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LO SO COME TI SENTI, 난 네 기분이 뭔지 알아”
10살 이안과 6살 이도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난 한국 어린이입니다. 가족과 한국말을 하고 친구들과는 이탈리아말을 합니다. 두 아이의 한국말 표현에는 예상치 못한 특별함이 담겨있습니다. 처음엔 아이가 특별하고, 저의 육아가 특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한국말로 하면 특별하던 그 말들이 이탈리아말로 바뀌면 지극히 평범한 말이 되어버렸습니다.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그 특별함은 이탈리아말이 미묘하게 한국말에 스며들어 나타난 현상이라는 것을. 어떤 말들이었을까요? 저는 앞으로 아이들의 한국말속에 스며든 이탈리아말을 찾아 떠나보려 합니다.
<이탈리안 레시피> 8화
: “LO SO COME TI SENTI, 난 네 기분이 뭔지 알아”
할로윈 전날 밤, 똑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옆 집 남매다. 우리 옆집에 이탈리안 남매가 산다. 패션 쪽 일을 하는 둘은 밀라노와 로마를 오가며 일을 한다. 어쩜 저리도 옷을 잘 입을까? 패션 센스가 넘치는 남매이다. 그들은 매너도 남달라 우리 가족과 마주칠 때면 세상에서 가장 기분 좋은 미소로 크게 인사한다. 그들의 미소가 완벽하게 무장해제되는 순간이 있는데 이안도 남매와 마주칠 때이다. 아이들을 만나면 황홀한 풍미의 와인의 마셨을 때 이탈리아 사람들이 하는 손으로 허공을 휘휘 졌는 제스처를 하며 어쩜 이렇게 아름답고 귀엽고 기분 좋은 아이들이 세상에 존재하느냐는 느낌으로 아이들에게 챠아오~~(* ciao : 안녕 ) 하고 인사를 한다.
6년 전, 이안이가 처음으로 할로윈을 인지하던 때에 이안이는 고릴라 옷을 입고 옆집 문을 두드렸다. 당시 우리 아파트엔 어린아이가 없기도 했고 로마에선 할로윈이 일상적인 이벤트가 아니었기에 아마 그들에게 할로윈 복장을 하고 문을 두드린 첫 아이가 이안이었을 것이다. 문을 열고 작은 이안이가 두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 그들은 그야말로 귀여움에 녹아내렸다. 그렇게 매년 할로윈이면 가장 처음 그 집 문을 두드렸고 그들은 매번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그리고 올해 할로윈을 하루 앞두고 그들이 먼저 우리 집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자 그들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기.... 우리가 내일 집에 없어..... 그래서 미리 할로윈 사탕을 주고 싶은데....."
할로윈 당일 로마를 떠나게 된 그들은 우리 남매가 너무나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초등학생이 된 이안과 이도는 옆 집은 관심도 없고 반 친구들과 거리를 돌아다닐 생각으로 들떠 있었는데 말이다. 문 앞에서 두 손에 사탕 가방을 들고 서 있는 그들에게 집으로 돌아가서 기다리라고 말했다. 우리가 할로윈 복장을 하고 찾아가겠노라고. 아이들은 분주하게 할로윈 복장으로 갈아입고 옆 집 문을 두드리며 크게 소리쳤다.
"돌쳇또 스케르쳇또! (Dolcetto Scherzetto!: 사탕 안 주면 장난칠 거야!)"
악마 이도와 저승사자 이안이 크게 소리쳤다. 문을 연 그들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가슴을 부여잡고 무너져 내렸다. 옆 집 대문에는 할로윈 호박 가방이 걸려있었는데 그 가방을 이안과 이도에게 주었다. 아!! 그렇구나! 10월 초 아이들과 집 대문에 할로윈 장식을 하고 있었는데 그런 우리를 옆집 남매가 보았다. 그리고 며칠 뒤 이안에게 자랑을 했다. "우리도 내일 할로윈 장식을 할 거야." 그들은 집 앞에 거미줄 장식을 하고 문 앞에 할로윈 호박을 두 개 걸었다. 그랬다. 할로윈 장식은 오직 이안과 이도를 위함이었다.
그 마음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친절하다.'라는 동사 이외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할로윈 당일, 아이들은 반친구들과 동네에게 가장 번화한 거리를 걸었다. 그러다 우리 가족 단골 BAR앞에 다다르자 이도가 번개처럼 뛰어 들어갔다. 차아오!~ 하고 인사를 하자 이도를 본 바리스타가 활짝 웃으며 '왔구나! 여기 마시멜로!' 하고 외쳤다. 아주 오래전 아이들과 이곳에서 티타임을 하고 잇는데 바리스타가 조용히 이도를 불렀다, 그리고 커피 기계 뒤 서랍에서 비밀스럽게 유리병을 꺼냈다. 그 안에는 마시멜로가 담겨있었다. 작은 마시멜로 하나를 받아 든 이도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을 발견한 듯 상기된 얼굴로 나에게 다가왔다. 그날부터 그곳 앞을 지날 때면 아이는 깨금발을 하고 얼굴을 쏙 내밀었고 어김없이 이도의 두 손에 마쉬멜로우가 놓였다. 그런데 여름휴가를 다녀왔는데 유리병 안의 마시멜로가 똑 떨어졌다. 속상해하는 이도에게 바리스타는 꼭 사 두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런데 여름 방학이 끝나고 학교 생활이 시작되면서 발걸음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약속을 잊지 않고 마시멜로의 한 병 가득 채우고 아이들을 기다렸던 것이다. 마시멜로를 손에 쥔 반 친구들에게 이도가 소리쳤다.
"마시멜로. 이거 내 덕분이야! 우리는 친구거든."
집 근처에는 우리가 자주 가는 칵테일 바가 있다. 그곳에서 나는 항상 그 집의 특제 모히토를 마시고 이안이는 나초를 시키고 이도는 복숭아 주스를 마시며 안주로 나오는 땅콩을 먹는다. 이안과 내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이도는 언제나 바텐더 앞에 앉는다. 종알종알 이도와 바텐더는 친구다. 매주 두 번 수영을 배우는 스포츠 센터로 가는 길에 이 칵테일 바를 지나게 되는데 그때마다 이도는 바텐더에게 달려가 인사를 한다. 한 번은 거리에서 누가 너무나 반갑게 인사를 했는데 이도가 바로 알아봤다. 바텐더였다. 술자리(?)가 끝나고 집에 돌아갈 때면 이도는 바텐더에게 "노춀리네(*noccioline : 땅콩)" 하고 속삭이고 그는 플라스틱 컵 가득 땅콩을 담아준다. 우린 고소한 땅콩을 아득아득 씹으며 집으로 돌아간다.
친절에 맛이 있다면 진하게 고소할 것이다.
언젠가 아들에게 너의 재능이 무엇이냐 물은 적이 있다. 아들은 자신의 재능은 친절이라고 했다.
엄마, 나의 재능은 친절이야. 친구들에게서 배웠어.
"친구들이 내가 혼자 놀고 있을 때 같이 놀자고 했는데 그 친절이 좋아서 나도 그때부터 친절해졌어. 그리고 친구들에게서 배운 재능이 또 있어. 어떤 상황에서도 말을 하는 거야. 낯선 사람이랑 말을 하는 게 어려웠는데 친구들이 말을 걸어 주니까 좋았어. 그때부터 어떤 상황에서도 말을 하게 된 거야."
지난여름 한국에 다녀왔다. 짧은 시간이지만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이안이도 한국의 초등학교에서 등교를 할 수 있었다. 다양한 한국을 경험한 이안에게 한국과 이탈리아에 대해 물었다.
"그냥, 이탈리아가 좋아. 만약 다른 사람들이 여기에서 태어났으면 나와 똑같은 기분일 것 같아. 엄마는 지금 내 기분을 이해 못 할 것 같아. 엄마는 어른이니까. 아이의 상상력을 이해 못 해. 지. 금. 은. 어른이니까. 한국 사람들은 나와 공감하는 애들도 많았어. 그러니까 뭐랄까, 나랑 성격이 똑같고 좋아하는 게 똑같은 그런 애들이 많이 있어서 좋았고 이탈리아 애들은 뭐랄까... 걔네들도 성격 똑같고, 좋아하는 거 똑같고..."
이탈리아 사람들은 뭐랄까....
날... 알아줘.
슬퍼서 이렇게 축 쳐져 있으면
'난 네 기분이 뭔지 알아.'
이렇게 해 주더라고.
작년 초등학교 4학년이 된 이안이는 생애 첫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다. 전날까지도 아무렇지 않던 이도가 수학여행 당일 인사를 하던 중 끝내 울음이 터졌다. 오빠와 떨어져 본 적 없는 이도는 오빠 없는 3일이 너무 슬펐다. 이안이 이도를 안아주자 약속이나 한 듯 이안이의 반 친구들이 모두 이도를 끌어안았다. 이도와 눈을 맞추며 아이들이 말했다. 울지 마. 평생 떠나는 게 아니야. 겨우 3일이야. 울지 마. 3일은 5분처럼 금방 지나갈 거야. 우리도 널 사랑해. 우리도 널 그리워할 거야. 이도의 애틋한 마음을 반친구들이 모두 함께 끌어안았다.
이탈리아 내의 코로나 상황이 악화되었던 2020년 가을, 전국적으로 휴교령이 내렸다. 수업은 전면 비대면으로 대체되었는데 어떤 연유인지 유치원을 다니는 지인의 아이가 등원을 한다는 거다. 아이의 반에는 장애를 가진 친구가 있었다. 비록 유치원은 문을 닫았지만 그 한 명의 아이를 위한 반이 따로 오픈되었던 거다. 그리고 전체 16명의 같은 반의 아이들이 4 그룹으로 나누어 일주일에 하루 혹은 이틀을 등원이 가능하게 했다. 가정 보육을 해야 하는 부모도 집에서 머물러야 하는 아이들 모두 힘겹지만 상대적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가진 아이와 부모를 위한 개방이었다. 어차피 반을 열었으니 실내에서 모일 수 있는 최소의 수의 아이들이 돌아가며 등교를 하도록 한 결정이라고 생각했는데 지인이 들려준 학교 측에서 설명한 반 친구들의 등교 이유를 듣고 순간 멍해졌다.
홀로 반에 있을 친구가 슬프기 때문에.
친구가 없는 학교는 누구에게나 외롭기 때문이었다.
한 번은 이안의 반 친구와 그 엄마와 함께한 하굣길에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쥐어주기로 했다. 친구의 엄마가 사기로 했고 생각이 없다는 나의 말에 그녀는 아이스크림 세 개를 계산했다. 당연히 그 엄마의 몫인 줄 알았는데 아이들에게 주고 남은 하나를 그녀는 길에 주저앉아 있던 할머니에게 건넸다. "시원한 걸 사드리고 싶었는데 막상 그러려면 보이질 않아서... 마침 오늘 앉아 계시네." 아이들 등하굣길에 종종 마주치던 할머니였다. 한여름에도 몇 겹씩 옷을 껴입고 폐지를 잔뜩 끌고 다니는 그녀에게선 멀리서도 지린내가 났다. 나에겐 그 몰골만이 보였는데 그 엄마에겐 ‘이 더운 날 저렇게 두꺼운 옷을 입고 있으니 얼마나 더울까?’라는 불편이 보였다. 민소매 티에 반바지를 입고 걸어도 땀이 줄줄 흐르던 날이었다. 누구에게나 견디기 힘든 아주 뜨거운 여름날이었다.
브래디 미카코의 책,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부재 : 차별과 다양성 사이의 아이들)에서 중학생 아들의 시험문제에 대한 에피소드가 나온다. 시험문제는 Empathy(엠퍼시 : 공감) 란 무엇인가? 아들은 '스스로 남의 신발을 신어보는 것'이라고 답을 적는다.
시간이 흘러 이안에게 물었다.
"이안, 그런데 넌 왜 친절이 재능이라는 생각을 했어?"
나쁜 사람이 있잖아.
그 사람들은 친절이 없어.
그런데 그 사람들이 친절이 없다면 친절이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
뭐랄까? 나처럼?
재능이 아니라면 모두가 가질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
그런데 재능은 나만이 할 수 있는 방법 같은 거 아냐?
친절하게 구는 건 뭔가 좀 달라.
누구나 친절한 것은 아니니까."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나 할 수는 없다. 재능은 개인이 타고난 능력과 후천적 훈련에 의하여 획득된 능력 두 가지로 나뉜다. 이탈리아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보면서 크게 깨달은 것이 있다. 언어라는 것이 일정 나이를 지나면 무던하게 훈련해서만 가질 수 있는 능력인데 어느 나이 이하에선 훈련이라는 인지가 없이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만 6세 이전까지는 그저 스며든다. 이탈리아에서 숨 쉬듯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친절을 만날 때면 비슷한 기분을 느낀다. 친절도 그렇지 않을까? 스며드는 나이의 아이들이 공기처럼 친절을 만나면 '친절이라는 재능'이 후천적 훈련이 없이 마치 타고난 능력처럼 채워지지 않을까? 언어 발달처럼 친절 발달에도 결정적 시기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의 친절이 타고난 능력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그들도 모르게 태어나서부터 만났던 삶의 반경에서 그들을 감싸던 친절이 유년시절 쌓였고 성인이 되어 부단히 실천함으로 가진 재능이었다. 이탈리아에서 살아가며 그 무엇보다 가지고 싶은 재능은 친절이다.
할로윈 장식을 보면 네가 신날 거야.
사탕을 주면 네가 기쁠 거야.
혼자 놀면 넌 외로울 거야.
학교에 홀로 있으면 너는 슬플 거야.
마시멜로를 너는 기대하고 있을 거야.
땅콩을 주면 넌 행복할 거야.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넌 시원할 거야.
함께 이야기하면 너는 즐거울 거야.
난 너의 기분이 뭔지 알아.
친절은 너의 기분을 어루만지며 시작된다.
나의 기분을 어루만진 친절이 매일 조금씩 나를 더 친절한 사람으로 만든다.
나를 너의 기분을 어루만지는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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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문답집]
: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아들에게
한국에서 태어난 엄마가 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