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째 시간- 『사물의 ;철학』(함돈균)
가로등
희망의 문제와 관련하여 보다 중요한 것은 빛의 ‘양’이 아니라, 빛의 ‘방향’이다. 일반적으로 가로등은 가늘고 긴 몸통 위에 빛이 발산되는 머리가 밑으로 구부러진 형상을 하고 있다. 즉 가장 전형적인 가로등은 빛의 얼굴을 한 어떤 존재가 마치 땅을 굽어보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굽어보는 얼굴의 빛은 아래로, 그러니까 낮은 자리로 발산되며 가능한 제 주위를 평등하고 넓게 비추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 자리는 희망을 필요로 하는 삶의 절박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렇다면 가로등의 힘, 가로등의 희망은 그것이 발산하는 빛이 낮은 자리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18쪽)
골대
그러나 내가 요즘 눈여겨보는 것은 자기편-상대편 골대 위치가 전반전이 지나 후반전이 되면 ‘정반대 방향’으로 바뀐다는 새삼스럽고 간단한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물리적으로 혹은 심리적으로 올인을 요구하는 어떤 ‘목표(goal)’가 있다면 한 번쯤 다시 살펴볼 일이다. 가능한 재원을 다 쏟아붓고 오직 그것만이 목표인 듯이 돌진하는 삶들이 있다면 잠깐 멈춰볼 일이다.
방향은 실은 여기가 아니라 저기일 수도 있다.(35쪽)
마스크
분자생물학의 한 관점에서 보면, 지구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인간을 숙주로 삼아 개체변이를 거듭하는 미세 존재들인 ‘바이러스’다. 마스크는 지구에 인간의 눈으로 포착되지 않는 거대하고 강력한 존재들의 세계가 상존함을 환기한다. 실체가 확인되지는 않으나 ‘존재(하는 것)’의 기습에 의해 촉발되는 기분을 어떤 철학자는 ‘불안’이라고 불렀다.(79쪽)
손수건
슬픔의 눈물을 흘리고 있던 오래전 어느 날, 한 친구가 손수건을 건네던 순간이 있었다. 그는 자기 몸의 흔적이 밴 손수건에 내 눈물을 받을 수 있도록 허락했다. 내 눈물은 휴지로 버려지지 않고, 이 사물을 통해 그에게 다시 건네 졌다. 세탁하더라도 어딘가에 남아 있을 타인의 흔적에는 다시 그의 몸의 흔적이 밸 것이다. ‘공감(empathy)’이라는 말은 한 감정 속으로 다른 한 감정이 ‘배어들어’ 간다는 뜻에서 나왔다. (15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