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나 사이의 유연한, 거리

시로 쓰는 부부일기

by 진아

거리를 걸으며, 거리를 생각했어.



가을이 고개를 빼꼼,

내민 거리를 걷다가

당신과 나 사이의 거리를 생각했어


내 작은 손으로 한 뼘쯤일까

아니면

당신의 긴 다리로 한 걸음쯤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눈앞에 놓인 사거리의 횡단보도 하나쯤일까



어떤 날은 한 뼘도 안 되는 거리에서

당신의 온기를 느끼는 게 좋아

또 다른 날은 한 걸음쯤 떨어진 거리에서

조용히 함께 걷는 게 좋아

하지만 아주 가끔 어떤 날은

횡단보도 하나쯤 떨어진 거리에서

서로의 신호에 초록불 들어오기 전까지는

멀찌감치 그저 지켜보는 게 좋아


그러고 보면

당신과 나 사이의 거리는

탄력 있는 고무줄처럼

좁혀졌다 이내 넓혀졌다

넓혀졌다 이내 좁혀졌다

반복하곤 하나 봐



난 그게 딱, 좋아

너무 가깝지만도

너무 멀지만도 않은

때마다의 거리를 지키는

우리 사이가

참 좋아

당신도 그렇다면

우리는 참 좋은 연(緣)일 텐데



당신과 나 사이 거리를 생각하며

걸어온 거리 끝에 당신이 보여

꽃 같은 얼굴로 나를 향해 손 흔드는

반가운 당신

당신과 나 사이에 놓인 횡단보도 하나가

참 멀게 느껴지는 날이야


오늘은 우리 둘 사이 거리가

딱 한 뼘,

아니

딱 손가락 한 마디쯤이면

충분한 날인가 봐




결혼을 하고, 나와 다른 생을 살아온 완전한 타인과 함께 살며 많은 것을 배웠다. 그중 가장 소중한 배움은 부부 사이에도 적당한 거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부부 사이의 거리는 고정적인 것은 아니어서 어떤 날은 아주 가까울 때도, 어떤 날은 조금 멀 때도 있다. 그 거리를 잘 오가는 것이 한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며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 같다. 물론 서로의 사인이 잘 맞아 멀어지고 싶을 땐 함께 잠시 거리를 둘 줄 알아야 할 테고, 가까워지고 싶을 땐 서로의 방향으로 한 걸음씩 함께 내디뎌야 할 테지만.


비단 부부 관계뿐이겠는가. 친구 관계에도 모녀 관계에도 부자 관계에도 직장 동료와의 관계에도 적당한 거리가, 또 때에 맞는 거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어릴 땐 '나'와 '너' 사이에 거리가 느껴지지 않는 것이 마냥 좋은 사이인 줄 알았는데, 나이를 먹어갈수록 '나'와 '너' 사이의 거리가 유연한 것이 더 좋은 사이라는 생각이 든다. 유연한 거리감을 가진 소중한 인연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물론, 평생을 함께 살 우리 부부 사이의 거리가 유연함을 잃지 않으며, 잘 유지되기를 가장 간절하게 희망한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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