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 "AMARO, 쓴 맛"
10살 이안과 6살 이도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난 한국 어린이입니다. 가족과 한국말을 하고 친구들과는 이탈리아말을 합니다. 두 아이의 한국말 표현에는 예상치 못한 특별함이 담겨있습니다. 처음엔 아이가 특별하고, 저의 육아가 특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한국말로 하면 특별하던 그 말들이 이탈리아말로 바뀌면 지극히 평범한 말이 되어버렸습니다.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그 특별함은 이탈리아말이 미묘하게 한국말에 스며들어 나타난 현상이라는 것을. 어떤 말들이었을까요? 저는 앞으로 아이들의 한국말속에 스며든 이탈리아말을 찾아 떠나보려 합니다.
<이탈리안 레시피> 6화
: "AMARO, 쓴 맛"
이탈리아에 온 표면적인 이유는 가이드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의 삶을 꾸기 시작한 시점은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학생 시절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귀를 기울이면'을 보고 여자 주인공에 푹 빠졌다. 여자 주인공에 너무 빙의된 나머지 남자 주인공과 사랑에 빠져버렸다. 남주는 바이올린 장인이 되기 위해 이탈리아의 크레모나라는 바이올린 장인의 도시로 떠난다. 애니메이션에선 도시의 이름만 언급될 뿐 풍경은 담기지 않았다. 궁금했다. 그가 공부하고 있는 그 도시의 모습이. 도서관 구석의 어느 원서에서 그 도시를 발견했다. 붉은 벽돌, 고즈넉한 골목. 그때 알았다. 나는 영원히 이탈리아와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이후 한 번도 그 꿈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내가 걷는 모든 거리를 이탈리아라고 생각했다. 수년을 그리 살다 보니 2006년 진짜 이탈리아에 도착했을 땐 하나도 낯설지 않았다. 이미 수도 없이 걸어본 길이었다.
1999년 서울에 한국 스타벅스 1호점이 오픈했다. 아직 스타벅스가 상륙하기 전인 대구의 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한국에 스타벅스 1호점이 막 오픈하기 시작한 세기말, 대구의 어느 골목에는 이미 에스프레소를 즐길 수 있는 장소가 있었다. 카페 프란체스코. 사장은 54년생, 파리 유학파였다. 150센티 중반의 키, 요지 야마모토의 레깅스, 박시한 검은 티셔츠, 귀 밑 1mm 칼 단발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일자 앞머리의 그녀를 우리는 레고라고 불렀다. 카페 바닥에는 동글동글한 아련한 노란색의 타일이 깔려있었고 검은색 페인트가 칠해진 목재 창은 햇살 좋은 날이면 차곡차곡 옆으로 접어 활 짝 열어 둘 수 있었다. 겨울이면 야외 좌석엔 머리를 들이밀어야지만 온기를 느낄 수 있는 난로와 가벼운 모직 덮개가 준비되었다. 그곳은 작은 프랑스고 이탈리아였다.
수성구 학군의 붐이 본격적으로 일어나던 시절이었다. 학구열에 발맞추어 카페 주위엔 영어 학원이 즐비했다. 영어 학원 원어민 교사들에게 카페 프란체스코는 고향의 향수를 어루만지는 오아시스였다. 이른 아침 카페 문을 열면 저 멀리 낯익은 이들이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마크, 제니퍼, 토드 그들은 항상 같은 종류의 커피를 주문했고, 어느 날은 CD에 그들만의 플레이 리스트를 담아왔다. 잭 죤슨, 밴 하퍼, 에어, 밴 폴즈.. CD에는 그들의 손글씨로 적은 플레이 리스트 가수와 곡명으로 빼곡했다. 난 그곳에서 어설프게 영어를 배웠고 세계 곳곳의 친구를 만났다. 아.. 여기서 죽어도 좋아. 카페 프란체스코는 나의 우주였다.
늦은 마감을 하고 나면 종종 사장님은 드라이브를 시켜주셨다. 그녀의 빈티지 폭스바겐의 지붕은 가죽으로 되어있었다. 가죽을 둘둘 접으면 하늘이 열렸다. 아스라한 공기에 머리칼을 나부끼며 새벽을 달렸다. 드라이브의 목적지는 그녀의 집이었다. 가구하나 없던 그녀의 집은 한국식 전형적인 아파트 속에 있음에도 유럽의 공기가 가득했다.
휑한 거실엔 피아노와 낡은 소파 하나, 남편이 파리 유학시절 그렸던 큰 비행기 그림, 거대한 테이블, 나뭇바닥에 무심히 쌓여있던 책들과 우아한 스피커. 흰 페인트로 칠한 벽에는 그녀의 파리유학 시절 친구들이 그린 그림들이 걸려있었다. 구석구석 오브제들이 놓여있어 그녀의 집은 마치 작은 미술관을 연상시켰다. 방문엔 소장님(그녀의 남편을 우린 그리 불렀다.)이 아들에게 휘갈겨 쓴 편지가 붙여있었다. "바람처럼 태양처럼 널 사랑해" 그녀는 거실 바닥에 주저앉아 와인을 땄다. 붉은 와인이 하나 둘 잔에 채워졌다. 끼안티 클라시코. 끼안티는 이탈리아의 도시 이름이라고 했다. 바닥에 놓인 LP에선 이문세의 노래가 흘렀다. 단발을 찰랑거리며 살짝 취한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20대 좋지?
그런데 30대는 더 좋아.
그런데 말이야.
40대는 더 좋아.
50대를 앞둔 그녀의 눈이 반짝거렸다. 그녀의 한마디한마디에 벅차오르는 20대의 소녀들의 눈도 반짝였다. 우리의 배경으로 이문세의 옛사랑이 흘렀다. 눈 녹은 봄날 푸르른 잎새 위에 옛사랑 그대 모습 영원 속에 있네. 아무리 그래도 20대가 더 좋지. 우리가 설마 40대가 되겠어? 영원히 20대에 머물 줄 알던 우리는 서서히 밝아 오르는 새벽과 아침의 경계가 되어서야 상기된 어깨를 들썩이며 집으로 돌아갔다.
하루는 에스프레소를 뽑고 있던 나에게 그녀가 말했다.
"민주야. 이탈리아에는 에스프레소를 뽑는 것도 직업이야. 그 사람들을 바리스타라고 불러.”
집에 돌아와 바리스타를 검색했다. 당시 한국어 검색어에는 바리스타가 없었다. 한국에서 바리스타가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탈리아에 가는 것이었다. 대학시절 내내 입버릇처럼 이탈리아에 갈 거라고 선언했지만 결국 대학 졸업식을 앞두고서야 이탈리아행을 결정할 수 있었다. 엄마의 죽음을 목격한 직 후였다.
바리스타를 공부할 학비를 벌겠다는 명목으로 로마 가이드에 지원했다. 로마에서 열심히 카페를 찾아다니며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한국에선 에스프레소에 설탕을 넣는 건 촌스러움을 상징했다. 그래서 이탈리아에서도 에스프레소는 항상 설탕을 넣지 않고 마셨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별개로 에스프레소는 언제나 과하게 썼다. 혀에 닿는 순간 저절로 얼굴이 찡그려졌다. 하루는 그런 나를 보고 있던 나이가 지긋한 이탈리아 신사분이 말했다.
"È amaro(쓰지)?"
"..."
"La vita è come il caffè. La vita è amara.(인생은 커피 같아. 인생은 쓰지.)"
(그는 에스프레소 한잔을 더 주문한다. 그리고 천천히 설탕 한 봉을 잔에 넣는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숟가락을 젖는다. 그리고 그 잔을 나에게 내민다.)
"Ma…anche la vita è dolce.(그런데... 인생은 달콤하기도 하지.)"
그가 건넨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쌉싸름하고 달콤하고 구수하고 진하게 맛있었다. 반사적으로 눈이 커지고 엷게 웃음이 났다. 그런 나를 보고 미소를 지으며 그는 자신의 잔의 바닥에 남은 설탕과 에스프레소가 끈적하게 뒤섞여 꿀이 되어버린 잔여물을 손가락 끝으로 꼭 찍어서 살짝 핥았다.
"Ecco perché la vita è bella.
(이래서 인생은 아름다운 거야.)”
그때 깨달았다. 난 여기서 살게 되겠구나. 좋은 30대를 더 좋은 40대를 이곳에서 맞이하겠구나. 20대 초까지 한국에서 살았지만, 한 번도 누군가에게서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적어도 나의 기억 속에는 없다. 20대 초까지의 나이가 인생에 대한 대화가 삶의 메인에서 빗겨 나 있는 시절이라 그랬을지도 모른다. 이탈리아에서 20대에서 40대까지 채우면서 삶의 결정적인 순간에 인생이 아름답다 말하는 이를 만났다.
욕심과 의욕이 가득 차 넘치던 시절이었다. 시기와 질투가 불만과 불안을 낳고 조급함은 극에 달했다. 급기야 아들의 초등학교가 시작되고 잘만 지내는 아들과 별개로 정작 엄마인 나는 적응을 못해 휘청거렸다. 모든 화는 가족을 향했다. 누군가 내 상황이 쫄린다고 애들에게 화를 내면 진짜 삼류라고 했는데 그때의 나는 삼류에도 끼지 못하는 십류였다. 하루는 아들의 친구 가족들과 함께 외출을 했다. 어쩌다 종이비행기를 날리게 되었는데 의욕만 앞선 아들은 잔뜩 힘을 주고 비행기를 땅에 내리꽂고 있었다. 그런 아들의 모습이 나로 겹쳐 보였다. 하나 둘 땅에 처박히는 종이비행기 앞에서 아들은 울음이 터졌다. 남편이 울고 있는 아들의 손에 다시 종이비행기를 놓아주었다. 그리고 아들의 등 뒤에 살짝 자세를 낮추어 서서 비행기를 날렸다. 종이비행기는 천천히 느릿느릿 하지만 멀리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 살포시 내려앉았다.
남편은 아들 앞에 무릎을 꿇고 눈높이를 맞추며 말했다.
빠르게 멀리 나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아름답게 나는 거야.
지독한 열병이었다. 이탈리아는 너무나 혹독하게 코로나의 태풍을 겪어냈다. 지나긴 지역 간 이동 통제가 풀리고 우린 아말피로 향했다. 락다운 동안 울음을 참으며 힘겹게 레몬 농장을 지켜낸 살바토레를 만났다. 몇 달 사이 아말피는 활력을 되찾았다. 우리 가족은 살바토레와 함께 레몬 농장 투어를 했다. 아말피의 레몬은 특별하다. 스푸자토(Sfusato)라는 이 아말피 레몬은 껍질째 먹는다. 레몬의 새콤함을 뛰어넘을 만큼 달콤함 과육과 상큼하고 청량한 껍질이 더해지면 황홀하다는 말 이외의 다른 표현은 떠오르지 않는다. 세상 모든 과일에 알레르기가 있다고 주장하며 과일을 거부하는 아들도 이 레몬은 몇 번을 더 먹고 싶다고 손을 내밀었다. 아들에게 살바토레가 말했다.
아름답지?
이 맛을 기억하는 한,
넌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될 거야.
아들은 아말피를 그리워하는 소년으로 매년 여름, 자라났다.
우린 더 달려 이탈리아의 땅끝까지 달렸다. 이탈리아 땅 끝에 우리가 사랑하는 올리브 밭이 있다. 3000살 올리브 나무를 7대째 지켜나가는 우리의 친구 코라도. 오래된 올리브 나무로 둘러싸인 그의 농장은 매년 여름 우리 가족의 영혼의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올리브 나무 아래에 쏙 들어가던 두 아이들은 여름이 지날 때마다 쑥쑥 자라났다. 고집스럽게 농장을 방문하는 이들에게만 올리브 유를 판매하는 그에게 내가 너의 올리브 유를 팔고 싶다고 연락한 것은 코로나의 피해가 절정을 이루던 날이었다. 팬데믹동안 우린 만날 수 없었지만 가장 많은 연락을 주고받았다. 마침내 마스크를 벗고 다시 만난 날, 그에게 물었다.
“아말피의 레몬 농장에 갔었는데 그곳의 사람들도 대를 이어 전통 방식으로 레몬을 재배하고 있었어. 그런데 그 모습이 정말이지.... 너무나 힘겨워 보였어. 한국도 예전엔 그런 방식으로 농장을 운영했었지만 다음 세대들은 그렇게 일하길 원치 않아. 너무 힘들잖아. 설사 현대적인 방식으로 ( 더 편하게) 바뀐다 해도 원치 않을 것 같아. 그런데 레몬 농장도 그렇고 너네도 심지어 전통방식을 고수하고 있어. “
“우린 수 백 년 전, 수 천년 전,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방식을 지켜나가고 있어. 정말 고되지. 매일 노동해야 해. 수 작업으로 해야 하는 모든 일들이 앞으로 점점 더 지켜가기 힘들어질 거야. 현대적인 방법이 물론 존재하지. 스페인에선 50센티미터 간격으로 올리브 나무를 심고 기계들이 올리브를 따고 가지를 자르지. 사람의 노동이 불필요해. 기계로 충분하지. 그런데,
그것을 세련되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아름다움은 없잖아.
아들이 올리브 열매 하나를 따서 입에 넣었다. 한창 수확 중인 올리브에서 물과 기름이 뒤섞인 진한 과즙이 묻어 나왔다. 머리가 찡할 정도로 쓰고 매웠다.
“이안,
우리 오스투니 사람들은 이렇게 말을 해.
‘l’olio amaro tienilo caro. ‘
(쓴 맛의 올리브 유는 소중히 간직해라.)
방금 네가 맛본 올리브 맛이 어땠어? 쓰고 매웠지? 올리브가 쓰면 올리브 오일도 써야 해. 올리브 오일이 달콤하면, 왜?라고 생각해야 해. 왜? 단 거지? 오래된 올리브에선 단 맛이 나지. 또한 너무 익었다는 것을 뜻해. 올리브가 너무 익었다는 것을 수확시기가 너무 늦었다는 뜻이고. 올리브 열매가 많이 이동하는 과정에 익어버렸을 수도 있고 아니면 좋지 않은 올리브가 섞여있을 수도 있어. 단 맛이 느껴지면 의심해야 해."
"그럼 전, 조금 맵고 조금 단 올리브 유를 선택할래요."
"하하하!!"
여기까지 글을 쓰고 잠시 멈추고 아들에게 물었다.
"이안, 넌 무엇을 보면 아름답다고 느끼니?"
"엄마는? 엄마는 어때?"
"나? 나는.. 계속하는 거, 끝까지 계속하는 사람을 보면 아름답다고 느껴."
"엄마는 그렇게 엄마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을 아름답다고 느끼면 돼."
"그게 무슨 뜻이야?"
"나는 꽃을 보면 아름답다고 느껴. 나는 내가 보고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것을 아름답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면 누가 무언가를 아름답다고 이야기해도 내가 보고 아름답다고 느껴지지 않으면 아름답지 않아."
아들의 말을 한참을 곱씹었다. 나에겐 너무 어려웠다. 말을 더 이어가고 싶지만, 아들은 귀찮은 얼굴로 '그러니까 엄마는 엄마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걸 계속 아름답다고 느끼면 된다고' 라며 등을 돌려버렸다. 나는 딱 하나는 알 수 있었다. 나는 오래 끝까지 계속 나아가는 것에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것.
카페 프란체스코의 사장님은 안정된 미래가 보장된 약사를 그만두고 파리 유학길에 올랐다고 했다. 찰랑거리는 단발머리부터 그녀의 스타일은 보수적인 대구에서 심하게 튀었다. 하지만 바닥에 앉아 삶을 들려주던 그녀의 잔상은 내가 꿈꾸는 어른으로 남았다. 아름답게 비행기를 날리던 남편. 크게 레몬을 베어 물던 살바토레에게서 느껴지던 아름다운 향, 올리브 열매를 바라보던 코라도의 아름다운 눈빛. 누가 말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는 모습의 아름다움을 완성해 나간다. 나 스스로 보기에 아름답게 느껴지는 삶을 쌓아나간다. 오래 계속 끝까지. 아름다웠다. 그래서 그들이 나의 기억에 남은 거다.
글을 써나가는 동안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에스프레소에 설탕을 녹여주던 신사, 그의 기억 중에 잊혔던 한 조각. 설탕을 녹여주면 읇조리던 말.
“Quando sciogli lo zucchero nel caffè, devi farlo molto lentamente e completamente.”
(에스프레소에 설탕을 녹일 땐, 아주 천천히 완전히 녹여야 해.)
아름다움은 달콤함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아름다움은 쓰디씀 속에 오랜 시간 달콤함을 아주 천천히 완전히 녹여내야지만 비로소 만날 수 있는 것이었다.
아름다움의 메인은 단 맛이 아니라
쓴 맛이었다.
단발머리를 찰랑이던 그녀는 70대를 앞두고 있을 것이다. 그녀에게 묻고 싶은 날이다. 50대는 더 좋았나요? 60대는요? 저는 어느새 더 좋은 40대를 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제 눈에 아름다운 인생을 그려보려 합니다.
La vita è come il caffè: puoi metterci tutto lo zucchero che vuoi, ma se lo vuoi far diventare dolce devi girare il cucchiaino. A stare fermi non succede niente.
_Alex Zanardi
인생은 커피와 같습니다. 원하는 만큼 설탕을 모두 넣을 수 있지만, 커피를 달게 만들고 싶다면 숟가락을 저어야만 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_알렉스 자나르디, 이탈리아 패러사이클 챔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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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OK, 모자문답집
: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아들에게
한국에서 태어난 엄마가 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