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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마 김작가 Jun 26. 2020

너의 다름이 나의 다름과 달랐다

너에게도 동양인에 대한 동료애가 있어?

일요일 아침 성당 가는 길,
차를 타고 항상 지나치는 모퉁이에는 만국기가 걸린 식당이 있다. 여느 날처럼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지나가고 있는데 뒤에 앉아 있던 이안이가 유심히 창밖을 바라보더니 외쳤다.


한국 깃발이 없어!
일본 깃발은 있는데!
일본 깃발 말고 한국 깃발이 있어야지!


국기가 보이면 자연스럽게 한국 국기를 찾고 일본 국기만 있으면 분노하는 딱 한국 사람 마인드구나 싶어 우리 부부는 웃었다. 그 웃음에 통쾌함도 기특함도 한 스푼씩 들어있었다. 그래, 한국 사람이라면 그래야지. 그 순간에는 그런 감정이었다. 그런데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우리가 아이 앞에서 반일 감정을 드러낸 적이 있었나? 그걸 떠나서 아이가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가? 기특하다고 느끼는 우리는 당연한 건가?




그리고 며칠 후 책 한 권을 읽었다.


브래디 미카코 [나는 옐롱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 다다서재 ,2020


작가 브래디 미카코는 일본인이다. 그녀의 남편은 아일랜드 사람이고 아들은 일본 아일랜드 혼혈로 런던에서 자라고 있다. 아들은  공영주택 단지 사이에 위치한 책의 표현에 의하면 ‘백인 노동자 계급의 부모가 대다수인 밑바닥 중학교’에 다니고 있다. 아이러니 하지만 상류층 위주의 가톨릭 초등학교를 다니던 때엔 더 다양한 인종의 아이들이 모여있었지만 오히려 인종차별은 적었다. 그러나 백인 위주의 중학교에서 아이는 영국인이 아니라 또 다른 이민자 친구에게서 인종차별을 당한다. 안전한 세계를 벗어나 만나게 된 거친 환경 속에서 아이는 사회적 불평등과 현실적인 문제 그리고 정체성의 혼란을 마주한다.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학생회장으로 중국인이 뽑힌다. 백인 위주의 학교에서 큰 사건이었다. 그 학교에서만 큰 사건인 건 아닐 거다. 글의 무대를 로마로 옮겨도 어마어마한 사건이다. 작가는 가슴이 뻥 뚫리는 감정을 느꼈다고 썼다. 글로 읽고 있는 나도 쾌감을 느꼈다. 런던 한 중심에 백인 위주 중학교의 ‘중국인 학생회장’이라 쓰고 ’ 아시아인의 저력’이라고 읽었다.


백인 투성이의 학교에 중국인 학생회장이라는 것만 해도 드문일인데 중국 음식점의 아들이라니, 옛날 말로 해서 ‘노동계급의 영웅’이라고 불러야만 할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아들네 학교가 대단히 거칠었던 시절 동네 공원은 꽤 위험한 곳이 었는데, 깜박하고 지나갈 때면 그 학교 아이들이 수풀 속에서 맥주를 마시거나 수상한 냄새가 나는 궐련을 피우며 ‘니하오’또는 ‘중국인은 춘권이나 튀겨’ 라면서 나를 조롱하곤 했다. 그래서 춘권을 파는 집의 아이가 아들네 학교의 학생회장으로 선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개인적으로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곧장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은 이 감정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242p


중국인 학생회장은 일본인 혼혈인 신입생 아들을 챙겨주고 보호한다. 아들도 싫지 않다. 그런데 사건이 일어난다. 하교 후 우연히 만나 같이 걷던 이 둘을 보고 같은 학교의 상급생이 ‘샛노랗다’ 라고 놀린 거다. 학생회장은 폭력을 행사하고 학교에서 처벌을 받는다.

여기까진 예상 가능한 전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이야기를 읽어나가며 몇 번이나 호흡을 가다듬어야만 했다. 아들이 엄마에게 묻는다.


그러면 (엄마도) 다른 아시아 출신 사람들을 보면 역시 동료나 동포 같다고 느껴져?


아이는 누구에게 더 소속감을 느낄까?


아들은 냉정한 학생회장이 왜 그 순간 그렇게까지 반응했을까? 사건 이후 계속해서 반문했던 거다. 그리고 그 놀림이 그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향해있었고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행동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아들은 그 순간 그 조롱이 학생회장을 향한 것이라 생각했던 거다. 스스로 동양인에게 소속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아이는 그제야 학생회장의 보호가 너무나 무겁게 느껴진다. 그의 보호와 챙겨줌 그리고 대신 싸워준 일련의 행동들 속에 너 역시 동양인이 당하는 폭력과 차별에 싸워야 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거다.


“동료애가 지나쳐서 너무 무거워진 거구나?”
“무겁다고 해야하나... 어쨌든 그런 감정은 무척 강하다고 생각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달까? 나는 그런 마음이 들지 않거든.”
“그래.”
“나는 지금까지 부모님이 인종도 다르고 문화도 달라서 좋았어. 그 덕에 다른 애들은 절대로 못 가볼 일본 같은 나라에 매년 가고 있으니까. 외국에 가족이 있다니 멋있기도 하고. 하지만 나는 일본인이 아니잖아.”  

-252,253 p


이안이를 떠올렸다. 아이의 반에는 일본 이탈리아 혼혈의 안나와 중국인 스카이가 있다. 안나의 엄마는 내성적인 성격이다. 남편이 이탈리아 사람이라 이탈리아 말을 잘해도 엄마들 사이에선 소극적이다. 스카이의 아빠는 본 적이 없고 엄마도 사업으로 바빠 학교 행사나 등하교는 언제나 보모와 함께한다.

안나와 스카이를 볼 때면 언제나 마음이 쓰인다. 작년 여름학교에서 인종차별을 당해 위축된 안나를 봤을 때도 혼자 부모 없이 초등학교 입학식에 참석에 울고 있던 스카이를 봤을 때도 그랬다.

그 아이들이 나의 아이 같고 어떨 땐 나 같기도 하다. 그래서 이 두 아이들이 울거나 어려운 일을 겪으면 이안이가 마음 써 주고 도와주면 좋겠다. 때로는 아이에게 그래야만 한다고 은연중에 강요하기도 했다.


왜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우리가 같은 동양인이라서? 그러면 이 두 아이 외의 다른 친구들에게도 이 정도로 감정이입을 했던가? 같은 동양인이라서 공감해야 한다가 아니라 영화 원더의 대사처럼 ‘힘겨운 싸움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친절하라’ 고 말해주는 것이 맞지 않을까? 아이가 이탈리아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기를 바라면서 한편으론 아시아 사람들에게  더 감정 이입하고 소속감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은 얼마나 이기적인가?

아이에게 물었다.


_이안, 안나나 스카이를 보면 너와 닮았다고 생각해?
_응? 아니 우리 다른데? 안 닮았어. 아~ 하나 있네. 스카이도 나도 이름이 세 글자잖아. 스. 카. 이  (그건 성 빼고잖아 그렇게 치면 넌 이름은 두 글 자지!)


불과 일 년 전 아이는 “나도 얼굴이 분홍색이면 좋겠어.”라고 말했다. 그때 난 이렇게 말해주었다.


우린 모두 다르게 생겼어.
우린 각자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모습을 선물 받은 거야.


아이는 그 이후 우리 모두는 다르다고 , 다르게 생긴 것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게 된 거다.


나의 다름과 아이의 다름이 같지 않았다.


말은 모두가 다르다고 하면서 정작 나는 ‘그들에 비해 우리는 다르게 생겼다’ 고 ‘ 우리에 비해 그들은 다르게 생겼다’ 고 그룹을 나누고 있었다.


하나 더 물었다.


_지난 번에 차 타고 가다가 국기가 많이 걸려있는 곳을 보고 일본 국기는 있는데 한국 국기는 없냐고 왜 물었어? _어? 흰색에 빨간 색이 일본 아니야? 루카가 그게 일본 국기라고 그랬는데. 나 아는 게 한국이랑 일본 두 개뿐이거든.


애초에 아는 국기가 두 개뿐이었던 거다. 왜 일본 국기만 있냐고 물은 것은 그것만 아는 국기 였기 때문이지 한일감정과는 무관했다. 내가 가진 사고관으로 아이를 보기 때문에 아이의 말 속에도 내가 생각하는 의미가 담겨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는 여타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채 편견 없이 모든 것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이에게 나의 의미가 침범하지 않도록 조심해야한다.


아이가 동양인에게 소속감을 느끼고 공감할 수도 있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자신을 한국인으로 생각하는 것과 한국인에게 소속감을 느끼고 동료의식을 느끼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자신을 한국인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별개로 이탈리아 사람들과 더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은 자신을 한국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이탈리아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모습이든 아이 스스로 정립해 나가는 길에서 물러서 거리를 지켜주어야만 한다.



모두가 다른  당연하잖아 말하는 듯 올려다보는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동양인이라서 받는 불평등과 차별에 분노하고 슬퍼해야 함이 아니라 모든 불평등과 차별에 같은 마음이어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고. 들과 우리가 다름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다르기 때문에  개개인 모두가 존중받고 존중해야만 한다고. 무엇보다 아이에게 하는 말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래야만 한다고.


written by iandos



[ 아이의 질문 ]

https://brunch.co.kr/@mamaian/179


[ 안나 이야기 ]
https://brunch.co.kr/@mamaian/187


[ 스카이 이야기 ]
https://brunch.co.kr/@mamaian/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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