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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Aug 04. 2020

어른을 위한 그림책 이야기

열한 번째 시간-『이토록 어여쁜 그림책』(이상희,최현미,한미화,김지은)

표지가 예뻤다. 연하지도 진하지도 않은 딱 적당한 초록 표지, 머리 위에 먹구름을 얹은 채 혼자 비를 맞고 있는 한 명의 여자, 그림책으로 보이는 문을 열자 전혀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듯 밝은 빛이 쏟아지는 풍경, 드문드문 나있는 창문으로 반대편 세상은 아주 밝고 환한 세상임을 암시하는 연노랑 빛깔, 표지를 채운 그림 모두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책 제목은 또 어떤가. 이토록 어여쁜 그림책이라니! 이토록 ‘예쁜’ 그림책이라고만 했어도 덜 끌렸을 텐데, ‘어여쁜’ 그림책이라니! 사전적으로 '어여쁜'이나 '예쁜'은 큰 의미 차이가 없다. 하지만 왠지 어여쁘다는 단어는 대상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담뿍 담긴 느낌이 들어서 평소에도 아끼던 단어였다.


책의 부제는 ‘어느 날 문득 어른이 된 당신께 드리는 그림책 마흔네 권’이다. 부제 그대로 어른을 위한 그림책 마흔네 권을 소개하는 책이다. 소개한다고 하니 너무나 딱딱하게 느껴져서 조심스럽다. 이 책은 최근에 읽은 어떤 책보다도 보드랍고 말랑말랑한 책이었기 때문이다.




특정 상황에서 읽으면 좋을 만한 마흔네 권의 귀하고 아름다운 그림책 이야기는, 그림책이라는 것이 아이들만을 위한 것은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그림책에서 글자보다 ‘그림’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다 보니, 글자를 모르는 아이들을 위한 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아니, 대부분의 성인들이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들은 그림책을 읽는 것은 연령과 전혀 상관이 없으며, 오히려 어른들에게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올 만한 그림책도 많다고 했다. 실제로 그들이 소개한 마흔네 권의 그림책 이야기는 저마다의 빛깔로 내 마음에 다가왔다.       


어떤 그림책은 잊고 살았던 행복과 기쁨의 기억을 돌려주기도 하고,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의 기쁨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어떤 그림책은 슬프고 아픈 마음을 다독다독 위로하기도 했고, 성장과 그 속의 고통을 무한히 응원하기도 했다. 마흔네 권의 그림책 이야기를 만나며 때론 웃고, 때론 아팠다. 때론 기억 저편으로 달아났던 장면을 불러왔고, 때론 앞으로 나아갈 길을 가만히 상상해보았다. 정말이지, 그림책은 아이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서른일곱, 내게도 충분히 따뜻했고, 포근했다.     




아마 이 책이 마음에 더 와 닿았던 것은 내가 이미 그림책을 너무나 사랑하는 독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집 책장에는 아이들이 아닌 나를 위한 그림책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오랫동안 사랑해 온 그림책은 『아침에 창문을 열면』(글, 그림 아라이 료지)다.           


『아침에 창문을 열면』은 유화 느낌의 풍경화로 꽉 채워진 그림책이다. 그 풍경은 저마다의 색깔을 가진 아침을 보여준다.

어떤 아침은 푸른 숲 속의 싱그러움을, 어떤 아침은 북적거리는 도심의 고층 건물들을, 어떤 아침은 고요히 흐르는 강물의 움직임을, 어떤 아침은 비 오는 날의 잔잔한 바다를…. 그 풍경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더 좋은 것은 모든 아침의 창밖 풍경을 ‘좋아요’라고 표현한 것이다. 어떤 풍경이 펼쳐지든, 내가 발 딛고 있는 곳의 풍경을 좋아할 수 있는 마음은 현실을 사랑하고 현실에 충실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마음이다.


이 그림책을 처음 만났던 때는 서른이 되던 해였다. 집에서 독립한 지 3년쯤 되던 해였고, 직장생활이 버겁던 때였다. 내 마음 같지 않은 현실의 순간마다 어디로든 도망칠 구멍을 찾고 있던 때였다. 그때 이 그림책은 끊임없이 내게 매일 주어지는 아침을 그렇게 맞이 하지는 말라고, 발 딛고 있는 그곳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사랑하라고 이야기했다. 매일 아침, 또 잠들기 전 이 그림책을 읽으며 때론 미소 짓고, 때론 눈물지으며 마음을 다잡던 때가 있었다.      




그림책에 대한 좋은 기억 때문에 더 와 닿았던 『이토록 어여쁜 그림책』, 삶의 기쁨과 행복, 슬픔과 쓸쓸함의 순간에 놓여있는 수많은 어른들이 이 책을 통해 어여쁜 그림책들을 많이 만났으면 좋겠다. 그렇게 위로받고 위안 삼으며 베갯머리에 놓고 잘 귀한 그림책 한 권쯤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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