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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마 김작가 Mar 28. 2021

자식보다 화가 많은 엄마


나는 화가 많다. 불만도 많고 걱정도 많고 조금이라도 나에게 상처 주는 말이나 불편한 말을 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되받아친다. 아주 오래 그 상황을 곱씹고  그 자리에서 더 확실하게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들었어야 하는데 라고 생각할 때도 있다. “내가 실수했다. 잘못했다.”라고 그 사람이 느끼게 만들고 싶어 어떡하면 그 사람이 후회하게 될까 이런 생각을 계속 이어갈 때도 있다. 이렇게 글을 적다 보니 세상 불편한 사람이 나였네. mbti 검사에서도 비슷한 말이 나왔다. 주변을 불편하게 한다고. 심지어 이런 타입이 세계에 3% 정도만 존재하기 때문에 세상이 돌아갈 수 있는 것이라고 쓰여 있었다. 사람이라면 다 이런 거 아닌가 싶었는데 나 같은 사람이 많지 않나 보군.


여하튼 이런 나의 화에 무방비하게  닥뜨리는 존재가 아들이다. 그런데 이런 화가 많은 엄마 아래서 자란 아들이라고 하기엔 신기하리 만치 화가 없다. 불과   전까지는 아이가 화를 내는 모습을 많이 봤는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어쩌다 이렇게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최근 아이가 화를 내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너무나 궁금한 나머지 물어보았다.


“넌 요즘 왜 화를 안내는 거야?”

“아, 난 약하거든.”

“약하다고?”

“응, 난 힘이 없어, 화낼 힘이 없어서 화를 낼 수 없어.”

“화를 내기엔 네가 너무 약하다는 게 어떤 의미야?”

“누가 화를 내, 그래서 나도 화를 내, 그럼 그 사람이 더 크게 화를 내. 그런데 내 화는 약해서 그거보다 크게 할 수 없다는 이야기야.”


말 그대로 자신의 화가 힘이 약하다는 이야기였다. 화라는 것이 주고받으면 복리처럼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것 같다. 그런데 신기한 건 화를 준다 해도 화로 돌려주지 않으면 금세 힘을 잃고 고꾸라 진다. 아마도 아이는 화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감정이 증폭되는 상황이 싫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자신이 화를 내지 않음으로 그 상황이 반전될 수 있음을 어떤 계기로 깨달은 것 같다. (그런데.. 깨달았다고 적용이 바로 되나…?)


아이의 화가 줄어들기 시작한 시점에 축구에 대한 흥미도 사라졌다. 원래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는 아니지만 이탈리아 아이들이 워낙 축구를 좋아하니 스스로 축구학교도 보내달라고 할 만큼 나름 즐겨보려고 노력을 했다. 일 년뒤 축구학교를 그만두면서 아이가 말했다. 즐겁고 싶어서 축구를 하고 싶은데 왜 다들 축구를 하면서 화를 내는 걸까?  즐거운 축구만을 하고 싶던 아이는 미련 없이 진지한 축구의 세계에 이별을 고했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남편과 많이 싸웠다. 내가 화를 돋우고 그는 화로 되받아치면서 처음 화를 낸 이유는 잊고 결국 한낮  분풀이가 되어  내가 더 힘드네 네가 더 나쁘네 식의 싸움으로 변질됐다. 그런데 아들과는 좀처럼 이런 식의 분노의 육탄전이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화를 던지면 아이가 피식 웃음이 나는 능글능글한 농담을 던지기 때문이다.


“왜 거실을 이런 식으로 매번 어질러 놓는 거야!! 치우라고 몇 번을 이야기해!”

라고 화를 내면

“에이~ 역시 엄마는 나 없이는 아무것도 못한다니까~ 알았어 내가 치울게~~~~”

하면서 느끼한 하트를 날린다.

아들이 날린 하트 날아오면 어이가 없어 웃는다.


한 번은 어디서 기분 나쁜 일을 당하고 아이에게 화풀이를 했다. 누구라도 걸리면 지금의 이 더러운 기분을 거기다 풀어야지 라고 무의식 중에 화의 이양을 위한 레이더를 풀가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레이더망에 아이가 걸렸다. 딱 걸렸어. 아이가 준비물을 안 챙겨서 다음에 꼭 챙겨달라고 이야기한 것뿐인데 마치 세상이 무너진 양 오버해서 혼을 냈다. "아니, 그런 건 진작에 엄마에게 제대로 알려줘야지 왜 깜박한 거야!! 그래서 오늘 수업에 너만 준비물 없이 수업을 한 거야? 대체 왜 그래?!!" 솔직하게 혼을 내면서도 부끄러웠다. 못났다. 진짜 못났다. 어디서 빰맞고 어디서 분풀이냐…. 그래도 정말 다행히 내가 화도 잘 내지만 사과도 잘한다. (우와 잘하는 게 두 개 다아~) 바로 아들에게 고백했다. 사실은 엄마가 기분 나쁜 일이 있어서 그걸 너에게 풀었어. 미안해.

그 말을 듣고 아들이 말했다.


"엄마가 나에게 화를 넘겨주려고 한 거야?
 그러면 기분이 나아질 것 같아서?
 그런데 엄마, 그렇게 해도 안 나아지는데,
 엄마가 나에게 화를 넘겨줘도 엄마에겐 화가 반이 남아있거든.
 그런데 내가 반을 가지고 또 누구에게 반을 주고 그 사람이 또 반을 주면
 모두가 화가 나게 되는 거야."

 

"그럼 어떻게 해야 해? 아무에게도 화를 주지 않으면, 엄마 혼자 이 화를 어떻게 없앨 수 있는 거야?"

 

"들어주면 돼.
 누군가가 다 들어주고 자신의 기쁨의 반을 엄마에게 주면 화가 없어지는 거야.
 들어달라고 해."

 

며칠 전엔 아이들을 혼내다 (적당한 이라는 형용사가 화와 어울리는지는 모르겠으나) 하여간 적당한 화를 내는 것에 실패하고 아이의 눈물을 쏙 빼놓았다. 상황은 종료되었지만 좀처럼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아이들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화를 내면서 발생한 부정적인 감정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그런 나에게 아이가 다가와 질문을 던졌다.


“엄마가 날 혼낸 걸 바로 잊는 것은 좋은 거야?”

“좋은 거라니?”

“음,,, 그냥 엄마가 날 혼낸 걸 바로 잊었으면 좋겠어. 그게 엄마에게 좋을 것 같아.”


내가 아이에게 화를 내고 그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나쁜 기분에 사로 잡혀 있다는 것을 아이가 느꼈다.. 그래서 자신을 혼낸 것을 잊는 것이 엄마의 정신건강에 좋을 거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걸 고깝게 듣고 말았다. 뭐야? 내가 왜 화를 냈는데? 화를 내게 한 당사자가 누군데? 그런 사람이 할 말은 아니지 않나? 라는 심정으로 되물었다.


“화를 내는 게 잘못은 아니잖아?”

“화는 내는 건 잘못이 아닌데…. 화를 내서 울리는 건 잘못인 것 같아. 엄마가 그랬잖아. 이도(동생)가 나를 때렸다고 내가 복수하면 안 된다고. 화나게 했다고 화내고 울리는 건 그거랑 같은 것 아니야? 누가 때렸다고 똑같이 때리는 거랑 같은 것 같아. “


“…….”


“그리고 내가 생각했을 땐…. 최고의 복수는 사과인 것 같아. 엄마 생각은 어때?


영화 [우리들] 중에서 |  (출처 : 인스타 @replay_film)


자식을 통해 부모가 성장한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는데 이건 뭐,  성장은 다음 문제고 인간이 되어야겠다. 우선 인간이 돼야 성장도 가능하지 않겠나. 나를 인간으로 만들어 주려고 아들이 내 자식으로 태어난 것인가. 여하튼 이 글은 나 보라고 쓰는 글이다. 지금까지 나의 포지션이 화의 공격수였다면 이제부터는 화의 수비수로 전환하련다. 나의 화는 물론이고 남이 주는 화도 무력화시키는 훈련을 해야겠다. 내가 화를 넘겨 줌으로 결국 모두가 화를 가지게 된다고 아들이 말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화를 커트하는 기술은 나를 위해 더 나아가 가족을 위해 궁극적으로는 세상을 위한 기술이렸다.


written by iand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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