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의학과 의사로 응급실에 근무하는 저자는 죽음과 삶의 경계에 있는 환자들을 치열하게 삶의 자리로 데리고 오고자 애쓴다. 삶의 자리로 넘어온 환자들을 보며 안도하고, 죽음의 자리로 보낸 환자들을 보며 괴로워하는 한 의사의 고뇌가 그대로 담겨 있는 책이었다.
1부와 2부로 나누어진 구성에서 1부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다. 자살 시도에 실패하고 응급실에 실려 와 ‘살려주어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고층에서 다시 뛰어내린 50대 가장의 이야기, 말기 암 환자가 마지막으로 고통을 참으며 병원으로 오던 길에 교통사고를 내어 상대방 운전자가 사망한 이야기, 사소한 다툼 끝에 동거녀를 죽음에 이르게 한 남자의 이야기, 자살에 성공한 수많은 시신들에 대한 이야기…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려울 만큼 수많은 죽음이 있었다. 그 현장에서 그들의 마지막을 지키며, 그들이 쏟아내는 피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한 의사의 이야기는 내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아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생을 살아가면서 큰 병을 앓게 되거나 큰 사고를 겪기 전까지 대부분의 사람은 죽음에 둔감하다.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그것을 실감하기는 어렵다. 나 또한 다르지 않아서 죽음이란 언제나 아스라이 멀리 있는,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일 뿐이었다.
내가 겪은 가장 지척의 죽음은 우리 외할아버지셨다. 외할아버지는 연세도 꽤 있으셨고 지병도 있으셨기에 언젠가는 그 길을 가시리라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돌아가시는 그날까지도 그렇게 가까운 곳에 죽음의 기운이 닿아있는 줄 가족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37주 만삭의 산모였다. 심지어 조산 위험으로 자리에 누워만 지내던 때라 누구도 내가 장례에 참석하는 것을 반기지 않았다. 결국 나는 할아버지 장례에 단 1분도, 얼굴조차 비추지 못했고 할아버지를 그렇게 갑자기, 너무나 허망하게 보내야 했다.
장례에 참석했던 여동생은 지금도 가끔 이야기를 한다. 입관 전에 마지막으로 할아버지를 뵈었는데, 그 차가운 감촉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죽음의 서늘한 기운, 살아있는 생명에게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그 기운이 너무나 강렬해서 종종 생각이 난다고 했다. 그 단 한 번의 죽음에 대한 기억만으로도, 심지어 나는 눈으로 보지도 못한 죽음만으로도 막연하게 사(死)의 세계는 두렵기만 하다.
책을 읽는 내내 그런 죽음을 하룻밤에도 수차례, 어떤 때는 수십 차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는 응급실의 풍경이 너무나 생생하게 그려졌다. 솔직히 저자를 비롯하여 많은 응급실 의료진들이 그렇게 많은 피를 받아내고, 피부를 가르고 꿰매면서도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도리어 신기할 따름이었다. 글만 읽는데도 온몸에 자주 소름이 끼쳤고, 눈물이 흘렀다. 아팠고, 괴로웠다.
2부는 삶의 이야기였다. 여자 친구와 성관계 도중 성기가 골절되어 실려 온 군인의 이야기하며, 그저 자신의 삶에 대한 넋두리를 풀어놓는 장소로 응급실을 선택한 아주머니의 이야기, 모두가 기쁘고 행복한 성탄절에 쏟아지는 환자들을 받아내느라 고군분투하는 응급실 이야기 등이 실려 있었다. 확실히 죽음의 이야기와는 글의 분위기부터가 달랐다. 읽는 내내 같은 작가의 글이 맞나 싶은 생각이 종종 들 정도였다.
1부에서 다루어진 전쟁터나 다름없던 응급실의 풍경과 사뭇 다른 응급실의 풍경은 그래서 도리어 현실감이 있었다. 평소에 생각하던 응급실의 풍경들이었다. 죽음의 이야기를 읽을 때와는 내 마음도 달랐다. 아주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글을 읽어갈 수 있었다.
죽음과 삶의 경계를 수없이 마주하는 저자의 생생한 기록은 어떤 때는 소설보다 끔찍했고, 어떤 때는 코믹영화보다 유쾌했다. 그 기록들을 읽으며,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내 앞 어느 시간 즈음에 놓여있을 나의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다. 너무나 멀리 느껴지는 일임에도 죽음이라는 단어만으로도 한여름 밤에 온몸이 서늘해질 만큼 두려움이 엄습했다.
적어도 나를 비롯한 나의 지인들이 응급실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일만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저 평범한 날들을 살아가다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시기 즈음 아주 자연스럽게 죽음이라는 것을 맞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기도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