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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마 김작가 Nov 14. 2022

이탈리아의 친절이라는 재능

세상은 불편하고 우리는 친절합니다.


popopo 매거진 7호 : DIVERSITY


아직 조명되지 않은 누군가의 잠재력과 서사를 발굴하고 함께 연대해 나가는 여정을 지면으로 기록해 나가는 독립잡지 POPOPO 매거진의 한 지면에 '다양성의 존중'이라는 주제로 기록하였습니다. 아름다운 기회를 주신 POPOPO 매거진 감사합니다. 삶의 다양성을 바라보는 친절, 존중, 관용, 이해의 키워드로 채워진 이번 포포포 매거진 7호는 아래 링크를 통해 구입 가능합니다.


http://aladin.kr/p/aQDpZ




그리고 지면 관계상 살리지 못한 내용이 추가된 원고를 기록합니다.


세상은 불편하고 우리는 친절합니다
: 친절이라는 재능


이탈리아 내의 코로나 상황이 악화되면서 2020년 가을, 전국적으로 휴교령이 내렸습니다. 수업은 전면 비대면으로 대체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연유인지 유치원을 다니는 지인의 아이가 등원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이의 반에는 장애를 가진 친구가 있었습니다. 비록 유치원은 문을 닫았지만 그 한 명의 아이를 위한 반이 따로 오픈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체 16명의 같은 반의 아이들이 4 그룹으로 나누어 일주일에 하루 혹은 이틀을 등원이 가능하게 했던 것입니다. 가정 보육을 해야 하는 부모도 집에서 머물러야 하는 아이들 모두 힘겹지만 상대적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가진 아이와 부모를 위한 개방이었습니다. 어차피 반을 열었으니 실내에서 모일 수 있는 최소의 수의 아이들이 돌아가며 등교를 하도록 한 결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인이 들려준 학교 측에서 설명한 반 친구들의 등교 이유를 듣고 순간 멍해졌습니다.


홀로 반에 있을 친구가 슬프기 때문에.


친구가 없는 학교는 누구에게나 외롭기 때문이었습니다.


한 번은 아이의 반 친구와 그 엄마와 함께한 하굣길에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쥐어주기로 했습니다. 친구의 엄마가 사기로 했고 생각이 없다는 나의 말에 그녀는 아이스크림 세 개를 계산했습니다. 당연히 그 엄마의 몫인 줄 알았던 하나를 그녀는 길에 주저앉아 있던 할머니에게 건넸습니다.  "시원한 걸 사드리고 싶었는데 막상 그러려면 보이질 않아서... 마침 오늘 앉아 계시네." 아이들 등하굣길에 종종 마주치던 할머니였습니다. 한여름에도 몇 겹씩 옷을 껴입고 폐지를 잔뜩 끌고 다니는 그녀에게선 멀리서도 지린내가 났습니다. 저에겐 그 몰골만이 보였는데 그 엄마는 ‘이 더운 날 저렇게 두꺼운 옷을 입고 있으니 얼마나 더울까?’라는 불편이 보였나 봅니다. 민소매 티에 반바지를 입고 걸어도 땀이 줄줄 흐르던 날이었습니다. 누구에게나 견디기 힘든 아주 뜨거운 여름날이었습니다.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 브래디 미카코 저 | 다다서재


브래디 미카코의 책,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부재 : 차별과 다양성 사이의 아이들)에서 중학생 아들의 시험문제에 대한 에피소드가 나옵니다. 시험문제는 Empathy(엠퍼시 : 공감) 란 무엇인가? 아들은 '스스로 남의 신발을 신어보는 것' 이라고 답을 적습니다. 영화나 소설에서 종종 타인의 입장이 되어보는 설정으로 몸이 바뀌는 판타지가 구현되곤 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몸을 바꾸기는커녕 신발을 바꿔 신어보는 것조차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런데 이탈리아에서 이방인으로 두 아이를 키우며 저는 자주 우리의 신발을 선뜻 신어주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길에서 아이가 막무가내로 떼를 쓰며 울 때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거리의 사람들이 멈춥니다. 그리고 물어옵니다. 괜찮아요? 도와줄까요?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 주머니를 뒤지고 사탕 하나를 아이에게 건넵니다. 더위를 피해 앉은 카페에서 아이들 때문에 혼을 쏙 빼고 있는 저에게 잠깐 숨을 돌릴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는 이들은 카페에서 일하는 바리스타들입니다. 아이들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기 시작합니다.  ‘방학했어? 휴가 계획은 뭐야?’ 대화만 듣고 있자면 아이와 어른의 대화가 아닌 여느 단골손님과의 대화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리고 선반에서 마시멜로가 담긴 병을 꺼냅니다. 아이는 마치 자신만을 위해 준비해준 선물을 받는 양 눈을 반짝입니다. 다른 테이블의 아기가 기분이 좋은지 소리를 지릅니다. 그 옆 테이블에 앉은 할머니가 말합니다.

“그래, 그래, 네가 부르고 싶은 노래는 다 불러. 그럼, 그럼, 네가 하는 말은 다 옳아,”

할머니는 포장한 빵을 받아 힘겹게 일어나 문을 나섭니다. 그런 그녀를 위해 중년의 아저씨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문을 잡아줍니다.


아이들을 향해 웃어주는 사람들


우는 아이를 달래주는 마음. 당황한 엄마의 숨을 고르게 하는 마음. 아이에게 사탕을 건네는 마음. 유모차를 끌다 계단 앞에 선 엄마가 자꾸만 신경 쓰이는 마음. 아이 앞에선 무릎을 꿇고 눈을 마주치는 마음.


그 마음들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그건 매일 어린이를 만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한 번씩 휴가를 보낼 때 보통 한 달씩 머뭅니다. 그렇게 한 달을 머물면서 한 공간에서 장애우와 유아 차와 노인과 청년을 한자리에서 마주친 적이 있었나 떠올리면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대중교통을 타고 종일 다녀도 아이와 함께 있는 부모와 한 번도 마주치지 못한 날도 있었습니다.


그럼 대체 서로를 공감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어디에서 만들 수 있는 건가요?


로마의 길은 수년간의 재정 적자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인도는 울퉁불퉁하고 지하철에 연결된 엘리베이터는 고장이 대부분입니다. 관공서는 일처리가 느려서 기다림은 일상이지요. 로마 중심지만 가면 거리는 인파로 북적이고 버스는 만석일 때가 대부분이고요. 현지 조건만 생각하면 유아 차를 끄는 일,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일이 한국보다 훨씬 불편해야 하는 것이 분명한데 거리를 걸을 때면 어디에나 아이들을 만나고 노인들을 만나고 휠체어를 만나고 유아 차를 만납니다. 이들이 겪는 불편함을 채우는 것은 사람입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일상에서 매 순간 이들의 불편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디에서나 불편을 겪는 이들을 마주치기 때문입니다.


작년 한국 휴가 중에 방문했던 백화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주말이라 가족 단위의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습니다. 백화점의 중앙에는 큰 야외 공간이 있었는데 그 한쪽에 모여있는 아이들을 발견했습니다. 그 가운데 누군가 비눗방울을 불고 있었습니다. 저는 당연히 어떤 부모가 불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 보니 젊은 커플이었습니다. 어떻게 비눗방울을 가지고 올 생각을 했냐고 물으니 근처에 살아서 주말이면 자주 이곳에 방문하는데 하루는 비눗방울을 가지고 와서 불었더니 아이들이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부터 외출 때마다 비눗방울을 챙긴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은 비눗방울만으로 즐거웠고 부모들은 숨을 돌렸습니다. 그 순간을 아이들은 금방 잊겠지만 그 공간에서 환대를 받은 기분을 충분히 느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이 쌓인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된다면 분명 아이들에게 비눗방울을 불어주는 어른으로 자랄 것이라고 믿습니다.


비눗방울이라는 친절


지난봄 지인들 함께 로마 외곽의 한 가톨릭 성지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해 수사님께 성지에 대한 설명을 듣는데 아이들을 챙기느라 부모들은 자리를 지키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때 아들, 이안이가 휴게소에서 산 비눗방울을 꺼냈습니다. 작은 광장에서 이안이가 비눗방울을 불었고 아이들이 까르르 웃으며 신이 났습니다. 그 순간 부모들은 설명에 귀 기울이며 시원한 산바람을 맡으며 비로소 고즈넉한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비눗방울을 부는 아들을 보며 작년 휴가 때 한국의 백화점에서 만났던 커플이 떠올랐습니다. 아이가 그 커플에게서 친절함을 묻혀왔나 봅니다. 우리가 타인의 불편을 완전히 해결할 수도 온전히 그 입장이 되어줄 수는 없겠지만 잠시 큰 숨을 쉴 수 있는 찰나의 시간을 만들어 줄 수는 있습니다. 그 하나만으로 유아 차를 끌고 집 밖으로 나설 용기를 내고 몇 걸음도 안 되는 거리에서 수십 번도 멈추어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의 손을 잡고 길을 걸을 용기를 냅니다. 계단이 두려워 외출을 망설일 때 반드시 손 내밀어주는 이가 있다는 믿음으로 용기를 채웁니다.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는 친절


하루는 이안에게 물었습니다.

 너의 재능이 뭐니?


이안이가 대답했습니다.

나의 재능은 친절이야.


친구들에게서 배웠어. 친구들이 내가 혼자 놀고 있을 때 같이 놀자고 했는데 그 친절이 좋아서 나도 그때부터 친절해졌어. 그리고 친구들에게 배운 재능이 또 있어. 어떤 상황에서도 말을 하는 거야. 낯선 사람이랑 말을 하는 게 어려웠는데 친구들이 말을 걸어 주니까 좋았어. 그때부터 어떤 상황에서도 말을 하게 된 거야."


 전 한 번도 친절이 재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이안이는 친절을 친구에게서 배웠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어려울 때 자신을 도와주고 말을 걸어준 친구에게서 배웠다고 했습니다.


이탈리아 말을 잃어버려서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울던 3살의 이안 이를 떠올렸습니다. 여기는 (이탈리아는) 내 나라인데 왜 내 말을 (한국말을) 쓰지 않냐고 묻던 4살의 이안이 와 왜 자신의 얼굴은 분홍색이 아니냐고 묻던 5살의 이안이도 떠올랐습니다. 이안이는 그 시간을 친구들의 친절과 함께 통과했나봅니다.


사람은 누구나 친절이라는
재능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 재능을 깨닫고 발휘하기 위해서
서로의 불편함을 가까이에서 마주하는 일상이 필요합니다.

저는 이방인으로 유년시절을 보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온전히 아이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특히 학교 안의 생활은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고민이 생기거나 제가 공감하기에 어려움이 생기면 아이 또래의 아이들이 주인공인 이탈리아 책을 찾아 읽었습니다. 그 중 몇번을 반복해 읽은 책이 안토니오 페라라의 [마음의 권리]입니다. 유엔 아동권리 협약 (총 54조 항0 중 20조 항을 각각의 에피소드로 풀어나갑니다. 주인공은 초등학교 2학년 레오입니다. 그 에피소드입니다. ( 한국어 번역본이 없어 직접 번역하였기에 다소 매끄럽지 못합니다.)


Antonio Ferrara [Diritti al coure] LA RANE, 2016


30조 : 소수민족 혹은 원주민 아동의 문화(언어, 종교 등)에 대한 권리

학교에서 선생님은 동사의 시제 대해 설명해주셨다. 그때 반 친구인 루치아가 너무 어렵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생각해봐. 다른 나라에서 온 아이들은 얼마나 더 힘들까?” 하셨다.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가정법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셨다. 나에겐 그 어떤 것보다도 어려웠다. 최선을 다한 아침이었다.

드디어 종이 울리고 우린 급식을 먹으러 갔다. 오늘은 샤프란 리소토가 준비되어있다. 죄다 노란색이었다. 나는 물론 반 친구들 모두가 정말 좋아하는 리소토다. 그리고 시금치와 프로슈토 꼬또 (돼지고기 훈제 햄)가 나왔다. 아민은 시금치는 괜찮지만 프로슈토는 원하지 않았다. 나와 가까이 앉아있었는데 프로슈토를 보더니 난감한 얼굴을 하고서 고개를 저었다.

 “아민, 왜 그래? 어리광 부리지 마.”
새로 온 영양사 선생님인 마르찌아가 말했다.
“파르마에서 온 프로슈토야 얼마나 맛있는데!” (파르마의 프로슈토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하다.)
 그러나 아민은 계속 고개를 저으며 팔짱을 끼고 의자에 앉은 채 테이블에서 멀찍이 떨어졌다.
 “아민, 알겠지만 접시에 담긴 음식은 다 먹어야 하는 게 규칙이야”
영양사 선생님은 계속해서 말했다.
“보세요!! 아민은 무슬림이라고요! 프로슈토는 안 먹는다구요!”
지노가 말했다.
“맞아요!! 무슬림이에요!”
그라지엘라가 말했다.
“맞아요!!”
내가 말했다.
 “어머! 몰랐어! 얘들아 알려줘서 고마워. 정말 미안하다. 아민!”
“괜찮아요. 마르찌아. 이제 막 왔는데 어떻게 알 수 있었겠어요?”
선생님이 말했다.
“이제 알았으니 다음부터는 조심할게.”
그리고 마르찌아는 아민을 바라보며 큰 미소와 함께 물었다.

“닭고기는 괜찮니? 아민? 줄까?”
아민 역시 미소를 지으며 고맙다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테이블을 가까이 끌어당겼다.

Antonio Ferrara [Diritti al coure] LA RANE, 2016


아민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지 못할 때 친구들이 힘을 모읍니다. 아들, 이안이의 표현을 빌자면 이것은 친구들의친절입니다. 다시 비슷한 일이 발생하면 아민은 스스로의 목소리로 말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 친절을 전할 것입니다. 또한 돼지고기를 권유한 선생님의 무지에 의한 불편이 친절로 바뀔 수 있음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 가족은 이탈리아에서 소수의 그룹에 속해 다양성의 역할 중 한 부분을 차지하며 살아갑니다. 그

일상에는 언제나 기쁨과 슬픔이 공존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지난 시간 동안 슬픔보다 기쁨이 더 크게

차지했습니다. 그건 우리의 불편을 읽어준 친절 때문이었습니다.


우린 매일 확인합니다.


세상은 누구나에게나 불편하구나.


그리고 매일 깨닫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불편 덕분에
친절이라는 재능을 쌓아가고 있구나.




written by iand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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