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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Jul 18. 2020

오늘을, 지금을, 이 순간을 어떻게 살 것인가

여덟 번째 시간 -『그리스인 조르바』(니코스 카잔차키스)

누구에게나 인생은 한 번이다. 탄생의 순간부터 우리는 죽음의 순간으로 가는 길을 걷는다. 그것은 어떤 방식으로도 거부할 수 없는 생의 법칙이다. 그 길 위해서 어떤  삶을 살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다.  나는 나와 너무도 다른 방식으로 삶을 마주하는 한 남자를 만났다. 바로 그리스인 조르바이다.




『그리스인 조르바』에 등장하는 ‘나’와 조르바는 공평하게 주어진 인생의 길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걷는 사람들이다. ‘나’는 진리가 책 속에 있다고 생각하고 수천 권의 책에만 매달려 온 사람이고, 조르바는 진리가 자신 안에 있다고 믿으며 어떤 일이든 몸으로 부딪히며 살아온 사람이다. 나는 조르바를 만나면서 자신이 지금까지 믿고 있던 것들, 책을 통해 배우고자 했던 것들에 대해 회의감을 느낀다. 책 한 줄 읽은 적이 없는, 스스로를 무식하다고 이야기하는 조르바라는 노인의 삶은 그 자체로 수천 권의 책이었다. 인생의 고비를 넘어오며 체득한 깨달음은 수천 권의 책을 읽은 ‘나’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범주의 것이었다.

      

나는 아무도,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오직 조르바만 믿지. 조르바가 딴것들보다 나아서가 아니오. 나을 거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요. 조르바 역시 딴 놈들과 마찬가지로 짐승이오! 그러나 내가 조르바를 믿는 건, 그놈이 유일하게 내가 아는 놈이고, 유일하게 내 수중에 있는 놈이기 때문이오.(82쪽)     


“그리스인 조르바는 누구인가?” 질문에 답을 찾자면 바로 이 부분일 것이다. 조르바는 오직 자신만을 알고, 믿고,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사람이다. 타인의 전부를 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그렇다면 내가 알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자신뿐이다. 자신이 다른 사람에 비해 더 나아서가 아니다. 조르바의 말에 ‘나’가 받은 충격 이상으로 나도 충격을 받았다. 어디 한 군데 반박할 부분이 없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삶을 산다. 하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 충분히 잘 알고 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아끼며 사랑하는지, 하고자 하는 일은 무엇이며 어떤 사람에게 끌리는지 등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존재할까. 오히려 세상의 잣대들, 타인의 시선들에 얽매어 자신의 삶을 다른 기준에 맞추려 부단히 애쓰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나 역시도 그런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남들이 좋다고 말하는 직업을 갖기 위해 미친 듯이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나라는 사람이 과연 어떤 일을 할 때 진정으로 행복한지 깊게 고민해보지 않았다. 대충 이 나이쯤이면 결혼을 해야지 하던 때에 결혼을 했고, 아이는 둘쯤은 있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두 아이를 낳았다.


감사하게도 나는 타인의 시선과 세상의 기준을 만족하는 직업을 선택했지만, 그 직업이 나와 너무도 잘 맞았고 일에서 행복을 얻었다. 또 좋은 사람을 만났고 두 아이는 내게 큰 기쁨이 되었다. 진심으로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조르바의 말을 들으며 ‘나는 내 삶을 과연 그만큼 주체적으로 바라보고 살아가기 위해 내 몸을 움직인 적이 있었던가’ 하는 의문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그는 남자나, 꽃 핀 나무, 냉수 한 컵을 보고도 똑같이 놀라며 의문을 갖는다. 조르바는 모든 사물을 매일 처음 보는 듯이 대하는 것이다.(77쪽)     


우리 모두에게는 하루 24시간이 동일하게 주어진다. 특별한 삶이 아니고서야 24시간은 비슷한 방식으로 흘러간다. 비슷한 시간대에 일어나고 잠이 들며, 식사를 한다. 같은 사람들을 만나 일을 하고, 비슷한 일을 반복한다. 감사하게도 우리나라에는 사계절이 있어 때마다 다른 풍경들을 마주하기는 하지만, 그 또한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나면 매년 보는 장면들의 반복이라 새로울 것이 없다.


하지만 육십을 넘은 조르바는 여전히 모든 것을 처음 보는 것처럼 느낀다. 그러고 보면 항상 같은 것처럼 느껴지는 일상도, 실로 같은 순간은 하나도 없다. 우리는 매 순간 조금씩 변화하는 자연 속에 살고 있고, 어제와는 다른 옷을 입은, 다른 기분인 사람들을 마주한다. 어제와 같은 일일지라고 내 마음은 어제와 다르고, 같은 시간에 잠이 들더라도 달의 기울기는 다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일상이라는 틀에 매여 삶의 소중함을 잊고 산다. 어떤 사물이라도, 어떤 일이라도 다 처음 보는 것처럼, 처음 겪는 것처럼 느끼는 조르바의 삶은 그 자체로 너무나 특별한 삶이었다.          




모든 것이 어긋났을 때 자신의 영혼을 시험대 위에 올려놓고 그 인내와 용기를 시험해 보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보이지 않는 강력한 적-혹자는 하느님이라고 부르고 혹자는 악마라고 부르는-이 우리를 쳐부수려고 달려온다. 그러나 우리는 부서지지 않는다.
외적으로는 참패했을지라도 내적으로는 승리자일 때 우리 인간은 말할 수 없는 긍지와 환희를 느낀다. 외적인 재앙이 지고의 행복으로 바뀌는 것이다. (416쪽)     


세상에 발 딛기를 두려워하던 ‘나’는 조르바와 함께 살면서 내적 성장을 경험한다. 끝내 조르바가 계획했던 벌목 사업이 처참한 실패로 돌아가 모든 것을 잃게 되었을 때, ‘나’는 두려움과 좌절 대신에 해방감을 느낀다. 그것을 외적인 재앙이 결코 내적인 불행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깨달음이었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외적 재앙을 경험한다. 시험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취업에 실패하기도 한다.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을 당하기도 하고, 사랑했던 사람과 이별하기도 한다. 그것은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시련이 아니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아니 여러 번쯤 경험하게 되는 일들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외적 재앙 앞에서 속수무책인 경우가 많다. 주저앉고 포기하고 슬픔에 젖고 다시 일어서길 두려워한다. 하지만 조르바는 외적 재앙에 대응할 내적인 힘을 가진 인물이었다.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 부딪히고 깨지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앞으로 나에게도 수많은 재앙들이 닥칠 것이다. 물론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지만, 어떤 재앙은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럴 때 내가 인내하고 용기 낼 수 있는, 단단한 뿌리를 가진 사람이기를 희망한다. 조르바처럼 말이다.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390쪽)     


아주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인 ‘쿵푸팬더’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자신을 믿지 못하고 좌절하고 있는 주인공 ‘포’에게 사부인 ‘우그웨이’가 들려주는 대사다.      


Yesterday is history, tomorrow is a mystery, and today is a gift. (That's why it is called the present. )


그렇다. 현재는 present, 선물이다. 과거는 이미 역사 속으로 지나간 일이라 어떤 방법으로도 바꿀 수 없고, 미래는 수수께끼이다. 결코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오로지 현재뿐이다. 현재는 선물과도 같아서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과거와 미래까지 바꿀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가졌다.      


그렇다면 나는 내게 주어진
오늘을, 지금을, 이 순간을
어떻게 살 것인가.
조르바가 나에게 마지막으로 던져놓은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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