 아닐까?
written by iand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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