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단계 : 사업자 신고를 위한 회원가입
2. 거기서 팔고 있으니 안 팔리는 거야.
인터뷰 대상자들 중에서 자신의 사업을 시작해 보겠다고 어렸을 때부터 마음먹었던 사람은 극소수였다. 오히려 대부분 나이가 들 때까지도 자기 사업을 할 생각이 없었던 사람들이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갑작스레 회사에서 일자리를 잃은 뒤 매달 공과금을 내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때 회사에서 잘린 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잘된 일이었다. 만약 회사에서 쫓겨나지 않았다면 새로운 도약의 기회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p19
펑범하게 직장을 다니다 갑자기 해고되어 매트리스를 판매하고 그것을 자전거로 배달하는 사업을 하게 된 마이클의 예처럼 이 책에는 갑작스레 직장을 잃거나 오랜 경제적 궁핍을 견디다 못해 갑자기 창업을 하게 된 사례가 많이 등장한다. 매사츄세스 주에 사는 제시카 레이건 잘즈만은 어느 날 남편으로부터 일찍 귀가한다는 전화를 받았다.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다음 날부터 출근을 하지 않았다. 갑작스런 남편의 실직으로인해 생후 3주 된 아기의 엄마였던 제시카는 생업 전선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취미 삼아 하던 시간제 회계 일은 가족의 생계를 위한 풀타임 직업이 되었다. p39
_크리스 길아보, 100달러로 세상에 뛰어들어라
민주네 가족은 이탈리아에 살고 있다. 민주는 이탈리아 살이 15년 차, 그녀의 남편 재선은 18년 차, 그들의 아들 딸, 이안과 이도는 로마에서 태어났다. 이탈리아에서 살면서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그중 단연 압도적인 역경은 가장 최근에 겪은 아니, 아직도 진행형인 펜데믹이다. 2020년 3월 이탈리아 전국에 락다운이 발효되었다. 장보기, 약국 ( 가족 중 1인만 외출증을 가지고 외출 가능) 혹은 실려나가거나 반려동물 산책을 제외한 외출은 모두 금지되었다. 2주 정도 예상했던 락다운은 2달까지 연장되었고 휴교는 9월까지 반년이 지속되었다.
민주의 남편, 재선의 업은 가이드다. 집 밖 외출도 불가능한데 여행은 꿈도 꿀 수 없는 코로나 시대에 그의 일이 올 스톱되어 버린 것은 말 안 해도 예상이 가능할 거다. 집안의 밥줄이 끊기자 민주는 끊임없이 생각했다. 뭐라도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
그러나 집에서 나갈 수 없다는 기본값에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민주는 글을 쓴다. 2013년 여름 아들을 세상에 출산한 뒤 매주 한 편씩 글을 써온지 어느덧 7년째다. 그 사이 책도 한 권 출간했고 온라인 글쓰기 강의도 개강한 이력이 있으니 당장 민주가 팔 수 있는 것은 글이었다. 민주는 락다운 상황에서 매일 글을 썼다. 그 어떤 나라보다도 힘겹게 코로나의 시대를 맞닥뜨린 이탈리아의 비극의 소용돌이를 버텨낸 한국 가족의 이야기는 분명 팔릴만한 글이었다. 락다운 동안 쓴 글이 한 권의 책으로 엮일 만큼의 쌓이자 민주는 기획서를 쓰고 매일 투고를 시작했다. 투고를 시작한 지 60일 후, 수많은 거절 끝에 한 출판사에 원고가 닿았고 출간 계약까지 이어졌다.
선인세로 받은 돈은 200만 원, 아무런 수입이 없는 상황에서 너무나 귀한 쾌거였다. 하지만 4 가족이 버티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집 대출금을 갚고 장보기 몇 번이면 한 달도 버티지 못하고 사라질 모래알보다 가벼운 금액이었다. 이름 없는 작가의 글은 그에 담긴 피땀 눈물에 비해 그 대가는 소박하다.
소박한 대가 덕분에 민주의 고민은 멈출 수 없었다. 다시금 팔 수 있는 것을 고민했다. 그리고 직접 책을 만들어 팔아보자는 생각에 미쳤다. 코로나 이전에 민주가 완성했던 책이 있었다. 모자문답집, 민주와 그녀의 아들, 이안의 문답을 담은 책이었다. 그 어떤 출판사에서도 답이 없었던 책이기도 했다. 하지만 민주는 그 책이 사람들에게 울림을 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다만, 일반적인 출판 형태에 어울리지 않았기에 독립출판이 책의 성격과 더 잘 맞아 보였다. 그리고 글에 가장 잘 어울리게 책을 디자인할 유일한 사람은 자신 뿐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기존의 글들을 추가 수정하고 중간중간 아들의 그림도 넣어 한 달 정도 디자인의 시간을 거쳐 책 파일이 완성되었다. 다음 단계는 인쇄지만 이탈리아에서 인쇄를 할 수도 없고, 인쇄를 해서 한국에 보내는 것도 일이니 주문을 받으면 인쇄와 발송이 이루어지는 선 주문 후 제작 출판 형식인 POD 형태로 판매를 하기로 결정했다. 제작비나 배송비 등의 부대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지만 민주가 얻게 되는 수익은 당연히 낮아졌다. 책 가격은 11000원, 책 한 권 당 민주에게 떨어지는 수입은 1100원이었다. 유로화로 1유로가 안 되는 돈이지만 (노동과 시간과 피땀도 갈아 넣었지만 표면적으로) 무자본으로 수익을 내는 것이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친김에 해외 구매자를 위해 전자책도 만들었다. 이건 민주가 직접 주문을 받고 판매를 했기에 배송비 및 제작비가 없었기에 수익률은 더 높았다.
책을 만들고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홍보를 시작하자 책이 팔리기 시작했다. 온전히 스스로 기획해 세상에 탄생시킨 책이 팔렸다. 된다! 이게 된다!! 책이 점차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자 POD판매의 단점이 피부로 느껴졌다. 주문 후 제작이 되다 보니 배송까지 일주일이 넘는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리고 입소문과 민주의 인스타그램 개정을 통한 홍보로는 대외적으로 알려지는 것에 한계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 만에 책 판매부수가 획기적으로 올랐다.
15만 팔로워를 가진 인스타 인플루언서 엄마가 자신의 피드에 책을 올린 것이다. 그녀가 민주의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아니니 어떻게 모자문답집을 접하게 되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 민주는 그녀에게 감사의 인사와 함께 어떻게 이 책을 알게 되었느냐 묻는 DM을 보냈다. 그녀는 한 책방에서 이 책을 접했노라 답했다. 친분이 있던 한국의 동네 책방에 책을 입고했었는데 그 책이 그녀에게 닿은 것이다. 민주는 책에 대한 확신과 함께 다른 동네책방으로 입고를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책 판매가는 11000원이지만 작가가 직접 구입하면 8800원 그런데 책방 공급가는 정가의 60~70%, 6600~ 7700원이었다. 선 주문 후 제작 방식으로 책방 입고는 적자를 감수해야만 가능했다.
적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책의 단가를 낮추기 위해선 대량 인쇄를 해야만 했다. 투자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 온 것이다. 600권의 경우 인쇄비용은 1,724,400 원, 권당 단가는 2,874원. 책방 입고 시 3726~4826원으로 수익이 3,4배로 오른다. 그리고 책방 인스타 등의 피드를 통해 책 홍보도 함께 가져갈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다.
결정을 해야만 했다. 투자 없이 권당 1100원의 수입을 가져가는가 아니면 투자를 해서 기대 수입을 올리는 가, 그런데 이 시점에 170만 원은 너무나 부담되는 금액이었다.
민주는 한국의 친구, 장미에게 전화를 했다. 내가 책을 인쇄하려는데 지금 170만 원을 쓰는 게 괜찮을까? 그리고 600권을 다 팔 수 있을까? 전화기 너머로 장미의 웃음이 들렸다.
야야, 사업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다 웃어.
1억 7천만 원도 아니고 170만 원에 고민한다 그러면,
600권 팔려고 하면 다 팔지, 왜 못 팔아?
그리고 못 팔아도 첫 장사 수업료로 170만 원은 정말 싼 거 아니니?
전화를 끊고 민주는 바로 인쇄소에 메일을 보냈다. 민주의 별명은 김 추진이다. 추진력 하나는 끝내준다. 뒷감당은… 잘 모르겠다. 선 추진 후 감당이다. 투고한 원고의 출판 계약금으로 받았던 선인세 200만 원 중 170만 원을 인쇄비로 송금했다. 다음 날 600권의 책이 인쇄에 들어갔다. 그리고 인스타로 미리 조사해두었던 책방에 입고 문의 메일과 DM을 보내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주문이 몰릴 줄 알았던 민주의 기대와는 달리 답은 모두 거절이었다. 책방마다 거절의 내용은 동일했다.
우리 책방과 성격이 맞지 않아요.
실낱같은 희망을 부여잡고 있던 시간에 절망 같은 답이었기에 민주는 망연자실했다. 지금에서 와서 돌이켜보면 당시엔 너무나 원망스러웠던 그 문장에 답이 있었다. 학창 시절 수없이 들었던 지문에 답이 있다는 그 말이 딱 맞았다. 그 문장이 시험에만 적용되는 줄 알았지 삶의 실전에도 적용 가능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민주는 자신이 팔로우하는 인스타에서 자주 보이는 혹은 민주가 가고 싶은 책방들에게 끊임없이 입고 문의를 넣고 있었다. 그 책방들의 주 고객층은 2,30대였다. 다시 말해 엄마와 아이의 대화를 담은 책과 전혀 성격이 맞지 않았다. 민주는 판매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고민이 없었던 것이다.
여전히 판매의 갈피를 못 잡고 있던 때에 인스타 DM으로 온라인 글쓰기 모임에서 만나 인연을 맺고 있던 성하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녀는 런던에서 살고 있다. 그녀의 메시지에는 한국의 책방 리스트가 길게 적혀있었다. 그녀는 그 리스트 아래에 덧붙였다.
제가 모자 문답집을 읽고 (그녀는 영국에 살고 있어 전자책을 구입했다) 이 책과 어울릴 책방들을 찾아봤어요.
이 책방들은 모두 엄마가 운영하는 책방들이고 아이들 손님이 많아요.
분명 모자문답집을 좋아할 거예요.
그리고 이 중 몇몇 책방지기 분들은 브런치에 글을 쓰고 계셔서
어쩌면 민주님을 알지도 몰라요.
세상 어딘가의 엄마를 돕는 것은 언제나 또 다른 세상 어딘가의 엄마들이다. 그녀들은 한 엄마가 일을 하려는 것이 얼마나 큰 에너지를 요하는 일인지를 안다. 엄마가 무언가를 해내기 위해선 반드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아이 키우는데만 온 마을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엄마가 일을 하기 위해선 아이 키우는 것보다 더 많은 응원이 필요하다. 어떤 엄마를 응원하는 마음은 엄마인 나를 응원하는 마음의 또 다른 모습이다.
그 메시지를 받기 전까지 민주는 자신의 책의 시장성에 의심하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터무니없이 시간낭비라고 좌절하고 있었다. 아니었다. 상품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시장에서 문을 두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깨달았다. 자신이 알아야 하는 것은 팔고 싶은 곳이 아니라 팔릴 곳이라는 것을. 너 자신을 알라. 결국 팔리는 것의 비밀은 얼마나 자신의 상품을 잘 알고 있는 가에 답이 있었다.
'저희 책방과 성격이 맞지 않아.'라는 문장 뒤에 숨어있던 '책과 성격에 맞는 책방을 찾아가세요.'라는 문장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마치 마법이 풀린 것처럼 선명하게. 민주는 성하가 작성해준 책방 리스트, 하나하나 입고 문의를 넣기 시작했다. 한 책방에선 DM을 보내자마자 5분도 되지 않아 5권의 주문이 들어왔다. 첫 주문이었다. 강원도 원주시의 외딴 언덕의 작은 책방의 주인 역시 엄마였다. 다음 날 그다음 날, 책방의 주문이 이어졌다. 그리고 책방에서 업로드하는 입고 서적 피드를 통해 책이 알려지고 다른 책방에서도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입고가 된 책방은 재입고로 연결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키즈 온라인 몰에서 책 주문이 들어왔다. 온라인 몰의 주인도 엄마였다. 주문 권수는 20권. 보통 동네 책방에선 책 주문 시 많으면 5권 평균적으로 2권 의 책을 주문한다. 대형 서점에 비해 책을 구비하기에 공간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9월 한국에서 동네 책방에 들렸을 때 민주는 울컥 눈물이 났다.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책방들이 작고 협소했기 때문이다. 작은 책장에 꽂을 한 권 한 권의 책을 고신 하고 또 고심해야 한다는 것을 책방지기 분이 설명해주지 않아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심지어 직접 만든 책을 입고해준 마음이 머무나 소중하고 고마움에 목이 메였다. 단 한 권이라도 책을 입고해준 마음은 민주의 책을 믿고 사랑하지 않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코로나로 책방들도 참 힘들었다. 책을 입고 했던 책방 몇몇은 문을 닫았다. 그런데 한 번에 20권? 엄청난 일이었다. 하나, 조건이 있었다. 사업자번호로 계산서를 발행하는 조건이었다.
당시 민주는 주문제작 플랫폼을 통해 인쇄를 해서 그곳에서 판매를 위한 인증번호인 isbn을 받아 판매 및 입고를 하고 있었기에 사업자번호가 따로 없었다. 사업이라면 패가망신의 지름길 아닌가?! 당장 민주의 아빠만 해도 IMF 때 사업이 망하면서 가족은 삶의 수준은 바닥으로 치닫았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부적처럼 보이던 덕지덕지 붙어있던 새빨간 압류딱지 ,집 앞을 둘러싼 검은색 각 그랜저, 신발을 신고 거실로 돌진하던 아저씨들. 몇 달간 사라졌다 돌아왔던 아빠. 평생 돈 벌어본 적 없던 엄마가 호프집 주방에서 일을 하고 대학 내내 아르바이트를 두 세탕씩 뛰었던 과거의 일들은 모두 민주의 아빠의 사업이 망했기 때문에 일어났던 연쇄반응이었다. 가난은 지긋지긋하도록 오래 민주의 가족에게 들러붙어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래서 민주는 대출, 빚, 사업이라면 거부반응이 일었다.
민주는 종종 아빠가 사업으로 무너졌더라도 사업으로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보았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그랬다면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라고 돈 앞에 의연할 수 있었을까? 돈이 있다가 없어지는 경험에서 과거가 멈춰버렸기에 언제나 민주에게 돈은 사라질까 전전긍긍하는 존재였다. 돈 앞에 대범하고 싶었다. 팬데믹 상황에도 돈 앞에 무너지지 않고 싶다는 욕망과 스스로 돈을 버는 일을 만들어내고 싶다는 집착은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자유롭고 싶은 민주의 몸부림이었다.
민주는 거부할 수 없는 시대의 역풍에서도 솟아날 방법이 있다고 스스로 증명하고 싶었다. 그러나 욕심과 용기는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민주의 용기는 유약하여 사업자 신고 앞에서 하염없이 망설였다. 이 작은 시작이 아주 많은 것을 바꿔놓을 거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자꾸만 욕심을 가렸다. 책을 입고하고 받을 금액은 13만 2천 원. 코로나 전에는 132만 원짜리 옷도 크게 고민 않고 샀던 민주다. 그런데 자신이 스스로 창출한 업에서 벌어들이게 될 13만 2천 원은 너무나 크나크게 보였다.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 사업자등록은 어떻게 하는 거지?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계산서는 뭐고 세금계산서는 뭐지? 걱정마라, 민주야. 네이버가 있단다. 검색창에 '사업자등록 어디에서?'라고 치니 '홈택스'라고 나왔다. '책 판매는 어떤 사업자?'라고 치니 '도서 도매 및 소매업' 업종이란다. '세금 계산서와 계산서의 차이는?'이라고 치니 '도서는 면세 사업자라 계산서를 발행'이란다. 자, 대충 감은 잡았다. 그런데 홈택스 홈페이지에서 회원가입을 하려니 공인인증서가 필요했다.
이탈리아 살이 15년 차 민주에겐 한국 공인인증서가 없었다. 공인인증서를 발급을 받으려면 한국 휴대폰 번호 인증이 필요했다. 젠장, 한국 휴대폰 번호가 없다면 민주가 민주라는 것을 온라인 세상에 입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민주는 글쓰기 모임의 엄마들에게 sos를 보냈다. 전 세계에 자리 잡은 엄마들이 모여있는 이 단톡방은 시차의 마법 덕분에 24시간 가동된다. 독일에 살고 있는 두 아들 엄마인 정민이 휴대폰 번호 없이 자신을 입증할 수 있은 방법으로 범용 공인인증서라는 것이 존재함을 알려줬다. 한국밖에 사는 이는 누구나 예외 없이 온라인 안에서 자신을 입증하기 위해 애태운 경험이 있는 것이다. 목이 마른 자는 기어코 우물을 찾아내고야 만다. 민주는 범용인증서를 받았다. 민주가 민주임을 입증하기 위한 인증서를 유지하기 위한 대가로 매년 4400원의 비용을 입금해야만 한다.
드디어 홈택스에 회원가입에 성공했다. 오전 7시. 분명 어제였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오늘이다. 아이들 재우고 노트북 앞에서 앉은 지 9시간 만이었다. 9시간은 오롯이 회원가입까지만 걸린 시간이었다. 이것이 가장 어려운 단계라고 생각했다. 민주는 앞으로 펼쳐질 수없는 회원가입과 인증과 서류가 필요할 미래를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매 단계마다 더 어려울 거라는 것도 몰랐다. 그 순간 가장 어렵다고 생각했던 일이 그나마 쉬운 일이 될 것이라는 것도 몰랐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자신이 레벨업을 할수록 역경도 레벨업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뛰어들 이가 누가 있으랴? 하지만 몰라야만 뛰어들 수 있는 모험이 있지 않은가? 아니, 애당초 모험이란 무지가 기본값이었다. 계절은 여름이었고 길어진 해 덕분에 창 밖은 이미 환하게 밝아져 있었다. 7년을 아이를 키우며 살던 민주가 펜데믹 6개월 차에 책을 만들고 팔고 사업자 신고 코 앞까지 왔다. 이거야말로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고 밖에 설명을 할 수 없다. 요즘 세상에 개인사업자 내기가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하겠지만, 평생 거부감을 느끼던 사업에 대한 결정이 이렇게 쉽고 간단하고 신속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허탈했다.
민주는 몰랐다. 결코 심사숙고 하지 않은 다소 즉흥적이었던 보기에 따라선 사소할 수 있는 작은 결정이 그녀의 삶의 방향을 급격하게 틀어버릴 줄은. 13만 2천 원을 벌기 위한 지극히 단순한 회원가입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는 새로운 세상으로의 회원 가입이었다.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민주가 모니터의 사업자 신고 글자를 클릭했다.
어제와 다른 아침으로 기어코 접속하고 말았다.
다음 편에 계속…
*주의 : 이 글에 등장하는 민주네 가족의 제외한 등장인물들은 실존하는 인물들이지만 가명입니다. 내용은 사실이지만 작가의 기억에 의해 과장되거나 조작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