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번째 시간-『글 쓰는 엄마』(윤슬)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나는 조르바가 된다.
내게 묶여있는 끈을 잘라내고 나만의 산투르를 연주하는 기분이 든다.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나는 ‘객체’가 아닌 ‘주체’가 된다.
나는 ‘글 쓰는 엄마’다. (11쪽 프롤로그)
가능하면 하루 한 번 글쓰기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이들과의 감정싸움으로 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간 날에도, 기대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아 마음이 우울해진 날에도, 예상하지도 못한 선물에 감사한 날에도, 내 안에서 일어나는 생각이나 감정에 집중하면서 글을 써 내려가고 있다. 나에게 글쓰기는 감정의 쓰레기통이며 감정의 회복을 도와주는 재생에너지원이다. 다시 말해 나를 다독이는 과정과 일으켜 세우는 과정을 글쓰기와 함께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1쪽)
우리는 겉으로 드러난 모습에 확신하면, 때로는 숨겨놓은 모습을 발견하고는 당황해하면서, ‘나다움’을 찾아가고 있다. 이런 모습이 나다운 것이라며 안도하기도 하고, 또 가끔 저런 모습이 진짜 나다운 것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나’와 ‘나다움’을 연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분별력을 갖추고 본능적인 것을 최대한 억제하면서 말이다. (중략)
치밀하게 분석하고 이해관계를 따지는 심사숙고(深思熟考)도 좋지만 ‘관심이 있어 한번 해 본다’라는 조금 낯선 행동이 진짜일 수 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결과에 대한 평가, 그런 것은 뒤에 진짜 속마음이 숨어있을 수 있다. 특히 그러한 행동이 어떤 맥락을 지니고 있을 때는 정체성을 발견하는 결정적인 힌트가 될 수 있다. (31쪽 ‘나다움’에 대해 고민하다)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새로운 모습이 될 이유는 있다. 누구나의 인생을 살아가지만, 저마다의 인생을 살아내야 하니까.
누구도 아닌 스스로를 위해, 거듭 태어나는 방식을 찾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선택을 믿고 몸을 움직여야 한다. 나는 그 방식을 ‘글쓰기’로 결정했고 오늘도 그 길을 걷고 있다. (72쪽 ‘누구나의 인생, 저마다의 인생’)
솔직히 고백하면 정말 엄마 노릇하는 게 쉽지 않다. 아이를 손님처럼 대하라고 하지만, 마음대로 눌러앉아 기약 없이 시간을 보내는 손님의 무례한 태도에 종종 화가 난다. (82쪽 시간의 힘을 견딘 것은 아름답다)
언젠가 내 품에서의 시간을 떠나 자신의 날개로 하늘을 가르고 바람을 만들어낼 아이들, 나와 함께 보낸 시간이 ‘힘’을 만드는 일에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 도움닫기를 할 때, 비행할 때, 잠시 숨 고르기 할 때, 날개를 모아 잠자리에 들 때라도 한 번쯤은 떠올리는 이름이 되었으면 좋겠다. 사랑하면서, 사랑받으면서 살아온 추억으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살아갔으면 좋겠다. (95쪽 짜파구리는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