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즉, '로마사람의 방식으로'

7화 : "CHE ROMANTICO, 얼마나 낭만적인가"

by 로마 김작가
10살 이안과 6살 이도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난 한국 어린이입니다. 가족과 한국말을 하고 친구들과는 이탈리아말을 합니다. 두 아이의 한국말 표현에는 예상치 못한 특별함이 담겨있습니다. 처음엔 아이가 특별하고, 저의 육아가 특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한국말로 하면 특별하던 그 말들이 이탈리아말로 바뀌면 지극히 평범한 말이 되어버렸습니다.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그 특별함은 이탈리아말이 미묘하게 한국말에 스며들어 나타난 현상이라는 것을. 어떤 말들이었을까요? 저는 앞으로 아이들의 한국말속에 스며든 이탈리아말을 찾아 떠나보려 합니다.


<이탈리안 레시피> 7화
: "CHE ROMANTICO, 얼마나 낭만적인가"


5살 아들을 재우다 졸았다.

졸다 눈을 뜨니 잠든 줄 알았던 아이가 날 빤히 바라보고 있다.

조용히 나의 눈을 쓰다듬는다.

진짜 뽀뽀해 줄게.

나의 눈에 입 맞추며 묻는다.

내가 왜 뽀뽀한 줄 알아?

왜냐고 되물으니

엄마 눈이 너무 예뻐서

아들은 다시 잠이 든다.


6살이 된 아들의 유치원 공연날, 유모차에 잠든 둘째와 객석 제일 뒤편에 서있었다. 그런데 아이가 선생님 품에 안겨 울면서 왔다. 아이는 엄마가 보이지 않아서 속이 상했다. 눈물을 닦으며 아이가 말했다.


엄마... 엄마의 눈빛이 멀어서 슬펐어.


로맨틱, roman-tic이라는 단어는 '로마 사람의 방식으로'라는 뜻이다. 로마 시대의 귀족들은 라틴어를 배우며 철학, 신학 등을 이야기한 반면 소설 같은 문학은 무시하는 분위기였다. 그리서 라틴어라는 고급언어대신 소설에는 로마방언 : 로만자(romanza : 현재 이 단어는 낭만이라는 이탈리아 단어이다.)를 사용했다. ‘로마사람의 방식으로’ 쓰인 글들은 사랑과 낭만을 이야기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고 현재 로맨틱의 의미로 이어진다. 내가 쓰는 말이 곧, 내 자신이라면, 로마방언(로마 사투리)을 쓰는 아들은 그 자체로 낭만이 된 걸까?


10년이라는 시간을 로마에서 태어나 로마에서 자라나는 아이 곁에서 머물며 낭만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게 되었다. 로마사람의 방식, 로맨틱은 시로부터 흘러들어와 넘쳤다.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다음 침공은 어디? >에서 핀란드 교육을 담은 편에서 미국의 교육 상황을 들으며 선생님들이 핀란드의 교육관에 대해 인터뷰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중에 감독이 어떤 말을 하자 한 선생님이 할 말을 잃고 망연자실하는 순간이 있다.


미국의 학교에는 시론을 가르치는 수업이 없어졌습니다.


라고 말하는 순간이다.




아이의 학교에서는 매년 festa dei nonni 행사가 열린다. 10월 2일, 세계 노인의 날이다. 이곳에서는 festa dei nonni라고 하는데 nonni는 조부모,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함께 부르는 복수형이다. 노인이라는 단어도 따로 존재하지만 할아버지, 할머니의 날 이라니 뭔가 더 사랑스러운 날처럼 느껴진다. 아들이 집에서 전혀 내색을 안 해 몰랐는데, 이 날을 위해 아이들은 시를 외웠다고 한다. 행사가 시작하고 아이들이 모여 함께 시를 읊었다.


~ I nonni ci danno tutto l’amore

Usano sempre parole del cuore.

Sembra così, ma non son tutti uguali

I nostri nonni son proprio speciali.


할아버지 할머니는 언제나 마음을 담은 말들을 통해 우리에게 모든 사랑을 전해줍니다.

모두가 똑같아 보이지는 않더라도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는 모두 진정으로 특별해요.

당시 이탈리아 말이 서툴렀단 아들은 시를 전혀 외우지 못했지만 제일 앞줄, 가운데 자리를 잡고 입모양은 비슷비슷하게 맞췄다. 특별한 날이면 언제나 시를 선물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 좋다.


다음 해, 아들이 물었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날인지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1년 전에 비해 이젠 그 의미를 이해한다.


_엄마, 그거 알아? 몇 밤 더 자면 nonni 생일이래. 그날은 모든 할아버지 할머니가 다 온대. 그런데 그거 알아? 하늘에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도 온다고 선생님이 그랬어. 그러니까 엄마의 엄마도 올걸? 그런데 엄마의 엄마는 엄마처럼 아름다워? 엄마의 엄마는 이름은 뭐야?

_이안이는 엄마의 엄마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하고 싶어?


살아서 축하해요.
다시 죽지 않게 해 줄게요.


그날은 추석을 하루 앞두고 있었다. 아이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날 이야기를 한 거였지만 난 추석을 떠올렸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불과 일주일 전이 엄마의 생일이었다. 곁에 없는 이의 생일날은 언제나 마음이 아린다.


_아! 맞다. 그럼 축제날에 이안이는 뭐 해? 이번에도 시를 외워?

올해도 뻔하지 입만 맞추겠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의 질문에 아이가 길에 멈추어 섰다.


들어볼래?

Ai nonnini


I nonni sono grandi ma tornano bambini

Quando ridono e giocano con i nipotini.

Raccontano le storie di tanti anni fa,

di quando erano piccoli la mamma ed il papà.

Ci tengono per mano con tanta tenerezza

ed hanno nello sguardo infinita dolcezza.

Per sempre, nonni cari, io vi ringrazierò.

Da grande, queste coccole, a voi io rifarò!


할아버지 할머니께


할아버지 할머니는 어른이죠.

하지만 우리와 웃고 장난칠 땐 아이로 돌아가요.

아주아주 오래전 이야기를 들려주죠.

엄마 아빠가 어릴 때 이야기요.

우리는 사랑을 가득 담아 손을 잡고

끝나지 않을 달콤한 눈빛으로 바라보아요.

사랑하는 할아버지 할머니,

언제나 고마워할 거예요.

아주 크게 계속 계속 껴안아줄 거예요




밤에 잠을 깼는데 계속 눈물이 났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온몸에 아토피가 퍼진 아이가 긁든 말 든 거실에 홀로 누워 해가 뜰 때까지 울었다. 며칠을 새벽까지 울었다.


엄마라는 것이 너무 무거워졌다.


아이를 위해 했던 지난 모든 것들이 다 아이의 피부를 망치기 위해 했던 것만 같았다. 임신 때부터의 모든 것들이 아토피의 원인 같았다. 내가 뭐라고 나의 결정, 나의 행동이 죄다 아이에게 드러난다는 것이 너무나 두렵고, 무거웠다. ‘엄마의 칭찬이 아이의 미래를 결정한다.’ 따위의 글만 봐도 욕지거리가 나왔다. 젠장! 성격 타고나는 거지! 피부고, 미래고, 성격이고, 지능이고, 뭐가 죄다 엄마 탓 이래!! 어쩌라고! 우리가 뭐 그렇게 대단하다고!!


아토피 때문에 예민해져서 아이의 작은 행동에도 감정이 겪해졌다. 아들이 컵을 깼다. 별 것 아닌 일인데, 쌓여 있던 감정이 터져 나와 그만 아이 앞에서 울어버렸다. 나도 모르게 ‘나도 엄마 보고 싶어.’ 하고 소리 내어 울어버렸다. 가만히 듣고 있던 아이가 말했다.


그래서 내가 왔지.
도와주려고. 엄마가 슬퍼해서
내가 슬퍼하지 말라고
엄마의 엄마를 대신해서 도와주러 왔지.

예상치 못한 대답에 멍하니 아이를 바라보았다.

끓어오르던 마음이 잔잔해졌다. 잠시 후, 놀고 있는 줄 알았던 아이가 다가오더니 작은 종이를 쥐어줬다. 종이 속엔 막 글자를 익힌 아들이 소리 나는 대로 쓴 편지가 담겨있었다.


며칠 전은 festa della mamma(엄마의 날)이었다. (이탈리아는 매년 5월 둘째 주 일요일이 엄마의 날이다.) 아이는 유치원에서 작은 선물을 만들어왔고, 올해도 어김없이 시가 적혀있다. 제목은 <엄마를 위한 웃음>. 아이는 엄마의 웃음을 위한 매일을 산다.


Un sorriso per la mamma


Per la tua festa, cara mammina,
Ti avevo scritto una canzoncina
Ma un uccellino ha beccato le note e mi ha lasciato le pagina vuote.
Quindi ho pensato, con gran coraggio, di preparati una torta al formaggio

ma due topini furbetti e veloci l'hanno nascosta tra i gusti di noci.
Presto ho cucito un vestito di seta Ma così stretto.... da mettersi a diata!

E la sciarpetta da me disegnata?
Una fatina me l'ha trasformata!
Scusami tanto, mammina mia,
ti ho raccontato qualche bugia...
per regalarti un dolce sorriso e farlo splendere sul tuo bel viso.

엄마를 위한 웃음


사랑하는 엄마, 엄마를 위한 축제의 날이에요.
엄마를 위한 노래를 만들었었어요.

그런데 작은 새가 악보를 물어가 버리고 빈 페이지만 남겨놓았어요.

그래서 전 큰 용기를 내어 엄마를 위해 치즈 케이크를 만들어 보기로 했어요.

그런데 못된 생쥐 두 마리가 도토리 사이에 재빨리 숨겨버렸어요.
전 빨리 실크 드레스를 만들었죠. 그런데 왜 이렇게 작아진 거죠? 마치 다이어트를 한 거처럼!

제가 디자인한 스카프는 또 어떻게요? 작은 요정이 다 망쳐버렸어요.
사랑하는 나의 엄마, 정말 미안해요.
이런 거짓말들을 늘어놓아서....
엄마에게 달콤한 웃음을 선물하고 싶었어요. 그 웃음이 아름다운 엄마의 얼굴을 빛나게 해 주길 바라요



집 앞 골목길, 아들과 유치원을 오고 가는 길에는 많은 낙서들이 있다. 어쩌자고 로마는 낙서에서 마저 낭만이 흐르는 것인가!!

Ti difenderò da incubi e tristezza
E ti abbraccerò per darti forza sempre
Auguri vita +18

악몽과 슬픔으로부터 널 지켜줄게
너에게 힘을 주기 위해 항상 널 안아줄게
18살, 너의 생을 축복해


Non ti prometto che sarà una fiaba.
Ma ci sarò qualunque cosa accada!
F. ♡

한 편의 동화 같을 거라고 너에게 약속할 순 없어,
하지만 어떠한 일이 펼쳐진다 해도 내가 곁에 있을게.
사랑해 F


Io credo in te...
Tu non sei sola,
Sei solamente unica

난 널 믿어
넌 혼자가 아니야,
넌 하나뿐인 특별한 사람이야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생후 14개월부터 학교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항상 시를 접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사무치도록 행복한 기분에 사로 잡혔다. 더불어 언젠가 아들이 나에게 직접 시를 지어 들려주는 상상을 하면 가슴 깊은 곳 어딘가 저려왔다. 그렇게 시와 함께 자란 아이는 시를 선물하는 소년이 되었다.


이안 5살, 엄마의 날에


이안 9살, 엄마 생일날
이안 9살, 아빠의 날에


아들이 8살이 되던 해에 시를 쓰는 법에 대해 알려준 적이 있다.

{시를 쓰는 법}

1. 아름다운 것을 보면 네가 기억할 수 있는 만큼 많이 기억해야 해.
2. 많이 기억할수록 넌 많은 시를 쓰게 될 거야.
3. 아름다운 건 여행할 때 우연히 만나.
4. 여행을 안 해도 네가 무엇이든 아름답다고 생각해도 돼.
5. 다른 사람의 시를 베껴 써도 돼.
6. 글씨는 틀려도 돼.
7. 시는 뭐든 돼.


세상은 각박해지고 말은 거칠어지며 표현은 직접적이고 행동은 자극적으로 변해버린 이 시대에 시가 무슨 소용이냐고 누군가는 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가 우리 곁에 있음에 감사할 수밖에 없다. 아름다운 것을 많이 기억할수록 많은 시를 쓸 수 있기에 우린 우연한 아름다움을 만나기 위해 오늘도 여행한다. 우리의 매일이 시가 흐르는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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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문답집]

: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아들에게

한국에서 태어난 엄마가 묻습니다.

youtube@로마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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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_iand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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