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시간-『누구나 시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산다』(김선경 엮음)
지금 내 마음 어딘가가 불편하고 아프다는 건 삶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묻고 있음이다. 무언가 어긋나 있다는 뜻이다. 마음은 아픈 곳에 먼저 가 닿는다. 지금 내 마음이 아프다면, 아픈 그곳에 가만 귀 기울여 볼 일이다. 나의 슬픔의 의미를 묻는 것은 내 삶과 타인에 대한 예의이다. 방치된 슬픔은 언젠가는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게 되므로, 삶은 원래 슬프고 아픈 게 아니라 나 자신 때문에 아픈 것, 참 소중한 깨달음이다. (47쪽)
48쪽
세상 일이 하도 섭해서
나태주
세상 일이 하도 섭해서
그리고 억울해서
세상의 반대쪽으로 돌아앉고 싶은 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숨어버리기라도 하고 싶은 날
내게 있었소
아무한테서도 잊혀지고 싶은 날
그리하여 소리내어 울고 싶은 날
참 내게는 많이 있었소
62쪽
밖에 더 많다
이문재
내 안에도 많지만
바깥에도 많다.
현금보다 카드가 더 많은 지갑도 나다.
삼 년 전 포스터가 들어있는 가죽가방도 나다.
이사할 때 테이프로 봉해둔 책상 맨 아래 서랍
패스트푸드가 썩고 있는 냉장고 속도 다 나다.
바깥에 내가 더 많다.
내가 먹는 것은 벌써부터 나였다.
내가 믿어온 것도 나였고
내가 결코 믿을 수 없다고 했던 것도 나였다.
죽기 전에 가보고 싶은 안데스 소금호수
바이칼 마른풀로 된 섬
샹그릴라를 에돌아가는 차마고도도 나다.
먼 곳에 내가 더 많다.
그때 힘이 없어
용서를 빌지 못한 그 사람도 아직 나다.
그때 용기가 없어
고백하지 못한 그 사람도 여전히 나다.
돌에 새기지 못해 잊어버린
그 많은 은혜도 다 나다.
아직도
내가 낯설어하는 내가 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