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서 남매 키우기 #26
_엄마, 그거 알아? 몇 밤 더 자면 nonni 생일이래.
(10월 2일 노인의 날을 이탈리아에선 festa dei nonni, 할아버지 할머니 축제의 날이라고 한다. Festa는 축제와 생일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아이는 아마 생일로 이해했나 보다. 이안이 학교에선 이 날 조부모들을 모두 초대해 행사를 한다.)
_ 그날은 모든 할아버지 할머니가 다 온데. 그런데 그거 알아? 하늘에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도 온다는데? 선생님이 그랬어. 그러니까 엄마의 엄마도 올걸?
_정말? 엄마의 엄마도 온데?
_응!! 온데. 그런데 엄마의 엄마는 엄마처럼 아름다워? 엄마의 엄마는 이름은 뭐야?
_이안이는 엄마의 엄마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하고 싶어?
살아서 축하해요.
다시 죽지 않게 해줄게요.
_그런데, 그럼 그날 왔다가 그날 지나면 다시 하늘로 가야 하는 거야?
_어? 선생님이 그런 말은 안 해줬는데.... 그건 모르겠어.
_그래, 엄마의 엄마도 오면 참 좋겠다. 그지?
아이가 알 리가 없지만 그날은 추석을 하루 앞두고 있었다. 아이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날 이야기를 한 거였지만 난 추석을 떠올렸다. 눈시울이 붉어지고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불과 일주일 전이 엄마의 생일이었다. 곁에 없는 이의 생일날은 언제나 마음을 아릿하게 한다.
_아! 맞다. 그럼 축제날에 이안이는 뭐해? 시를 외워? 노래해?
아이의 학교는 축제날이면 언제나 시를 준비한다. 세 살, 유치원 시작부터 매년 행사마다 시를 준비했는데 아이는 매번 입만 뻥긋뻥긋 구색만 갖추었다. 그래도 너무나 당당하게 얼마나 입을 크게 벌리는지. 올해도 뻔하지 입만 맞추겠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의 질문에 아이가 길에 멈추어 섰다.
들어볼래?
Ai nonnini
I nonni sono grandi ma tornano bambini
Quando ridono e giocano con i nipotini.
Raccontano le storie di tanti anni fa,
di quando erano piccoli la mamma ed il papà.
Ci tengono per mano con tanta tenerezza
ed hanno nello sguardo infinita dolcezza.
Per sempre, nonni cari, io vi ringrazierò.
Da grande, queste coccole, a voi io rifarò!
할아버지 할머니께
할아버지 할머니는 어른이죠.
하지만 우리와 웃고 장난칠 땐 아이로 돌아가요.
아주아주 오래전 이야기를 들려주죠.
엄마 아빠가 어릴 때 이야기요.
우리는 사랑을 가득 담아 손을 잡고
끝나지 않을 달콤한 눈빛으로 바라보아요
사랑하는 할아버지 할머니, 언제나 고마워할 거예요
아주 크게 계속 계속 껴안아줄 거예요
작은 입에서 시가 흘러나왔다. 5살 이탈리아 말로 시를 외우는 소년이라니!! 세상에, 내 아들이지만 너무 멋지잖아. 넋을 놓고 아이를 바라보았다. 시가 끝나자 심하게 호들갑을 떨며 아이를 안아주었다.
행사날,
이탈리아 행사는 사실 별거 없다. 유치원복 입고 학년별로 나와 시를 외우고 노래를 한다. 이안이 아래 학년의 아이들은 울음바다가 되어 버리고 그것마저 정겹다. 우리 반 엄마들은 우는 아이들은 보며 불과 1년 전 우물쭈물 울어버리던 우리 아이들이 떠올라 뭉클해졌다. 행사 마지막엔 아이들 모두 풍선을 하늘로 뛰운다. 할머니를 할아버지를 위한 기도를 담아.
아이는 알면서도 괜히 물어본다.
_우린 할아버지, 할머니가 없네.
_한국에 계시잖아. 그래도 다 보고 계실 거야. 그리고 알지? 엄마의 엄마는 하늘에서 보고 계신 거. 모두가 다 이안이를 보고 있어.
_응, 알고 있어.
하늘로 풍선을 날려 보낸다.
하늘로 마음을 담아 보낸다.
아이의 엄마의 엄마,
나의 엄마에게,
나의 아이의 시를,
노래를,
나의 마음을,
written by iand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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