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세 번째 시간-『와세다 유치원에서의 1년』(조혜연)
우선 와세다 유치원은 2시면 모든 유치원 프로그램이 다 끝났다. 아이들을 위한 방과 후 활동이라든가 돌봄 서비스 같은 것이 전혀 없어서 2시 이후로는 모든 것을 다 엄마들이 책임져야 했다. (중략) 셔틀버스가 없는 것 이외에도 등 하원 방식 역시 한국과는 사뭇 달랐다. 유치원의 등원 시간은 8시 50분부터 9시까지로 딱 정해져 있었다. 정확하게 8시 50분이 되면 유치원의 문이 열렸고 9시가 되면 다시 문이 닫혔다. (중략) 하원 방식 역시 무척 특이해서 매일 1시 50분까지 모든 엄마들이 유치원 정원에 모여 아이들과 함께 선생님의 종례 사항을 들은 뒤에야 헤어질 수 있었다.(43쪽)
와세다 유치원의 프로그램들은 주로 놀이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그 놀이란 말 그대로 놀이였다. 우리나라에서처럼 놀이를 통해 영어를 배우고, 놀이를 통해 수학을 배우고, 또 놀이를 통해 뭔가를 배우는, 결국엔 뭔가를 배우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놀이가 아니라 그냥 온전한 놀이 그 자체 말이다. (29쪽)
하지만 아이들의 역할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단순히 준비한 공연을 선보이고 각종 운동경기에 참여하는 것 이외에도 아이들은 운동회라는 커다란 행사를 이끌어나가는 하나의 주체로서 여러 가지 몫을 해냈다.(중략) 어떤 행사이든 조금은 어설프고 조금은 더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런 식으로 아이들에게 직접 많은 부분을 스스로 이끌어 나가게끔 하는 와세다 유치원의 교육방식은 내게는 언제나 참으로 신선하고도 색다른 깨달음을 안겨주었다.(141쪽)
아이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다 자신들의 손길이 닿아 있던 그 연극에 큰 애정을 느끼는 듯했고, 그래서인지 연극을 하는 동안에도 아이들의 얼굴에서는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149쪽)
아이들의 앞에 서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아이들을 이끌어 나간다기보다는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함께 뛰고 함께 뒹굴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면 티셔츠에 트레이닝복 바지만큼 적당한 옷이 없었으리라. 그래서인지 선생님들의 트레이닝복 바지는 늘 아이들을 향한 선생님들의 세심하고도 따스한 마음까지도 함께 떠올리게 했다.(156쪽)
나는 이 책을 읽는 독자 여러분들에게도 아이의 어린 시절을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의 장소가 하나쯤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그 장소가 일본의 어느 한 유치원처럼 거창할 필요는 없다. 그저 아이와 소소한 일상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곳이라면 그 어디라도 좋을 것이다.(21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