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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Jul 02. 2020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만나다.

여섯 번째 시간-『떨림과 울림』(김상욱)

힘들었다. 어려웠다. 하지만 끝까지 읽어냈다. 그래서 스스로 기특하고 대견하다.      


이 책을 읽은 짧은 소회다. 그동안 나는 지극히 인문학적인 시선으로만 세상을 보고 살았다. 그런 내게 물리학자가 바라보는 우주와 세계, 그리고 우리라니! 그 시선이 낯설고 생소해 여러 번 같은 페이지를 읽어내려야 할 만큼 쉽지 않은 책이었다.                


고등학교에서 문과를 선택, 국어국문학 전공, 국어교육 전공, 중학교 국어교사로서의 삶. 내 삶 어디에도 과학은 없었다.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과학탐구 영역을 독하게 공부한 경험은 있지만, 단순 문제 풀이를 반복했던 공부로는 과학적 지식이나 원리에 대한 호감을 갖기 어려웠다. 그러다 고등학교로 발령을 받은 뒤, 갑자기 상황이 달라졌다. 수능의 비문학 영역 지문에는 반드시 과학 지문이 포함되었다. 생소한 용어들이 즐비한 그 지문이 잘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글 자체가 매끄럽게 쓰이지 않은 문제도 있었지만, 과학적 지식이 전무후무한 나로서는 그 지문들을 읽어내는 것 자체가 버거웠다.


국어교사의 입장에서 과학 지문을 대상으로 수업을 할 때, 엄연히 말해 과학적 지식을 설명해줄 필요는 없다. 하지만 과학적 배경지식을 갖고 있는 국어교사와 그렇지 않은 국어교사가 설계하는 과학 지문 수업은 전혀 결이 달랐다. 그때부터였다. 수능 이후로 손 놓고 있었던, 단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던 과학 관련 글들을 찾아 읽으려 애쓰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수많은 과학 도서들에 손을 뻗었다가 채 1장도 넘기지 못하고 덮기 일쑤였다. 배경지식이 없는 것도 문제였지만 잘 모르는 것을 읽어낼 끈기와 여유가 없었다. 그러기에 잘 읽어 낼 수 있는, 재밌는 책들이 너무 많았다.     


그러다 얼마 전 우연한 계기로 과학 독서모임 하나를 알게 되었다. 독서 모임에도 갈증을 느끼고 있던 때였지만, 심지어 분야가 ‘과학’이었다. 참여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 모임에서 읽은 두 번째 책이 바로 김상욱 교수의 『떨림과 울림』이었다.     




제목이 좋았다. 물리학 책의 제목이라기에는 너무나 인문학적이었다. 물리학자는 어떤 것에 떨림과 울림을 느끼는지 궁금했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우주는 떨림이다. 인간은 울림이다.’라는 표현을 썼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떨리고 있고, 인간은 그 수많은 떨림에 울림으로 반응한다고 했다. 이토록 인문학적인 표현이라니! 그동안 만났던 과학 책들과는 결이 다르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총 4부로 이루어진 이 책은 우주와 인간에 관한 물리학적 개념과 원리, 그것들을 정립한 물리학자들의 이야기를 다양하게 다루고 있었다. 물리학자들이나 물리는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기초적인 지식이겠지만, 물리의 ‘물’자도 모르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한 페이지도 쉽게 넘어가지는 않는 책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내가 전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만난 듯한 느낌에 책을 놓을 수는 없었다. 끝까지 읽어내며 새로운 세계를 정면으로 맞이하고 싶었다.           




평생을 인문학적 사고에 얽매어 살아온 내게 『떨림과 울림』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읽어갈수록 인문학적 사고로만 세상을 바라보며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것이 조금은 부끄러웠다. 고백하자면 나는 과학자들에게 약간의 편견이 있었다. 과학자들은 객관적이고 이성적이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차가울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물론 과학자들은 증거로 입증할 수 있는 것만을 사실로 믿고, 끊임없이 현상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차가운 것은 아니었다.

 

저자는 여러 물리학적 개념과 현상에 대한 설명 뒤에 인문학적 해석을 덧붙여 놓았다. 각 부분에서 내 마음을 울린 것은 역시나 그런 부분이었다. 단순히 인문학적 해석이라서 좋았던 것은 아니고, 너무나 과학적인 원리와 현상 끝에 인간과 존재를 놓치지 않는 저자의 식견에 감동해서 좋았던 것이다. 아마도 그 힘으로 절반도 채 이해하지 못한 이 책을 끝까지 읽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인간은 삶에 집착한다. 하루라도 더 살기 위해 불로초를 찾아 헤맨 진시황의 이야기는 비단 진시황만의 욕망은 아닐 것이다. 누구나 더 살고 싶고, 이왕이면 더 잘 살고 싶다. 하지만 물리학자의 시선에서 인간은 한낱 ‘원자’의 모임일 뿐이다. 죽음이라는 것도 ‘원자’의 흩어짐일 뿐이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허무한 말이다. 원자의 모임일 뿐인 인간이라는 존재가 하루하루를 아등바등 살아가는 모습은 어딘지 애처롭기까지 하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죽음이라는 것도 삶이라는 것도 그렇게 집착할 필요는 없는 것이라는 메시지로 읽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로써 조금 더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이유가 되지도 않을까.


전체를 마무리하는 4부의 가장 마지막 문단에서 저자가 나에게 주는 울림은 상당히 컸다.      


그렇지만 인간은 의미 없는 우주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는 존재다. 비록 그 의미라는 것이 상상의 산물에 불과할지라도 그렇게 사는 게 인간이다.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게 인간이다. 인간은 자신이 만든 상상의 체계 속에서 자신이 만든 행복이라는 상상을 누리며 의미 없는 우주를 행복하게 산다. 그래서 우주보다 인간이 경이롭다. (251쪽)      


저자의 말처럼 아무런 의미 없이, 우연히 만들어진 우주라는 시공간에서 단순히 원자들의 복합체일 뿐인 인간으로 살아가는 우리지만, 우리는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고자 노력하는 존재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누가 지켜보는 것도 아니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공간 안에서 행복을 찾고 의미를 부여하며 성실히 살아가고 있다. 멀리 있어서, 손에 잡히지 않아서 늘 경이로운 대상이었던 우주보다 실상 더 경이로운 것은 인간이라는 깨달음, 그것이 이 책 전체에서 가장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지극히 과학적인 책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과학적 사고와 인문학적 사고가 영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한 책, 『떨림과 울림』.

약간의 설렘과 조금의 두려움을 동반한 ‘떨림’으로 읽기 시작한 이 책을 덮으며 마음속에 작은 진동을 느낀다. 이 책의 수많은 물리학적 개념과 물리 법칙들이 마음속에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울림’으로 다가온다.      



오늘, 그리고 여기에서 빼꼼히 열린 새로운 문 하나를 만난 듯하다. 작은 틈으로 밝은 빛을 내뿜는 이 문을 열어보면 세상을 보는 조금은 다른 시선을 만날 수 있을 것만 같다.




<각 부분 별 간단한 요약과 그 부분에서 가장 좋았던 문단>


1부. 분주한 존재들-138억 년 전 그날 이후, 우리는 우리가 되었다.      


태양의 빛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시공간의 발생, 우주의 탄생, 우주를 구성하는 원자, 원자를 구성하는 전자로 이어지는 세계에 대한 부분이었다. 빅뱅, 상대성이론, 원자, 전자 등 물리학적 용어들을 만났다. 어디서 한 번쯤 들어보았던 용어들이자, 고등학교 물리 시간에 달달 외우면서 익혔던 용어들이기도 했다. 그때는 전혀 이해되지 않던, 그저 암기 대상이었던 물리학적 용어들이 어렴풋하게나마 이해가 되었다.           


우리 주위에 보이는 모든 것이 원자들의 모임에 불과하며 불멸하는 것은 영혼이 아니라 원자다. 사물이 가진 특성은 원자들이 배열하는 방식에서 나온다. 원자가 없다면 세상도 없다. (47쪽)

모든 사람은 죽는다. 죽으면 육체는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 어린 시절 죽음이 가장 두려운 상상이었던 이유다. 하지만 원자론의 입장에서 죽음은 단지 원자들이 흩어지는 일이다. …… 누군가의 죽음으로 너무 슬플 때는 우리 존재가 원자로 구성되었음을 떠올려보라. 그의 몸은 원자로 산산이 나뉘어 또 다른 무엇인가의 일부분이 될 테니까.(49쪽)                 


2부. 시간을 산다는 것, 공간을 본다는 것-세계를 해석하는 일에 관하여

최소 작용의 원리, 카오스, 열역학 제2법칙, 엔트로피, 양자역학, 이중성과 상보성, 입자와 파동, 진화론, 블랙홀 등의 물리학적 개념이 설명된 부분이었다. 시간은 왜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가,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빛이 입자이자 파동이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등에 대한 질문에 대해 답하는 과정에서 여러 물리학 개념들이 등장했다. 부분 부분을 읽을 때에는 언뜻 이해가 되는 듯했지만, 전체의 연결이 잘 되지 않았다. 아마도 한 개념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가능한 한 충분히 쉽게 설명하려고 애쓴 티가 역력했지만, 물리적 지식이 전혀 없는 내게는 이해가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시간이 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 확률적으로 가장 그럴 법한 상태로 진행하는 일이라는 것, 또 우리는 보는 대로 믿고, 믿는 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한다는 것, 빛이라는 하나의 존재가 입자이자 파동일 수 있는 것은 이중성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고, 이처럼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두 개념이 혼재하는 것이야말로 자연의 본질이라는 것 등을 알게 되었다.


진화는 우연히 일어난다. 우연으로 선택된 수많은 사건의 연쇄에 의미를, 아니 더 나아가 의도를 부여할 수도 있다. 이렇게 우연은 필연이 된다. 하지만 거기에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95쪽)

하나의 입자는 시작도 끝도 없는 절대시간 위를 움직인다. 여기에는 시간의 방향도 없다. 수많은 입자가 모이면 비로소 시간이 흐르기 시작하고, 새로운 현상들이 창발한다. 인간 역시 수많은 입자들이 모여 만들어진 새로운 실체다. 자신이 왜 존재하는지 고민하는 실체다. (117쪽)     


3부. 관계에 관하여-힘들이 경합하는 세계

중력, 전자기력, 맥스웰 방정식, 환원과 창발, 응집물리에 대해 기술한 부분이었다. 우주에 존재하는 힘(중력, 전자기력, 강한 핵력, 약학 핵력)에 대한 이야기들로, 이 힘들이 어떤 식으로 작용하며 존재하는지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었다. 또 전자기력과 관련하여 전기와 자기에 대해 알려진 사실들을 집대성하여 네 개의 수식을 정리해낸 맥스웰이라는 사람과 그의 방정식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되었다. 또 부분으로 전체를 이해하려 한 환원주의, 전체를 부분으로 나누어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창발주의에 대한 기술이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원자들이 어떻게 세상 만물을 만드는지에 대해 탐구하는 응집물리 분야에 대한 설명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전하가 있으면 그 주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전기장이 펼쳐진다. 중력도 마찬가지다. 질량을 가진 물체 주위에는 중력장이 펼쳐진다. 전기장을 흔들면 전자기파가 생기듯, 중력장을 흔들면 중력파가 발생한다. 우주에 빈 공간은 없다. 존재가 있으면 그 주변은 장으로 충만해진다. 존재가 진동하면 주변에는 장의 파동이 만들어지며, 존재의 떨림을 우주 구석구석까지 빛의 속도로 전달한다. 이렇게 온 우즈는 서로 연결되어 속삭임을 주고받는다. 이렇게 힘은 관계가 된다. (172쪽)    


4부. 우주는 떨림과 울림-과학의 언어로 세계를 읽는 법

우주에서 인간까지 과학, 그중에서도 물리라는 학문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였다. 물리학자의 시각으로 바라본 세상은 ‘운동’이고, 운동은 곧 ‘선’이며 이로써 좌표라는 3차원적인 공간에 세상의 운동을 수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물리학자는 수식에서 도형을 읽고, 도형에서 운동을 보고, 운동으로 자연을 이해한다고 한다. 물리학자에게 우주란 단순조화진동, 즉 단진동을 하는 존재이며, 그런 우주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화학반응의 집합체일 뿐이라고 한다.      


결국 물리학이 우주에 대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 걸까? 물리는 한마디로 우주에 의미가 없다고 이야기해준다. 우주는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뜻하지 않은 복잡성이 운동에 영향을 줄 수도 있지만 거기에 어떤 의도나 목적은 없다. 생명체는 정교한 분자화학기계에 불과하다. 초기에 어떤 조건이 주어졌는지는 우연이다. 하루가 24시간이거나 1년이 365일인 것은 우연이다. (2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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