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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Jun 30. 2020

밑 빠진 독에 사랑 붓기라도 괜찮아

네 삶에 사랑이 찰방찰방 차고 넘치기를 기도할게.


아이들을 재울 시간이 다 되어 아이 둘을 데리고 침실로 들어갔다. 사랑이와 봄이는 여전히 에너지가 남았는지 침대와 바닥을 오르내리며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지극히 일상적인 아이들의 모습이었는데, 문득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엄마 행복하다!"

"엄마, 왜 행복해요?"

"사랑이랑 봄이랑 같이 있으니까 행복하네."


내 대답을 듣고 멋쩍은 듯 씩 웃던 사랑이가 말을 이었다.


"아,  행복하다."

"사랑이도 행복해?"

"응, 행복해요."

"사랑이는 왜 행복한데?"

"비밀!"

"에이, 엄마한테만 말해줘."


사랑이는 요즘 비밀! 놀이에 빠져서 무슨 말도 다 비밀이라며 말해주지 않거나 귀에 대고 소곤거리며 말해주었다. 그런데 이 중요한 타이밍에 또 비밀이라니!


"엄마가 간지럼 공격해야겠네."

"안돼요."

"말해줘. 말해줘. 왜 행복한데~~?"

"엄마가 있으니까 행복하죠!"


대답과 동시에 까르르 넘어가는 사랑이의 웃음소리가 온방을 가득 채웠다. 옆에서 나를 끌어안고 장난을 치던 봄이는 오빠의 웃음소리에 함께 웃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묘한 마법을 부렸다. 방금까지 정리되지 않은 이불들이 널브러져 있던 침실이 순식간에 산들바람 부는 꽃밭으로 바뀐 기분이었다. 꽃밭을 함께 구르며 아이들과 함께 자지러지게 웃었다.  


무척이나 따뜻하고 평온한 밤이었다. 오랜만에 꿈도 꾸지 않고 푹 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빠 데리고 올게요!"


신나게 웃고 떠들던 사랑이가 불현듯 아빠가 생각났는지, 거실 정리 후 뒤늦게 양치를 하느라 욕실에 있던 신랑을 데리러 방에서 나갔다. 봄이도 질세라 사랑이 뒤를 따라 쪼르르 나갔다. 꽃밭에서 돌아오니 어질러진 이부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베개와 시트를 정리하는데 아빠를 데리고 올 거라던 사랑이가 방문 앞에 타요 자동차를 타고 쓱  나타났다.


"아빠는?"

"치카하고 온대요."

"봄이는?"

"아빠 옆에 있어요."

"사랑이는 왜 먼저 왔어?"

"엄마가 좋아서요."

"엄마가? 그랬구나.  근데 엄마가 왜 좋은데?"

"엄마니까 그냥 좋지요."


우문현답이었다. 사랑이는 뭐 그런 질문 같지도  않은 질문을 하냐는 듯 1초의 틈도 없이 대답을 했다. 유치한 질문을 한 내가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밑 빠진 독에 사랑을 붓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종종 있다. 아무리 사랑을 쏟아부어도 아이의 떼는 날로 심해지고 아이의 고집에 기가 다 빠질 때면 도무지 이런 날이 정말 끝나기는 하는 걸까, 내일은 또 어떻게 보내야 할까, 막막하기만 할 때가 있다. 콩쥐는 평소에 착하게 살아서 두꺼비가 밑 빠진 독을 척하고 메워줬다는데, 나도 그리 나쁘게 산 것 같지는 않은데 이 독의 구멍은 대체 누가 메워주나 싶어 대상 없는 원망을 한 날도 있다.


한 고비 넘고 보니 밑 빠진 독을 메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표현하며 시간을 견디는 것이었다. 아이가 불안해하지 않을 만큼,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고 확신할 만큼, 그저 사랑하고 인내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속상하고 외로운 밤에도 아이와 처음 만났던 그 기적 같은 순간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리고 아침이 밝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아이를 더 깊이 끌어안으며 사랑한다고 속삭였다. 그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사실 아이는 다 알고 있었다. 엄마가 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다만 커가는 과정이었고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확인이 확신이 되는 순간, 아이는 내가 저에게 보여주었던 절대적 사랑을 고스란히 되돌려주었다.


엄마가 있으니까 행복하죠.
엄마니까 그냥 좋지요.


존재만으로 행복을 주는 사람, 이유도 조건도 없이 마냥 좋은 사람, 내게 아이는 그런 존재였다. 그런데 이제는 아이가, 제게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말을 했다.  아기 같기만 하던  아이는 어느새 쑥 자라 엄마에게 받은 사랑을 흉내 내고 있었다.




여전히 아이가 품고 있는 마음의 독에는 크고 작은 구멍들이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아이는 알게 될 것이다. 엄마의 사랑이  구멍들 새어나가는 것 같더라도, 결코 독이 비어버리는 일은 없다는 것을. 언제나 새어나가는 것 그 이상의 사랑을 엄마가 주고 있다는 것을.


그렇게 내가  마음의 구멍을 끊임없이 메워내며  마음을 지키는 동안, 아이는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사랑을 주고받기를 소망한다.


내가 채워놓은 사랑 위로 새로운 사랑들을 차곡차곡 담아가기를, 그렇게 언제나 사랑이 찰방찰방 차고 넘치는 삶을 살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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