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NON FAR NIENTE,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10살 이안과 6살 이도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난 한국 어린이입니다. 가족과 한국말을 하고 친구들과는 이탈리아말을 합니다. 두 아이의 한국말 표현에는 예상치 못한 특별함이 담겨있습니다. 처음엔 아이가 특별하고, 저의 육아가 특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한국말로 하면 특별하던 그 말들이 이탈리아말로 바뀌면 지극히 평범한 말이 되어버렸습니다.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그 특별함은 이탈리아말이 미묘하게 한국말에 스며들어 나타난 현상이라는 것을. 어떤 말들이었을까요? 저는 앞으로 아이들의 한국말속에 스며든 이탈리아말을 찾아 떠나보려 합니다.
<이탈리안 레시피> 9화
: “NON FAR NIENTE,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여름이란 우리가 계획하는 능력을 넘어서는 예상할 수 없는 아름다운 것 같아요.
나는 세세하게 다 계획해두지 않고 여름의 황금 같은 지평선이 내게 가져다줄 것을 기다리고 싶어요.
_ 이탈리아의 바닷가 마을 페르모의 체테라 카타 선생님의 인터뷰 중에서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에서 왔다.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춥고 봄과 가을은 마음이 울렁이다. 내가 봄과 가을을 타는지 나에게 두 계절이 올라 타 울렁거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더워서 여름방학이 있고 추워서 겨울방학이 있다. 여름 방학이면 어김없이 울진 바닷가 할아버지 집에 갔다. 수영복을 입고 가족 모두 함께 바다에 뛰어든 건 몇 살까지였나?
초등학교 중반을 지나면서부터는 기억이 없다. 초등학교 이후부터 가족이 함께 여름을 즐긴 기억이 흐릿하다. 우리 가족만 그랬나? 그러고 보니 한국에서 살면서 여름이 두근거릴 만큼 기다려진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이탈리아에서 살면 살수록 신기하게도 강렬한 태양과 더위가 무색하게 더욱더 간절하게 여름을 기다리게 된다. 여름이 지나면 금세 다음 여름이 그리워진다.
아들의 여름 방학이 끝나고 SNS에 ‘드디어 방학 끝!’이라고 올렸더니 한국의 친구가 '방학 한번 징하게 길다 '라고 글을 남겼다. 생각해 보니 진짜 길다. 여름방학이 6월부터 9월까지다. 이건 한해의 1/4 아닌가!!
이쯤 되면 여름방학이라고 부르는 것도 웃기다. 그냥 여름 = 방학. 결국 사계절 중의 여름은 방학으로만 존재하는 하는 것이다. 이럴 거면 여름을 그냥 방학이라고 부르자. 여름의 존재가치는 방학인 것이다.(*이탈리아는 겨울방학은 따로 없다. 대신, 크리스마스부터 새해까지의 일주일의 연휴기간이 있다.) 즉, 성인이 되기 전 이탈리아 아이들의 생의 1/4 은 여름방학이 차지한다는 말이다.
아이들의 방학은 3개월이나 부모의 휴가가 3개월이 되기는 불가능하다. 이탈리아 직장인의 휴가기간은 3주~한 달이다. 그리하여 일하는 부모들의 자녀는 대부분 조부모의 집으로 향하거나 여름학교를 간다. 학교 건물을 외부 업체가 대여하여 여름학교를 연다. 학교 재학생 외의 외부 학생들도 참여가 가능하고 정규 학교 수업시간과 동일하나 수업 대신 운동이나 수영 등의 체육 활동을 한다. 8월에는 여름학교도 모두 문을 닫는다.
8월은 전 국민이 휴가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대다수 매년 향하는 곳이 비슷하다. 처음 이탈리아에선 매년 같은 장소로 휴가를 가는 이들이 의아했다. 그런데 우리 가족도 이탈리아에서의 삶이 길어지니 점점 동일한 장소를 선호하게 된다. 매년 여름을 보내는 곳이 동일하면 자연스럽게 학교의 친구들과 함께 여름 휴가지에서 만나는 친구들이 만들어진다. 매년 같은 장소에서 쉰다는 것은 정말 큰 안정감을 준다. 낯선 곳에서의 쉼이 주는 미묘한 긴장감은 설렘이 되기도 하지만 익숙한 풍경 속의 쉼은 온전한 놓아버림을 가능하게 한다.
방학이 길다고 애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야 한다던가 선행학습을 시켜야 한다는 개념 자체가 이탈리아 부모들에게 없다. 여름은 그냥 방학이다. 유럽의 미술관 순례나 인문학 소양을 쌓아줘야 한다는 욕심도 없다. 학교에서 배우는 문학, 예술, 역사 그리고 유적이 곧 유럽의 역사인 것을. 학교 공부로 충분하다. 그리하여 이탈리아 사람들은 여름을 이렇게 부른다.
NON FAR NIENTE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눈뜨면 바다에 가고 바다에서 놀고 해변에 자고 해변에서 먹고 바다에서 자고 쉬고 다음 날 눈뜨면 또 바다에 간다. 이른 아침 바다에 도착하면 해가 가장 잘 드는 곳에 초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자신들의 비치타월을 깔고 태양 아래 눕는다. 태어나서부터 매년 왔던 바다다. 누구보다 이 바다를 즐기는 법을 잘 알고 있다. 태양을 피하는 법 따위는 배운 적이 없다. 태양이 뜨겁다고 아이들에게 유난스러운 부모도 없다. 그들 역시 평생 온 이 바다를 즐기고 있을 뿐이다.
'여름 내내 바다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쉰다' 문장을 말로 치환하면 너무나 황홀하지만 그 문장에 나 자신이 녹아들기엔 근육이 필요하다. 한 삼일째가 되면 정말 너~~~ 무 피곤하고 귀찮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매일 바다로 나간다는 것만으로 굉장한 체력을 요한다.
오늘은 그냥 바다 안 가고 숙소에서 쉬자는 말이 목까지 올라온다. 여름은 길지 않은가? 그러나 이탈리아 사람들에겐 하루하루 너무나 아쉽고 짧은 여름이다. 그래봤자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으면서 말이다. 그렇게 살아온 거다 생애 매년의 여름을.
여름을 즐기는 근육은
평생을 단련해야 하는 거구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일생을 수련해야 하는 거구나.
성인이 되기 전 모든 생의 여름날을 바다에서 보내며 아이들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자신들이 어디에서 즐거움을 얻는지 안다. 바다는 아이들에게 네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주는 최고의 선생님이 된다. 여름 내내 바다에서 놀던 아들은 징그럽게도 끝나지 않던 아토피가 가라앉았다. 기침을 하는 아이, 피부가 좋지 않은 아이를 보면 이탈리아 어른들은 무조건 바다에 아이를 데리고 가라고 한다. 바다는 학교이자 병원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참 솔직하다. 칭찬에 거침이 없다. 멋진 자동차를 보면 멋지다고 말하고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면 아름답다고 말한다. 자신이 가진 것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할지라도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일까? 자신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 무엇임을 확실하게 알고 있어서일까? 마치, 성인이 되기 전 18번의 여름을 바다에서 보내면서 무엇이 나에게 행복을 주는지 끊임없이 질문해 보았던 것처럼. 타인에게 흔들림이 없을 만큼 자신을 알고 있다는 것처럼. 자신에 대한 이해를 마치고 어른이 된 것처럼.
아이들은 약속을 한 듯 모래에 앉는다. 낯선 아이가 자연스럽게 자신의 모래놀이 도구를 가지고 와 함께 모래성을 쌓는다. 모래성을 쌓고 나면 바다로 향한다. 아이들은 쉼 없이 다이빙하고 지치면 해변에 누웠다.
언젠가 친구가 이탈리아 남부 바다를 다녀와서 물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왜 그렇게 다이빙을 하는 거야?" 생각해 보니 수영장에서도 바다에서도 아이들은 계속 뛰어든다. 심지어 배를 타고 바다 한가운데 멈추어서 뛰어든다. 절벽이란 절벽에선 다 뛰고 있다. 이탈리아 아이들을 해가 떠서 질 때까지 지겹게 물에서 논다. 생각해 보면 18년째 이탈리아의 여름의 보내면서 해변에서 수영장에서 책 읽는 이탈리아 아이는 본 적이 없다. 메가 슈퍼 점프! 슈퍼 울트라 다이빙! 파워 울트라 대포 점프! 한 번은 절벽에서 초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들이 바다로 뛰어드는 것을 보았다. 뛰어들고 다시 절벽에 오르고 뛰어들고 다시 절벽에 오르고를 반복했다. 절벽이 높지는 않았지만 내 눈엔 참으로 위험 천만해 보였다.
저 아이들의 부모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 걸까?
그때 해변에 누워있던 엄마가 소리쳤다.
"위험해!"
그럴 줄 알았어! 혼날 줄 알았다고!
거긴 아래 바위가 있어 위험하다고!
더 높은 곳으로 가서 뛰어내려!"
어허... 이럴 줄은 몰랐어....
아이들은 마치 내일은 못 뛰어들 것처럼 오늘을 뛰어내렸다.
다음 날이 오면 마치 처음인 것처럼 다시 뛰어들었다.
매일을 오늘처럼 뛰어내렸다.
오늘의 다이빙은 어제의 다이빙보다 숙련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자신이 노련해지는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오직 오늘의 다이빙을 했다.
해가 뜨거워지면 점심을 먹는다. 그러면 누가 먼 저랄 거 없이 말한다.
Davvero perfetto.
(정말 완벽해)
걱정이 너무 많아 남편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나조차, 여름의 고민은 '뭐 먹을까?' 뿐이다. 아이들의 고민은 '어떤 아이스크림을 먹을까?' 뿐이다. 하나 더 고민을 추가하자면 '얼마나 더 멋지고 물을 많이 튀기며 물에 뛰어들까?' 정도겠다.
이렇게 멈추어있는 동안 '누군가는 생산적인 무언가를 하고 있지 않을까?'라는 걱정은 전혀 필요가 없다. 왜냐면 모두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처럼 그들도 뭐 먹을까 고민밖에 할 것이 없다. 왜냐? 어차피 다 노니까! 매일 아침 눈뜨면 똑같은 해변으로 향한다. 매일 같은 사람들을 만난다. 너무나 당연한 듯 아이들은 어제 처음 만난 아이들과 논다. 또 뛰어내린다.
해변에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관찰한다.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이 모여 자연스럽게 함께 놀기 시작한다. 가장 나이가 많이 보이는 아기가 게잡이의 선봉에 서고 꼬맹이들은 빼꼼히 숨죽이며 현장에 집중한다. 분명 처음 만난 아이들인데 평생 호흡을 맞춰온 듯 함께 물고기를 잡고 게를 잡는다. 하찮아 보이는 게 한 마리라도 잡히면 해변은 흥분의 도가니가 된다. 게를 든 소년의 얼굴은 세상을 다 가진 듯 빛난다. 아이들은 여름 내내 실패의 쓴 맛과 성공의 단 맛 사이를 오가며 놀다 지쳐 잠든다. 깨어있는 내내 코와 입으로 밀려들어오는 바다의 짠맛과 태양의 쓰라림을 온몸으로 느낀다. 그렇게 매년 여름은 존재만으로 어린이를 어른으로 성장시킨다. 여름이 매년 우리에게 돌아오는 이유다.
아이들은 점심을 먹고 나면 바로 달려가 아이스크림을 골랐다. 어쩌면 하루 중 가장 설레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똑같은 메뉴판 앞에서 매번 세상 가장 어려운 결정이라는 듯 아이들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누군가 말했다.
아이스크림 고르는 아이들,
우린 저 모습을
진짜 이탈리아의 여름 풍경이라고 해.
바에는 흥겨운 노래가 울려 퍼졌다. 태양은 뜨거웠는데 바를 관통하는 바람은 신기할 만큼 시원했다. 아이들은 춤을 췄다.
Ballate.
Senza vergogna.
L’estate è una danza,
ed è sciocco non farne parte.
춤춰라.
부끄러움 없이.
여름은 무조건 춤이다.
춤출 수 있을 때,
추지 않는 건 어리석다.
춤추는 이안이의 새까맣게 탄 몸이 얼룩덜룩하다. 자국이 있는 부분들이 심하게 아토피가 있었던 자리다. 온종일 헐벗고 다니는 아이에게 그 누구도 피부가 왜 이러냐 묻지도 않고 뚫어져라 바라보지도 않는다. 여름날 춤을 추고 있는 아이 중 하나일 뿐이다.
왜 이탈리아 사람들이 바다를 아이들의 파라다이스라고 부르는지 알 것 같다. 이 파라다이스에서 아이들은 그들이 상상하는 모험을 떠나고 동료를 만나고 헤어지고 두려움을 마주하고 극복하고 결국은 자신을 깨닫는다.
해 질 녘이 되면 아이들은 모래 위에 눕는다. 시간이 어찌 흐르는지도 모른 채 멍하니 누워있다. 파도가 감싸는 바람이 구릿빛 피부를 스치고 손끝과 발끝을 살짝살짝 움직이며 모래를 느낀다. 그렇게 누워 무슨 생각을 할까? 아니,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나일뿐, 오직 그뿐이다.
'그날 나는 혼자 걸으면서 아무와도 생각을 공유하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았던 것 같다.'
17살의 그녀는 그렇게 적었다.
나는 부끄러워졌다. 아무와도 생각을 공유하지 않고 홀로 하루를 보낸 적이 언제인지 잘 기억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혼자 어딘가를 걷는 순간은 많았으나 내 생각을 아무와도 공유하지 않은 적은 드물었다.
-일간 이슬아 수필집,2018, 이슬아 지음
일 년 중 한 계절은 모두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롯이 내가 된다. 모두가 함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계절이 매년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몸과 마음이 건강한 일상을 선물하는지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10대가 된 아이들을 보며 느낀다. 타인이 욕망하는 것에 대한 정보가 전혀 나에게 공유되지 않고 나 역시 나의 욕망을 타인에게 공유하지 않는다. 그렇게 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알게 된다.
한 달을 아무것도 하지 않음은,
한 달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배우는 시간이었다는 것을.
어느 여름날, 3천 살이 된 올리브 나무아래에서 남편이 말했다.
"민주야. 올리브 가지들은 돌아가며 열매가 맺혀. 올해 올리브 열매를 맺은 가지는 이듬해엔 쉬어. 안식년을 가지는 거지. 그렇게 매년 무언가를 할 필요는 없는 거야. 매 순간 무언가를 하기 위해 애를 써야 하는 것은 아냐. 3천 년을 넘게 살아낸 올리브 나무의 지혜인 거야."
3천 살의 나무를 쓰다듬으면 눈시울이 붉어졌다. 올리브 나무는 마치 사람 같았다. 갓 태어난 올리브 나뭇가지는 윤기가 흐를 만큼 매끈매끈했고 3천 살의 올리브 나무 기둥은 셀 수 없는 주름으로 갈라져있었다. 나무를 두드리면 속이 비어있음이 느껴졌다. 이렇게 비어 내야지만 그 유구한 삶을 견뎌낼 수 있는 것일까? 서로에게 엉켜 꼬이면서 자라는 올리브 나무의 특성 때문에 나무의 한가운데는 아이가 들어갈 정도의 공간이 만들어진다. 올리브 나무에 열매가 떨어져 뿌리를 내리면 그곳에서 다시 올리브 나무가 자라나기를 반복한다. 그래서 수많은 가지들의 나이가 서로 다르다. 하지만 누가 더 오랜 삶을 살았는지를 구분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주름이 시간을 알려주었다.
올리브 나무 사이의 공간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면 3천 년의 세월이 관통되었다. 그 사이로 바람이 불어와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이 얼굴에 닿았다. 알 수 없는 벅참이 밀려와 울었다. 하지만 이내 여름도 올리브 나무도 잊었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지 못했기에 달라지지 못했다. 어김없이 타인의 욕망의 정보에 나를 폭력적으로 노출하고서 내 욕망이 아닌 것을 마치 내가 원하는 것인 양 착각하기를 반복했다.
삶 속에서 40번이 넘는 여름을 보냈지만 여전히 철부지인 어미는 고작 10번의 여름을 보낸 아들에게 묻는다.
"이안, 넌 언제 네가 자랑스러워?"
"나? 난 내가 자랑스럽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
그냥 난,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해.
이도를 잘 돌봐주는 나. 이탈리아 어 수업에서 칭찬을 받는 나. 글을 잘 쓰는 나. 이야기를 잘 만드는 나에 대해 많이 생각해. 엄마, 난 과학시간에 자연에 대해 배웠어. 우주는 역사 시간에 배웠거든. 그러니까 자연에는 과학과 역사가 모두 있는 거야. 그런데 나도 자연이잖아.
그러니까,
나에게도
과학과 역사가
모두 담겨있는 거야.
여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여름의 정수를 온전히 누린다.
그저 나라는 우주의 자연 속의 과학과 역사를 탐구한다.
여름의 한가운데서 매년 더 노련하게 바다에 뛰어든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 나라는 우주에 더 가까워진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하며 해 질 녘을 맞이한다.
새로운 여름이 오면 더 잘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