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번째 시간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정여울)
1. 제대로 사랑하는 법을 몰랐기 때문에
2. 당신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당신까지도
3. 마음의 안부를 물을 시간이 필요하다
4. 슬픔에 빠진 나를 가장 따스하게 안아주기
콤플렉스나 트라우마와의 대면이 아픈 일만은 아니다. 마침내 나의 그림자와 만난다는 것, 그것은 평생 달의 앞면만 보던 삶을 뛰어넘어 달의 뒷면까지 탐험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자신의 전체성과 만나 마침내 더 빛나는 자기실현의 길에 이르는 것이 대면의 궁극적 지향이다. 심리학적 대면은 자신의 좋은 점만 부각하는 지나친 긍정심리학의 유아성과 결별하는 것이다. 대면은 상처의 빛과 그림자 모두를 차별 없이 끌어안아, 마침내 더 크고 깊은 나로 나아가는 진정한 용기다. (86쪽)
상처 입은 내면아이 속에는 온갖 억울함과 안타까움으로 중무장한 채 한 번도 제대로 소리쳐 울어보지 못한 또 하나의 내가 숨겨져 있다. 내면아이에 대한 강의를 할 때마다 자주 받는 질문은 ‘우리 안에 상처 입은 내면아이를 어떻게 위로하냐’는 것이다. 그 첫 번째 출발은 성인자아가 내면아이에게 먼저 다가가 안부를 물어보는 것이다. (130)
상처를 극복하는 내면의 힘은 자신도 모르는 면역력처럼 무의식 깊숙한 곳에서 천천히 단련되어온 회복탄력성이다.
회복탄력성을 기르는 일상 속의 길은 뭘까. 나는 그것이 타인의 시선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내면의 희열, 즉 블리스(Bliss)를 가꾸는 일상 속의 작은 실천이라고 믿는다. 블리스는 시간의 흐름을 잊게 만드는 모든 기쁨이다. (92쪽)
어떤 괴로움도 진정한 나 자신이 아니다. 모든 괴로움의 원인이 나 자신도 아니다. 어떤 괴로움도 진정한 나를 이루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이해할 때, 우리는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고통이 나를 공격할 수는 있지만 그 고통이 나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때, 고통이 마음의 운전대를 제멋대로 조종하는 참사를 막을 수 있다. 괴로움이 우리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괴로움을 향한 집착이 우리를 파괴하고 있다는 걸 깨달을 때, 슬픔은 더 이상 우리를 파괴하지 못한다. 괴로움과 나는 동의어가 아니다. 슬픔과 나는 동의어가 아니다. (23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