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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마 김작가 Oct 13. 2018

이탈리아 서점 활용 설명서

로마에서 남매 키우기 #27

이탈리아 동네 서점에선 매주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준다. 하루는 서점에 갔더니 처음 보는 학생 세명이 있었다. 집 앞의 고등학교 학생들이었다. 한 명은 심지어 턱수염을 멋지게 다듬었다. 범상치 않은 비주얼의 학생들이 아이들에게 그리스 신화를 읽어줄 거라고 했다.

우리가 상상하는 고등학생의 모습은 아니지만 고등학생 맞구요.

이 날 들려준 이야기는 메두사 그리고 미노타우르스였다. 큰 카드 뒤에 적힌 이야기를 읽어주고 카드를 벽에 붙였다. 모두 붙이자 하나의 그림이 완성됐다. 이야기를 드는 아이들 중 이안이가 가장 어렸고 대부분 초등학생이었다. 아이들은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인 듯 대답을 잘했다. 이안이는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하는 듯했지만, 머리카락이 뱀인 이모는 강렬하게 각인되었던 것 같다.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아이들은 나름 진지하게 질문을 했고 고등학생들 역시 진지하게 답해 주었다. 이야기 중간중간 이안이가 집중을 못하고 힘들어 하자 한 친구가 재빨리 나가 젤리 한통을 사 오더니 이안이에게 안겨 주었다.

낱개의 이야기들이 모이자 하나의 신화가 완성되었다.

서점을 나오기 전 학생들에게 물어보았다.


_이거 왜 하는 거야? 학교에서 하는 거야? 

_학교랑은 상관없어요.  우리가 좋아서 프로젝트처럼 하자고 했어요. 하지만 여기서 하는 건 오늘뿐이에요. 다음부터는 매주 금요일 저기 윗 길의 공립도서관에서 읽어줄 거예요. 내용은 항상 신화예요.


 그날 밤 머리가 뱀인 이모(메두사)를 보면 돌이 된다며 아이와 둘이서 돌이 되는 한참 장난을 하다 잠이 들었다.


이런 기회가 한국에서도 많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 3월 한국에 갔을 때 서점들이 카페처럼 멋진 공간들로 변신해 있어 놀랐다. 규모도 크고 특히 유아서적 코너는 키즈카페 수준이었다. (한편으로는 동네의 작은 서점들을 만나기가 어려워진 것이 안타깝기도 했다.)


로마는 대형 체인의 서점이 있기도 하지만 작은 규모의 서점들도 만나기 어렵지 않다. 작은 어린이 서점의 경우는 아이가 5명만 넘어도 꽉 차는 협소한 규모이지만 매일 작은 행사가 이어진다.


사실 이건 서점의 수익을 위한 일환이라는 생각이 든다. 행사를 통한 참가비 수입이나 무료 책읽어주기를 통해 책을 알리고 구입으로 연결시키는 식으로 말이다.


한국은 아이를 키우는 집에 가면 어김없이 거실 한가득 아이들 책이 있다. 그런데 이탈리아 집은 의외로 아이들 책이 거의 없다. 생일파티 때도 아이들에게 책을 선물하는 것을 본 적이 없는 것을 보면 책을 많이 읽어주고 사주는 문화가 아닌 거 같다. 좀 더 야외 활동 위주의 육아랄까? 볼로냐 책 박람회부터 아동도서가 유명한데도 말이다.


여하튼 야외 행사는 많지만 작은 규모의 실내 문화 활동의 기회를 접하기가 쉽지 않은로마에서 동네 어린이 서점에서의 매주 행사는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참 즐거운 시간이다.(책을 읽어주는 시간은 무료이며 만들기 등의 다른 특별 활동이 더해지면 참가비가 있는데 보통 5유로(6천 원) 정도다.)

올 여름, 참 무더운 날이었는데 서점 야외 그늘에서 책을 읽어주던 토요일은 시원했던 기억만 남았다.

상대 적으로 한국은 더 멋지고 넓은 공간을 갖고 있음에도 활용이 되지 않는 듯해 아쉽다. 매주 서점에서 이탈리아처럼 책을 읽어주는 날이 있으면 참 멋질 텐데, 이탈리아 북쪽의 도서관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준다고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형, 누나들이 읽어주는 동화책, 생각만 해도 반짝반짝 빛나는 느낌이다.


한국의 학생들은 영어도 잘하니 영어로 책을 읽어줘도 재미있을 거 같다. 우리 이웃의 외국인들이 읽어줘도 좋고 말이다. 동네 서점에서부터 시작되는 세대와 국적을 초월한 소통. 멋지지 않은가?! 학교를 마치고 아이들이 서점에 모여 함께 읽고, 듣고, 대화하는 하루하루 말이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쭈뼛쭈뼛 앉아 이야기를 듣다가도 다른 아이들이 집중하면 같이 집중한다. 함께라서 더 열렬히 반응하며 이야기에 빠져든다. 책 읽기가 끝나면 (보통 4,5권 읽어주는데) 바닥에 책을 두고 알아서 보게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엄마, 아빠에게 들었던 내용을 사뭇 진지하게 설명해준다.


마음에 드는 책은 사달라고 내미는데 장난감은 어떻게든 말리면서 책 사달라는 아이는 그렇게 흐뭇해 못 이기는 척 책을 하나 안고 나오고만 만다.


그 날 읽을 책을 큰 보따리에 넣어오는데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노크를 하면 하나씩 꺼내어 읽어준다. 이게 뭐라고 아이들은 어떤 책이 나올지 설렌다. 마지막 책이 남으면 하나만 더 읽자고 아이들이 외친다. 나무가 나오는 책들을 읽은 날은 거리의 나뭇잎을 붙여 나무 만들기를 하는 등 작은 결과물을 만든다. 그러면 며칠은 자꾸만 집에 나뭇잎을 잔뜩 주워 유치원 가방에 채워온다.


아이의 기억 속에 서점이 수많은 이야기들로 가득했던 공간으로 기억된다면 이보다 멋진 것이 있을까 싶다. 그리고 나에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외국인으로 또래 아이들을 가진 부모들을 같은 반 학부모가 아닌 이상 만나가기 쉽지 않다. 그런데 서점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이안이가 두 언어를 하니 어머, 얘는 벌써 2개 국어를 하네?라는 이야기로 물꼬를 틀어 자연스럽게 대회가 이어진다.


이안이가 조금 더 어렸을 땐 한국말로 크게 대답하곤 했는데 그러면 책 읽으러 와서 한국말도 배워간다며 한바탕 웃었다.


아이들은 누군가가 책을 읽어주는 것을 참 좋아한다. 그리고 좋아하는 책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다시 읽는다. 좋아하는 부분은 매번 들어도 좋은지 며칠을 연속해서 듣고 싶어 한다.


최근 들어 부쩍 둘째가 책을 읽어주면 반응을 한다. 내가 동생에게 읽어주고 있으면 첫째가 다가온다. 오빠가 함께하면 동생은 더 신이 난다. 오빠는 자기의 행동에 동생이 깔깔 넘어가니 역시나 신이나 더 열과 성을 다해 내 이야기에 호응해준다.


홀로 읽는 것도 좋지만 누가 읽어주는 것도 좋고 누군가에게 읽어 주는 것도 좋다고 어떤 식으로든 책이란 것은 즐거운 거라고 아이들에게 스며드니 나도 덩달아 신이 난다.

동생에게 책을 읽어 주는 오빠라니!!

며칠 전, 아이들을 재우기 전,  씻고 나오니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던 아이들이 없었다. 아이들 방에서 속닥속닥 말소리가 들려왔다.


_오빠가 책 읽어줄까?

_응.

-뱀이 없네, 아! 여기 있네 까꿍!

_까꿍!


동생에게 한참 책을 읽어주더니 책을 덮고 말했다. 자, 이제 잘 시간이야.

그리고 나를 보고 속삭였다. 엄마, 내가 재웠으니 이젠, 우리 둘이 놀자.


(물론, 동생은 그렇게 쉽게 잠들어 주지 않았지만,)

그래, 동생 잠들면 우리 둘이 놀자. 오늘은 특별히 늦게 잠들어도 엄마가 눈감아 줄게.


written by iandos


*해당 글에 들어간 모든 사진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매주 수요일 혹은 목요일 원고 발행됩니다. 주 1회 글쓰기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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