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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Aug 08. 2020

창의적 ‘학습’이 필요한 시대

열두 번째 시간 - 『평생유치원』(미첼 레스닉)

미첼 레스닉은 코딩 교육 프로그램 중 하나인 ‘스크래치’의 개발자이다. MIT에서 창의력과 학습에 관한 연구를 해온 교육공학의 권위자이기도 하다. 『평생유치원』은 그가 지금까지 개발하고 시행하며 정립한 창의력 교육 프로그램을 총망라한 책이었다.      


저자는 유치원을 가장 이상적인 교육기관으로 본다. 심지어 유치원이 인류 최대의 발명품이라고까지 생각한다. 그 이유는 급변하는 사회에서 어떤 연령대에서든 창의적 역량을 개발해야 하는데, 이를 돕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유치원의 학습 방식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유치원의 주된 학습 방식은 ‘놀이’이다. 유치원의 아이들은 여러 장난감이나 공작 재료, 블록 등을 가지고 만들고 조립하고 무너뜨리고 세우고 찢고 자르는 등의 놀이 탐구 시간을 통해 세상과 만나고 주변 사물을 이해한다. 안타깝게도 요즘의 유치원은 학교의 형태를 닮아가 수와 글자를 배우고 학습지를 푸는 등의 교육 방식을 선택하고 있지만, 저자는 모든 학교가 오히려 진정한 유치원처럼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MIT 미디어랩이 밝혀낸 창의적 학습의 비밀’이라는 부제에서 암시하듯이, 이 책은 ‘창의성’을 ‘학습’할 수 있다는 전제로 쓰인 책이다. 과연 창의성을 ‘가르칠’ 수 있을까?     


우리는 일반적으로 창의성은 아주 특별한 소수의 사람만이 가진 능력이라고 믿는다. 이 책에서도 창의성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에 대해서 다루는 장이 있다.       


오해#1 창의성이란 예술적 표현에 관한 것이다.
오해#2 소수의 사람만이 창의적이다.
오해#3 창의성은 순간의 통찰력에서 나온다.
오해#4 창의성은 가르칠 수 없다. (65쪽~70쪽)    

 

하지만 저자는 이 모든 생각들이 오해라고 단언하고 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창의성이란 예술적 표현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미래 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사고방식이며, 우리는 누구나 크든 작든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한다. 또 창의성은 ‘아하!’하는 순간의 통찰이 아니라 호기심을 가지고 하는 탐구,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실험, 체계적인 조사가 모두 결합된 부지런한 노력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올바른 양육 환경과 교육 시스템으로 충분히 가르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창의성을 학습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 저자가 제안하는 창의적 학습의 교육 지침은 ‘창의적 학습의 4P’로 명명되며, 여기서 4P란 프로젝트(Project), 열정(Passion), 동료(Peers), 놀이(Play)를 의미했다. 즉 창의성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이란 아이들이 ‘놀이’하는 것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동료’들과 협력하여 ‘프로젝트’에 ‘열정’을 가지고 빠져들도록 지원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62쪽)     




4P에 대한 구체적인 서술을 읽어가며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동료(Peers)였다. 프로젝트나 열정, 놀이를 통해 창의적 학습이 가능하다는 것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것이었지만, ‘동료’라는 개념과 창의적 학습의 연결은 생소했기 때문이다.  


많은 아이들이 리믹스에 회의적이라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자기만의 것을 하라고 가르친다. 다른 학생이 한 것에 무엇을 덧붙이는 행위는 보통 부정한 짓으로 여겨진다. 스크래치는 이에 대한 아이들의 관점을 바꾸려고 노력한다. 우리 목표는 회원들이 자기 프로젝트를 다른 사람들이 수용하고 리믹스할 때 이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좋아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209쪽)     

MIT 미디어랩 팀이 스크래치 온라인 커뮤티티를 개발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긴 우선순위 중 하나는 커뮤티니 구성원이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를 지원하고, 서로를 배려하는 문화를 육성하자는 것이었다. (212쪽)

그래서 우리는 스크래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배려의 문화’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배려의 문화’란 단지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존중에만 가치를 두는 게 아니다. 더 나아가 이것이 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데도 가치를 둔다. 배려하고 존중해주는 동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더 시도하려 하고, 창의적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따라오는 위험도 더 감수하려 한다. (213쪽)     


창의성은 대개 개인적인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이제까지 창의성이라는 개념이 특정한 사람이 지니고 있는 특별한 능력처럼 쓰여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창의성이라는 것은 결국 개인적인 것이 아니었다. 어떤 환경의 공동체 안에서 어떤 방식의 학습을 하느냐에 따라 누구나 얻을 수 있는 능력이었다. 새로운 일을 시도할 때, 도전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결국 주변에서 자신을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느냐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쟁을 부추기는 문화에서는 창의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살아남기란 어려운 일이다.


‘동료’에 대한 서술을 읽어가며 고개를 끄덕거리면서도 한편 가슴이 답답해졌다. 우리나라 교육과정에서도 창의성은 아주 중요한 교육적 이슈이다. 교육과정상 교과 내용마다 창의성과 관련된 내용들이 편성되어 있고, 그에 따라 교과서에는 창의성 함양을 목표로 하는 단원들이 배치되었어 있다.


하지만 그렇게 창의성을 강조하면서정작 학교 교육의 최종 목표는 입시임을 부정할 수가 없다. 수능 시험날에는 온 나라가 정적에 휩싸일 만수능은 중요한 시험이다. 똑같은 객관식 문항들을 온 나라의 열아홉 살들이 받아 들고 12년의 학교생활을 마무리하는 시험을 치른다. 결과에 따라 1등급부터 9등급까지 등급이 매겨지고 그에 따라 12년 간의 학교생활을 잘했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평가된다. 내가 1등급이면 누군가는 2등급이 되어야 하는 경쟁적 환경 속에서 창의적 학습이 가당키나 한 말인지.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빠른 시대이다. 단순한 일들은 컴퓨터나 로봇이 대체하기 시작한 지 이미 꽤 되었고, 그 과정에서 인간들의 설 자리는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이미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는 인공지능들이 개발되고 있으며, 지금까지 수십, 수백 년 동안 존재해온 여러 직업들이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이런 변화 속에서 우리는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할 것이며, 아이들의 어떤 능력을 키워주어야 할 것인가.      



학생들을 성적으로 줄 세우는 문화가 사라져야 한다고 하면서 수능으로 대학을 가는 정시 제도가 다시금 확대되는 이 교육 현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지.

창의적 사고를 하는 유연한 인재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이름난 대학의 졸업장이 없으면 원서조차 내밀기 어려운 취업제도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지.

매년 교육과정은 새롭게 발표되는데, 그것이 과연 가치 있으면서도 실현 가능한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긴 한 건지.     



책을 읽는 내내 수많은 상념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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