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마 김작가 Mar 04. 2022

4. 판다는 행위에 대한 불편함

3단계 : 상품 소싱의 시행착오


판다는 행위에 대한 불편함


interest라는 영어 단어는 관심, 재미라는 뜻도 있지만 이익, 이자라는 뜻도 있어. 우리가 이익을, 이자를 내려면 애초에 관심 있는 것, 흥미 있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해. interest가 출발이지. 그게 모든 일의 순서고 이치라네.

- 김지수,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이탈리아 락다운이 해제된 어느 날, 민주는 로마의 아웃렛을 방문했다. 한국의 지인의 부탁으로 한 명품 매장에 가격을 문의하기 위함이었다.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이던 아울렛의 한적함이 낯설었다. 도착한 명품 매장은 세일 중이었다. 기존의 가격에 70%의 세일이 적용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가격에 30%가 세일이 더해져 있었다. 심지어 매장에서 한국으로 바로 발송이 가능했다. 지인에게 이 정보를 알리고 지인의 지인들까지 주문을 받으면서 구매대행 수수료를 벌게 되었다. 민주는 당시 로마에서 운전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다행히 집에서 아웃렛까지의 루트는 지극히 단순해 혼자서 운전으로 다녀오기에 어렵지 않았다. 아울렛의 한적함은 주차에 대한 두려움을 상쇄시켜주기에 충분했다. 그렇다고 주차가 수월했다는 뜻은 아니다. 민주의 운전 실력으로는 널~널~한 주차장에서 조차 몇 번의 후진과 직진을 반복하고서야 흰 선 안으로 차를 안착시킬 수 있었다.


그렇게 민주는 코로나 덕분에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는 아이 둘과 코로나 때문에 일을 하지 않게 된 남편을 뒤로하고 한건이라도 주문이 들어오면 아웃렛을 향해 시동을 걸었다. 아울렛까지의 기름값과 구매대행 수수료 사이에서의 손익을 따지기엔, 다시 한번 말하지만, 민주는 무지했다. 상품 사진을 찍어 구매자에게 보내주고 옷은 직접 입어 보여주며 일일이 문의에 답하고 가방 하나를 주문받기까지 하루 종일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고객들 모두 매의 눈을 장착하고 있어 사진 속 거울에 비친 흐릿하다 못해 초점 밖의 가방까지 찾아냈다. 발송을 마치고 나면 조막만 한 맥도널드 치즈버거 하나조차 들어가지 않을 만큼 기진맥진했다. 혀에 단 한 방울의 물기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런데 물건을 팔면서 내 몫의 수수료를 받으면서도 이내 부채감이 몰려왔다. 무언가를 판다는 것에서 오는 거부감이었다. 엄마가 되기 전, 민주는 로마의 가이드를 일을 하면서 손님을 위해 열정적으로 지식만 이야기해야 한다고 믿으며 살았다. 쇼핑과 옵션을 꺼내는 것을 터부시 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래서일까? 무엇이든 어떤 이유이든 사게끔 만든다는 행위에 부정적인 감정이 민주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장착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비단 민주만이 아니었다. 당장의 먹고사는 문제로 인해 아침 일찍 아울렛으로 향하는 아내를 굳이 말리지는 않았지만 남편, 재선의 반응은 탐탁지 않았다. 혹여 주변에 물건을 살 사람이 있을지 물어보란 민주의 말에 재선은 꼭 그런 것을 해야만 하나?라는 뉘앙스를 풍겼다. 한 푼이 아쉬운 때에 그의 반응이 못내 서운했다. 왜냐면 민주 역시 지인들에게 직접 찍은 제품들의 사진들을 보내고 관심 있으면 연락 달라는 메시지를 남기면서  뻣뻣하게 부대끼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누가 말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네가 억척스러워 보인다’는 말이 자꾸만 떠올랐다. 민주가 안쓰러워했을 그 말을 듣기 전에 이미 민주 스스로 자신이 억척스러워 보일까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내몰려 이렇게 된 것이라는 자격지심 때문이었다. 재선이 민주와 똑같이 고군분투했어도 사람들은 억척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까? 민주는 설움이 몰려왔다. 그래서 더더욱 대견하다는 응원을 재선에게서 받고 싶었다. 모두가 자신을 그리 보아도 재선만 대단하게 보아준다면 민주는 세상에서 가장 당당한 장사꾼이 될 수 있었다.


친구 장미와 이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민주의 이야기를 다 듣고 장미가 말했다.


“민주야, 그 매장은 지금 코로나 때문에 손님이 없는데 네가 판매를 만들어 준 거고, 구입하는 고객은 한국에서 구할 수 없는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을 하는 거고, 넌 그로 인해 수익을 얻는데, 이건 파는 사람 사는 사람 소개하는 사람 셋 다 좋은 일인데 왜 너와 오빠만 그것에 대해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돈을 버는 방법 중에 최고의 예술은 장사 아니야? 아니, 돈을 버는 일이 기본적으로 무언가를 파는 것 아니야? 심지어 좋은 물건을 좋은 가격에 소개하는 것인데 더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해도 돼.”


불편함이 녹아내렸다. 가이드를 할 때도 결국 투어라는 상품을 팔았다. 그 상품을 사랑했고 자신 있었기에 즐겁게 홍보했다. 자신이 사랑하는 제품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일, 그로 인해 구입한 사람도 판매한 사람도 행복해지는 일. 이것이 장사인데 왜 이것을 불편하게 느꼈던 것일까?


민주는 생각에 잠겼다. 수요가 있어 명품 구매대행을 했지만, 이는 민주가 잘 알고 정말 좋아하는 분야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내가 잘 알고 나만이 팔 수 있고 이것을 알리고 전해주는 것에 전율이 느껴지는 상품을 팔면 어떨까? 그렇다면 신명 나게 장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생계 때문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고 싶어서 도전한 것으로 이야기의 시작을 새롭게 쓰면 되지 않는가? 코로나 때문이 아니라 코로나 덕분에 신나는 일을 찾았다고 멋들어지게 의미부여를 하면 되는 일이다. 그렇다면 그 상품은 무엇일까? 모르겠다. 상관없다. 찾으면 된다. 민주는 비로소 제대로 된 질문을 찾았다. 가슴이 찌릿찌릿했다.


그날 아침, 민주는 재선에게 책을 하나 내밀었다. 그리고 귀퉁이를 접어 놓은 페이지를 펼쳤다. 읽어 봐. 한마디 남기고 차 키를 챙겨 집을 나섰다. 간밤에 구입 문의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웅이는 밖에 잘 나가지 않게 되었다. 밥도 제대로 안 먹고 집 안에서 크게 움직이지도 않았다. 사람을 좌절시키는 건 고생 자체가 아니라 무의미일지도 몰랐다. 알아주지 않는 고생과 보상 없는 노동이 그를 더 이상 힘낼 수 없게 만든 것 같았다. 하루는 나랑 찬이가 벽난로 앞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웅이에게 말했다.

아빠 치킨 먹고 싶어.
웅이는 알았다고 했다. 우리는 텔레비전을 보며 치킨이 오기를 기다렸다. 얼마 후 웅이는 우리에게 와서 말했다.
얘들아. 지금은 아빠가 돈이 없거든. 오늘은 어려울 것 같다.
우리는 알았다고 했다.

그 시간에 복희는 쓰리잡을 뛰고 있었다. 웅이의 몸과 마음이 왜 아픈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자신을 덜 지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웅이가 못 일어나는 동안에도 열심히 일했다. 복희는 자기가 웅이보다 힘들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있었고 삶이 이어지고 있었고 아이들이 자라고 있었고 내야 할 돈이 끊임없이 생겨났고 냉장고에 채워 넣어야 할 재료들이 끝이 없었고 갚아야 할 대출금도 태산 같았다. 과거는 더 과거가 되어갔고 현재도 과거가 되어갔고 미래 역시도 계속해서 과거가 되었다. 그녀의 몸과 마음에도 한계가 있었고 아무리 열심히 일한 대도 4인 가족이 먹고살기엔 역부족이었다.
여느 때처럼 세 개의 일터에서 일을 마치고 자정 넘어서 돌아온 어느 날 밤. 복희는 누워 있는 웅이를 보았다. 아마 오랫동안 누워 있었을 것이다. 복희는 부엌에서 혼자 소주를 마셨다. 그리고 누워있는 웅이에게 가서 말했다.

당신 이제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 거야?
웅이는 아니라고, 사랑한다고 했다.
복희는 자기 가슴을 치며 말했다.
당신이 우리를 진짜 사랑한다면 뜨거워서 누워 있을 수가 없어. 여기가 막 뜨거워서 누워 있을 수가 없어.

쓰리잡을 뛰고 온 사람이 그렇게 말하는 걸 웅이는 듣고만 있었다.
복희는 웅이에게 말했다.
인생에 지름길 같은 건 없어.

_이슬아, 일간 이슬아 수필집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은 민주에게 운전은 공포의 대상이다. 그녀는 이번 생에선 절대 극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운전대를 잡은 그녀는 비장했다. 재선에게 펼친 책의 한 페이지는 선전포고였다. 앞으로 돈을 버는 삶을 살겠다는. 어떤 이유이든 가슴이 뜨거워서 나는 누워있지 않겠다고. 민주는 이상주의자가 아니다. 민주는 지극히 현실주의자다. 그래서 지극히 현실적으로 지금 당장 꿔야만 하는 꿈을 꾸기로 했다. 그 선전포고가 재선을 향한 것인지 세상을 향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민주는 저릿한 가슴을 부여잡고 차선을 변경했다. 가던 길을 벗어나는 것은 언제쯤 익숙해질까? 왼쪽으로 차선을 변경하며 민주는 생각했다. 방금 전까지 달리던 차선과 다른 차선 위에서 민주는 액셀을 밟아 속력을 올렸다. 심장이 강하게 뛰기 시작했다. 차선 변경의 두려움이 아직 남아서였을까? 아니면 무사히 차선을 변경함에서 온 환희였을까?


민주는 앞으로  얼마나 더 차선을 변경해야 할지 종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자신이 무언가를 알리고 파는 일에 희열을 느낀다는 것을. 민주는 장사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이를 인정하자 당장 버티기 위해 장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판을 벌여보고 싶다는 욕구가 목구멍까지 차 올랐다.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장사지만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까짓 거 본격적으로 장사꾼이 되어보지 뭐.


장사꾼이 되고 싶어 장사를 시작하는 민주를 보고 아무도 억척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을 것이다. 또라이라는 단어가 떠오를 순 있어도. 그건 민주의 영역 밖이다. 그래, 민주는 장사꾼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어디에서 무엇을 가지고 장사를 시작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 과정을 감당할 수 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분명 세상 어딘가에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건 연금술사의 금은보화처럼 그 길을 떠난 사람에게만 발견될 것이다.



다음 편에 계속…


*주의 : 이 글에 등장하는 민주네 가족의 제외한 등장인물들은 실존하는 인물들이지만 가명입니다. 내용은 사실이지만 작가의  기억에 의해 과장되거나 조작될 수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3. 돈의 그릇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