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한 번째 시간-『가재가 노래하는 곳』(델리아 오언스)
카야는 스멀스멀 올라오는 허기에 놀랐다.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일상적인 허기. 부엌으로 가다가 문 앞에서 멈춰 섰다. 언제나 빵을 굽고 강낭콩을 삶고 생선 스튜를 보글보글 끓이는 열기에 뜨거웠던 방이었는데, 이제 부엌은 퀴퀴하고 고요하고 어두웠다. “이제 밥은 누가 해?”카야는 소리 내어 물었다. 사실 ‘이제 누가 춤을 추지?’라고 묻고 싶었지만.
촛불을 켜고 화덕의 뜨거운 잿더미를 쑤시며 불쏘시개를 넣었다. 불이 피어오를 때까지 풀무질을 했다. 판잣집까지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냉장고가 찬장 노릇을 하고 있었다. 곰팡이가 끼지 않도록 문에 파리채를 끼워 살짝 열어두었다. 그래도 틈새마다 검푸른 곰팡이가 피었다.
먹다 남은 음식을 꺼내며 카야는 말했다. “그리츠를 돼지기름에 튀겨서 데워야지.” 음식을 냄비째 그대로 먹고 창밖을 살피며 아버지를 찾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오지 않았다.
초승달이 발한 빛이 판잣집에 닿자 카야는 포치에 있는 잠자리로 기어들어 갔다. 울퉁불퉁한 매트리스에는 엄마가 알뜰시장에서 사준 파란 꽃무늬 홑청이 덮여 있었다. 평생 혼자 맞는 밤이었다.
처음에는 숲 속의 발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몇 분에 한 번씩 일어나 앉아 차양문 밖을 살폈다. 한 그루 한 그루 모양을 낱낱이 아는데도 이따금 나무가 달을 따라 움직이는 것 같았다. 한참 침도 못 삼키고 뻣뻣하게 굳어 있는데 때마침 청개구리와 여치가 친숙한 노랫소리로 밤을 채워주었다. 어둠은 달콤한 향내를 간직하고 있었다. 더럽게 뜨거운 낮을 하루 더 견뎌낸 개구리와 도마뱀들의 텁텁한 숨결, 습지가 낮게 깔린 안개로 바짝 다가왔고 카야는 그 품에서 잠이 들었다. (25~26쪽)
카야는 힘없이 자기가 무슨 짓을 했기에 모두가 떠나버리는 걸까 생각했다. 친엄마, 언니들, 온 가족, 조디 그리고 이제 테이트까지. 카야에게 가장 아린 기억은 오솔길을 따라 하나씩 사라지는 가족들이었다. 하얀 스카프 끝자락이 잎사귀 사이로 날리고, 바닥 매트리스에 남아 있던 양말 더미.
테이트와 삶과 사랑은 같은 말이었다. 그런데 이제 테이트가 없다.(182쪽)
“배심원석에 앉아 계신 신사 숙녀 여러분, 저는 바클리코브에서 성장했고 지금보다 젊었을 때 마시 걸에 대한 황당무계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요, 이 문제를 터놓고 이야기해보도록 합시다. 우리는 그녀를 마시 걸이라고 불렀습니다. 아직도 그렇게 부르는 사람들이 많지요. 어떤 이들은 마시 걸은 반인 반늑대라고 속삭였고, 유인원과 인간 사이의 잃어버린 사슬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어둠 속에서 그녀가 안광을 발한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녀는 그저 버림받은 아이였습니다. 유기되어 혼자 늪에서 배고픔과 추위와 싸우며 살아남은 어린 소녀를, 우리는 돕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하나뿐인 친구 점핑을 제외하면 우리 교회는 물론 지역사회 어떤 집단도 그녀에게 음식이나 옷가지를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우리는 그녀에게 늪지 쓰레기라는 딱지를 붙이고 거부했습니다. 우리와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신사 숙녀 여러분, 우리와 다르기 때문에 캐서린 클라크를 소외시켰던 건가요. 아니면 우리가 소외시켰기 때문에 그녀가 우리와 달라진 건가요? 우리가 일원으로 받아주었다면, 지금 그녀는 우리 중 한 사람이 되었을 겁니다. 그녀를 먹이고 입히고 사랑해주었다면, 우리 교회와 집에 초대했다면, 그녀를 향한 편견도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오늘날 범인으로 기소되어 이 자리에 있지도 않았을 겁니다.
우리는 이 수줍은 외톨이 처녀를 재판해야 하는 책임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이 사건에서, 이 법정에서 제시된 사실을 근거로 판단해야 합니다. 루머나 지난 24년간 쌓인 감정으로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그렇다면 참되고 견고한 사실이 무엇이냐고요?(420쪽~42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