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마 김작가 Jul 03. 2018

아이는 소년이 되었다

로마에서 남매 키우기 #23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이면  절로 나오는 말,


이런데서 삼겹살 구워서 소주 한잔 딱인데


 경치 좋은 곳에서의 풍류는 우리 것인 줄만 알았더니 이태리 사람 한국 사람 닮았다 닮았다 해도 이런 것까지 닮았을 줄은 몰랐다. 봄이 오고 가을이 오면 친구들 말버릇처럼 하는 말이 날 좋을 때 밖에서 고기 한번 구워먹자다.


 산 들 호수 경치가 좋은 곳이면 어김없이 불 피운(?) 흔적을 찾기가 어렵지 않다. 그렇다고 아무 데나 막 불을 피우는 것은 아니고 Area di Picnic이라고 지정된 장소들이 있다. 벤치 하나에 바비큐 공간 이렇게 작게 마련된 공간이 있는가 하면 대놓고 구워라 먹어라 마셔라 놀아라 판을 깔아주는 대규모 공간도 있다.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이면 어김없이 만나게 되는 바비큐 가능한 피크닉 공간 / 사진 :  laceno.org
야외에서 고기구워먹는 거 참 좋아하는 이탈리아사람들, 피크닉 공간이 아니라도 공원 어디에서나 고기굽는 모습을 만나기는 어렵지 않다. / 사진 : firenzemeteo.it

어디 고기 굽는 것만 닮았을까?


수년 전 남편과 로마에서 동쪽 끝 바다로 향하는 길에 시간이 애매해져 이름 모를 바닷가 마을로 들어섰다. 바다 절벽에 딱 한국 횟집 분위기의 식당이 있었다. 밤이 되고 바람이 불어 우리가 앉은자리에 살짝살짝 바닷물이 느껴지는데 그 식당에서 처음으로 이탈리아 회를 만났다.


회라면 죽고 못 사는 내가 그날 처음으로 홍합회를 먹어보았다. 물론 초장은 없었지만 꽤 황홀했던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날 이후 바닷가 마을에선 꼭 pesce crudo를 시킨다. 이젠 올리브유와 레몬을 뿌려 먹는 회도 제법 잘 즐긴다, 여전히 초장은 아쉽지만 말이다.

풀리아 여행 중 어부가 하는 식당에서 만났던 Pesce Crudo(이태리어로 신선한 생선이라는 뜻이다. 우리식으로 회인데  주로 홍합, 새우, 오징어가 나온다)




6월 초 우린 솥뚜껑을 차에 싣고 산을 올랐다. 우리가 향한 곳은 로마에서 동쪽으로 80킬로 정도 차로 한 시간 반을 달리면 만나게 되는 monte livata이다. 로마에서 떠난 지 한 시간 정도가 되자 굽이굽이 산길이 나타났다. 산길을 달리기 시작해 30분 정도 지나자 넓은 평지가 눈앞에 펼쳐졌다. 겨울이면 스키어들로 붐빌 곳이지만 아직 여름도 오지 않은 애매한 6월의 산은 고요하다. 여름 초입의 산 아래의 세상의 더운 공기가 무색하게 산 위의 세상은 서늘했다.

우리 일행은 산길 초입에 마련된 피크닉 공간에 자리를 잡았다. 바비큐 시설이 따로 없어서 챙겨 온 버너에 솥뚜껑을 올렸다. 남편이 몇 년 전 로마 어디에서 솥뚜껑을 구해왔다. 그 위에 고기를 구울 때면 유난스럽다 핀잔을 줬는데 이렇게 빛을 발한다. 이건 분명한 칭찬 감이다.


유학, 가이드 다들 제각각의 이유로 로마에 와서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인연을 맺었다. 각자 타지에서의 삶이 평온하기만 하진 않았을 터 내 나라 아닌 곳에서의 일상이 결코 녹녹하진 않다.


그래도 그 일상 속에 이런 풍경 속에서 삼겹살을 굽는 추억이 자리하니 다들 이런 걸 상상이나 했냐며 감동에 젖는다. 유리병 한가득 담긴 저며진 마늘에 락앤락 가득 채운 파절이까지 세상 부럽지 않다. 산을 오르네 래프팅을 하네 계획은 무성했는데 삼겹살에 이야기꽃이 더해지니 모두 엉덩이가 무거워졌다. 오후가 되자 따뜻해진 햇살에 취기가 더해져 나른해진다.


저 멀리 무언가 움직이는데 소였다. 한두 마리 산에서 내려와 풀을 뜯고 있었다. 이안이가 집에서 가져온 망원경으로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뭔가 수상한데? 우리 탐험을 떠나자!


자연 속에서 가장 부지런한 여행자는 단연 아이들이다. 엄마는 의도치 않았는데 아이 덕에 부지런해진다.




일행을 뒤로하고 아이 둘의 손을 잡고 탐험을 떠났다. 세상에, 두세마리 정도인 줄 알았는데 수십 마리의 소들이 모여있었다. 아이 둘이 풀을 뜯어 손을 내미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마치 반지 원정대 같다. 미지의 세상을 향해 두렵지만 길을 나서는. 뒤돌아보니 일행이 어느새 저 멀리 점처럼 보였다.


 _이안, 아빠가 안 보여.
 _엄마, 걱정 마! 이 하얀 길만 따라가면 돼. 내가 알아. 나만 따라오면 돼. 난 세상의 왕이거든!

하얀 길을 따라 앞장선 아이의 등을 바라본다. 내 손을 잡고 걷던 여름에 태어난 나의 첫 번째 아이가 내 손을 놓고 앞서 걷는다. 여섯 번째 여름을 앞두고 아이는 어느새 소년이 되어있다. 더 이상 자신이 귀여운 것은 싫은 소년이 금세 어른의 모습을 하고 내가 뒤따르지 않아도 모험을 떠나 버릴 것만 같다.


아니다, 그런 생각을 무얼 해. 어차피 먼 훗 날의 일인걸. 난 천천히 아이 뒤를 따른다. 아이가 뒤 돌아본다. 아이에게 달려가 손을 잡고 함께 걷는다.  소년의 모습이라해도 내 손을 잡은 아이 손은 여전히 자그마하니 이상하게 안심이 됐다.

written by iandos


*해당 글에 들어간 출처를 밝힌 사진을 제외한 모든 사진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매주 수요일 혹은 목요일 원고 발행됩니다.


#참고 :

monte Livata(리바타 산)은 라치오 주 로마현에 위치한 Subiaco(수비아코)에 위치해 있다.(로마에서 차로 한시간 반 소요) / 사진 : google


monte Livata의 겨울 풍경 / 사진 : google


매거진의 이전글 축구가 재미없는 아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