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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Oct 06. 2020

함께여서 행복한 지금 이 시간을 잃지 않기를

스물세 번째 시간-『와세다 유치원에서의 1년』(조혜연)

어쩌다 보니 브런치 작가님들의 책을 연이어 읽게 되었다. 얼마 전 읽은『나는 철학하는 엄마입니다』는 제목에 이끌려 자발적으로 구입해서 읽게 된 책이었다면, 이번에 읽은 『와세다 유치원에서의 1년』은 친한 동료 교사에게 선물로 받아 읽게 된 책이었다. 내게 이 책을 선물해준 동료는 “읽고 나면 아마 좋아할 거야~”라는 대수롭지 않은 감상평을 전하며, 비대면 시대에 걸맞게 온라인 서점을 통해 책이 우리 집으로 직접 배송이 되도록 해주었다.


제목으로 그 내용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책이었다. 와세다 유치원에서 보낸 1년간의 기록이겠구나 생각했다. 요즘 들어 책을 읽을 때 부제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데, 이 책의 부제는 ‘함께여서 행복했던 내 아이의 어린 시절’이었다. 한국의 유치원 외에는 유치원이라는 곳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없는 내게 신선한 부제였다.


내 주변 아이들이 다니는 유치원은 9시쯤이면 셔틀버스가 아이를 태워가고, 4시가 넘어서야 같은 버스가 아이를 탔던 장소에 그대로 내려주고 가는 곳이었다. 그러니 아이가 유치원쯤 갈 나이가 되면 엄마들은 그간의 육아에서 조금은 해방되어 아이들과 ‘함께’ 할 시간보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조금은 늘어났다. 그런데 유치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함께여서 행복했던’이라니? 호기심을 품고 책의 페이지를 넘겼다.

      

저자는 일본의 도쿄, 그중에서도 가장 번화가에 속하는 신주쿠에서 일 년 반 동안 살면서 두 아이를 와세다 유치원에 1년, 근처 소학교에 6개월을 보냈다고 한다. 어떻게 해서 일본 생활을 하게 되었으며, 어떤 마음으로 구립 유치원에 보내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부터 별 고민 없이 보낸 유치원의 실체(?)를 확인하며 엄청난 혼란을 경험한 이야기까지 아주 읽기 쉬운 문체로 편안하게 서술되어 있었다. 그래서 정말 술술 잘 읽히는 책이었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내게 언제나 가깝지만 먼 나라였다. 내 첫 해외여행지는 도쿄였지만 그건 그저 가까운 곳이라는 이유였을 뿐, 일본이라는 나라와 그 문화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관심은커녕 오히려  좋지 않은 이미지만 잔뜩 갖고 있었다. 일본이라는 나라를 떠올렸을 때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들이 ‘혐한, 위안부 문제, 독도, 히키코모리……’ 등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상하리만치 참 가까운 일본이라는 나라가 내게는, 언제나 울분과 분노를 일으키는 문제들과 맞닿아 있어서인지 참 멀게만 느껴지는 나라였다.      


제목도 모르고 선물 받은 책이, 일본의 유치원에서 1년을 보낸 이야기라고 했을 때 당장에 흥미가 닿았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기쁜 마음으로 읽어 내려갈 수 있었던 이유는, 읽을수록 이 책이 ‘일본의’ 유치원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 '참 아름다운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따뜻한 기록'이었기 때문이다. 그 기록의 배경이 ‘와세다 유치원’이라는 아주 특별한 공간이었을 뿐.      

    

저자는 별 정보 없이 선택한 와세다 유치원(구립 유치원이라 원비가 저렴했고, 따로 발품을 팔아가며 정보를 알아볼 필요가 없었으며, ‘와세다’라는 이름이 너무도 매력적이라 선택했다고 한다)에서 한국과 전혀 다른 새로운 유치원 문화를 경험했다. 그가 들려주는 와세다 유치원은 내게도 정말 새로운 유치원이었다.    

       

우선 와세다 유치원은 2시면 모든 유치원 프로그램이 다 끝났다. 아이들을 위한 방과 후 활동이라든가 돌봄 서비스 같은 것이 전혀 없어서 2시 이후로는 모든 것을 다 엄마들이 책임져야 했다. (중략) 셔틀버스가 없는 것 이외에도 등 하원 방식 역시 한국과는 사뭇 달랐다. 유치원의 등원 시간은 8시 50분부터 9시까지로 딱 정해져 있었다. 정확하게 8시 50분이 되면 유치원의 문이 열렸고 9시가 되면 다시 문이 닫혔다. (중략) 하원 방식 역시 무척 특이해서 매일 1시 50분까지 모든 엄마들이 유치원 정원에 모여 아이들과 함께 선생님의 종례 사항을 들은 뒤에야 헤어질 수 있었다.(43쪽)     


충격적이었다. 유치원만 가면 보육에 있어서만큼은 한 시름 놓는 한국의 일반적인 유치원과는 너무도 다른 와세다 유치원! 책에서도 밝히고 있지만 일본에도 맞벌이 가정을 위해 보육을 제공하거나 급식을 제공하는 유치원들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와세다 유치원은 철저하게 엄마가 함께 하는 유치원이었다. 정말 헉! 소리가 날 만큼 엄마들의 헌신적인 참여를 요하는 곳이었다. 아마 한국에도 그런 유치원이 있을지 모른다. 적어도 내게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새로운 방식의 유치원이었지만!


솔직히 내 주변 어떤 엄마도 선택하지 않을 유치원이긴 했지만, 책을 읽어가며 그 교육방식이 부모와 아이들에게 어떤 가치가 있는지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분명히 엄마들에게는 아주 어려운 시간이겠지만, 저자의 관점처럼 내 아이가 자라는 것을 선생님과 동등한 위치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아주 의미 있는 시간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느낀 와세다 유치원의 진짜 매력은 그것이 아니었다.  


와세다 유치원의 프로그램들은 주로 놀이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그 놀이란 말 그대로 놀이였다. 우리나라에서처럼 놀이를 통해 영어를 배우고, 놀이를 통해 수학을 배우고, 또 놀이를 통해 뭔가를 배우는, 결국엔 뭔가를 배우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놀이가 아니라 그냥 온전한 놀이 그 자체 말이다. (29쪽)     

하지만 아이들의 역할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단순히 준비한 공연을 선보이고 각종 운동경기에 참여하는 것 이외에도 아이들은 운동회라는 커다란 행사를 이끌어나가는 하나의 주체로서 여러 가지 몫을 해냈다.(중략) 어떤 행사이든 조금은 어설프고 조금은 더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런 식으로 아이들에게 직접 많은 부분을 스스로 이끌어 나가게끔 하는 와세다 유치원의 교육방식은 내게는 언제나 참으로 신선하고도 색다른 깨달음을 안겨주었다.(141쪽)     

아이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다 자신들의 손길이 닿아 있던 그 연극에 큰 애정을 느끼는 듯했고, 그래서인지 연극을 하는 동안에도 아이들의 얼굴에서는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149쪽)     

아이들의 앞에 서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아이들을 이끌어 나간다기보다는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함께 뛰고 함께 뒹굴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면 티셔츠에 트레이닝복 바지만큼 적당한 옷이 없었으리라. 그래서인지 선생님들의 트레이닝복 바지는 늘 아이들을 향한 선생님들의 세심하고도 따스한 마음까지도 함께 떠올리게 했다.(156쪽)     



직업이 직업인지라, 와세다 유치원의 교육방식이며 선생님들의 태도가 그냥 대충 보이지 않았다. 와세다 유치원의 교육방식은 누군가의 눈에는 그저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것이었다. 고작 만 3세, 4세, 5세의 아이들이 하면 뭘 한다는 말이냐 반문하는 사람들도 꽤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의 잠재력을 갖고 있는 존재다. 학교 현장에서 내가 만났던 중학생들 고등학생들도 그러했다. 하물며 경직된 학교 교육을 전혀 받지 않아 너무도 말랑말랑한 뇌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유치원생들이라면? 그 결과물이 어설프고 부족할지 몰라도, 그 안에서 아이들의 잠재력은 창의성과 주체성으로 무럭무럭 자라날 것임은 보지 않아도 예측할 수 있는 일이었다.


우리 집 두 아이만 봐도 알 수 있다. 겨우 만 1세, 만 3세인 두 아이도 결코 내가 보지 못하는 사물의 뒷면을 보고, 자연의 색채를 본다. 내게는 쓰임이 정형화된 도구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갖고 놀고, 조물조물 자연을 만져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이 타고나는 잠재력을 믿게 되었다. 그 잠재력을 교육으로 얼마나 짓누르고 짓이기고 있는지 새삼 깨달아가고 있는 와중에 만난 ‘와세다 유치원’의 교육방식은 참으로 매력적이었다. 


사실 아이들의 창의성을 존중하며 주체성을 키워주려면 교사는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아이들에게 맡겨놓고 노는 것이 아니라, 아이 하나하나에 관심을 두어야 하고 아이들의 반응에 적절한 피드백을 주어야 한다. 오히려 그냥 가르치는 쪽이 훨씬 더 편하다. 가르치지 않으면서 아이들과 교감할 수 있는 교사가 되는 것은 정말 어렵다. 그런 면에서  와세다 유치원 선생님들의 태도 역시 존경할 만했다.


와세다 유치원 이야기를 읽으며  『미첼 레스닉의 평생 유치원』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참고 : 미첼 레스닉의 평생 유치원 독서노트) 놀이, 동료, 열정, 프로젝트 네 가지 요소를 교육의 중요 요소로 보고, 이것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공간으로 ‘유치원’을 이야기한 미첼 레스닉, 아마 그가 ‘와세다 유치원’을 본다면 무릎을 치고 ‘바로 여기군!’이라고 말할 것만 같았다. 와세다 유치원에서 1년을 통해 곤충학자의 꿈을 키우고 있다는 저자의 첫째 아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와세다 유치원에서는 무언가를 애써 가르치지 않았지만, 그래서 주체적으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곳이었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우리 집 첫째는 내년이면 5살이 된다. 주변에서는 어린이집에 1년을 더 보낼 것인지, 유치원 5세 반에 보낼 것인지 고민하는 엄마들이 많다. 벌써 영어 유치원, 국제 유치원, 놀이 학교, 숲 체험 유치원 등 다양한 유치원을 알아보며 학부모가 될 준비를 하는 엄마들도 많다.


나는 당장 내년까지는 어린이집에 계속해서 보낼 계획이라 1년이라는 고민의 유보기간이 생겼지만, 그래도 마냥 아무 생각이 없지는 않다. 적어도 유치원에서부터 아이를 책상에 앉혀 공부하게 하는 곳에는 보내고 싶지 않다. 솔직히 말하면 그저 뛰어놀 수 있는 유치원이 있다면 다른 것을 고려하지 않고 보내고 싶다. 아이들과 놀이터, 공원, 아파트 단지 등을 산책하고 뛰어놀며 느끼는 바가 많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시선은 언제나 새롭고, 나는 아이들에게 매일 배운다. 그런 아이들의 ‘아이다움’을 잃지 않게 해주는 곳이라면 어디든 두 손 들고 환영이다. 그런데 그런 유치원이 영어 유치원보다도 찾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또 결국 나는 1년 후면 복직을 해야 한다. 와세다 유치원이 지척에 있어도 일하는 엄마가 될 예정인 나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아주 가볍게 읽은 에세이였는데, 유치원에 대한 고민을 툭하고 던져주고야 말았다. 고민해봐야 답도 없는 것을…. 그런 내게 저자의 에필로그는 큰 위안이 되었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독자 여러분들에게도 아이의 어린 시절을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의 장소가 하나쯤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그 장소가 일본의 어느 한 유치원처럼 거창할 필요는 없다. 그저 아이와 소소한 일상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곳이라면 그 어디라도 좋을 것이다.(216쪽)     



내게 와세다 유치원은 그림의 떡이고, 내 아이들은 결코 그런 유치원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채 학령기를 맞을 것이다. 하지만 책에서 저자가 내게 준 마지막 메시지는 ‘와세다 유치원을 통해서 아이가 이렇게 성장했어요’가 아니었다. ‘함께여서 행복했던 내 아이의 어린 시절’이라는 부제처럼 아이와 온전히 ‘함께할 수 있는 시간’, 그 시간을 떠올릴 수 있는 특별하지만 특별하지 않은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책장을 덮으며 떠올려 본다. 매일 두 아이를 킥보드에 태워 함께 달리는 아파트 단지의 산책로, 비행기 놀이터와 물놀이 놀이터, 집 근처의 공원, 매일 다른 색깔의 노을을 함께 바라보게 되는 우리 집 거실까지. 내게는 아이와 온전한 시간을 누리고 있는 일상적이지만 너무나 특별한 공간들이 있다. 이 공간들에서 두 아이와 하루를 온전히 보내는 지금의 시간들은 그저 흘러가는 대로 두면 유속 빠른 강물보다 더 빠른 속도로 흘러가버릴 시간이다. 이 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 그 안에서 제 속도대로 자라고 배워나갈 아이들은 또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바라보고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느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아주 색다른 방식의 교육을 실천하고 있는 유치원의 이야기이자, 아이가 가장 사랑스러운 순간을 온전히 함께한 이야기!  『와세다 유치원에서의 1년』을 읽는 시간은 교사이자 엄마인 내게 잔잔한 울림을 준 고마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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