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마 김작가 Aug 08. 2020

엄마 아빠는 싸우지만 사랑해요

코로나 시대 부부의 세계


2월 말, 이탈리아의 코로나 확진자가 100명이 넘어갈 때만 해도 한두 달 지나면 잠잠해지겠지 생각했었다.


3월이 되고 록다운이 떨어졌을 때도 2주만 지나면 다시 일상이 올 거라고 생각했다. 급기야 지역 간 이동제한에 외출제한까지 내려졌다. 외출 제한이 한 달간 이어지자 여름이 지나야 정상화가 되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한 달 더 연장되고 두 달이 넘어가고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2020년의 반이 지나있었다. 올해는 이렇게 보내고 내년 봄이면... 하던 기대는 다시금 급증하는 세계 곳곳의 확진자 소식에 쪼그라들었다.  ‘언젠가는’ ‘그때쯤엔’이라는 전제가 무의미해졌다.

이제 모든 문장에는 ‘그때가 되어봐야’라는 서두가 붙었다.


우리의 미래는 어디로 가게 될까?
여행업은 언제 되살아 날 수 있을까?


이제 미래 예측은 무의미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대충 살자....마스크로 눈을 가린 내 딸처럼........


반년이 지나자 코로나의 불안은 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혹여나 내가 걸리면?’의 불안은 둔감해졌다. 우리의 불안은 코로나로 인해 수입이 불안정해지면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인가?’ 한정된 돈에서 쪼개어 쓰는 긴장으로 변해 있었다.


생계에 대한 불안은 생존에 대한 불안을 압도했다. 그래도 죽으란 법은 없는지 몇 번의 방송 출연, 세 번째 책 계약으로 받은 선인세, 지인을 통한 구매대행으로 주저앉으려 할 때마다 생계는 심폐소생을 받았다.

최근 직접 책을 내고 굿즈 사이트도 만들어서 작지만 수입이 생기고 아직 수익이 날 단계는 아니지만 남편도 유튜브에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

그래도 주로 수입을 내고 있는 쪽이 내가 되니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외출을 해야 하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그렇게 생긴 돈이 크진 않아도 ‘이 돈을 아껴야’라는 생각 없이 수영장에 가고 아이들이 열광하는 해피밀도 기분 좋게 사 줄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과 이탈리아의 물리적 거리와 시차로 인해 주문받은 물건을 보내는 일은 생각보다 진이 빠졌다. 그런데 이상하게 신났다. 코로나 시대로 인해 생활전선에 뛰어든 느낌은 억척스러움이 아니라 자유로움이었다. 흥분됐다. 올해 초 어렵게 시작한 운전이 능숙해져 혼자 차를 몰고 주문받은 물건을 보러 가는 길은 짜릿했다. 아, 이거 뭔가 커리어 워먼 같잖아!!


내 돈내고 간 수영장

자가 출판한 책이 온라인 서점에 하나 둘 입고가 되기 시작한 어느 날, 친한 친구들끼리 아이를 남편들에게 맡기고 저녁에 외출을 하기로 했다. 코로나 이후 첫 혼자 나가는 저녁 외출이었다. 열심히 책 만들고 최근 어느 정도 가계에 도움도 되었으니 충분히 이 밤은 즐길 자격이 된다고 생각했다.

외출을 하기 직전, 부엌에서 남편이 불렀다.
설거지를 하던 그가 말했다.

_나 설거지해.

그 말이 인간적으로 너 외출할 거면 설거지는 해 놓고 나가야 하는 거 아냐?로 들렸다. 순간 날이 섰다. 뭐야? 나가는 게 못마땅해? 일부러 더 뾰족하게 쏘아붙였다.

_낮에 당신 유튜브 편집할 때 내가 종일 애들이랑 놀아줬잖아. (이거 하나 가지고 왜 이래?)

_그렇게 답하면 싸우자는 거잖아. 나 싸우려고 말한 거 아니야.

_내가 혼자 나가니까 눈치 보라고 그런 말 한 거 아니야? 나가지 말라는 거야?

_난 그냥 ‘설거지는 미처 생각 못했어. 미안해.’ 아니면 ‘설거지해줘서 고마워.’라는 말을 기대했어. 그런데 그렇게 답해 버리면 싸우게 되잖아. 알았어. 이젠 이런 말 안 할게.


설거지가 포인트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배려가 당연시되고 싶지 않았다.


부부 중 하나의 외출은 아이들과 집을 책임지는 하나가 있기에 가능한 거다. 부부 둘 다에게 외출은 달콤한다. 한 명이 그 달콤함을 얻었다면 다른 한 명에게 고마움을 표현해야만 한다.


큰 게 아니다.
미안하다.
고맙다.
이 말을 소리로 듣고 싶은 거다.


그런데 그 순간엔 내 서운함만 있었다. 내 귀엔  ‘네가 나가는 게 아니꼽다’로 들렸다. 그렇다고 안 나갈 건 아닌데 내가 피해자라고 억울하다고 드러눕고 싶었다.


‘민주야. 이 말을 하면 안 돼. 너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거야.’


내 안의 그녀가 말리는데도 이 철없는 입이 그 해선 안될 말을 내뱉고 말았다.

_나 안나가! 안 나가면 되잖아!! 요즘 자꾸 왜 그래? 그렇게 나가는 게 싫으면,
_뭘 또 자꾸야? 나 이번 처음 이야기한 거야. 그리고 나가지 말래? 나가는 게 싫다는 말이 아니잖아.
_그냥 알려줘. 너 나가는데 내가 설거지하고 있는데 고맙다고 표현해 주면 좋겠다고. 아니, 당신은 말 안 해주면 모른다고 나보고 하나하나 다 알려달라고 하면서 왜 나에겐 던지기만 하고 맞는 대답을 해주길 원하는 거야?
_넌 다 잘하잖아. 그런 거 잘 알잖아.
_몰라!! 모른다고 이야기 안 해주면 몰라!  요즘엔 더 모르겠어! 당신은 속내를 이야기 않고 말을 던지고 내가 틀린 답을 해서 싸움이 되고. 결국은 다 내가 답을 잘못해서잖아!!! 어떤 말을 듣고 싶은지 정확하게 알려달라고. 난 정말 모르겠다고!

갑자기 울음이 터졌다. 이 일로 인한 울음은 아니었다. 그도 나도 반년 이상 그리고 더 지속될 이 상황에 짓눌려있었다. 우린 긴장과 스트레스가 쌓여서 넘치고 있었다. 


각자 더 배려하고 참고 있다는 생각은 매일 더 날카로워져 가장 잘 이해하고 보듬어야 할 서로가 서로를 할퀴었다.


울 일이 아니었는데 자꾸만 울음이 올라왔다. 우리의 소리가 커지자 아이들이 달려왔다. 심각한 상황에 서성이던 두 아이가 나에게 다가와 안았다. 같이 싸웠는데 내가 울어버리니 아빠가 큰 잘못을 한 것처럼 보였다.

_아빠가 잘못한 거야?

그가 서운한 듯 아이들에게 물었다. 나를 안고 있던 이안이가 아빠를 보며 말했다.

_아빠도 잘못했고 엄마도 잘못한 거 같은데 엄마가 더 잘못한 거 같아. (그래도 엄마가 우니까..)

그리고 이안이가 나의 손에 쪽지를 하나 쥐어주었다.


이안이의 쪽지

종이를 펼쳤다..

.

.


종이 안에 적힌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아... 어떡해.

펼친 종이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그냥 가.


아빠랑 싸우지 말고 가라는 건지. 엄마가 오늘 저녁 외출을 무척 기대했으니 신경 쓰지 말고 나가라는 건지. 아빠 화난 거 같으니 엄마는 우선 나가라는 건지. 아이가 어떤 생각으로 이 말을 적었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다만 우리가 싸우는 소릴 들으며 이걸 쓰고 나의 손에 쥐어 준 아이의 마음에 무너졌다. 속삭일 수도 있었겠지만 종이에 적어 쥐어 준 마음에는 혹시나 이 말을 듣고 아빠가 상처 받지 않기를 바라는 배려도 담겨있었다.

우는 나에게 둘째 이도가 오더니 손을 꼭 잡고 말했다.

_엄마... 아빠가.... 일이 많아서.....

그리고 아빠에게 다가가 손을 끌며 부엌을 빠져나갔다.


세 살 아이도 마음을 헤어릴 줄 아는데 엄마가 되어서 지 서운함만 앞서다니,


이 와중에도 남편은 김치수제비를 끓였다. 친구들에겐 약속시간에 늦는다고 문자를 보내고 식탁에 앉았다. 우린 그동안 담아두었던 이야기들을 풀어나갔다. 서로가 서로를 더 배려해줘야 하는 지금 그 마음을 말로 항상 표현하기로 했다.


난 마치 당신과 내가 바뀐 것 같다고 웃었다.

그가 투어를 하고 며칠 만에 집에 돌아오면 잔뜩 눈치를 줬다. 그가 놀다 온 게 아닌데 내 눈에는 애들 없이 편하게 있다 온 것 같은 거다. 나는 24시간 애들이랑 부대꼈는데. 당신의 일은 경력이 되겠지만 나의 육아는 애들을 키웠다는 것 말고 남는 것이 무엇이냐고. 그러니 당신만큼은 내 육아에 고마움을 표하고 당연시하지 말아야 한다고. 그런데 사람이 이럴게 간사하다. 내가 그를 당연시하고 있다. 세상 그 어디에도 당연은 없는데 말이다.

이 썩을 놈의 코로나가 참 많은 것을 겪게 만든다. (코로나 망해라!!!) 아내가 남편이 되고 남편이 아내가 되고 아이들이 지척에서  부모를 바라본다. 가족이 더 가족이 된다. 많이 싸우고 서운하고 화나고 밉고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한다. 그리고 하나의 결론에 도달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바라는 것은 크지 않다.


‘고맙다’ ‘미안하다’ 이 말을 소리 내어해 주는 것.




요즘 아이와 매일 밤 시 쓰기를 하고 있다.
어젯밤엔 아이가 가족이라는 제목으로 시를 쓰고 싶다고 했다.

아이의 시 노트


엄마 아빠는 싸우지만 사랑해요.


언젠가 친구랑 싸웠다는 아이에게 친구랑 왜 싸워! 하고 말하자. 이렇게 답했다.


친구는 원래 싸워. 싸우는 건 나쁜 거 같지만 좋은 거야.


아이와의 문답을 기록한 두 번째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말이기도 하다.

아이는 어디서 따로 인생 수업을 듣나 보다. 가족도 원래 싸운다는 것도 안다. 싸워도 사랑한다는 것도 안다. 이탈리아 말로 화해하다를 ‘fare pace’라고 한다. 의역하면 “화해하다” 지만 직역하면 “평화롭게 하다”이다.  화해를 하려면 우선 싸워야 한다. 평화롭기 위해 필요한 싸움도 있다. 내 마음 하나하나 꺼내어 보이는 싸움이다.


싸움이 다툼으로만 끝나지 않고 화해에 도달할 수 있다면 사랑은 평화를 얻는다.



이안이의 말이 맞다.
가족이니까 싸우는 거다.

기억할 건 단 하나다.


싸워도 우린 사랑한다.


written by iandos



<유튜브 한 편 감상하고 가실게요!!!>


: 코로나 이후 6개월째 가족 식사를 책임지는 남편은 급기야 아말피의 봉골레 스파게티 맛까지 집구석에서 구현해버렸습니다!! 그 레시피 대공개!


https://youtu.be/Jl8wMgIX4as


< 코로나 시대 현실 부부 백서 >


: 사랑 말고 고생을 나누자.

https://brunch.co.kr/@mamaian/178


< 이안이와 대화의 기록 >


: 모자문답집  절찬 판매 중


https://brunch.co.kr/publish/book/2997



매거진의 이전글 여름엔 행복해져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