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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마 김작가 May 16. 2021

한국 어린이만 어린이 날 선물을 받을 수 있어!

다름이 특별함이 되는 계절

어린이 날에 대해 아이에게 비밀로 하고 있다가 교문에서 나오는 아이에게 한국에선 "오늘은 어린이 날이야!" 깜짝 발표를 했다. 어린이 날이 무엇이냐 물어서 어린이가 원하는 것은 다 해도 되는 날이라고 하니 아이의 눈이 휘둥그레 졌다. 이탈리아에도 베파나*(Befana : 매년 1월 6일)라고 하는 마귀 할머니가 착한 일을 한 어린이에게 선물을 주는 날이 있지만 어린이가 뭐든 다 해도 되는 어린이만을 위한 날은 없다.  받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 물으니 포켓몬 카드란다. 선물을 사기 위해 이탈리아 문구점 Edicola(이탈리아 신문가판대 : 저렴한 어린이 장난감도 함께 팝니다.)로 향하는 길에 아이의 절친인 안토니오와 알레산드로를 만났다. 아이는 친구에게 달려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마냥 소리쳤다.


“오늘은 한국의 어린이 날이라 내가 하고 싶은 건 뭐든지 할 수 있어!!!”


세상에 그런 날이 있냐고 놀라는 안토니오에게 한국 아이들은 심지어 학교도 가지 않는다고 거들었다. 그 말을 들고 안토니오가 “저는요? 저는요? 저도 오늘 어린이 날인 거예요? 하고 물어  “아니!! 한국 아이만 어린이 날이야!”라고 얄밉게 대답해주었다. (7살 어린이를 상대로 제가 좀 짓궂었네요.) 그러자 세상이 무너진 듯 외쳤다.


“한국에서 태어났어야 했어!! 아님 적어도 한국 사람이었어야 했다고!!!”


https://youtu.be/ZxxSaFo9vsE


방정환 선생님은 아실까? 어린이 날 덕분에 이 한국인 남매가 5월 5일 이탈리아에서 한껏 부러움을 받는 어린이가 되었다는 것을. 어린이 날 이야기를 듣고 안토니오의 아빠가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쐈다. 난 문구점에서 아이의 친구들에게 포켓몬 카드를 쐈다.


"한국 어린이의 친구들도 어린이 날 선물을 받을 수 있어. 어서 골라!"


아이들이 신나게 돌진했다.


포켓몬 카드를 사서 한참을 놀던 아이들


7살인 첫째가 4살이 되었을 무렵, 유치원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묻곤 했다.


“난 왜 얼굴이 분홍색이 아니야? 나도 얼굴이 분홍색이면 좋을 텐데..."


아이가 학교에서 외모로 놀림을 받았다던가 다른 어떤 계기로 묻는 말은 아니었다. 4살은 나와 타인의 다름이 눈이 들어오는 시기다. 4살이 되던 여름, 아이가 자신이 친구들과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했었다. 작은  작은  얼굴색 머리카락 색이 다른 것이 아이도 아이의 친구들의 눈에도 들어왔다. 심지어  어떤 시기보다 친구들과 자신이 같음이  소속감을 만들어내는 시기였기에 절대적인 다수가 가진 것이 좋은 것으로 비쳤다. 다름은 특이함이었다. 아이의 질문은 유치원 시절 내내 나에게 따라다녔고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매번 마음에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아이가 하고 싶은 궁극적인 말이 “갈색 얼굴이 싫어.” 가 아니었다. "친구들과 닮고 싶어."였다. 축구는 전혀 알지 못하지만 친구들이 모두 가지고 노니까 축구 카드를 모으고 생전 처음 본 축구선수를 좋아하는 척했다. 어쩌다 친구가 나와 같은 디자인의 티셔츠를 입고 있는 것을 발견한 날은 종일 자랑을 했다. 다수가 가진 것이 좋은 것이고 똑같은 것을 소유하고 있음이 기쁨이었다. 아이는 그렇게 더 많은 사람들이 공통으로 가진 것을 바라본다. 분명 아이의 친구들도 이안이가 가진 것이 눈에 들어왔을 거다. 아마 아이가 가진 것은 희소해서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내 작은 코가 좋고 갈색 얼굴이 멋지다고 생각하지만 나를 제외한 대부분이 분홍색 얼굴에 큰 코 큰 눈을 가지고 있으니 아이는 문득문득 "더 많은 사람이 가진 것이 더 좋은 걸까?" 의문이 생겼다, 그럴 때면 엄마에게 질문을 던졌다. 질문을 받은 엄마는 아이는 당연히 겪어야 하는 시기를 겪고 있는 거야 되뇌었지만 아이의 뒤에 서서 지켜보는 것은 아이를 눈을 가로막고 보여주지 않는 것보다 훨씬 힘이 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질문이 사라졌다.


하루는 왜 이젠 그 질문을 하지 않느냐 물었다.

아이가 답했다.


"세상엔 분홍생 얼굴도 까만색 얼굴도 그리고 나처럼 갈색 얼굴도 있는 거야."

"그럼, 이젠 더 이상 분홍색 얼굴이고 싶진 않아?"


엄마, 내 얼굴이 분홍색이면
친구들이 날 못 알아볼 거야.
그건 너무 슬프잖아.


 


5월 5일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얼굴을 하고 아이스티를 마시는 아이를 바라본다. 아이는 어느덧 다름의 이유가 특별함이 되는 계절을 만나고 있다. 아이스티를 마시다 아이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어린이 날이니까 내가 원하는 건 다 해도 되는 거지??"

"그럼, 소원이 뭔데?"

"오늘 일기 안 써! 내일 쓸 거야!!"


오늘은 "오늘의 일기"를 내일로 미뤄도 되는,

어린이의 소원이 현실이 되는,

어린이 날이다.


이탈리아에서 사는 특별한 한국 어린이 축하해.



*매주 목요일 : 캐리마켓 사이트에서 연재됩니다.


http://m.karymarket.com/board/gallery/read.html?no=6671&board_no=8


written by iandos



*전설에 의하면 1월 6일 날 동방박사들과 함께 아기 예수를 공헌하러 오던 베파나가 우물쩡 거리다가 뒤에 혼자 남아 길을 잃었다고 합니다. (못생긴 마녀의 모습을 가졌지만 사실은 마음이 착한 할머니입니다.) 어디를 가야 아기 예수를 만날 수 있는지, 아기 예수가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기에 닥치는 대로 만나는 아이들마다 선물을 나눠 주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중 한 명이 아기 예수였기를 바라면서...) 여기서부터 시작된 베파나의 전통은 훗날 착한 아이들에게는 사탕과 선물을, 나쁜 아이들에게는 숯덩이를 주는 것으로 굳어졌습니다. 베파나는 1월 5일에서 6일로 넘어가는 하룻밤 사이에 모든 이탈리아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줘야 하기 때문에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며, 굴뚝과 벽난로를 통해 각각의 집 안으로 들어갑니다. 벽난로가 근처에 걸어 놓은 양말 속에 착한 어린이에겐 선물 아니면 숯(검은 설탕 사탕)을 넣어 둡니다. 이탈리아 아이들은 성탄부터 베파나까지 열흘 간격으로 두 번이나 선물을 받기에 이탈리아 어린이들은 유럽에서 가장 운이 좋다는 말을 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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