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모습 보여주고 싶어

엄마 웃어줘

by 로마 김작가

오후 2시 태권도 수업은 매번 아이에겐 버겁다. 비록 자신이 하고 싶다고 했지만 잠이 오고 나른하다. 아이뿐 아이라 어른에게도 힘든 시간일 거다. 아이에겐 하고 싶지만 하고 싶지 않은 반반의 마음이 공존한다.


그 날은 추웠고 맨발로 들어서는 것이 쉽지 않았다. 양말을 벗으라는 선생님의 말에 아이는 그냥 한 귀퉁이 주저앉아 버렸다. 춥고 피곤한데 잘됐다, 이 참에 이렇게 앉아서 버텨보자 했을지도 모르겠다.


위 층의 한글학교에서 일을 보고 내려오다 앉아서 멍 때리고 있는 아이를 발견했다. 창으로 왜 앉아있어? 하니, 뻐끔뻐끔 양말 벗으래. 하고 답이 왔다. 양말 벗어. 하니, 싫어, 답이 왔다.


도장으로 들어가 아이를 달랬다. 양말 벗고 함께해. 싫어. 양말 안 벗을 거야. 아이는 요지부동이다. 태권도를 하고 싶다고 와서는 정작 도장에 들어서면 꾀를 부린다. 매주 되풀이되는 상황에 지쳤다. 단호하게 말했다. 이럴 거면 하지 마.


아이를 데리고 나가려는데 선생님이 아이를 붙잡았다. 자세를 낮추고 아이의 두 눈을 마주하고 물었다. 태권도 할 거야? 꽤 오래 침묵하던 아이가 작지만 또렷하게 대답했다.


하고 싶지 않아요.
작년 초 한글학교 방학식에서 태권도 시범을 보고 아이는 반해버렸다. 태권도 수업을 받을 수 있는 5살만 기다렸다. 지난 한국 휴가에선 새 도복도 마련해왔다.

도장에서 나오자마자 아이가 울었다. 옷을 갈아입으며 흐느꼈다. 엄마 안아줘, 내가 잘한 거라고 해줘,라고 들렸다. 옷 갈어입어. 메마르게 말했다. 왜 예쁘게 말해주지 않는 거야?

이안, 왜 우는 거야? 엄마가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잖아. 엄마는 이안이가 양말을 벗고 태권도를 다시 하길 원했어. 난 너무 피곤해. 알았어. 매번 이렇게 힘들면 하지 않아도 돼. 알겠지? 그리고 지금 옷을 갈아입고 여길 나가면 다신 엄마에게 태권도하고 싶다고 이야기하지 마. 엄마는 이안이가 태권도 안 하고 앉아 있는 모습을 또다시 보고 싶지 않아. 아이의 울음이 커졌다.


_이안, 왜 우는 거야?


엄마에게 멋진 모습 보여주고 싶었어.


아이는 그렇게 울었다.

미안해, 엄마는 안아주지 못하겠어. 엄마는 이안이가 태권도를 하겠다고 말하길 바랬어. 저번 방학식 때 형 누나들 태권도하는 거 보고 하고 싶다고 한건 이안이었잖아. 그런데 춥고 잠 온다고 하기 싫다고 나와버렸어. 엄마도 선생님도 다시 물어봤잖아. 하고 싶지 않다고 결정하고 하고 나온 건 이안이야. 그런데 왜 울어? 엄마는 나가서 기다릴게. 이안이가 눈물 그치면 신발 신고 나와.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아이의 울음이 멎었다. 신발은 여전히 바닥에 놓여있다. 말없이 아이의 신발을 신겨주었다.

_엄마 웃어줘.

웃어주는 게 뭐 그리 힘들었을까? 5살 반의 아이가 졸리고 나른한 오후에 태권도장에 신명이 나서 들어서는 것보다 피곤하다고 투정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모습일 텐데, 내 마음에 그려둔 모습이 아니었다고 매섭게 아이에게 몰아친 것 같았다.


심지어 그 마음을 여과 없이 아이에게 다 말해 버렸다. 이탈리아에서 태권도를 즐기는 아들을 보고 싶었던 걸까? 피곤함을 못 참은 아이나 서운함을 내뱉어 버린 나나 뭐가 다를까? 엄마가 아이 수준으로 감정에 충실해 버린거다. 아니, 아이보다 못한 걸 지도. 아이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지만 난 내 감정을 아이에게 쏱아부었다.


미안하고 짠하면서도 서운하고 화가 났다. 피곤해서 하기 싫다는 아이를 안아주며 '그럼 다음에 하고 싶을 때 다시 해보자' 라고는 도저히 말이 나오질 않았다.

신발을 신고 일어선 아이가 내 손을 잡더니 말했다.

_태권도할래.
나 엄마에게 멋진 모습 보여주고 싶어.
양말 벗고 들어가서 할래.

_정말이야? 지금 들어가면 다음부터는 힘들다고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은 할 수 없어.
약속할 수 있어? 그럼, 옷 갈아입고 양말 벗고 들어가자.

그리고 문 열고 들어가면 큰 소리로 외치는 거야.

다시 하고 싶습니다! 할 수 있어?

_응, 할 수 있어.

아이가 큰 문을 열고 들어갔다.


다시 하고 싶습니다!!


아이가 크고 또렷하게 소리쳤다.
잰걸음으로 뛰어 발차기를 했다.
퍽! 퍽!

둔탁한 소리가 났다.


돌아나와 자기 차례에 서면서 뒤돌아 나를 찾았다. 눈이 마주쳤다. 엄지를 치켜올려줬다. 아이가 웃었다. 아이는 또다시 잰걸음으로 뛰어 발차기를 하려 달려 나갔다.


수업을 마치고 선생님과 약속하는 아이


에필로그:


태권도를 마친 아이의 옷을 갈아 입혀주며 말해줬다.

_이안아! 정말 멋졌어!
발차기를 두 번 막 이렇게 하던데?
그런데 진짜 멋진 게 뭔지 알아?
하고 싶지 않았던 걸 다시 하겠다고 하는 거야.

이안이가 문을 열고 '다시 하고 싶습니다!!' 라고 외칠 때, 엄마는 정말 멋졌어!!

_그래? 그럼 나 그렇게만 외치고 태권도 안 했어도 됐네~

_아니!! 그런 말이 아니잖아!!!!!



written by iandos


*해당 글에 들어간 모든 사진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매주 1회 원고 발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