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마 김작가 Mar 12. 2021

서점에 간다는 것은 이 모두가 다 포함입니다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은 일

우린 매주 토요일 오전에 서점에 간다. 지난 토요일 서점을 가는 길에 아이가 어떤 광고판을 보더니 물었다.

"엄마, 인터넷으로도 슈퍼 물건을 주문할 수 있다는데?"

고개를 드니 한 건물에 크게 온라인 장보기 광고판이 붙어있었다. 한국에선 이미 익숙했던 온라인 장보기를 이탈리아 사람들은 코로나를 겪으면서야  접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대중적이라곤 할 수 없지만 코로나 상황에 따라 하루아침에도 규제가 변할 수 있는 이탈리아에서 온라인 장보기는 아마도 더 영역을 확장해 나걸태다. 하지만 우린 아직 온라인 장보기를 이용한 적이 없어서 아이 입장에선 꽤나 새로운 발견이었나 보다.

"응, 온라인으로도 슈퍼를 이용할 수 있어. 아, 그리고 책도 온라인에서 살 수 있어. 넌 어때? 온라인으로 살 수 있으면 그렇게 사는 게 좋아? 아니면 이렇게 직접 가서 사는 것이 좋아?"

"난 가서 사는 게 좋아. 왜냐하면 레모네이드를 마실 수 있잖아."

아이들에게 서점을 간다는 것은 단순히 책을 사기 위한 일이 아니다. 서점에 앉아 고민하며 고르고 산 책을 안고 단골 바에서 시원한 레모네이드를 마시며 한 장 한 장 책을 펼쳐본 뒤 동생과 함께 킥보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 까지가 한 묶음이다.



아이가 덧붙였다. "그런데 온라인으로 책을 사려면 다 읽어 봐야 하잖아." 무슨 뜻인고 하니, 서점에서 책을 사려면 책을 하나하나 펼쳐 보고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책을 찾아야 하는데 온라인은 그럴 수 없으니 그러려면 세상의 책을 알야지만 책을 고를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서점에는 빤스맨 책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데 인터넷에선 어디 있는지 모르는데 어떻게 찾아? 하고 물었다. 아이답다.

내가 아들의 나이였을 때, 아버지는 대구의 한 백화점에서 옷가게를 하셨다. 주말이면 엄마와 오빠와 백화점의 아동복 코너에서 아빠의 일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90대 초엔 백화점에 교보나 반디에 루니스처럼 대형 프랜차이즈 서점은 없었고 대신 아동복 코너 한 컨에 작은 서점이 마련되어 있었다. 책이 많진 않았지만 어린이들이 좋아할 만한 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곳에서 매주 내가 사고 싶은 책을 골랐다. 주로 추리소설이었다. 아직도 친정집 책장에 꽂혀있는 작은 나의 손에도 쏙 들어오던 애거서 크리스티의 빨간 표지의 문고본 시리즈를 특히 좋아했다. 책을 고르기 위해 앞의 몇 장은 반드시 읽어야 했지만 행여나 실수라도 마지막 부분은 펼치지 않으려 조심했다. 하나하나 시리즈가 모이면서 컬렉션이 채워지는 나만 아는 뿌듯함이 있었다.


그런데 책을 샀다고 해서 다 읽었던 것은 아니다.  표지가 예뻐선 산 책, 제목이 그럴싸해서 샀던 책도 많았다. 막상 읽으니 난해하고 지루해서 책꽂이에 처박아 두기도 하고 몇 년이나 시간이 흘러서 읽기도 했다. 물론 결국 읽지 않은 책도 있다.  아빠의 일이 끝나면 우린 백화점 뒷골목의 오래된 중국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나에게 서점은 아빠를 기다리는 시간, 마음에 쏙 들어오는 책을 만나는 시간, 기대와 달라 실망하는 책을 만나던 시간 그리고 갓 튀긴 군만두를 먹는 시간 모두 포함이었다.  그 기억들이 지금까지 내가 책을 좋아하게 만들었다.


두 아이는 독서를 좋아하지 않는다. 책을 샀다고 해서 그날 집에 돌아와 책을 읽는 것은 아니다. 신나서 책을 고르기만 하고 정작 집에선 읽지 않는 때가 더 많다. 서점에 들렀다 레모네이드를 마시러 들린 바에서 책을 들여다본 것이 다인 날이 허다하다. 그런데 아이들은 서점에 가는 토요일이 가장 좋단다. 아이들에게도 서점을 가는 일이 단순히 책만 사기 위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온라인으로 많은 것을 살 수 있지만 이렇게 날이 좋은 날은 우리 항상 밖에 나와서 슈퍼를 가자. 그리고 서점도 가자. 예전엔 이런 일이 당연했지만 코로나 때문에 오늘은 할 수 있지만 내일은 못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아이가  물었다.


"코로나는 언제 생긴 거야? 아... 슬프다. 그래도 오늘은 제일 좋은 날이야. 토요일 좋아~"

학창 시절 친구들과 항상 놀러 가던 대구 동성로의 한 중심에 위치한 버거킹 2층엔 타워레코드가 있었다. 인터넷 이전의 세상에서 팝송에 목말랐던 우리들에게 그곳은 성지였다. 하루 종일 머물며 레코드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새로운 사운드에 열광했다. 시디는 미리 들어볼 순 없어서  다른 수록곡들은 전혀 모른 채 시디를 사야만 했다. 어떨 땐 한 곡만 좋았고 다른 곡들은 다 별로인 날도 있었고 흥분될 정도로 좋은, 기대하지 않았던 노래를 만나기도 했다. 종종 전혀 모르는 가수의 시디를 앨범 재킷에만 혹해서 구입을 하기도 했다. 실패와 기대를 거듭하며 나만의 리스트를 만들어 나갔다.  시디의 포장을 벗겨서 시디플레이어에 올리고 지잉.. 시디가 돌아가고 몇 초 뒤 노래가 흐르기 시작하는 순간은 심장에 나비가 날아다니는 듯 간질간질했다. 여전히 생생한 너무나 귀하고 소중한 감각이다.

이런 감각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타워레코드는 우리가 성인의 나이가 되기도 전에 사라졌다. 나의 아이는 유튜브를 통해서 노래를 듣는다. 유튜브는 얼마나 친절한지 나만의 리스트 만들기에 실패하지 않도록 어떻게 알고 내가 좋아할 만한 곡들의 밥상을 친히 차려준다.

서점에서 주저앉아 책을 고르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본다. 실패하며 사랑하는 책을 채워나가고, 읽지도 않을 책을 사고, 책을 안고 집으로 돌가는 설렘과 책을 가슴에 안고 레모네이드를 마시는 상큼함을 저 아이들이 오래오래 누리면 좋겠다. 독서가 아니라 책 자체에 대한 행복한 기억을 아주아주 많이 함께 만들고 싶다.

그런 생생한 감각을 아는 아이가 자라서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도 레코드 가게를, 책방을 지켜나가지 않을까? 공간의 생명을 지속시키는 건 그 장소에  방문하는 이들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혼자서 두 아이를 데리고 슈퍼를 가고 서점을 가는 일은 사실 큰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가버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보통 외출의 끝은 두 아이를 혼내는 마무리로 귀결되지만 그래도 토요일 아침이면 서점에 간다. 서점을 향해 달려가는 것, 서점에서 책을 고르는 것, 달콤한 음료를 마시는 것, 그리고 혼나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모든 것이 서점으로 향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서점을 간다는 것은 이 모두가 다 포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글을 적는 동안 로마의 락다운이 확정됐다. 내일이 우리가 함께 서점을 갈 수 있는 3월의 마지막 날이 될 것이다. 이로써 우리가 함께 서점으로 향하는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당연한 일이 아니라서. 

서점에 갔다가 레모네이드를 마시는 일이 결코 당연한 일상이 아니라서.


written by iandos


매거진의 이전글 [서평] 세상의 질문 앞에 우리는 마주 앉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