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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마 김작가 Mar 20. 2023

9. 이탈리아 시장을 뚫는 모험 1

1편 : 상상은 어디까지 닿을 수 있을까? (상)

민주가 원고 기고 제안을 받은 것은 2022년 6월이었다. 인스타그램으로 인연을 맺은 포포포 매거진 대표 유미의 제안이었다. 이탈리아의 일상을 녹인 다양성을 주제로 한 글을 의뢰했다. 당시 민주는 글이 안 써졌다. 아니, 더 솔직하게 글이 비효율적으로 느껴졌다. 즉각 댓글이나 좋아요의 피드백을 받는 인스타그램, 효용면에서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더 현명해 보이는 유튜브. 그러나 글은 상대적으로 가장 많은 생각을 시간과 품을 요구했다. 게다가 피드백은 적고 무엇보다 눈에 보이는 결과물로 전환되는 힘이 너무 약해 보였다.


점점 민주는 글에서 멀어졌다. 민주가 주로 쓰던 글은 일상에서 접하는 사소한 일에서 확장되는 사고에 관한 내용이었다. 우연히 접한 일상 중 한 장면, 무심코 지나칠 뻔한 아이의 말, 평범했던 대화 등 무엇이든 민주의 글감이 되었고 애쓰지 않아도 머릿속에서 생각이 뻗어 나아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생각이 피어오르지 못하고 이내 사그라졌다. 처음엔 휴대폰 중독으로 인한 집중력 저하 때문이지 했다. 하지만 민주는 진짜 이유를 알고 있었다. 민주 스스로 글로 쓴 자신의 이야기를 무용하게 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친절을, 배려를, 차별을, 위로를, 슬픔을, 행복을, 그리고 설렘을 기록하는 것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점점 민주의 일상은 스쳐갔고 순간들은 더 이상 깊게 오래 담지 않게 되었다. 생각은 얕아졌고 집중은 귀찮았다.


그러던 중 유미의 제안이 도착한 것이다.


기고 의뢰 메일

오랜만에 민주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길을 걸으며 진득하게 자리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곱씹으며 생각을 펼쳐나갔다. 잊고 있던 희열이 다시 피어올랐다. 민주는 글을 쓰는 순간을 좋아했다. 그리고 글 속에서 다시 기록의 가치를 발견했다.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는다 해도 이런 순간들을 기록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편한 세상 속에서 우리가 받았던 응원과 위로 그로 인해 커 나갔던 친절이라는 재능에 대해 쓰는 시간이 무척 기뻤다. 아이들에게 웃어주던 단골 바의 아저씨와 민주의 가족에게 소중한 경험을 선사했던 작은 어린이 책방, 우는 아이에게 자세를 낮추고 달콤한 사탕을 쥐어주던 누군가를 민주가 아니면 누가 기록할 수 있을까? 지난 시간 속 민주가 기록했던 글들을 다시 읽어보았다. 확신이 들었다.


계속 써 나가야 한다고.

포포포 매거진 7호 기고글 중에서


민주는 자신에게 그 마음을 되찾아 준 유미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유미는 엄마의 잠재력을 응원하는 독립 매거진 포포포를 1년에 두 번 발행한다. 매거진 속에 담긴 고군분투의 그녀들을 그 이야기를 담기 위한 유미의 고군분투를 더 널리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 매거진을 이곳 이탈리아에도 닿게 하겠다고 지키지도 못할 희망을 다짐했다. 확신을 담아 말했지만 진실은 우선 말을 던지고 보자는 책임지지 못할 생각만 앞선 마음이었다. 수습 못할 그 말을 내뱉는 순간, 민주는 자신이 뭐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것 같았다. 그 착각이 좋았다. 그 말을 듣는 유미의 눈물 맺힌 듯 반짝이는 눈빛을 보는 것이 좋았다.


포포포 매거진 7호




지금부터의 기록은 그 수습 못할 희망이 우연의 우연으로 우연을 우연하게 만들어나가는 이야기다.  


우연을 하나라도 놓치면 절대 완성될 수 없으니 잘 따라오길 바란다.


민주가 기고했던 잡지가 인쇄되어 세상에 나왔다. 유미는 이 멀리 이탈리아까지 책을 보내주겠노라 했다. 며칠이 지나 책이 도착했다. 한 두권 보낼 줄 알았는데 박스가 무리하게 컸다. 아니 몇 권 포장에 이렇게 큰 박스..... 어.....? 들 수가 없다. 민주는 그제야 깨달았다. 박스 안이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유미는 큰 박스를 가득 채워서 책을 보냈다. 이 정도 무게라면 대체 얼마의 택배비를 쓴 걸까? 민주가 내뱉은 뿌리 없는 희망의 말을 얼마만큼 믿아야지 이 무게를 선뜻 보낼 수 있는 걸까? 민주는 기필코 이 책들을 이탈리아 세상에 닿게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며칠 뒤 민주는 동네의 어린이 서점에 방문했다. 로마에 태어난 소녀를 위한 선물 구입을 위해서였다. 소녀의 엄마는 한국인, 아빠는 이탈리아인이었다. 민주는 이탈리아 아빠가 읽어줄  책을 찾고 있었다. 때마침 민주의 눈에 띈 것은 한국그림책작가 이수지가 미국 작가 버나드 와버와 작업한 그림책이었다.


이수지 작가가 작업한 그림책 ( 한국은 [아빠, 나한테 물어봐] 라는 제목으로 출판사 ‘비룡소’ 에서 출간 되었다.) / ottimomassimo 책방에 전달한 popopo 매거진


아빠와 딸의 이야기. 민주가 찾던 책이었다. 그리고 책방 주인이 이수지 작가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고 더불어 한국 출판물에도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기다. 포포포 매거진을 전할 첫 장소를 찾았다. 책방지기 티치아나에게 포포포 매거진을 선물했다. 그녀는 자신들의 책방이 다른 곳에도 지점이 있으니 그곳에도 매거진을 소개하겠노라 답했다. 민주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연결되었다는 기분만으로 벅차올랐다. 책방지기가 매거진을 들고 있는 모습을 찍어 유미에게 사진을 보냈다. 이탈리아 서점이라니 민주와 유미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뻤다. 유미와 민주는 티치나나의 말이 인사치레려니 했다.


그리고 2023년이 되었다. 그 사이 민주의 가족에겐 특별한 일이 있었다. 민주의 가족은 지난 코로나 기간 동안 가족 유튜브 채널을 운영해오고 있다. 조회수와 구독자 모두 세상의 성공이라는 기준에는 못 미치지만 수티와 별개로 민주의 가족이 이뤄낸 성과는 대단했다. 구독자 3000명 때 한국의 유명 TV 프로그램 출연을 제안받았고 그 방송을 계기로 민주 가족을 주인공으로 한 이탈리아 문화를 한국의 어린이들에게 소개하는 학습만화 제작을 제안받았다.



한국의 청소년학습만화 분야해서 탑 급의 출판사였다. 이 일은 민주에게 아주 큰 사고의 전환을 가져가 주었다. 모두가 상위노출 구독자 조회수 등 눈으로 보이는 수치의 달성이 중요하다 말하지만 실제 시장에서는 자신만의 서사와 확실한 지향점이 있다면 반드시 기회를 얻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2022년 12월 첫 책이 출간되었다.

[로마가족의 유럽살이] 출판 제안 메일


지금까지 민주의 가족이 함께 이뤄낸 일 중 가장 큰 규모의 성과였지만 판매실적은 출판사와 민주가 기대했던 바에 미치지 못했다. 모든 책이 그렇겠지만 학습만화는 특히 많은 품이 들었다. 소재를 제공하는 민주가족, 콘티 작가, 스토리 작가, 그림 작가, 기획팀 마케팅 팀까지 마치 대형 기획사에서 아이돌을 만들 듯, 많은 인력과 자본이 들어갔다. 세 번의 출간 경험이 있는 민주는 책이 출간될 때마다 판매량에 대한 압박이 있었지만 이번 만화책의 판매에 대한 압박은 가장 컸다. 민주는 자신이 판매량에 더 큰 파급력을 가지지 못한 것이 출판사에게 미안했다.


수년간 쌓은 민주의 기록들 그리고 민주 가족의 일상의 힘을 믿어준 사람들이었다. 만화책 계약을 하던 날 민주는 사소했던 지난 시간 모두가 반짝이는 것을 느꼈다. 그 시간을 빛나게 해 준 이들에게 힘이 되고 싶었다.


상품에 가격이 붙고 판매를 목적으로 세상에 나온 이상 그 일을 함에 있어 가장 큰 원동력이 되는 것이 수익임은 분명하니까. 조금만 조금만 더 알려지고 사람들이 읽게 된다면 훨훨 날 수 있을 텐데. 대체 어떻게?


그러던 어느 날, 메일이 한 통 도착했다.  

OttimoMassimo 책방 대표 데보라의 메일
이 매거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


몇 개월 전 포포포 매거진을 선물 받은 티치아나가 자신의 동료 데보라에게 진짜 전해준 것이다. 곧장 데보라를 만나러 그녀의 책방으로 향했다. 민주 가족이 가장 좋아하는 한식당 근처 책방. 민주도 몇 번을 방문해서 익숙한 책방이었다. 알고 보니 그녀는 이수지작가의 팬이었다. 민주의 글이 실린 포포포 매거진 7호에는 이수지 작가의 인터뷰가 담겨있었다. 데보라는 이수지 작가를 통해 한국 그림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현재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팬이기도 했다. 민주와 데보라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민주가 글을 쓰게 된 계기, 민주의 아들 이안이 받았던 인종차별, 코로나로 인해 시작된 가족 유튜브 채널과 방송출연 그리고 만화책 출간까지 대화는 이어졌다. 만화책 이야기에서 데보라의 눈이 반짝였다.


“우리가 각 나라별로 그 나라의 아이들을 위해 제작된 로마에 관련된 책을 모으고 있는데 한국 책은 찾지 못했어. 너희 만화가 궁금해.”


데보라와 티치아나

역시! 민주는 이렇게 이야기가 흘러갈 거라고 데보라의 메일을 받고부터 끊임없이 상상했다. 민주의 상상은 언제나 현실이 된다. 이 순간을 예상하고 민주는 로마가족의 유럽살이 만화책을 챙겼다. 오전 등교 준비를 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아이들에게 사인도 받아 두었다. 그녀의 옆으로 더욱 다가가 만화책을 설명했다. 역시, 좋아할 줄 알았어. 그녀의 반짝이는 눈빛을 보며 민주는 확신했다.


“이틀 뒤에 이 만화책을 만든 출판사 사람들이 로마에 와. 다음 주에 볼로냐 아동도서전이 열리잖아. 도서전 참여하기 위해 오는데 볼로냐에 가기 전에 로마에서 나와 서점들을 둘러보기로 했어. 내가 여기도 함께 방문할게.”


어머, 나도 볼로냐에 가.
볼로냐에 오면 내가 이탈리아 출판사 친구에게 소개해줄게.
너희 만화책을 그들에게 보여줘.
이 책은 꼭 이탈리아에서 출간되어야 해.


이건 민주의 상상 밖의 일이다.

민주의 상상은 포포포 매거진과 민주가족의 만화책이 이 서점에 놓여 책방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소개되는 풍경. 거기 까지였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민주는 몰랐다.

훨씬 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해도 괜찮다는 것을.

어쩌면 민주의 상상력의 한계였을지도 모르겠다.

민주는 자신이 아는 세계만큼 상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후 일주일 동안 민주가 만났던 일들은 민주의 상상의 한계를 무너뜨렸다.


민주의 상상은 점점 더 허무맹랑해졌다.

그런데 민주가 만난 현실은 매번 상상보다 훨씬 더 황당무계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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