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시간-『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김하나, 황선우)
누구와 살든, 나와 다른 사람과 함께 산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구나.
처음에 우리는 서로의 비슷함을 발견하고 놀라워했지만 이후 서로의 다름을 깨달으며 더 크게 놀라게 되었다. 우리는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이었다. 그것도 매일매일 끝없이 들고 나는 파도처럼 이어질 ‘생활습관’이라는 거대한 영역에서.
각자가 40년에 걸쳐 쌓아 온 생활습관이란 결코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어느 쪽이 옳다는 답도 없고, 여러 개의 조항을 지키기로 합의한다고 해서 해결이 나는 것도 아니다. (109쪽)
같이 살겠다고 해놓고 보니 우리는 모든 게 달랐다. 내가 소유하고 싶은 물건의 양과 너에게 적절한 물건의 양이, 집 안이 덜 정돈되었을 때 참을 수 있는 정도가, 여행 가기 전날 집 정리에 투입하는 노력의 강도가 같지 않았다. 그 세세한 차이 하나하나가 다툼의 거리가 되기 시작하자 내가 서 있는 여기와 네가 서 있는 저기 사이에 굴러 떨어져 부서져 버릴 것만 같았다. 게다가 우리는 싸우는 방식 때문에 더 싸웠다. 나는 모로 피해 얼음 벽을 치는 사람이고, 김하나는 정면으로 불화살을 쏘아대는 사람이다. (113쪽)
사람은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지만 자신의 세계에 누군가를 들이기로 결정한 이상은, 서로의 감정과 안녕을 살피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계속해서 싸우고, 곧 화해하고 다시 싸운다. 반복해서 용서했다가 또 실망하지만 여전히 큰 기대를 거는 일은 포기하지 않는다. 서로에게 계속해서 기회를 준다. 그리고 이렇게 이어지는 교전 상태가, 전혀 싸우지 않을 때의 허약한 평화보다 훨씬 건강함을 나는 안다. (115쪽)
누군가와 함께 살면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는 것 같다. 나와 상대의 다른 점이 더 또렷하게, 자주 콘트라스트를 이루므로, 그 다른 점을 흥미롭게 여기고 나와 상대를 있는 그대로 지켜보도록 노력하는 게 중요하겠다. 나에 대해 깨닫고 나자 오히려 동거인에 대한 이해의 폭이 더 넓어졌다. 우리가 세상을 똑같이 지각하는 게 아님을, 애초에 당신과 나의 세상이 다름을 알게 되었으므로.(180쪽)
호의, 이게 ‘원래의 마음’ 아닐까? 관습과 가족 관계와 책임과 의무로 짓눌려버리기 이전의, 좋아하는 친구를 낳아주신 부모님께 갖는 친근한 마음, 내 자식과 함께 사는 친구에게 잘 대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 이 나리 모든 며느리, 사위, 장인, 장모, 시부모들에게도 원래의 마음은 이와 같을 것이다. 그리고 왜곡 없이 이 원래의 마음만을 그대로 유지한 채, 열무김치와 고기를 넙죽넙죽 받아먹는 우리가 역시 위너인 것 같다.(233쪽)
우리 집 여섯 식구는 외따로 있는 게 아니다. 망원동에서 엮어가는 호의적이고 느슨한 연결망 속에 W2C4라는 하나의 모듈로 서 있다. 핏줄이라는 이유만으로 가끔 얼굴을 보는 친척들보다 더 친근하고 반갑다. 그리고 핏줄이라는 이유만으로 끌어주고 챙기는 것보다 더 담백하고 따뜻하다. (26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