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마 김작가 Oct 06. 2020

시간 개념 상실의 시대

아이의 시간에 침범해 등 떠밀던 손을 내려놓는다.


_이안, 내일 무슨 요일이야?
_내일? 9월?
_이제 완전 가을이네...
_가을? 그러면 이제 크리스마스야?

_봄 다음이 뭘까?

_일요일?


참 신기하다.

아이는 유독 시간에 관련된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다.



일주일 한 달 일 년이 아이의 머릿속에선 좀처럼 정리가 되지 않나 보다. 이걸 왜 모르지? 속이 터져 아이에게 역정을 낸 게 몇 번인지 모르겠다. 이젠 그냥 그러려니 한다. 때 되면 알겠지. 그래도 한 번씩 이런 말문이 막히는 대답을 하면 고구마 두 개는 목이 걸린 듯 답답하고.... 욱한다.

하루는 친한 언니와 쇼핑몰에서 아이들 옷을 고르다 기가 막힌 것을 발견했다. 7개 세트 양말인데 각각 일주일의 요일이 적혀있었다. 오호라, 일주일을 깨우치기에 이만한 게 없겠군. 신이 나서 구입을 하며 언니에게 자식 흉을 봤다.



“아니, 애가 시간 개념이 없어.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죄다 뒤섞여서 내일이 언젠지 지금이 무슨 계절인지 당최 알지를 못해요.”

말을 듣던 언니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응수했다.

“그게 왜? 당연한 거 아냐? 이안이 몇 살이야? 7살이잖아. 7살이 ‘엄마, 오늘 금요일이죠? 하... 일주일도 다 갔네.’ 그러면 이상하잖아. ‘벌써 10월이에요? 참... 올해도 다 지나갔네요.’ 그러면 이상하잖아. ‘엄마, 벌써 연말입니다. 2020년 어찌 갔나 싶어요.’ 7살이 그러면 이상하잖아. 어른들이나 시간이 가는 게 아쉽고 지나간 시간이 안타깝고 그런 거지. 넌 7살에 그런 생각했어? 우리나 그런 생각하는 거야. 마냥 오늘이 좋고 시간 가는 게 상관없고, 아이들은 그런 거지. “



생각해보니 내 나이 7살에 내일이 무슨 요일이고 다음 달이 무슨 달인지 생각하지 않았다.


이안이는 3살 때 모든 과거를 어제라고 지칭했었다. 어제도 어제, 일주일 전도 어제, 한 달 전도 어제였다. 마치 모든 지난날이 어제처럼 생생한 듯 말이다. 신기하게 둘째 이도는 모든 미래를 내일이라고 말한다. 1시간 뒤도 내일, 내일도 내일, 일주일 후도 내일이다. 마치 오늘과 내일만 있다는 것처럼 말이다.



아이들이 시간의 개념이 없는 것은 시간을 무한하게 생각해서가 아니라 ‘어제, 오늘, 내일’ 그 외의 시간은 고려치 않아서 일지도 모르겠다. 오래전 과거를 후회하지 않고 오늘은 최선을 다하고 내일 너머의 미래까지 하고 싶은 것을 미루지 않는다. ‘오늘은 안돼!’ 라고 답하면, ‘그럼 내일은?’ 이라고 되묻는다. 다음 주, 한 달 뒤는 막연히 멀게 느껴져 지금 당장을 이야기하는 아이들에게 왜 기다리지 못하냐 설득하려 했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아이들은 철저히 지금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 몇 년 후에, 돈 벌면, 안정되면, 시간이 생기면, 우리가 무언가를 시도하고 좋아하는 것을 도전함에 언제나 앞세우는 그 말들이 아이들에겐 없다. 시간 감각이 없으니 개념을 상실했다. 그러나 개념 없는 인간은 두려움도 없다.

시간의 흐름을 깨우친다는 것은 시간의 유한함을 인지한다는 것 일 지도 모르겠다. 생에 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흐르는 시간에 애가 쓰인다. 조바심이 난다. 그리고 타인의 시간이 신경 쓰이기 시작한다.  타인의 속도에 휩쓸리기 시작한다.

시간 개념 실종의 아이들은 세상은 물론 누군가의 시간 따위는 개의치 않고 온전히 자신의 시간을 산다.



9월 중순 반년만에 아이들의  학교가 다시 문을 열었다.  이탈리아 문장 구조는 한국과 많이 다르고 문장 자체도 길고 뒤에서 서술하는 부분도 많아서 처음엔 문장을 전체적으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본격적으로 긴 지문이 교과서에 등장하면서 아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아마 한국 책을 먼저 접했기 때문에 겪을 수 밖에 없는 시행착오일거다. 당연한 과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걱정이 앞선다. ‘학교에선 제대로 따라가고 있는 걸까?’ 고민하던 차에 아이의 반 엄마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_아직 이안이가 이탈리아 문장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이탈리아 초등학교 2학년(만 7세) 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_이탈리아 아이들의 수준은 중요하지 않아. 이안이는 두ᄀ 언어를 사용하고 있고 아주 잘 해내고 있지. 지금은 혼란스럽지만 개념을 깨우치는 순간 바로 나아갈거야. 속도는 모두가  달라. 무엇보다 이안이의 상황은 특별하고.  기다려주면 돼. 타인의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는 그 말에 정신이 들었다. 아이가 부족하다는 생각은 절대적이 아니라 상대적이었다는 것을.  끊임없이 다른 아이들의 속도를 의식하고 있었던 거다.


어제에 대한 후회도 내일에 대한 조바심도 흘러가는 오늘에 대한 아쉬움도 없는 ‘개념 없는 시간의 세상’ 을 아이가 맘껏 누릴 수 있도록 지켜줘야겠다.


우리의 삶에서 그 세상이 차지하는 순간은 찰나다. 이에 생각이 미치자 비로소  아이의 등을 떠밀던 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자식의 시간에 참견하던 엄마가 겨우 그 길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자신의 시간의 길 위에 섰다. 잠시 멈춰 눈을 감고 그 누구의 시간도 아닌 나의 시간과 속도와 방향에 대해 오래 공들여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고요한 가운데 목소리가 들렸다. 


이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어. 축하해. 이제야 드디어 너의 시간을 마주하게 되었네.


그 목소리는 분명 나였다.



written by iandos
매거진의 이전글 코로나에도 낭만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