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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마 김작가 Aug 29. 2020

코로나에도 낭만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지금 행복하기 위해

해변으로 향하는 길에  싸웠다. 하루에 한 번은 기분이 상할 정도의 언쟁이 일어난다. 이런 자잘한 다툼이 지속된 것은 5월부터다. 3월 코로나로 인해 이탈리아가 봉쇄되고 첫 2달은 꽤 잘 버텼다. 이렇게 여름이 오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돌아가지 못했다.


무방비로 맞이한 코로나 이후의 일상에서 제일 먼저 피부에 와 닿은 것은 돈이다. 언제까지   없을까? 가장 먼저 했던 일은 한 달 생계비를 계산해 가진 돈으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계산하는 것이었다.


코로나 이전의 우리는 사고 싶은 것은 사고 먹고 싶은 것은 먹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났다. 코로나 이후의 우리는 사고 싶은 것에서 눈을 돌리고 먹고 싶은 것은 참고 떠날 수 없는 하루를 살아야 했다. 어쩌면 가장 힘든 것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가 아니라 그 돈을 벌 수 없는 남편일지도 모르겠다.


난 지금 당장 가진 돈과 앞으로 얼마나 아껴야 함을 이야기했다. 그는 이 말에 자신에게 눈치를 주는 의도가 담겨있다고 생각했다. 심지 않은 의도가 상대방의 마음에 도착하는 동안 스스로 피어났다. 말을 한 당사자는 답답하고 억울하지만 상대방은 네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내게 그리 들릴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만 한다고 했다.


매일 같은 싸움이 반복됐다.


해변으로 향하는 길에 우린 같은 다툼을 반복했다. 난 돈을 이야기함을 불편해하지 말아야 한다고, 돈을 벌고 싶고 돈을 아껴야 한다는 이야기가 일상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 말이 자신을 몰아치는 것처럼 들린다고 했다. 우린 서로에게 조심하자고 미안하다 사과하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언쟁은 종료되었지만 차에서 내려 해변으로 걸어가는 동안 우린 침묵하고 있었다. 서로의 마음에 자리한 서운함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었다.


도착한 해변은 로마에서 차로 40분 떨어진 프레제네라는 곳이다. 여기엔 이탈리아에서 가장 멋진 해변 바가 있다. 이 곳을 알게 된 것은 둘째가 태어나고 맞이한 첫여름이었다. 로마와 사뭇 다른 마치 그리스의 작은 마을을 걷는 듯한 마을로 접어들어 작은 골목으로 들어선다. 골목 끝에 다다르면 압도적인 해변이 펼쳐진다. 그리고 저절로 어깨가 들썩이게 되는 노래가 울려 퍼지고 하늘에는 무수한 윈드 보드가 떠다닌다. 해변의 사람들은  어느 하나 심각한 얼굴 없이 웃으며 그 순간을 만끽하고 있다.




이 곳의 정절 순간은 해 질 녘이다. 내가 만난 노을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태양이 바다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에 사람들은 일제히 바다를 응시한다. 모두의 얼굴이 붉게 물들고 바에서 일하는 모든 직원들은 어깨동무를 하고 서있다. 해가 완전히 사라지면 터번을 두른 한 사내가 높은 곳에 올라 징을 울린다.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사랑이는 키스를 하고 가족들은 아이들을 꼭 끌어안는다. 홀로 온 이는 오래도록 바다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이 바다와 사랑에 빠졌다.


 


이 날 이후 우린 여름이라는 계절이 오면 시간이 날 때마다 여기로 달려왔다. 아이들은 각자 원하는 아이스크림을 고르고 손에 감자칩 하나씩 들고 모래에 뒹군다. 우린 음식을 주문한다. 남편은 술을 마시지 못하니 논알코올로 나는 상큼한 맛의 칵테일을 고른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우리가 된다.


 






그런데 올여름은 이 것이 힘들다. 그럴 돈이라면..... 여기에 먼저 생각이 미친다.


처음 이 해변에 왔을 때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듯한 네 명의 청년을 보았다. (진짜 고등학생이었을지도...) 그들은 노래가 잘 들리는 바 옆에 자리를 잡고 어깨에 걸치고 잇던 수건을 깔았다. 어깨에 맨 이스트팩 가방을 가슴으로 돌려 매고 지퍼를 열자 슈퍼에서 사 온 맥주 4명이 나왔다. 뒤따라 집에서 싸온 듯한 락앤락에 담긴 파스타를 꺼냈다. 아마도 그들의 주머니 사정엔 바에서 술을 사 먹는 돈이 부담스러웠을 거다. 빛바랜 수건에 누워 해변 바에서 디제이가 연주하는 노래를 들으며 너무나 자연스럽게 즐겼다. 뭐가 그리 웃기는지 몸을 들썩이며 웃었다. 그 모습이 궁상맞다가 아니라 가슴 시리도록 아름답고 풋풋해 보였다.



우린 어떤 순간에도 낭만을 포기하지 않아.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이번 주는 속절없이 이 해변이 그리웠다. 마치 그날의 청년들처럼 슈퍼에서 맥주와 피자를 사고 집에서 잘라온 수박을 락앤락에 담았다. 해변 바에는 사람들이 북적였지만 우리가 자리 잡은 해변에는 해수욕을 즐기던 인파가 떠나고 텅 비어있었다. 멀리 바에서 노래가 들려왔다. 아이들이 노을에 물들며 파도와 춤을 췄다.


아름답고 찬란했다.




어떤 순간에도 여름을, 낭만을, 행복을 포기하지 않아.



생각했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처럼 어떠한 순간에도 인생은 아름다워야만 한다.



우리가 당장 눈앞의 불안, 부족해 보이는 돈에 마음이 흔들려도 아이들은 뭐든 상관없다. 아이스크림을 사 줄 수 없어 마음이 아픈 것은 부모의 마음일 뿐, 아이들은 그 순간만 아쉬울 뿐 금세 잊고 바다로 뛰어든다. 어쩌면 한 순간 입안의 달콤함 보다 온몸으로 감싸 안은 바람이 저 아이들에겐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해가 수평선과 만나자 흥겹던 노래가 멈추고 이 순간 바에서 항상 틀어주는 이탈리아 가수 Arisa의 La Notte(밤)  들려왔다.


La vita può allontanarci l'amore continuerà
L'amore può allontanarci la vita poi continuerà

삶이 우리에게서 멀어질 순 있어도 사랑은 계속되리라
사랑이 우리에게서 멀어질 순 있어도 삶은 계속되리라


어떠한 순간에도 삶은 사랑은 계속되어야만 한다.


마음에 각인시킨 이탈리아 바닷가 마을의 고등학교  여름방학 숙제



빛나는 햇빛 속이나 뜨거운 여름밤에 네 삶이 어떻게 될 수 있는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꿈꾸어 보아라.  
여름에는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
꿈을 좇기 위해서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라.

말없이 숨을 쉬어라.

눈을 감고 감사함을 느껴라.
슬프거나 겁이 나더라도 걱정하지 마라.
여름은 영혼을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  

너의 느낌을 이야기하는 방법으로 일기를 써 봐라.
햇빛이 물에 반사되는 것을 보고
네가 인생에서 가장 사랑하는 것들을 생각하라.

행복해져라.



남편과 나는 이미 조금 전의 언쟁은 잊었다. 태양이 사라지자 서운함도 사라졌다. 불안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우린 붉은 바다를 보며 이 여름엔 포기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자고 행복하자고 다짐했다.


어둠이 몰려오고 바람이 쌀쌀해져 차가 세워진 곳으로 걸었다. 골목은 즐비한 식당의 맛있는 냄새로 가득했다.  특히 오징어 튀김 냄새는 너무 매혹적이었다. 예전 같으면 자리를 잡고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갔겠지만 우린 식당을 지나쳐 차를 향해 걸었다.


아이가 물었다.


_우리 저기서 먹을 수 없어? 냄새 너무 좋은데.

_다음에, 다시 우리 돈 벌면 와서 많이 먹자.

_응, 알겠어. 그런데 엄마?

_응?



오늘은 정말 최고로 행복한 날이었어.
너무 좋았다, 그치?


 


written by iandos




<누구나 행복해질 이 날의 바다>



<이탈리아의 여름방학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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