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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Oct 26. 2020

『도덕경』에서 울림 있는 문장을 만날 줄이야.

스물여섯 번째 밤-『도덕경』(노자, 소준섭 옮김)

이번에 새롭게 참여하게 된 독서모임의 첫 번째 선정도서가 『도덕경』(노자, 소준섭 옮김)이었다. 도덕경이라니! 평소 동양철학 쪽으로는 별로 흥미가 없어서 관련 책들을 읽은 경험이 전무했다. 내가 노자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배경지식이라고는 무위자연(無爲自然), 상선약수(上善若水), 자연친화(自然親和) 정도의 용어가 몇 개가 전부였다.


지런히 책을 읽고 독서모임까지 마친 지금, 책을 읽기 전보다야 아주 조금 더 알게 되었겠지만 고백하건대 여전히 도덕경을 제대로 이해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여전히 ‘도(道)’라는 개념은 머릿속을 부유하고 있고, 노자가 말한 ‘무위'의 개념이나 ‘유’와 ‘무’의 관계 등은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그럼에도 독서기록을 남기는 것은 도덕경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번뜩이는 통찰을 경험한 문장들을 만났고, 그 기억들이 아슴푸레 잊히기 전에 기록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도덕경』은 상편과 하편으로 나누어지며, 상편에서는 도(道)가, 하편에서는 덕(德)이 다루어진다. 상편인 ‘도’ 편이 노자 사상의 본질이고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도(道)’의 개념에 관한 것이라면, 하편인 ‘덕’ 편은 생활에서의 실천에 관한 것들이었다. 전반적으로 비유적 표현이 상당히 많아서 이해가 어려운 것들도 있었고, 오히려 너무나 선명하게 이해되는 것들도 있었다. 총 81장으로 구성된 도덕경 전체를 정리할 재주도 없거니와, 그것은 제대로 된 이해를 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큰 의미도 없으므로 내게 큰 울림을 남긴 문장들을 기록하는 것으로 만족하려 한다.      


13장 총애를 받는 것과 모욕을 당하는 것 모두 놀라움을 주는 것이다.      

총애를 받는 것과 모욕을 당하는 것 모두 놀라움을 주는 것이니, 심지어 그 큰 아픔은 마치 생명과 같이 진귀하게 여겨진다.
왜 총애를 받는 것과 굴욕을 당하는 것이 놀라움과 같다고 하는가?
총애는 좋은 일이고 모욕은 좋지 않은 일이지만, 얻어도 놀랍고 잃어도 놀라게 된다.
그리하여 총애와 굴욕은 놀라움이라 한다.
왜 그 큰 아픔을 마치 생명과 같이 진귀하게 여긴다고 하는가? 나에게 큰 아픔이 있는 까닭은 바로 나에게 몸이 있기 때문이다. (후략)     


총애와 모욕은 모두 나에 대한 외부의 평가이다. 총애를 받으면 좋고, 모욕을 받으면 나쁘다고 생각하지만 그 본질은 똑같다. 나 자신이 아닌 외부의 평가에 나를 내맡기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총애를 받기 위해 어떤 일을 하는 것과 누군가에게 모욕을 당하지 않기 위해 어떤 일을 하는 것은 기실 같은 맥락인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한다. ‘나’를 찾고 싶어 하고, 정체성을 가진 개인으로 살고 싶다고 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외부의 평가에 나를 내맡기고, 쉴 새 없이 흔들린다. 이 책의 옮긴이는 13장을 해석한 뒤, 그 뒤에 ‘삶의 주인이 될 것인가? 아니면 노예가 될 것인가’라는 질문을 달아두었다.

      

이 장을 읽고 나서 요즘 두 아이에게 자주 읽어주는 동화책이 불현듯 생각났다. 『너는 특별하단다』라는 책인데, 엘리라는 목수가 만든 나무인간 웸믹들의 이야기이다.


웸믹들이 하루 종일 하는 일은 잿빛 점표와 금빛 별표가 든 상자를 들고 다니면서 만나는 이들에게 별표나 점표를 붙이는 것이었다. 나뭇결이 매끄럽고 색이 잘 칠해졌거나 특별한 재주를 가진 웸믹들에게는 금빛 별표를, 나뭇결이 거칠고 칠이 벗겨졌거나 별 재주가 없는 웸믹들에게는 잿빛 점표를 말이다. 주인공인 ‘펀치넬로’는 늘 잿빛 점표만 받는 웸믹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점표도 별표도 붙어 있지 않은 ‘루시아’라는 웸믹을 만나게 되고, 루시아의 권유대로 자신을 만들어준 목수 엘리를 찾아간다. 엘리는 펀치넬로에게 말한다.

     

“루시아는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보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지. 그 표는 네가 붙어 있게 하기 때문에 붙는 거란다.(중략) 그 표는 네가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할 때만 붙는 거야.”

“내가 너를 만들었고, 넌 아주 특별하단다.”     


펀치넬로는 엘리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어렴풋하게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그 순간 펀치넬로 몸에 붙어 있던 점표 하나가 툭하고 땅으로 떨어진다.      


도덕경의 구절을 동화책에서 그대로 만나게 될 줄이야. 그러고 보면 나 역시도 ‘나’로서 살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지만 곳곳에서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왔다. 나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가 나에 대해 성급하게 내린 판단에도 때론 쉽게 자만하고 들떴으며, 때론 흔들리고 상처 받았다. 아주 최근에 와서야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삶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삶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다.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것도 그 일의 연장선이다. 누구보다 나 자신을 나 스스로 잘 알기 위해서, 조금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서, 그래서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 말이다.      


노자의 말씀대로 남들에게서 기인한 총애와 모욕에 놀라고 아파하지 않고, 루시아처럼 남들이 붙이는 점표와 별표 따위에 나를 내 맡기지 않고 온전한 ‘나’로서 살아야겠다고 다짐한 부분이었다.      




22장 능히 굽어질 수 있어야 온전하다.      

능히 굽어질 수 있어야 온전하다.
능히 구부릴 수 있어야 곧을 수 있다.
능히 패일 수 있어야 채울 수 있다.
낡고 해져야 비로소 새로울 수 있다. (후략)     


구절구절이 다 와 닿았던 부분이다. “우리네 삶에서 언제나 좋은 일만 생길 수는 없다. 때때로 위험과 곤경에 처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러할 때 노자는 우리에게 먼저 물러서라고 권한다. 조용히 관찰하면서 변화가 발생하기를 기다리라고 말한다. 그때가 되어 이윽고 행동에 나서면 마침내 뜻을 이룰 수 있다고 귀띔해 준다.(87쪽)” 옮긴이의 말처럼 살다 보면 좋은 일만큼이나 아프고 힘든 일들을 생의 구비마다 만나게 될 것이다. 누군가는 그런 위기마다 물러서지 말고 맞서라고, 더 힘을 내어 이겨나가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노자는 굽어질 수 있어야 하고, 구부릴 수 있어야 하며, 패일 수 있어야 하고, 낡고 해질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조금은 자세를 낮추고 기다릴 줄 아는 지혜, 상황을 관찰하고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힐 줄 아는 여유를 가지라고 말이다. 내게는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다.      


나도 위기를 겪을 만큼 겪으며 살아왔지만, 언제나 나는 정면돌파형이었다. 물러서고 낮추고 기다리는 것에는 유난히 재주가 없었다. 성격이 급하기도 했지만, 문제 상황을 견디는 것 자체를 괴롭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빨리 해결하고 싶은 욕구가 컸다. 그렇게 해서 언제나 어려움을 잘 해결했다면 별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그러다 사람을 잃거나 일을 그르친 경우가 많았다. 조금 차분하게 주변을 살피고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여유가 있었다면 그 사람들을 잃지 않았을까, 그 일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을까 곱씹어보게 되었다.      


살면서 얼마나 더 많은 위기를 맞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지만, 『도덕경』 속에서 만난 이 문장을 마음에 새기고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위기에 대응해보려 한다. 굽어지는 것이 구부리는 것이 언제나 패한 것은 아니라는 것,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여유가 때론 더 좋은 결과에 가닿게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고.     




64장 인위적으로 행하는 자는 실패하고, 집착하는 자는 잃는다.      

편안할 때 위태로운 것을 조심하면 유지하기가 쉽고, 아직 징조가 나타나기 전에 미리 대책을 세우면 계획하기가 쉽다.
단단하지 못한 것은 깨트려지기가 쉽고 미세한 것은 흩어져 버리기 쉽다.
아직 아무 일도 없을 때 처리하고 어지러워지기 전에 다스려야 한다.
한 아름이나 되는 큰 나무도 털끝만 한 작은 싹에서 시작되고, 구층의 높다란 누각도 한 줌의 흙들로 쌓아 만들어지며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된다.
인위적으로 행하는 자는 실패할 것이고, 집착하는 자는 잃게 된다.
그러한 까닭에 성인은 무위로 행하여 실패하지 아니하고, 집착하지 않으므로 잃지 않는다. 사람들이 하는 일은 항상 거의 다 이뤄지다가 실패한다.
시작할 때와 같이 끝맺음도 신중히 하면 실패하지 않는다. (후략)     


나는 욕심이 많고, 무엇이든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어떤 일이든 끝까지 잘 해내기보다 시작만 해놓고 중도에 포기하는 일들이 많았다. 전형적인 용두사미형 인간이었다. 많은 일을 한꺼번에 벌리다 보니 끝내 다 감당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감당하려 애쓰다 보니 일은 어찌 마무리하더라도 건강을 잃게 되는 일들이 허다했다. 인위와 집착이 낳은 병폐를 그대로 경험했던 것이다. 


최근 들어 인생의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 중인데, 덕분에 이것저것에 마구 욕심 내던 삶을 청산하고 오직 내가 할 수 있는 것 한두 가지에 몰두하게 되었다. 배우고 싶던 것도 많고 잘하고 싶던 것도 많던 내가, 욕심과 집착의 마음을 내려놓고 오직 글쓰기와 독서에만 몰두 중이다.(덕분에 살림에서 조금씩 손을 놓기 시작해서 문제긴 하다만.) 시작한 이상 어떤 식으로든 지치지 않고 끝까지 가보고 싶다. 아직까지 그 끝이 어디인지, 무엇인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매일매일 꾸준하게 지치지 않고 읽고 쓰는 중이다. 그러다 보면 어떤 식으로든 멋진 마무리를 할 수 있겠지, 기대하면서.          




76장 유약한 것이 도리어 상위에 있다.      

사람이 살아 있을 때 그 몸은 유약하고, 죽으면 굳고 강직해진다.
초목도 살아있을 때는 부드럽고 약하지만 죽으면 단단하고 마르게 된다.
그러므로 굳고 강한 것은 죽음에 속하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삶에 속한다.
그러한 까닭에 군대가 지나치게 강하면 망하게 되고 나무도 강하면 잘려진다.
강대한 것은 언제나 하위인 것이고, 유약한 것은 도리어 상위에 있게 된다.           


단단하기를, 굳세기를, 강하기를 요구하는 시대를 살면서 ‘유약함’을 말하는 문장을 보니 생각이 많아졌다. 워낙 험한 세상이나 내 아이들에게도 부드럽고 유약하기를 쉽게 강조하지 못했다. 내 삶에서도 스스로 강해지려고 노력해온 시간이 훨씬 많았다. 부드러운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약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아서 겉은 강한 척 무장하고 다녔다. 나를 잘 아는 친구들은 내게 우스갯소리로 “넌 외강내유형 인간이야”라고 말할 정도였다. 특히 ‘유약해’ 보이지 않으려 참 부단히도 애쓰며 살아온 시간들이었다.      


부드럽고 약한 것은 유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을, 강하고 굳은 것은 고집스럽고 독단적인 것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여리고 유연한 것이 강하고 굳은 것보다는 상위라는 말, 잊지 않아야겠다. 조금 더 부드럽고 유약한 삶을 살아보도록 나를 잘 다스려야겠다.                               




그 외에도 많은 문장들을 만났고, 처음 기대보다 훨씬 더 자주 감동하며 읽었다. 문장 곳곳에 나를 위한 메시지들이 숨어 있어 자주 펜을 들어 줄을 그어가며 읽어야 했다. 수천 년 전의 철학자가 지금의 나에게 이토록 많은 울림을 줄 수 있다니, 심지어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상태인데도! 제대로 이해할 만큼 여러 번 읽게 된다면 얼마나 더 많은 문장들을 만나게 될지 기대가 된다. 손 닿는 곳에 두고 살다가 중간중간 마음이 복잡하고 부자연스러울 때마다 이곳저곳 펼쳐가며 두서없이 자주 읽어봐야겠다. 언젠가는 전혀 새로운 문장에서 또 다른 울림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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