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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마 김작가 Apr 17. 2024

버추얼가수가 음방 1위 하는데 시적인 노래를 찾아오라니

이탈리아 초등학교 5학년 숙제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큰 이슈는 버추얼 가수 최초 음방 1위를 한 플레이브다. AI 쳇 GPT 화두라고 하기엔 민망할 정도로 일상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업에 아주 깊숙하게 자리 잡았다. 나는 썸네일과 ppt 등을 작업할 땐 미리캔버스를 활용하는데 여기에도 AI툴이 등장했다. 지난달 올리브유 유튜브 영상 썸네일을 작업하면서 영화 콜미바이유어네임 스타일의 올리브유 판매 썸네일을 요청했는데 결과가 이 꼬락서니였다. 


역시나 천하를 호령할 무적의 검을 쥐어주어도 쓸 줄을 모르면 무적의 검으로 무도 못 써는 수가 있다.

응… 아니야…

여하튼 세상은 휘몰아치는데 나는 어째 플레이브 노래를 듣지 않았다. 이렇게 나도 대세에 거부감이 드는 그런 사람이 되었나 싶던 차에 유튜브 알고리즘이 면전에 1분짜리 쇼츠를 들이밀었다. 인생녹음중이라는 채널이었는데 부부가 차 안에서 나눈 대화의 실제 녹음분에 남편이 코퀄의 하찮은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입혔다. 2개월이 지난 이 숏츠가 왜 지금에서야 나에게 떴는지 모르지만(알면 어쩔 건데) 10개 남짓의 영상들로 나의 일상의 행복이 수백 배가 되었다.


나는 구독에 인색한 사람인데 즉시 구독을 눌렀다. 이들의 다음 영상을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난 이 채널의 2만 3천 번째 구독자가 되었고 다음 날 릴스 알고리듬은 유머 피드로 날 인도했고 다시 한번  그들의 영상을 인스타그램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들의 유튜브에 들어가고 나는 눈을 의심했다. 47만 구독자라니, 반나절만에.... 아내분이 노래고수인데 퇴근길에 운전하는 남편이 졸지 않게 노래를 불렀고 그 일상이 아까워 남편이 녹음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실제 둘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올렸다가 아내가 불편해해서 영상을 내렸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 애니메이션을 입혔고 몇 개월 뒤 그야말로 떡상을 했다.


진짜 행복뿜뿜뿜


그런데 문득, 이들과 플레이브가 같은 선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목소리에 입혀진 가상의 캐릭터.


코로나 기간 동안 가족이 운영한 유튜브 로마가족 채널의 이야기로 이탈리아의 문화를 알려주는 학습만화가 제작되었다. 이안과 이도 주인공이다. 내가 만들어가는 콘텐츠의 많은 부분에 아이들의 야이가 담겨있어서 만나는 사람들도 가족인 경우가 많은데 이 만화책이 세상에 나오고부터 가족 모두 함께인 만남이 더욱 편해졌다. 만화책을 보여주는 순간 아이들끼리 서먹한 시간이 사라진다. 가상의 주인공이 실제 한다는 사실만큼 서로의 낯 섬이란 벽을 허물기에 강한 것이 없다. 모든 것이 가능한 세상이 왔다. 심지어 가상과 현실을 넘나듦에 경계도 사라진다.


엄청난 기술과 치밀한 기획이 필요한 세계와 사무직의 영어로 노래하길 즐기는 일반인 중에서 뛰어난 기술을 가진 부부의 의도치 않은 기획의 세계가 공존한다.


4년 동안 꾸준하게 콘텐츠를 올려 1만 4천 명의 구독자를 달성한 유튜브를 운영하는 나는 2개월 전에 올린 1분짜리 영상으로 반나절만에 47만 명의 구독자가 된 유튜브를 보며 어제 웃었던 그 장면에서 또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


가상 이도 vs 현실 이도




이 와중에 이탈리아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은 시대에 역행하는 숙제를 가져왔다.


"엄마, 이탈리아어 숙제가 시적인 노래를 찾아서 반에서 소개를 하는 거야. 나는 한국 노래를 소개하고 싶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그러면 내가 번역을 해서 소개하라고 했어. 한국 노래 중에 시적인 노래가 있어?"


버추얼 가수가 음방 1위를 하는 세상에 시적인 노래 찾아서 되겠니?라고 생각하며 손은 이미 유튜브에 검색어를 입력하고 있었다. (나는 이런 걸 되게 좋아한다.)


"엄마가 노래 몇 개를 들려줄 테니, 네가 듣고 좋은 것을 골라."


그렇게 몇 개의 노래를 들은 뒤 최종 후보에 5곡이 올랐다.


패닉 [달팽이]

아이유 [밤편지]

윤도현 밴드 [나는 나비]

카 더가든 [나무]

김진호 [폭죽과 별]


"와... 한국은 진짜 시적인 노래가 많네. 다 정말 좋다. 음... 그래도 난 김진호의 [폭죽과 별]이 제일 좋아. 나 노래 번역 다 하면 이 사람 노래 더 들어봐도 돼? 밑에 뜬 노래들 보니까 제목들이 다 들어보고 싶어. 특히 [엄마의 프로필 사진은 왜 꽃밭일까]"


이안 군은 번역 중 / 동시통역 수준 부럽다

아들은 책상을 두고 바닥에 쪼그려 엎드려 한국말 노래를 이탈리아말로 전환했다.


[김진호 "폭죽과 별" 가사]

[Verse 1]
나를 터뜨려줄
힘 있는 사람만 기다렸네
하늘 위로 날아올라 반짝이고 나면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겠지
소리쳐주겠지
나 그 기분이 좋았고
딱 그 위치가 좋았어

[Pre-Chorus]
그러다 보니 내 옆에
별이 닿을 것 같네
별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만 싶네
날 다시 하늘 위로
날려줄 사람만을 찾고
그들 손에 길들여져 버린
폭죽 하나로 남네

[Chorus]
난 다시 하늘 위로 떠오르고
사람들은 날 보고 소리 지르고
난 다시 재가 되어 땅에 내리고
사람들은 나를 밟고 떠나가고
                                                    
[Verse 2]
하늘에 잠시 떠올랐던
그 순간 별들에게 물어봤어
너희들은 좋겠다고
계속 빛나고 있으니
폭죽에게 별들이 말해줬어
사람들은 잊곤 한대
계속 빛을 내고 있으면
빛인 줄도 모른다고

[Pre-Chorus]
외롭거나 누군가
그리운 날들이 오면
그제야 가끔씩
별들을 바라본다고
환호 속에 반짝이는
커다란 폭죽보다
침묵으로 빚어진
외로운 빛일 뿐이야 별은

[Chorus]
난 다시 하늘에서 내려오고
사람들은 날 보고 끝났다 하고
난 다시 재가 되어 땅에 내리고
사람들은 나를 밟고 떠나가고
                                                                    
[Bridge]
별은 계속 하늘을 빛내겠지
폭죽은 흙이 돼 땅을 빛내겠지
하늘과 땅 그 사이에 머물던
우리들의 모습들을 바라보네

[Outro]
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
라라라라라라라, 라라라라


"엄마, 어깨를 나란히 하고만 싶네, 가 무슨 뜻이야? 엄마, 여기서 소리를 친다는 건, 소리를 지르는 게 아니라 환호한다는 거지? 엄마, 침묵으로 빚어졌다는 건, 무슨 의미 이야?"


이안이 찾은 노래 영상은 한국어 가사와 영어 가사가 함께 있었다. 한국어로 이해가 되지 않는 가사는 영어 번역을 참고해 이탈리아어로 바뀌었다. 그렇게 이탈리아어 가사가 완성되고 이안이 물었다. 마지막에 메시지를 적어야 하는데 어떻게 적어야 할까?


"네가 생각하는 메시지는 뭐야? "

"폭죽을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항상 빛나있으면 사람들이 빛나는 줄 모른다. 소중한 걸 모른다? 어? 이거 엄마가 항상 나에게 말하는 거 아니야? (항상 감사하란 말이닷!!) "


"네가 생각하는 폭죽과 별의 차이는 뭐야? 엄마가 생각하기엔 폭죽은 사람들이 봐주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같아. 내가 원해서 한다기보다는 남들이 좋아해 주고, 그러기 위해선  남들이 날아 올려줘야 한다고 생각해. 빛나는 일조차 누군가가 줘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그러니까 폭죽은 누군가 봐주는 것만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같아. 그런데 별은 스스로 빛을 . 그리고 누가 보지 않아도 계속 빛을 . 사람들은 힘들  외로울  하늘을 보며 별을 찾아. 그게 언제일지 별은   없어. 언제든 누군가 별의 빛이 필요할  별을 찾을  별이 빛내고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

"항상 빛을 내고 있어야 하지."


이안,
넌 아무도 봐주지 않아도 항상 빛을 내고 있을 수 있어?


"....... 아니."


"그럼, 언제나 빛나려면 어떻게 해야 해?"

"........ 모르겠어."


"누가 나를 빛내주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빛나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닐까? 내가 빛을 내는 일 자체가 가치 있다고 스스로 믿어야지. 이 일이 분명 누군가에겐 필요하다고 믿어야 해. 그러니까 누가 봐줘서 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좋아서 내가 믿어서 하는 일이어야 해. 그리고 나 스스로 빛날 줄 알아야 해. 폭죽은 마지막에 빛을 내잖아. 어떻게 되고 나서 빛을 냈어?"

"재가 되어 사람들이 밟고 지나고 나서 흙이 되어서."


"폭죽이 흙이 되어 빛을 내고 있는 걸 사람들이 알아? 봐주는 걸까?"

"아니."


"그런데 폭죽은 이제 아는 거네. 자신이 빛이 난다는 걸.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엄마, 나 이렇게 메시지를 적을 건데 한번 들어줘."


만약 사람들이
네가 무언가를 한다는 걸 몰라도
 네가 알면 된다고.


"엄마, 내가 페레즈에게 이런 말 해준 적이 있어. 페레즈가 안 했는데 선생님이 혼낸 거야. 페레즈가 억울해서 울었어, 내가 페레즈에게 말해 주었어. : 선생님이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네가 아는 게 중요해. 말하지 마. 그냥 네 마음에 담고 있어."

네가 알면 된다고.

다음 날, 학교에서 돌아온 이안이 발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엄마, 선생님이 영어로 [폭죽과 별]을 검색하니까 되더라고. 그래서 다 함께 노래를 들었어. 알레산드로는 폭죽이 별을 질투하고 별이 폭죽을 질투하는 것이 마음에 들었대. 안토니오는 항상 별이 좀 무서웠는데 이 노래 덕분에 별이 너무 좋아졌다고 했어. "


며칠 , 함께 하교를 하던 루카가 [폭죽과 ] 후렴 부분을 부르기 시작했다. 루카의 아빠가 집에서  함께 노래를 들었다고 했다. 이안의 반친구들이 한국말을 알고 다고 듀오 링고 앱으로 매일 한국말공부를 시작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이안은 페레즈가 발표한 노래가 무척 마음에 들었단다.  콜드플레이의 [FIX YOU]였다. 이안은 콜드플레이를 BTS  함께 노래한 가수로 기억한다.


로맨틱, roman-tic이라는 단어는 '로마 사람의 방식으로'라는 뜻이다. 로마 시대의 귀족들은 라틴어를 배우며 철학, 신학 등을 이야기한 반면 소설 같은 문학은 무시하는 분위기였다. 그리서 라틴어라는 고급언어대신 소설에는 로마방언 : 로만자(romanza : 현재 이 단어는 낭만이라는 이탈리아 단어이다.)를 사용했다. ‘로마사람의 방식으로’ 쓰인 글들은 사랑과 낭만을 이야기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고 현재 로맨틱의 의미로 이어진다. 로마사람의 방식, 로맨틱은 시로부터 흘러들어와 넘쳤다. 이들에게 시는 여전히 중요하다.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다음 침공은 어디? >에서 핀란드 교육을 담은 편에서 미국의 교육 상황을 들으며 선생님들이 핀란드의 교육관에 대해 인터뷰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중에 감독이 어떤 말을 하자 핀란드 선생님이 할 말을 잃고 망연자실한다.


미국의 학교에는 시론을 가르치는 수업이 없어졌습니다.




버추얼가수와 AI툴 듀오 링고 유튜브 알고리즘 속에 시가 혼재하는 2024년의 봄을 맞이한다.


그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고 어느 하나 놓쳐서는 안 될 것 같은 가치와 기술들이 휘날리는 봄날에 혼자 되뇐다.


누가 봐줘서 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좋아서 내가 믿어서 하는 일이어야 해.

그리고 나 스스로 빛날 줄 알아야 해.


세상엔 수많은 답이 있고,

정답은 나의 답이야.

나의 답을 찾는 일을 놓아버리지 마.


저 멀리 이안이 듣고 있는 노래가 흐른다.


When you try your best, but you don't succeed
당신이 최선을 다했지만 성과를 이뤄내지 못했을 때

When you get what you want, but not what you need
당신이 원하던 것을 얻었지만 당신이 필요로 하는 게 아니었을 때

When you feel so tired, but you can't sleep
당신이 지졌으나 잠이 오지 않을 때

Stuck in reverse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네요

And the tears come streaming down your face
눈물이 당신의 얼굴에 흐를 때

When you lose something you can't replace
대체할 수 없는 무언가를 잃었을 때

When you love someone, but it goes to waste
누군가를 사랑하지만 이루어지지 않을 때

Could it be worse?
이보다 더 나쁠 수 있을까요?

But if you never try you'll never know
하지만 시도해보지 않으면 당신은 절대 알 수 없을 거예요

Just what you're worth
당신이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인지 말이에요

_ Cold play [FIX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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