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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마 김작가 May 09. 2021

겸손하며 단순하고 느리며 가난한 수단으로의 도서관

스스로 남의 신발을 신어볼 수 있는 기회의 장

브래디 미카코의 책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에서 중학생 아들과 저자인 엄마가 시험문제가 관하여 대화를 나눕니다. 아들의 시험에 나온 문제는 바로 “empathy(감정이입)란 무엇인가?”입니다. 아들은 이렇게 답을 적었습니다.


스스로 남의 신발을 신어 보는 것.


결국 심퍼시는 ‘감정’ 또는 ‘행위’ 또는 ‘이해’지만, 엠퍼시는 ‘능력’인 것이다. 케임브리지 영영사전의 홈페이지에서 찾아보면 엠퍼시의 뜻은 다음과 같다.  

"자신이 타인의 입장이었다면 어떨지 상상함으로써 누군가의 감정이나 경험을 함께 나누는 능력"

즉 심퍼시는 가여운 사람이나 문제를 떠안고 있는 사람, 자신과 비슷한 의견을 지닌 사람을 보며 품는 감정이기 때문에 딱히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하지만 엠퍼시는 다르다. 자신과 이념이나 신념이 다른 사람, 또는 그다지 가엾지 않은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상상해보는 능력인 것이다.

–브래디 미카코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 중에서


이번 해외특파원 글쓰기의 키워드는 유니버설 디자인입니다.


유니버설 디자인(영어: universal design, 보편 설계, 보편적 설계)

: 제품, 시설, 서비스 등을 이용하는 사람이 성별, 나이, 장애, 언어 등으로 인해 제약을 받지 않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흔히 '모든 사람을 위한 디자인', '범용 디자인'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공공교통기관 등의 손잡이, 일회용품 등이나 서비스, 주택이나 도로의 설계 등 넓은 분야에서 쓰이는 개념이다


위에서 심퍼시와 엠퍼시에 대해 언급을 한 이유는 유니버설 디자인을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엠퍼시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성별이 아니고 그 나이가 아니고 그 장애를 가지고 않고 그 언어를 쓰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 입장이라면 어떨지 상상하고 감정과 경험을 주의 깊게 살펴 우리가 함께 공평한 사용이 가능한 디자인을 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전제조건은 엠퍼시입니다. 스스로 남의 신발을 신어보는 노력과 타인의 입장을 상상하고 감정과 경험을 나누는 능력을 교육뿐 아니라 일상 속에서 성장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쌓아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린 일상에서 좀 더 많이 수시로 마주쳐야만 합니다.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다른 이의 신발을 신어볼 기회가 주어져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장소가 유니버설 디자인으로 되어 있다면 너무나 좋겠지만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모두에게 편하게 디자인된 장소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방문에 거리낌이 없기 위해선 도움을 청하고 도움을 주는 것이 결코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있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과 믿음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로마는 거리나 건물  도시의 환경적인 측면에선 결코 유모차나 휠체어에 친절한 도시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모차를 사용함에 있어  어려움을 느낀 기억이 없는 것은 사람들 덕분이었습니다. 지하철 계단 앞에서 망설이는 순간에는 따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아도 힘을 보태주는 이가 나타납니다. 버스에 오르는 함께 오르는 승객 이미 탑승해 있는 승객들이  함께 버스 안으로 옮겨주고 유모차가 자리할 공간을 비워줍니다. 택시에  때는 유모차를 접는 동안 택시 운전사가 아이를 안고 놀아줍니다. 식당 카페 어디에서도 가장 넓고 편한 자리로 안내합니다. 관공서라는 공간이 아이와 함께 업무를 보는 것이 편한 공간은 아니지만 먼저 업무를   있도록 배려함으로 불편하게 머무는 시간을 최소화시킵니다. 공항 , 박물관  유모차가 있다면  신속한 진로로 이동을 하도록 배려합니다. 이는 규정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유모차와 육아를 동반하는  하는 경우 발생하는 어려움 입장을 이해하기 때문이 가능합니다. 여기서 유모차의 휠체어로, 어린이로, 노인으로 그리고 임산부로 바뀌어도 어색함이 없습니다.



이는 이탈리아 사람들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광장문화, 따뜻한 날씨로  인해 야외 활동이 많고 여름 방학이 길어 때문에 친척이나 조부모와 머무는 기회와 시간이 다양함 등이 작용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이 모든 이유들은 이렇게 하나로 정리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같은 공간에 함께 머무는 시간이 많다.


 나에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공간, 물건이 누군가에겐 불편함을 야기하고 어려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본 적 없고 느껴본 적 없는 이가 이를 개선하고 해결하는 시스템이나 장치를 만들어 내기를 바라는 기는 어렵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서로가 서로를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는 장소를 통해 기회를 만드는 방법 아닐까요?


 "부자든 아니든 공통의 추억이 많은 곳이 좋은 사회다."

-건축가, 유현준


공동의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장소를 떠올려 봅니다.


우리 모두가 한 자리에 만날 수 있는 곳,
도서관입니다.


세련된 유니버설 디자인을 이야기하기엔 이탈리아의 도서관은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서로와 서로를 연결의 역할로서의 도서관을 위해서 이탈리아가 보여주는 몇 가지 사례들은 거창하지 않지만 큰 울림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도서관을 공원으로 옮기기


우리에게 도서관은 언제나 갈 수 있는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코로나의 시대에는 "언제나 당연함"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탈리아는 지난 4월 말, 코로나를 겪고 1년 만에 다시 도서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반납과 대여 목적의 예약 방문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로마의 한 도서관인 Biblioteca Nelson Mandela에서 아이들이 매주 일요일마다 도서관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어린이 도서관을 일요일마다 공원으로 옮기는 이벤트를 시작했습니다. 공원에 아이들이 편하게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고 책을 읽어주는 시간 그리고 그 자리에서 만난 아이들끼리 큰 도화지에 함께 그림을 그려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고 발표하는 행사도 진행합니다.  지난주에는 두 명의 지체 장애 어린이가 함께 자리했습니다. 몸이 조금 불편했지만 공원의 잔디에 누워 책을 보고 아이들이 어우러져 그림을 그립니다. 우리 주위로 벤치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할아버지 할머니 겨우 걸음마를 땐 아이들이 넘어지고 일어섬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2,  세대 간의 만남의 장소로의 도서관


영화 미나리에서 손자와 할머니의 유대감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합니다. 할머니는 부모보다 편견이 없이 손주를 바라보며 무한한 사랑만을 보냅니다. 이는 부모가 주는 사랑과는 또 다른 모습의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의 아낌없는 사랑과 지혜를 만나는 순간이 더 많아져야 한다는 취지로 2018년 밀라노 근교의 작은 도시 카베르나고 ( Cavernago)에서는 “Nonno leggimi una storia” (할아버지 이야기 읽어 주세요.)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책을 읽어주는 프로그램을 만든 것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현재 이탈리아 전역으로 확장되었습니다.


기사 : 소리내어 읽어주는 독서로 더욱 강해진 두 세대의 연대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ATS(Agenzia Tutela Salute : 건강 보호 기관)에서 이야기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시간을 건강보호 기관에서 기획했다는 것이 놀랍네요.)


“사회화 및 의사소통기술, 공감능력을 향상하고 관계를 개선하고 상상력 주의력 및 의사소통 능력을 향상합니다. 어린이를 위한 문화적 풍부함과 주제에 대한 친숙함을 확대하는 결과를 기대합니다. 다른 연령대와 가족 외부의 사람을 대하는 법을 배우기 위함과 멀리 떨어진 두 세대 위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증진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특히 이는 잘 알려진 이야기 및 전통 우화를 들려주는 경우 효과는 더욱 극대화됩니다."


마을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모습


생각해보세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들려는 도깨비 이야기 몽달귀신 이야기는 정말 실감 날 것 같지 않나요?



3.  도서관이 없는 곳으로 트럭 도서관이 찾아갑니다.


이탈리아의 대문호 카를로 레비의 작품 [그리스도는 에볼리에 머물렀다]의 에볼리는 이탈리아 남부의 작은 도시의 지명입니다. 원제목은 [Cristo si è fermato a Eboli]로 머무르다 보다는 멈췄다로 해석하는 것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에볼리가 위치한 이탈리아의 바실리카타 주는 종교, 정치, 문명에 있어 철저하게 외면당했던 낙후된 지역입니다. 험준한 바위 산맥으로 둘러싸여 고립되고 풍요로운 이탈리아 땅에서 보기 힘든 거칠고 척박한 지형을 가진 곳 입니다. 얼마나 열악했는지 그리스도마저 이 지역의 관문인 에볼리에서 발길을 멈추고 외면해 버렸다고 이탈리아 사람들은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환경에 도서관 사정이 좋을 리가 없겠죠. 이 외면받은 도시 곳곳으로  도서관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1999년 Antonio La Cava는 그의 42년의 교직생활을 끝내고 자신의 삼발이 트럭, Ape 500( ape는 이탈리아 말로 꿀벌입니다.)에 700권의 어린이 책과 인형극이 가능한 작은 극장을 싣고 도서관이 없는 마을들로 Bibliomotocarro를 타고 방문했습니다. 그는 마을의 어린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인형극을 보여줍니다.

 


Bibliomotocarro의 영감이 어디에서 왔는가에 대한 질문에 그는 대답합니다.


책을 아이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겸손하며 단순하며 느리고 가난한 수단을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도서관을 통해 가지게 되는 궁극적인 가치가 책과의 만남이라면 도서관 자체가 독자를 찾아올 수 도 있는 것이겠죠.  그리고 현재 이탈리아에는 수많은 ape들이 도서관의 없는 마을의 어린들에게 책을 실어나릅니다.


이탈리아 전국으로 확장된 bibliomotocarro 들





글을 마무리하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어떤 유니버설 디자인보다도 도서관이 공원으로 옮겨지고 할아버지 할머니의 목소리도 옛이야기를 듣고 우리 마을로 찾아오는 바퀴 달린 도서관을 만나는 것이 보편적인 사랑을 더 직접적으로 크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이탈리아가 보여준 단순하고 느리고 가난한 이 방법들로 우리가 서로의 불편함을 더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는 만남을 더 많이 가질 수 있다면 더욱 빛나고 멋진 모두를 위한 디자인들이 세상에 펼쳐질 수 있지 않을까요?



written by ianods



참고 :


https://primatreviglio.it/cultura/nonni-e-bambini-piu-forti-insieme-grazie-alla-lettura-ad-alta-voce/


https://www.bibliotechediroma.it/opac/news/la-biblioteca-itinerante/27691


https://www.quotidiano.net/cronaca/bibliomotocarro-maestro-la-cava-1.4904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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