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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Jun 27. 2020

나를 위로하는 시들을 만나다

여섯 번째 시간-『누구나 시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산다』(김선경 엮음)

시를 읽는 행위는 여전히 낯설다. 이야기의 흐름을 타고 가는 소설과 달리, 시어 하나에도 수많은 의미를 품고 있는 시는 독자에게 불친절한 문학 갈래이다. 시어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은 오로지 독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독자가 이해하기 쉬운 시들도 있지만, 대체로는 그렇지 않다. 학창 시절 내내 정답이 있는 공부를 했던 우리나라 성인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시에 관심을 가져볼까 하여 시집 한 권을 사려고 해도 그마저도 쉽지가 않다. 대형 서점의 시집 코너에 가보면 얇기도 얇은 시집들이 책장 안에 어찌나 빼곡히 꽂혀 있는지! 대체로 시인 이름 첫자의 초성에 따라 자음 순서대로 꽂아놓았는데, 그렇다 보니 시인에 대한 정보가 없으면 시집을 고르기가 쉽지 않다. 시집은 표지가 매력적인 경우도 그다지 흔하지 않다. 베스트셀러 코너에도 시집은 거의 없다. 드라마나 영화 등의 매체에 노출되지 않는 이상 시집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특정 시인의 시집을 사기보다는 시 엮음집을 종종 사서 읽는다. 엮음집은 엮은 사람이 특정 의도를 갖고 자신이 읽었던 시들 중 공감할 만한 시들을 골라서 묶은 것이므로 일반 독자들이 접근하기가 조금은 더 쉽다.




『누구나 시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산다』도 마찬가지였다. ‘눈물 나게 외롭고 쓸쓸했던 밤, 내 마음을 알아주었던 시 101’이라는 부제에 이끌려 바로 구입을 했다. 이 책을 처음 읽었던 시기는 작년 이맘때였다.


장마로 자주 비가 내리던 날, 28개월 된 첫째와 6개월 된 둘째를 돌보며 나를 잃어가던 때였다. 예쁘게 커가는 아이들을 보며 분명히 행복했던 때인데, 불쑥불쑥 외로움이라는 녀석이 튀어나와 나를 힘들게 했다. 육아에 적극적인 신랑과 가까이 살며 나를 아껴주던 시부모님, 언제나 내 편인 친정식구들까지 나의 육아 현실은 다른 엄마들과 비교하면 충분히 행복할 만한 환경이었음에도 마음속 한 곳이 자꾸만 허전했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말할 수 없이 외로웠다.      


눈물 나게 외롭고 쓸쓸한 밤의 내 마음을 시가 알아준다니. 어떻게 위로해주려나 기대하며 책을 펼쳤었다. 엮은이가 자신의 짧은 에피소드를 먼저 서술하고, 그때 위로가 되었던 시들을 나열한 구성이었다. 엮은이의 이야기에서부터 밑줄 그으며 공감할 내용이 많았고, 딸려 나오는 시들에서도 페이지를 멈추어 곱씹어 읽을 만한 시들이 많았다.       

    

지금 내 마음 어딘가가 불편하고 아프다는 건 삶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묻고 있음이다. 무언가 어긋나 있다는 뜻이다. 마음은 아픈 곳에 먼저 가 닿는다. 지금 내 마음이 아프다면, 아픈 그곳에 가만 귀 기울여 볼 일이다. 나의 슬픔의 의미를 묻는 것은 내 삶과 타인에 대한 예의이다. 방치된 슬픔은 언젠가는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게 되므로, 삶은 원래 슬프고 아픈 게 아니라 나 자신 때문에 아픈 것, 참 소중한 깨달음이다. (47쪽)     


눈물이 흘렀다. 예민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두 아이를 키우는 일은 종종 벅찼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내 아이들이 그래서 엄마인 내가 힘들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힘들고 지치는 마음이 들 때마다 그쪽으로 마음을 두지 않으려 애를 썼다. 아픈 곳에 귀를 기울이기는커녕 피하고 도망치려 했다. 엮은이의 말처럼 방치된 슬픔이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를 줄 때쯤이 되어서야 내 아픔을 조금씩 마주할 수 있었다. 나 자신 때문에 아프다면 치유의 대상도 나 자신이어야 했다. 피하고 도망칠 것이 아니라 마주하여 왜 아픈지 진단해야 했고, 적극적으로 치유하려고 애써야 했다.      


48쪽

세상 일이 하도 섭해서
                               나태주     

세상 일이 하도 섭해서
그리고 억울해서
세상의 반대쪽으로 돌아앉고 싶은 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숨어버리기라도 하고 싶은 날
내게 있었소
아무한테서도 잊혀지고 싶은 날
그리하여 소리내어 울고 싶은 날
참 내게는 많이 있었소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누구에게나 ‘세상 반대쪽으로 돌아앉고 싶은 날’이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의 아픔이 조금은 가볍게 느껴졌다.           


62쪽

밖에 더 많다
                      이문재     

내 안에도 많지만
바깥에도 많다.      

현금보다 카드가 더 많은 지갑도 나다.
삼 년 전 포스터가 들어있는 가죽가방도 나다.
이사할 때 테이프로 봉해둔 책상 맨 아래 서랍
패스트푸드가 썩고 있는 냉장고 속도 다 나다.
바깥에 내가 더 많다.      

내가 먹는 것은 벌써부터 나였다.
내가 믿어온 것도 나였고
내가 결코 믿을 수 없다고 했던 것도 나였다.
죽기 전에 가보고 싶은 안데스 소금호수
바이칼 마른풀로 된 섬
샹그릴라를 에돌아가는 차마고도도 나다.
먼 곳에 내가 더 많다.      

그때 힘이 없어
용서를 빌지 못한 그 사람도 아직 나다.
그때 용기가 없어
고백하지 못한 그 사람도 여전히 나다.
돌에 새기지 못해 잊어버린
그 많은 은혜도 다 나다.      

아직도
내가 낯설어하는 내가 더 있다.      


수많은 ‘나’가 있다는 사실은 힘들어하는 나와 그런 나를 숨기고 싶은 나, 잘 웃는 나와 잘 우는 나가 내 안에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해 주었다. 여전히, 아직도 알 수 없는 ‘나조차 낯설어하는 나’가 더 있다는 것은 앞으로 내게 닥칠 예측할 수 없는 상황들에서 예측할 수 없게 튀어나오는 나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렇게 시가 내 마음을 알아주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외롭고 힘들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리고 토닥토닥, 나 스스로 내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었다.


고생했다고,

잘하고 있다고,

충분히 힘들 수 있고,

그래도 된다고,

나만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고,

그 감정이 나쁜 것이 아니라고….


그렇게 내 안의 나를 다독이며 위로할 힘을 얻었다.          




그 뒤로 이 책은 식탁 옆 작은 책꽂이에 일 년 내내 꽂혀 있는 유일한 책이 되었다. 식탁 옆 책꽂이는 그때그때 읽는 책만 골라 매번 다른 책으로 바꿔 꽂아두는 곳이지만, 이 책만은 언제나 책꽂이 한 편을 지키고 있다. 마음이 힘들 때마다, 위로가 필요할 때마다 때때로 꺼내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마음을 다독이기도 한다.      


앞으로도 외로움은 언제 어디에서든, 갑작스럽게든 서서히든 나를 찾아올 것이다. 그때마다 나의 외로움을 달래줄 시 몇 편을 만나게 해 준 엮은이에게 참으로 감사하다.


 책이 서재의 책꽂이로 자리를 옮기는 날이 오더라도, 마음을 울린 시 몇 편은 내 마음속 한 구석에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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