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SONO ABBASTANZA FELICE, 충분히 행복해”
10살 이안과 6살 이도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난 한국 어린이입니다. 가족과 한국말을 하고 친구들과는 이탈리아말을 합니다. 두 아이의 한국말 표현에는 예상치 못한 특별함이 담겨있습니다. 처음엔 아이가 특별하고, 저의 육아가 특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한국말로 하면 특별하던 그 말들이 이탈리아말로 바뀌면 지극히 평범한 말이 되어버렸습니다.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그 특별함은 이탈리아말이 미묘하게 한국말에 스며들어 나타난 현상이라는 것을. 어떤 말들이었을까요? 저는 앞으로 아이들의 한국말속에 스며든 이탈리아말을 찾아 떠나보려 합니다.
<이탈리안 레시피> 5화
“SONO ABBASTANZA FELICE, 충분히 행복해”
아이가 말을 시작한 3살부터 아이의 말을 기록했다. 기록은 일방적인 아이의 말에서 서서히 우리가 주고받는 대화로 변해갔다. 아이가 한국말을 나누는 상대는 대부분 나와 남편이었다. 그래서 아이의 말은 어른과 아이를 넘나들었다. 아이의 하루는 반은 한국말로 반은 이탈리아말로 이뤄졌다. 그래서 어떤 때는 한국말을 하고 있지만 영혼은 이탈리아 사람이기도 하고 어떤 때는 이탈리아 말을 하지만 한국의 영혼이 담겼다. 또 어떤 때는 이나라도 저나라도 아닌, 아이도 어른도 아닌, 오묘한 경계의 영혼이 생각과 말에 묻어 나왔다.
공기 중에 흩어지는 말은 보이지 않아 다시 붙잡을 수 없기 때문에 형태를 만들어 두어야만 했다. 3년이 지나니 그 말들이 책 한 권이 되고 또 3년이 지나니 또 한 권의 책이 되어서 아이가 10살이 되는 생일날에 [모자문답집]이라는 이름으로 두 권의 책이 세상에 나와 있었다.
지난여름엔 그 두 권의 책으로 한국의 대구와 서울에서 북토크가 있었다. 아이의 나이가 두 자릿수가 되었으니 직접 묻고 답하는 시간을 가질 정도의 기량이 되었다. 대구 북토크 때 있었던 일이다.
행사에 참여한 한 분이 아이에게 질문을 했다. 당시 이안은 한국의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2주간의 일반 초등학교 등교를 경험한 직후였다.
"이안이는 로마에서 살다가 왔잖아요. 이안이가 보기에 대한민국의 대구의 아이들은 어떻게 보이는지.. 놀이터에 아이들이 없잖아요. 보통 학원에 가고, 이안이 눈으로는 한국의 아이들이 어떤지.. 뭔가 목표가 많아 보이진 않은지..."
답을 기다리는 우리는 어떤 대답을 기대했고 어떤 대답을 우려했을까? 로마에서 온 소년의 눈에 한국의 친구들이 불행해 보였을까? 이탈리아와 상대적으로 풍요로운 한국의 환경에 부러웠을까? 드디어 이안이 입을 열었다. 모두가 집중했다.
저에게 한국의 친구들은...
안 그래도 제가 어제 생각해 봤는데요.
좀 불쌍하게 보여요.
왜냐하면 이탈리아에선 보통 오징어 튀김을 레몬즙을 뿌려서 먹는데
한국에서는 레몬즙 뿌려서 맛도 못 보고
떡볶이 소스를 뿌려 먹는다는 게
좀 불쌍하게 보여요.
어처구니가 없다는 건 여기에 쓰는 말이겠지. 오징어 튀김 따위가 뭐라고 레몬즙이 뭘 그렇게까지 대단하다고 이까짓 걸로 불쌍하다는 거야. 행사 장의 모두는 한바탕 웃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오징어 튀김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하루는 문득 오징어 튀김이 떠올랐는데 울컥 눈물이 났다.
레몬즙을 뿌리면 행복해지고 떡볶이 소스를 뿌리면 불행해질 수 있는 이토록 사소한 것들이 뭐라고 생이 날뛰나... 게다가 레몬즙과 떡볶이 소스를 뿌리는 것을 선택하는 것조차 나인데. 심지어 떡볶이 소스는 얼마나 맛있는데... 불행이라는 것이 너무나 하찮아서 도대체 불행이라고 이름 붙이기에도 민망할 정도다.
조승연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 [조승연의 탐구생활]에서 이탈리아 사람들의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들에게 행복은 ‘기쁨’에 가깝다고 말한다. '인생'의 행복이 '오늘'의 기쁨이 되는 순간, 그 문턱이 너무나 낮아졌다. 이탈리아 사람들에겐 행복은 물론 불행의 문턱도 낮은지 행복엔 쉽게 도달하고 불행은 가뿐하게 넘어버린다. 오징어튀김 따위에는 감히 행복과 불행을 붙이지 못한 나에겐 행복과 불행의 문턱은 참으로 높아서 행복에 닿기 위해 죽을 만큼 애를 쓰고 불행은 넘느라 악에 받쳤다.
아들과 나의 말을 기록한 모자문답집을 다시 읽어보다 유독 행복에 대한 질문을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치 불행해선 안된다고 주문을 외듯, 아들을 통해 행복을 확인하려 했다. 행복은 가져도 행여나 쉬이 사라질까 전전긍긍했고 불행은 닥치지 않았음에도 이미 가진 듯 안절부절못했다. 그래서 난 겨우 한 자릿 수의 인생을 산 아들에게 행복에 대해 묻고 또 물었다.
이안 5살
{고민상담}
"이안, 엄마는 종일 마음이 좀 그래,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해?"
"마음이 아파? 그러면 이렇게, 크게 숨을 세 번 쉬어봐. 그리고 내일 아침엔 아빠보고 유치원에 데려다 달라고 할게. 엄마는 집에서 5분 쉬어 봐. 휴대폰으로 5분 맞춰두고, 아! 두 번 해서 10분 맞추고 좀 쉬어. "
"이안, 넌 마음이 아플 때 어떡해? 유치원에서 그럴 때 없어?"
"아플 때 있지. 그런데 안 아플 때도 있어. 아프다가 안 아프다가 그래."
{행복}
"이안, 우리 나갈 까? 친구들도 나온대."
"놀러 가는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한데 친구까지 만난다니 너무 행복한 일이다."
행복을 기쁘게 온전히 느낄 줄 알았던 5살 소년은 6살이 되더니 갈비에서도 천국을 만나고 아이스크림 안에서 천사를 만났다.
이안 6살
{엘에이갈비}
"엄마! 더 먹으면 안 될 것 같아! 더 먹으면 천국에 가서 못 돌아올 것 같아..."
{아이스티 맛 아이스크림}
"엄마! 천사가 나를 안아서 날고 있어!"
그 소년이 7살이 되었을 때는 매 순간 행복할 수 없음을 이미 이해했고 받아들였다.
이안 7살
[행복 1}
"이안, 우리는 매일매일 행복해야 해?"
"엄마, 매일 행복할 수 없어. 엄마가 죽으면 그래도 내가 웃어야 해? 집이 부서지면? 우리가 이사를 해야 하면? 그런데도 내가 웃어? 아니잖아. 엄마가 아픈데 내가 웃으려고 노력해. 그러면 그걸 보면서 엄마가 얼마나 슬프겠어? 행복하려고 노력해야 할 때가 있고, 아닐 때가 있어."
"행복하려고 노력해야 할 땐 언제인데?"
"조금 거짓말인데, 아빠가 요리를 했어. 고기반찬이야. 그런데 맛이.. 음.... 그냥 그래. 그런데 아빠가 물어. 이안, 맛있어? 그럴 때 내가 '아빠! 너무 맛있어!'라고 대답하는 거야. 그게 노력할 때야.
{행복 2}
"엄마, 내가 생각했을 때 행복은, 누구든 행복하면 행복한 것 같아."
"그 행복에는 이안이 너의 행복도 포함되는 거야?"
"'누구든'에는 나도 포함되는 거지."
"그럼 넌 최근에 가장 행복했을 때가 언제야?"
"내가 태어났을 때."
{행복 3}
"엄마, 행복은 운이 좋은 거야."
"운이 좋다는 게 무슨 뜻이야?"
"친구가 나에게 뭘 줬어. 그런데 그게 내가 좋아하는 거야. 그게 행복이야."
{행복 4}
"엄마, 행복은 도와주는 거야."
"넌 누굴 도와줄 때 행복을 느껴?"
"도움을 줄 때도 받을 때도 행복을 느껴."
"최근엔 언제 행복했어?"
"어제 친구랑 놀았을 때."
"그건 논 거지. 도와준 것은 아니잖아."
"우리가 웃었잖아. 서로가 웃을 수 있게 도와준 거야. 내가 생각해 낸 게임을 친구랑 함께 하고 싶었는데 친구랑 같이 해서 너무 좋았거든. 내가 하고 싶은 걸 같이해주는 것도 도와주는 거야."
8살이 된 소년은 자신의 삶 자체가 행복이라 말했다.
이안 8살
{우리 동네 1}
"우리 동네 어때?"
"좋아, 때로는 지루하고 즐겁고 더럽지."
"로마는 낙서도 개똥도 너무 많잖아. 더러운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꿈이라고 생각해."
"꿈?"
"꿈에 똥이 나오면 행운이잖아. 밟거나 만지면 더 좋고. 그래서 나는 꿈이라고 생각해.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 동네는 행운이 가득한 곳이 되는 거거든."
{우리 동네 2}
"엄마, 우리가 동네가 멋진 이유가 뭔지 알아? 슈퍼도 가까이 있고, 성당 종소리도 들리고, 낙서가 많아서 사진 찍기도 좋고, 내 친구 집도 가까이 있고, 학교가 가까워서 늦잠도 잘 수 있어. 그런데 그중에서 가장 멋진 게 뭔지 알아?"
"뭔데?"
"바로 내가 살고 있다는 거야. 그게 우리 동네에서 제일 멋진 거야.
9살이 된 소년이 말했다.
엄마, 행복 별 거 아니야.
이안 9살
"이안, 이제 불 끄고 자자."
"엄마, 이보다 더 완벽할 순 없어, 조용하고, 따뜻하고, 아무런 걱정이 없어."
*대화내용 출처 : 모자문답집 1,2, 권
온전한 행복을 느낀 것은 언제였을까? 아니 행복을 불안해하지 않은 것은 언제였을까? 행복을 느끼면 언제나 불행을 떠올렸다. 행복을 인정하면 금세 불행이 기웃거릴 것 같아서 온전히 행복을 껴안지 못했다. 행복에 안주하면 안 된다는 강박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행복해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면 사라질 것 같다는 두려움은 어디에서 스며든 걸까? 어쩌면 행복을 너무나 간절하게 불행을 너무나 묵직하게 여겨서 인 건 아닐까? 그런데 행복은 오징어튀김에 뿌린 레몬즙만큼 별 것 아니고 불행은 떡볶이 소스만큼 하찮잖아. 행복은 새콤하고 불행은 매콤할 뿐. 행복을 입에 담지 못할 이유가 없고 불행을 굳이 피할 필요는 어디에 있는 걸까? 새콤도 매콤도 오징어 튀김과 더없이 어울리는데 말이다. 오늘은 감히 행복을 소리 내어 말했다.
이안, 이도, 엄마는 요즘 좀.. 조금…
그러니까 이상하게 요즘 매일 행복해.
"그게 이상해?"
"나는… 뭐랄까, 특별한 일이 있어야지 행복하다고 생각했거든, 항상."
"엄마는 항상 그렇게 생각했어?"
"그런데 요즘은 특별한 일은 없는데… 그냥… 그냥.. 좋아."
"그게 왜 그런지 알아? 내가 있어서 그래. 내가 있어서 좋은 거야."
(이도)"내가 있어서 더 좋은 거지!"
"이안, 너의 행복은 뭐야?"
"나? 난 그냥 행복해. 그냥 화난 것도 행복하고, 슬픈 것도 행복하고 그냥 행복해. 마음 깊은 곳에선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엄마는 나의 세상을 모르는구나. 이게 마음이야. 이렇게 마음 안에 마음이 또 있어. 이 마음에 행복한 게 있고, 이 다른 마음에 화난 게 있어. 슬플 때, 제일 큰 마음은 슬픈 거지만, 안에는, 음… 뭐, 행복한 게 있고, 그 안에는 화난 게 있고, 그 안에는 부끄러운 게 있고, 이렇게, 이렇게 있는 거야. 그리고 지금 내 뇌가 이렇게 있는데, 여기 이건 창피함이야. 창피함은 그냥 말라빠졌어. 이거는 슬픔이야. 슬픔은 조금, 이 정도. 그리고 이건 화남이야. 그리고 이거는 행복함이야. 뇌 전체의 ‘반’이야. 그리고 이거는 똑똑함이야. 멍청함은 여기, 말라빠졌어."
"부끄러움이랑 멍청함은 너의 뇌의 아주 사소한 부분만 차지하는 거야?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행복인 거야?"
"아니, 똑똑함. 난 너무 똑똑하거든."
"네가 너무 똑똑한 걸 어떻게 알아?"
"아까 내 큰 뇌를 보여 줬잖아."
"똑똑함이 네가 생각하는 가장 큰, 중요한 거야?"
"아니, 똑똑함이 중요하진 않지."
"그런데 왜 제일 커? 제일 큰 게 중요한 거 아니야?"
"제일 큰 게 중요한 거 아니야. 엄마, 왜 제일 큰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제일 큰 게 중요해 보이잖아."
(한숨) 쯧쯧쯧
"엄마 (손을 보여주며) 여기 손가락 다섯 개가 있어. 이게 제일 커. 이게 제일 중요해? 얘가 왕이야? 우리 가족 중에 아빠가 제일 커. 그럼, 아빠가 제일 중요해? 그래, 아빠가 제일 중요하지 그래. 여기 (맥주잔과 휴대폰 비교) 이거보다 이게 더 커. 그럼 이개 더 중요해? 이렇게 많은 세상이 있어. 해만 있으면 돼? 제일 크니까? 다른 건, 다 터져도 돼? 이제 알겠어?"
"부끄러움도 슬픔도 다 중요한 거야?"
"슬픔이 중요하잖아. 마지막에, 그 영화에서. 그런데 부끄러움은 솔직히 필요 없을 것 같은데…근. 데! 부끄러움이 없으면, 하고 싶은 거 다 할 것 같아. 부끄러움이 두려움도 되고 무서움도 될 수 있어. 내가 아무것도 무섭지 않고, 부끄럽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으면, 그냥 막 해버릴 것 같은데… 부끄러운 건, 곧 두려운 거니까. 내가 다이아몬드를 뺏으면 경찰에게 잡혀간다는 것을 알고, 두려워하잖아. 비행기에서 뛰고 싶어. 그런데 몸이 부러지는 두려움이 있어서 그러잖아. 부끄러움과 두려움. 이런 것들이 없으면 그냥 내가 막 해버린다는 거지."
(대화를 마치고 Bar에서 계산하고 나오려는데, 바텐더에게 (안주로 주는) 땅콩을 달라는 이도. 컵 한가득 땅콩을 받아 나온다.)
"이안, 이런 건가? 작지만 행복한 거? 엄마 잘 배운 거 맞아?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이안) 모기도 모이면 천둥소리가 난다.”
"그게 뭔 소리야????
"땅콩도 많이 먹으면 배부르다는 말이야."
슬픔과 화남 안에도 행복은 있고 매일 행복한 것을 특별하게 여기지 않아도 된다. 행복 앞에 '그냥'을 붙여도 더없이 어울린다. 말라빠진 창피함, 작은 슬픔, 아주 작아 보이지 않은 멍청함과 부끄러움과 화남을 불행의 주머니에 담는다. 주머니 안을 들여다보니 채워진 모든 조각들마다 행복이 담겨있다. 이탈리아 단어로 행복은 FELICITA'이고 불행은 INFELICITA'이다. 마치 불행이 (행복의 반대말이 아니라) '나는 행복 안에 있어요~~' 하고 속삭이는 것 같다.
잠들기 전, 이안에게 물었다.
"지난번에 행복에 대해 말해줬잖아? 그럼 불행은 뭐야?"
"엄마, 행복이랑 같아. 불행도 항상 있어. 그런데 불행이 꼭 나쁜 것은 아니야. 감기에 걸렸어. 불행인 것 같지? 하지만 학교에 가기 싫었는데 감기에 걸려서 못 가. 그럼 감기 때문에 행복해진 거야. 그런데 학교에 가고 싶었는데 감기 때문에 못 가. 그럼 불행하지."
"떡볶이 소스구나. 누군가에겐 떡볶이 소스가 행복이니까."
그러니까 불행이 다 나쁜 건 아니야.
사람마다 다른 거지.
행복은 새콤한 맛이 나고 불행은 매콤한 맛이 난다. 어쩌지? 새콤도 매콤도 다 좋은 걸… 뭘, 어쩌겠어. 좋으면 다 맛보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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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문답집]
: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아들에게
한국에서 태어난 엄마가 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