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지 못하게 만든 글
3월의 어느 날,
코로나 19로 인해 이탈리아 전국에 이동 제한령이 떨어지고 외출이 금지된 지 일주일이 지났을 쯤이었다. 넷플릭스에서 우연히 줄리 & 줄리아를 보았다.
줄리 & 줄리아 프로젝트
얼마나 갈진 아무도 모름
무모한 미션을 시작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무릎을 꼭 껴안고 몰입한 나머지 몸이 뜨거워졌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몸을 돌려 남편에게 말했다.
오늘부터 도전을 시작할 거야. 도전 기간은 우리가 다시 자유롭게 외출할 수 있을 때까지. 매일 출판사에 원고를 투고할 거야.
그 날부터 아이들을 재우고 출판사에 투고하는 법에 대해 공부하고 기획안과 샘플 원고를 만들기 시작했다.
첫 책의 경우 출판사에서 연락이 먼저 왔기 때문에 투고는 생소한 세계였다. 솔직하게 두 번째 책도 출판사에서 알아서 연락이 오고 자연스럽게 출판으로 연결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브런치 북 프로젝트에서 낙방하고 호기롭게 발행한 브런치 북들에 어떠한 신호도 잡히지 않으면서 실감이 났다. 내가 봐달라고 하지 않으면 누구도 알아서 읽어 주지는 않겠구나.
가장 먼저 첫 책을 출판했던 출판사를 떠올렸지만 투고 명단에서는 제외했다. 책 출판이라는 꿈을 이루어준 고마운 곳이지만 에세이가 주력 분야가 아니라는 인상을 받았기에 다음 책은 에세이의 경험이 많은 출판사에서 출판을 해보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었다.
우선 기획안 작성을 시작했다. 쉽지 않았다. 최우선은 원고를 읽게 만들어야 하고 궁극적으로 출판을 해야 할 만큼 매력적으로 어필할 수 있어야만 했다: 이 고민을 할 수 있었던 것 만으로 결과를 떠나 좋은 경험이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내 글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기획안 내용 중 비슷한 출판물에 대한 시장 조사가 있었는데 이 과정에 내 글에 대한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글을 통해 인종차별 정체성의 혼란에 대한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정말 많은 한국인이 해외에서 살고 있고 정말 다양한 다문화 가정이 한국에 존재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한국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한 출판물이 없었다. 한 달 살기 등의 해외의 삶에 대한 낭만적인 모습이나 퇴사하고 세계여행 식의 환상적인 모습 프랑스식 육아처럼 우아한 해외의 모습에 대한 출판물은 넘쳐나지만 정작 진짜 그 내면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다. 특히 초등학교 이후에 아이들이 본격적으로 현실적인 인종 차별과 정체성의 혼란을 겪어 나가는 이야기는 전무했다. 그런 내용의 책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해외 작가의 번역서였다.
코로나로 인해 한국 사람들은 직간접적으로 인종차별을 겪었다. 해외, 특히 미국과 유럽에 환상이 완전히 깨어져 버린 이 시점에 나의 글이 단순히 이탈리아에 사는 딴 세상 이야기로 치부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메일을 보내고 바로 다음날, ‘출판을 진행할 생각이 없습니다.’라는 단 한 문장의 답을 받았다. 한국과 이탈리아의 시차 때문에 한국에선 오후에 답을 보냈지만 나에겐 모닝 메일이 되어버렸다. 출판 거절 메일로 하루를 시작했다는 뜻이다. 코로나로도 충분히 힘겨운데 사서 이런 고통을 자처하다니 이 정도면 거절을 즐기는 변태라는 생각이 들 정도네.
그래도 매일매일 투고했다. 그리고 매일매일 거절당했다. 틈틈이 공모전에도 응모했다. 처음엔 거절 메일이 매정하다 싶었는데 답을 안 해준 출판사가 더 많은 걸 떠올리면 희망고문을 초장에 막아준 그들이 배려가 있었던 거다.
나의 투고 이야기를 듣고 출판 관련 일을 하는 지인이 말했다. 코로나로 출판 업계가 더 어려워졌다고. (도대체 출판 업계가 안 어려운 때는 언제인가요 ㅠ) 판매로 확실하게 직결되는 작가들만 출판을 하는 전체적인 분위기니 아마도 인지도 없는 작가의 글이 출판되기는 한동안 어려울 거라고.
한 달이 지나고 투고한 출판사도 30곳이 넘어갈 무렵엔 점점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때 온라인 글쓰기 클래스에 올라온 한 수강생의 글을 읽게 되었다.
올해 초, 첫째 아이가 학교를 옮기고 두 달이 더 지나고 나서다.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 되어 온 날이 있었다. 아이를 본 순간, 참 오래도 울었구나, 싶었다. 아이의 유독 긴 속눈썹이 흠뻑 젖어 아무렇게 붙어 있다. 코와 입 언저리까지도 붉다. 이 얼굴을 하고 집까지 걸어왔을 것을 생각하니, 창 밖 매서운 바람이 마음을 에인다. 이유인즉, 같은 반 친구가 자기를 놀렸단다. 아직 독일어가 익숙하지 않으니 어쩌면 착각한 거 일 수도 있다고 아이를 달랬다.
“엄마, 내가 독일어를 모르지만 느낌으로도 알 수 있는 것도 있어"
아이 말이 맞다. 외계어라도 내 욕하는 것만큼은 아마 다 들릴 거다.
“분명 나쁜 말 한 거 같아. 나한테 계속 그랬다고!!!”
“그러니까…. 핸드폰 음성 번역기로 해석해 줘. 응?”
그래, 도대체 뭐라고 한건 지, 한 번 들어나 보자. 싶어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그만... 가슴이 철렁하고 만다. 핸드폰 번역기는 “역겨워”라고 말했다. 다시 해봐도 “역겨워!”
“우리 아이스크림 먹으러 갈까?”
한겨울에 아이스크림은 먹으러 가야 할 정도로, 이미 나의 멘탈은 얼어붙어 버렸다.
" 엄마, 그게 무슨 뜻이야? 나한테 욕한 거 맞지?"
“엄마, 코코아. 난 아이스크림보다 코코아가 더 좋아”
다행히 5살짜리 둘째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그날 아이들을 서둘러 재우고, 남편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집안일이 당최 손에 잡히지 않아, 기다리는 일만 겨우 했다. 하지만 회식 때문에 늦는다는 카톡이 왔다. 고맙다, 때로 슬픔보단 분노가 더 나을 때가 있지. 남편은 어쩌다 한 번뿐인 회식에 그렇게까지 화낼 것까지 있냐며, 그 역시 잔뜩 화가 났다. 맞다. 이해 못하는 게 당연하다. 혹 애써 이해를 했다면, ‘이 여자 또 때가 되었나 보군’ 정도겠지. 그날 난 내가 어떻게 잠들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아이들은 뭐든 잘 숨기지 못한다. 감정도 그렇고 본인이 알고 있는 것들을 어른처럼 감추지 못한다. 물론 어린애 같은 어른들도 있지만. 하여, 인종차별은 어른들보다 아이들 세계에 더 가감 없이 드러나는 것 같다. 그건 다름에서 오는 호기심의 차원과는 분명히 다르다. 물론 그들만의 세계 역시도 약육강식의 법칙은 존재한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인종차별은 또 다른 세계 같다. 아이들이 경험하는 인종에 대한 차별은 어른들이 겪어 내야 할 것보다 때로 훨씬 더 깊고 오래 남을 수 있는, 전인격적 세계관에 대한 상처일지도 모른다. 그걸 알면서. 적응.이라는 이름 아래에 무수히 많은 상처들에 무뎌지길 바라는 이 애미가 더 잔인한 건지도 모르겠다.
'무조건 엄마가 미안하다.'
그 일이 있고 얼마 되지 않아서 코로나 19가 퍼지기 시작했다. 다름에 대한 차별은 더 이상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닌 게 되었다.
“우린 모두 다르게 생겼어. 우리 모두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모습을 선물 받은 거야. 그 누구도 그 누구에게 자신이 가진 모습을 부끄러워하거나 잘 못 된 거라고 느끼게 해서는 안돼. 이안, 앞으로 누가 그러면, 그게 선생님이고 형이고 누나라도 그건 나쁜 거라고 하면 안 된다고 말해줘”
<로마에 살면 어떨 것 같아> 김민주 작가의 '이제 네가 말을 해야 해'중에서
내가 그녀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다. 그녀만의, 세상을 향한 그녀 다운 답을 찾아가는 모습이 내게도 선한 자극이 된다. 당장 내가 사회를 바꿀 수 있는 힘은 없다. 어디에 외쳐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다만, 내 아이들에게는 인간, 문화, 종교, 문화 등의 다를 수 있음과 그에 대한 존중을 가르치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건강할 수 있도록 키워내는 게 그저 내가 해야 할 일인 거 같다.
어느덧 봄이 왔다. 아직은 이르지만 아이들과 함께 아이스크림 한 덩이 달콤하게 먹고 싶다.
Ps.
作心, 3일. 은 지났지만 세 번째 숙제 앞에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아물지 않은 제 안의 상처를 들여다보니, 여전히 아팠거든요. 하지만 글이란 함께 울어주는 친구. 와 같은 거구나. 배웁니다. 그리고 그 뜻이 함께 모여 커다란 울림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 글쓰기 수업 수강생 [하다] 님의 글입니다.
아이가 이탈리아에서 자라면서 겪게 된 혼란과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서 알게 된 것 이 있다. 정말 많은 부모와 아이들이 우리와 닮은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드러내고 이야기하는 이가 많지 않아서 다들 스스로 방향과 답을 찾아 헤매다 길을 잃고 방황하고 막다른 벽 앞에서 주저앉아 울고 있다. ‘이렇게 대응하셔야 합니다’라는 답이 아니라 ‘이렇게 이 상황을 바라보면 마음이 진정될 거예요’라고 누군가 말해주길 기다린다. 나의 아이가 이런 일을 겪은 것이 내 부족 때문이 아니라고 이야기해주길 기다린다. 당신의 언어가 부족해 용기가 숨어버리고 화내고 싶지만 눈감아 버리고 울음을 삼킨 순간들을 나도 겪고 있다고 안아주는 이를 기다린다. 이들은 해외에 사는 가정일 수도 있고 한국에 사는 가족일 수도 있다. 정말 많은 분들이 이런 이야기를 공개해주어 고맙다고 마음을 전했다. ‘이런 글이 어떤 가치 있을까?’ 고민할 때마다 그분들의 진심이 계속 글을 쓰도록 나를 지탱해 주었다.
지금은 소수의 나와 상관없는 누군가의 이야기라고 생각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훗 날엔 분명 다수의, 일상의 이야기가 될 거다. 또한 인종 차별이라면 특수한 상황의 문제로 들리겠지만 이를 차별이라 이야기하면 평범한 매일의 문제가 된다. 코로나를 통해 내가 살고 있는 나라 밖의 알지도 못하는 지구 어딘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문제조차 모두의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와 상관없음은 이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메일함엔 거절만이 있었다. 단도직입적이거나 정중함의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그 사이 이탈리아의 이동제한령은 해제되었고 비록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일상은 정상을 찾아가고 있던 어느 날 한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보내주신 기획안과 원고는 잘 살펴보았습니다. 정성 들여 쓰신 기획안 덕분에 원고가 지닌 방향성을 잘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님의 태도와 시선이 좋았고요. 솔직히 말씀을 드리면, 코로나 19로 인해 다른 나라를 여행하는 일이 전처럼 쉽지 않은 상황에서 외국에서 사는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가 독자들의 무엇을 건드릴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쉽게 판단할 수 없었고요. 하지만 최근에 원고를 찬찬히 다시 읽으면서, 어쩌면 타인의 삶과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담은 이야기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21년 우리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닿는다.
코로나 봉쇄 60일간의 무모한 미션을 종료합니다.
written by iand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