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두 언어가 혼란스럽지 않은 아이
#.아이와의 대화 1 :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뭐라고 해야 해?]
_엄마, 학교에서 친구들이 날 보고 치네제(중국인) 라고해. 아! 안토니오 빼고, 안토니오는 그러면 이렇게 말해. 아니야, 이안이는 코레아노(한국인) 야.
_그래? 친구들이 이안이에게 치네제라고 했어? 그래서 이안이는 뭐라고 했는데? 바보야! 난 코레아노야! 이렇게 말해줬어?
_엄마!!!! 바보라고 하면 어떡해!!! 그런 말은 하면 안 되는 거야!! 그러면 산타할아버지가 엄마가 받고 싶은 예쁜 반지 안주다고!! (그나저나 내가 언제 반지 받고 싶다고 한적 있나??) 그리고! (친구들이) 잘못한 것도 아닌데 내가 왜 뭐라고 해?
그런데 엄마아~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나 자꾸 코안이 간질간질해. 재채기가 나올 거 같다고. 재채기하면 콧물이 나올 거 같다 말이야. 그래서 말인데, 중요한 게 뭐냐면, 콧물은 어디에서 나오는 거야?
아이에게 뭔가 더 말을 하려다 말았다. 그냥 콧물이 어떻게 나오는 건지 이야기하며 유치원으로 향했다. 친구들이 그렇게 말하면 꼭 한국사람이라고 이야기해줘야 해 라고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혹여나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중국인이라는 단어가 기분 나쁜 말 놀리는 말이라는 생각을 심어 줄 것만 같았다. 그런 말을 들으면 꼭 아니라고 말해야 해 라고 이야기해주면 안 될 거 같았다.
친구들이 잘못한 게 아니라는 아이의 말속에 그 친구들이 몰라서 그런 건데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닌데 내가 왜 일일이 거기에 반응해줘야 해?라는 뜻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중국인이라는 말이 멍청이, 바보 같은 나쁜 말이 아닌데 왜 내가 그렇게 나쁜 말로 대답해야 해?라고 되묻는 거 같아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이의 학교에는 올해 몇몇의 중국 아이들이 입학한 것이 보인다. 이안이 친구들이 아이에게 중국인이라고 부를 때 만약 기분 나쁘게 반응한다면 분명 그 아이들은 상처받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첫째 유치원으로 향하면서 아이가 말했다.
_엄마, 난 우리 학교가 너무 좋아. 이도도 나처럼 커지면 우리 학교에 오는 거야? 그러면 너~ 무 좋을 거 같아.
생각했다. 아이는 어떠한 의미 없이 학교에서 있었던 일 중 하나를 나에게 이야기해 주었던 거다. 모든 것을 다 떠나서 아이에게 학교는 즐거운 곳이다.
아이가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을 아이 스스로 어떤 기분이 들었다고 말하기 전에 내가 이런 기분이었어?라고 먼저 짐작하지 말자. 아이는 스스로 느끼고 감당할 수 있는데 내가 아이가 해주었으면 하는 행동과 감정을 요구하고 심어주지 말자. 아이는 나보다 더 생각이 깊고 현명하다.
#이안_대화속깨달음
#잘못한게아닌데_왜뭐라고해야해
#그나저나_내가_반지가지고싶다고한적있니
#.아이와의 대화 2 :
[쿵후 아니고 태권도 라니까!]
_엄마, 그럼 내일부터 나 쿵푸하는거야?
_쿵후? 아니, 쿵후 아니고 태권도라니까?
_쿵후 아니야? 태궁도?
_이안, 쿵후는 중국 무술이고 태권도는 한국 꺼야.
_무술이 뭐야?
-이렇게 손으로 얍얍하고, 발로 합합하는거. 한국, 중국, 일본 다 각자의 무술이 있어.
_으응, 그렇구나, 알겠어. 그런데 난 지금도 이렇게 힘이 센데 태궝도까지 하면 너무 힘이 세질 거 같은데.
_세상에, 이안이 지금보다 더 힘이 세지면 어떡하지?!?! 슈퍼 히어로처럼?!?!?
여름방학 전 로마 한글학교 종업식 행사에서 태권도 발표가 있었다. 아이는 현판을 손으로 발로 격파하는 모습을 홀린 듯 바라보았다. 여름이 지나며 아이는 5살이 되었고 드디어 태권도 수업을 받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한글학교 개학을 앞두고 태권도를 배울 생각에 잔뜩 신이 났다.
그런데 아이는 태권도를 쿵후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아이가 무술을 접하는 건 모두 만화를 통해서다. 쿵후 판다. 쿵후 보이. 그러고 보니 아이가 미디어로 접한 무술이 모두 쿵후다. 생각해보라. 이탈리아에 살면서 아이가 태권도를 접할 기회가 달리 있었겠는가?(심지어 유치원 특별활동에도 쿵후가 있다.) 어쩌면 이탈리아의 5살 남자아이의 세상 속의 무술은 쿵후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이탈리아에 살면서 이 나라 사람들이 생각보다 정말 한국을 모른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물론, 알기는 한다. 하지만 우리가 기대하는 분야와는 좀 다르다. IT 강국, KPOP, BTS 등을 기대하지만 (어쩌면 청소년들은 좀 다를 수도 있겠다.) 적어도 내 또래의 학부모들에겐 거의 무지의 영역이다.
아이의 반 부모들 중엔 한식을 단,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고, 올해부터 아이가 태권도를 배울 거라고 했더니 태권도가 뭐냐고 물은 엄마도 있었다.(올림픽 종목임에도!!! 하긴, 한국사람들도 잘 모르는 올림픽 종목이 많지.)
친구가 이탈리아 남편과 연애를 할 때 시부모님께서 생각하고 계셨던 한국의 상황은 한국전쟁 직후 수준이었다. 그 나이 때에 노출된 한국은 그 정도였던 것이다. 그게 불과 13년 전이다. 그 이후 많이 달라졌다.
주말 영화로 공중파를 통해 이탈리아 말로 더빙된 부산행, 아저씨를 만날 수 있었고, 아이들 생일파티에는 강남스타일 노래가 울려 퍼졌고 어린이 프로에서 로보카 폴리와 슈퍼윙스가 방영된다. 장난감 코너에는 슈퍼윙스와 로보카 폴리 섹션이 따로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을 잘 모른다. 폴리와 윙스가 한국에서 왔다는 것을 아는 이탈리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면 학창 시절 내가 배운 서양사도 현대사는 아니었다. 깊이 있게 배우지도 못했고 라틴아메리카나 아프리카는 서양사의 식민지 정도로만 언급되었다. 때때로 외국에서 아시아에 대한 낮은 이해도를 만나면 불쾌하면서도 이들도 학창 시절에 우리에 대해 그 정도의 지식만을 접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이탈리아 학교에서 깊이 있게 한국에 대해 가르치지 않을 것 같다. 투어를 할 때 한국 사람들도 이탈리아가 통일된 지 100년이 좀 넘었다는 것, 이탈리아 말이 따로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우리에게 이탈리아가 익숙한 것은 미디어를 통해 이탈리아가 많이 노출되고 이탈리아 사람의 방송진출 때문이 아니었을까? 반대로 이 나라에서 노출되는 한국은 남북한 상황이 가장 큰 부분이다. 디테일하게 한국을 알기란 결코 싶지 않다. 더욱이 사회에 진출한 다양한 분야의 한국인을 접할 기회도 많지 않다.
이탈리아는 정보가 빠르게 소비되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지금 3,40대의 사람들이 아시아를 바라보는 느낌은 우리 부모님 세대가 외국인을 보는 관점으로 이해해야 한다. 부모님 세대에는 금발은 다 미국인, 흑인은 아프리카 사람이라고 생각했지 않은가?
그건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미디어든 삶에서든 가장 많이 노출되는 나라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이 아시아 사람 = 중국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하는 건 그만큼 아시아에 대해 중국이 많이 노출되었기 때문 아닐까? 아이가 무술은 쿵후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말이다.
아이가 누군가에게 중국인?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들이 잘 모르니 네가 아시아에 대해 알려주렴 이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정작 아이도 누가 물으면 한국인이에요 라는 정도로 대답만 할 줄 알지 다른 아시아 나라에 대해 알지 못한다.
가장 중요한 건 아이가 한국을 좋아하는 것이고 아이가 한국이 좋으면 친구들에게 말해주고 싶어 질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우리 가족이 이들에게 매력적으로 어필되면 우리 주변의 이탈리아 사람들도 분명 한국에 대해 궁금해할 거라고 믿는다.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이에게 내가 알려주고 싶어서 자꾸 말할 수는 없으니까.
남들이 우릴 중국인이라고 해서 한국에 대해 알려주어야겠다 가 아니라 아이가 한국이 너무 좋아서 알려주고 싶어 라는 마음을 가지도록 해주고 싶다. 그걸 위해서 아이뿐만 아니라 우리 부부도 한국을 잘 알아야 할 텐데, 참 어렵다.
#쿵후아니고_태권도
#아는것이힘
#여전히한국에는_무지한_이탈리아
#그런_나는 _한국을잘알고있나
#. 아이와의 대화 3 :
[터닝 메카드, 이탈리아 입성]
_엄마! 엄마! 들었어?? 터닝 메카드라고 하는 거 들었어? 터닝 메카드라니!! 이안이 말(한국말)을 하잖아!!
이태리 오래 살고 볼일이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이탈리아 어린이 채널에서 새시리즈로 터닝 메카드를 방영해 준다. 이탈리아 말로 터닝 메카드를 보는 날이 오다니!
아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시간에
시작을 하는데 티브이에서 주인공이 터닝 메카드라고 소리치자 아이가 난리가 났다. 한국말을 한다고 말이다.(터닝 메카드가 한국말이었던 거다.ㅋㅋㅋ) 주인공들 이름이 불릴 때마다 아이는 흥분하고 신나 했다.
며칠 전 유튜브를 보던 아이가 혼잣말을 했다.
컴퓨터에 들어가고 싶다.
그 말을 듣고 놀라서 물었다.
-왜? 컴퓨터에 들어가고 싶어?
-왜냐면 저 친구들이랑 놀 수 있잖아.
아이는 이 곳의 친구들과도 즐겁게 지내지만 때론 같은 나이 또래의 한국 아이들과 놀고 싶어 한다는 것이 느껴질 때가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공룡 메카드, 다이노 코어 이야기를 한국말로 하며 놀고 싶은 거다.
지난 주말엔 한식당에 밥을 먹으러 갔는데 마침 여행을 온 한국인 가족이 옆 테이블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그 가족의 아이는 이안이 보다 1살이 더 많았다. 식사 전 이안이는 포켓몬 카드를 사서 들고 있었는데 아이가 관심 있어했다. 어떤 위화감도 없이 바로 두 아이는 신이 나서 포켓몬 카드 이야기를 했다.
결국 두 아이는 같이 포켓몬 카드를 하나씩 더 사서 서로 카드를 보여주며 놀았다. 하지만 이미 식사를 마친 가족이 먼저 식당을 나서고 그들을 보며 아쉬운 듯 이안이가 말했다.
친구가 되고 싶었는데……
11월에 한 달간 한국에 휴가를 간다. 언제나 우리 부부 일정에 아이들을 데리고 다녔는데 이번 휴가에는 이안이 또래의 친구들을 만날 기회를 많이 만들어 줄 계획이다. 서울에선 아이와 함께 경복궁 투어도 받아야지. (때마침 한국 자전거나라가 생겨서 가족 모두 투어를 참여할 생각이다.)
그보다 터닝 메카드가 이태리에서 대박 나면 좋겠다. 아이가 유치원 친구들이랑 터닝 메카드 이야기를 하는 날이 오면 얼마나 즐거워할지 눈에 선하다. 매일 아침 호들 갑을 떨며 유치원 가방에 장난감을 넣어 신이나 달려갈 텐데. 무엇보다 한국에서 공수하지 않아도 여기서 터닝 메카드를 살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얼마나 편할까?
#터닝메카드_이태리대박기원
#그나저나_터닝메카드가_한국말이라니요
한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늦은 오후에는 유치원 친구 생일파티가 있었다. 불과 올해 봄에 이탈리아 생일 파티에서 즐기지 못하는 아이, 여름에는 축구를 싫어하는 아이에 대한 글을 썼는데, 몇 달 사이 아이는 누구보다 생일파티에서 적극적으로 즐기고 있었다.
<이탈리아 생일파티가 재미없는 아이>
https://brunch.co.kr/@mamaian/29
<로마에서 태어나 로마에서 자라면서, 축구가 재미없는 아이>
https://brunch.co.kr/@mamaian/40
여름방학이 끝나고 다시 시작하는 학기에는 축구교실을 신청하지 않았다. 여름방학 전, 아이가 몇 번이나 축구가 싫다는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 아이가 스스로 축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친구들과 축구하는 것이 재미있다고 했다.
두 언어의 아이는 성장한다. 아이는 더 이상 두 언어가 혼란스럽지 않다. 아이의 두 세계는 어느새 하나가 된다. 한국을 좋아하고 축구를 재미있어하는 아이가 고맙다. 세상에 가장 쓸데없는 걱정이 연예인인 걱정, 자식 걱정이라지.
그래, 안다.
그런데, 알면서도 이 걱정들 놓지는 못하겠다. 영원히.
written by iand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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