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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마 김작가 Feb 24. 2022

3. 돈의 그릇

2단계 : 계산서 발행을 위한 범용 공인인증서

3. 돈의 그릇


따라서 당신이 지금 처한 환경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인생은 당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 당신이 원하는 것과 그것을 얻기 위해 당신이 해야 할 일을 연결하고, 실행할 용기를 내는 것은 당신에게 달려있다.

_레이 달리오, 원칙 Principles


에라 모르겠다. 민주는 질끈 눈을 감았다. 사업자 신고는 눈감고도 신청이 가능했다. 밤을 지새운 9시간이 민망할 정도로 쉬워도 너무 쉬울 수가 없었다. 회원 가입이라는 관문을 통과하니 그 뒤는 일사천리였다. 몇 개의 칸을 채우고 버튼을 누르니 떡 하니 민주의 이름으로 사업자번호가 나왔다. 사업장의 이름은 두 아이의 이름을 따서 이안도즈로 정했다. 그런데 전자계산서를 발행하려니 민주의 범용 공인인증서로는 불가능하다는 팝업창이 떴다. 전자 계산서를 발행하기 위해서는 ‘전자계산서 발급용 범용 공인 인증서’를 따로 발급받아야만 했다. ‘전자 계산서 발급용 범용 공인 인증서’를 발급받기 위해선 기존에 발급받은 범용 공인 인증서가 필요했다. 오르는 길이 어디를 향해있는지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하나하나 사다리가 채워지고 있었다. 그중 하나라도 빠지면 오르는 것이 불가능한 사다리였다.  민주는 무지했기에 이 사다리가 자신을 어디로 안내할지 알지 못했다.


민주가 모르는 것이 하나 더 있었다. 이 사다리에 한번 올라타는 순간 내릴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민주는 무지했다. 그때의 민주에게 ‘이건 내릴 수 없는 사다리야’라고 말해주었다 하더라도 민주는 그 말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준이 되지 않았다. 민주에겐 지금 당장 13만 2천원을 벌기 위해 전자계산서 발행이라는 과제를 푸는 것만이 중요했다. 민주는 눈앞의 문제만을 볼 수 있는 딱 그 정도의 각도만큼의 시야를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13만 2천 원을 수익조차 민주의 착각이었다. 책 10권의 단가가 57,480원, 배송비 7,000원 까지, 지출이 총 64,480원이 발생하니 실제로 민주가 번 순수익은 67,520원이었다. 민주에겐 그 정도의 계산 머리가 있을 리가 없었다. 민주는 매출이 곧 수익이라고 생각했다. 지출과 비용과 세금까지 인지하게  된 것은 이 후로도 꽤 시간이 흘러서였다. 온라인 몰에 계산서 한 장을 보내기 위해 몇 시간의 검색을 거듭했다. 네이버 없이 사업은 과연 가능한 것인가!! 파란색 빨간색 선으로 만들어진 작은 계산서에 필요한 정보를 채워 넣고 발송까지 마치니 진이 빠졌다. 모두 끝이 났는데도 제대로 기입한 것은 맞는지 영 미덥지 못했다. 그래도 해결을 하긴 했다. 잠시 숨을 돌리며 고개를 돌리다 창에 얼굴이 비치며 민주와 민주가 눈이 마주쳤다. 둘은 말없이 서로를 응시했다. 먼저 말을 연 것은 창 밖의 민주였다. 민주가 창 속의 민주에게 말을 걸었다.


어쩌려고 그래? 그냥 이렇게 계속해 나가는 거? 넌 이게 이게 무슨 뜻인 줄 알아? 너 사업하는 거야. 야, 너 김 사장이라고.


창 속의 민주가 말했다.


네가 뭘 하고 있는 건지 알고나 하는 거지? 넌 이제 어제처럼 세상을 볼 수 없다는 뜻이야. 네가 제 발로  다른 세상으로 들어선 거야.


창 밖의 민주는 웃었다. 창 속의 민주도 따라 웃었다.  대박, 김 사장이래. 민주는 다른 말은 들리지도 않고 그저 사장이라는 말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사장이라는 말속에 담긴 무수한 의미들이 민주에게 닿기엔 아직까지 그녀가 경험한 일들은 너무나 미약하고 미비했다. 불과 몇 달 전까지 남편 월급으로 살던 민주가 어이가 없어 웃었다. 생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예측불허였다. 창 속의 민주는 창 밖의 민주가 당장 내일 어떤 선택을 할지 쥐똥만큼도 가늠할 수 없다며 ‘쟤를 어쩌냐’ 싶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선택들이 줄줄이 끌고 올 모험들을 ‘네가 감히 감당할 수 있겠느냐’ 물었지만 창 밖의 민주에겐 들리지 않는 듯했다.


그날로부터 2년이 흘렀다. 170만 원의 인쇄비는 모두 환수했다. 600권의 책은 아직 다 팔지 못했다. 예전에 입고했던 책방에서 간혈적으로 재입고 문의가 들어오고 POD 출판 방식 판매로 등록시켜둔 서점 온라인 몰에선 여전히 책이 팔리고 있다. 매달 몇만 원 남짓의 수익이 난다. 하루에 평균 200권의 책이 새로 출간된다는 한국에서 2년이 지나도 사람들이 찾는 책을 자가 출판으로 만들어냈으니 민주는 자신의 책에 품은 믿음을 증명했다.


사업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믿음을 수익이라는 결과로 증명해 나가는 일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이 믿는 가치가 세상에 인정받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는 사람들이 지불하는 돈이었다. 그 사이 민주는 식품 수입판매업으로 하나의 사업자를 더 냈다. 사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앞으로 민주가 헤쳐나가게 될 스펙터클한 식품 수입사업의 프롤로그다. 이 여정의 문을 여는 마스터 키가 범용 공인 인증서였음을 민주는 2년이 지난 후에야 깨달았다.


2022년  1월, 민주는 도서 사업자와 식품 수입 사업자 두 건의 세금 신고를 마쳤다. 도서는 면세 사업자이기에 사업장 현황 신고를 해야 하고 식품 수입은 일반 과세 대상이기 때문에 부가세 신고를 해야 한다. 그리고 어제 첫 자신이 수입하는 식품의 대량주문 건을 한국으로 발송했다. 거래비용은 1천7백만 원. (순수익 아님 주의) 1천만 원이 넘는 돈에 민주의 손이 벌벌 떨렸다. 떨리는 손이 민망하게 한국의 통관업체에서 하는 말에 헛웃음이 났다.


대표님, 거래비용도 많지 않으시니…


대체 돈은 얼마가 되어야 많은 돈인 건가. 민주는 올해 불혹이 되었는데 얼마나 돈이라는 것의 크기를 모르고 살았던 것인가…


170만 원의 수업료를 냈던 생애 첫 자체 생산 상품 판매의 경험은 이후 유튜브 채널 운영부터 본격적인 수입업자의 길로 들어선 후에도 적용되어 매 단계마다 위기를 넘기는 열쇠가 되었다. 170만 원 앞에 손이 떨리던 시간에서 2년이 지났다. 이젠 170만 원 지출엔 두려움은 없다.


민주가 거래하는 금액이 커지면 민주가 벌 수 있는 수익도 커지는 것은 자본주의의 당연한 이치였다. 하지만 그만큼 감당해야 하는 무게가 몇 배나 커졌다. 리스크는 수익률에 비례했다. 덜컥 무서움이 몰려왔다. 돈을 벌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했을 때와 정말 돈을 버는 시장에 뛰어든 뒤 느끼는 감각은 전혀 달랐다. 그리고 더 본격적으로 뛰어들 경계에 도달했고 그 선을 넘어야만 하는 시점이 되니 지금껏 느껴본 적 없는 류의 두려움이 온몸을 감쌌다. 이 길에 들어선 것은 분명 민주의 선택의 결과였지만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와 있었다’라는 것도 결코 틀린 말은 아니었다. 민주는 단지 돈을 벌어야만 했다.


불현듯 BTS의 슈가의 말이 떠올랐다:


생각하지도 상상하지도 못했던 것을 이루는 것은 기쁘고 즐겁기보다 두렵습니다.


민주는 친구 장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장미는 사회적으로 누구나 인정하는 안정된 직장에서 퇴사하고 자신의 일을 준비 중이다. 그녀 역시 두 아이의 엄마다. 민주는 사업을 시작하고부터 줄곳 외로웠다. 그녀의 최애 대화 상대는 그녀의 아들 이안이었지만 사업 이야기만큼은 함께 나누는데 한계가 있었다. 그녀가 살고 있는 터전에선 사업을 하는 엄마를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분명 사업을 하는 엄마들도 있을 터인데 관종인 민주처럼 드러내는 사람은 좀처럼 보기 힘들었다.


민주는 온종일 사업 생각이었다. 돈을 더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운송, 세관, 검역, 배송, 세금과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했다. 육아와 즐겨보던 드라마는 그녀의 관심에서 멀어진 지 오래였다. 당장 코 앞에 닥친 일들을 해결해나가기 급급했다. 그래서 자신과 비슷한 시기에 사업을 준비하고 성장시켜나가고 있는 장미는 끈끈한 동지로 느껴졌다. 민주의 말을 조용히 듣던 장미가 말했다.


“그래서 돈의 그릇이 필요한 거야. 감당할 그릇. 내가 듣는 강의가 월 천만 원 순수익 내기인데, 그 마지막 강의의 마지막이 월 천만 원 달성 후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느냐, 그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의 내용이야. “


“수익도 아니고 거래 비용만 천 단위가 되니 이렇게 무서운데, 그런 걸 어떻게 미리 공부할 수 있는 거야? 그게 가능해?”


“이미 부자가 된 사람들이 다 책에 적어놨어. 검색해봐. 부자의 그릇이라는 책이 있어. 그거 읽어 봐.

근데 나는 강의로 배운걸 넌 몸빵으로 깨닫는 거구나. 이제 넌 그릇을 키울 단계까지 온 거야. 대단하다. 그 단계까지 가다니, 나도 분발할게.”


민주는 장미와의 통화를 끊자마자 부자의 그릇이라는 책을 검색했다. 책은 다행히 밀리의 서재라는 앱에 등록되어 있었다. 민주는 바로 밀리의 서재 월 정액권을 결제했다. 잊지 말자. 민주는 추진력 하나는 끝내준다. 그리고 그날 책을 다 읽었다.


사업 실패로 빚만 남은 주인공 앞에 낯선 노인이 나타나 돈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간은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돈을 가지고 있으면 반드시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는 거지.
사람에게는 각자 자신이 다룰 수 있는 돈의 크기가 있거든. 다시 말해, 그 돈의 크기를 초과하는 돈이 들어오면 마치 한 푼도 없을 때처럼 여유가 없어지고 정상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게 되는 거지.
돈을 다루는 능력은 많이 다루는 경험을 통해서만 키울 수 있어. 이건 결론이야. 처음에는 작게, 그리고 점점 크게. 돈이 만능은 아니지. 하지만 돈을 다루는 방법을 바꾸면, 인생도 바꿀 수 있어.”

_이즈미 마사토, 부자의 그릇


170만 원을 지출했고 딱 그만큼 성장했다. 민주는 자신의 그릇을 키워나가기 시작했지만 1,700만 원만큼의 크기를 채우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나 민주는 굳게 믿었다.


분명 언젠가 1700만 원 앞에서도 대범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담은 그릇이 자신의 것이 될 것이라는 것을.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그래서 민주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어르고 달랠 수밖에 없었다.


아씨.. 정말.. 심장아 그만 좀 뛰어라.
손가락아 제발 좀 떨지 마라.
동그라미 여섯 개 맞다고 고마 세라고!!



다음 편에 계속…



*주의 :  글에 등장하는 민주네 가족의 제외한 등장인물들은 실존하는 인물들이지만 가명입니다. 내용은 사실이지만 작가의  기억에 의해 과장되거나 조작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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